〈졸업〉 한줄 관람평
임종우 | 포기하지 않았던 투쟁의 기록, 그 안의 감정을 다시 비추다
김정은 | 차갑고 무거운 시절에 맞서 민주적인 투쟁을 함께한 이들에게
오윤주 | 가장 좁은 정치에 맞선 가장 넓은 정치
〈졸업〉 리뷰: 가장 좁은 정치에 맞선 가장 넓은 정치
*관객기자단 [인디즈] 오윤주 님의 글입니다.
어떤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말을 잃게 만든다. 단지 존재만으로 관객을 압도하여,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는 것 자체를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지게 한다.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 예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작품들이 특히 그렇다. 이 영화, 〈졸업〉은 다큐멘터리라는 예술 장르가 존재하는 이유를 증명한다. 어떤 이야기들은 반드시 기록될 필요가 있고, 다른 어떤 매체가 아니라 그 순간 누군가가 잡은 카메라를 통해 기록될 때 가장 큰 의미를 갖는다. 〈졸업〉은 이 영화가 픽션이 아니라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이 가장 큰 울림을 가져다 주는, 그 어떤 부조리극보다 부조리한 현실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낸, 다큐멘터리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구현해낸 기록의 예술이다.
〈졸업〉은 ‘사학 비리 종합세트’라고 불리는 김문기 총장 세력을 상지대학교에서 몰아내기 위한 학생들의 투쟁을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카메라로 담는다. 그 옛날 다윗과 골리앗의 신화 이래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으며 광주라는 이름으로, 용산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세월호라는 이름으로 계속해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부패한 소수의 권력에 맞서 싸우는 권력을 가지지 못한 다수의 이야기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임을, 학교의 주인은 학생임을 목놓아 외쳤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우리는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전설처럼 접해온 장면들을 본다. 학생에게 손찌검하는 교수, 학생들의 천막을 무력으로 끌어내리는 용역들,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여 텅 빈 강의실과 느닷없이 전기가 끊긴 학생들의 공간, 삭발을 하고 단식 투쟁을 하는 학생회장, 온몸으로 총장의 차를 막고 옥상 난간 위에 올라가 학교 정상화를 외치는, 경찰들에게 사지를 붙들려 끌려 나가는 학생들, 그리고 그렇게 울부짖는 학생들 사이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지나가는 총장의 모습을 본다. 그들의 투쟁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이란 너무나 견고하여 도저히 무너뜨리지 못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든다. 돌멩이 하나 쥔 다윗과 거대한 골리앗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그 앞에서 학생들은 투지로 활활 타오르다가도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순간에 몇 번이고 직면하고, 그런 서로를 위로하고 토닥이며 다시 한 발 내딛을 용기를 얻고, 그렇게 네 명의 학생회장들을 거쳐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의 투쟁은 결국 김문기 세력의 퇴출로 일단락된다. 그리고 그 모든 사건이 지나간 후에야 그들은 함께 졸업사진을 찍는다.
도무지 말을 들어주지 않아 결국 맨몸으로 달려드는 학생들에게 김문기 총장과 이사회는 자꾸만 법대로 하라는 말을 내뱉는다. 절차를 따르라고 이야기한다. 이미 법과 절차를 자기들의 편으로 만들어둔 뒤에, 상식 위에 법을 둔 뒤에, 정의와 양심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뻔뻔한 낯으로 법을 따르라 한다. 하지만 법이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아니라 상식과 양심으로부터 거꾸로 솟아올라야 하는 것이다. 상지대 학생들의 수업 거부가 장기화되며 열리게 된 대담회에서 자꾸 본질을 흐리는 부총장에게 총학생회장은 울며 묻는다. “부총장이기 이전에 선생이고, 선생이기 이전에 아버지인 당신에게 묻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외치는데, 그렇게도 그 자리를 포기하기가 힘듭니까?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가 그렇게도 두렵습니까?” 탁상공론만을 내놓던 김문기의 세력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결국은 그 자리, 그 권력을 포기하기가 그렇게도 두려워서, 그들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과 존엄성까지 버린다.
정권이 교체되며 김문기의 세력들은 결국 학교에서 물러났다. 한편으로는 허무한 마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쉽게. 그러나 그들이 어떤 정권과 연관되어 있었는지, 그들의 정치 싸움에는 관심 없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정당이나 정권에 맞서 싸운 것이 아니라 세계의 폭력과 부정의에 대항하여 학생으로서, 국민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양심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가장 좁은 정치에 맞선 가장 넓은 정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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