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한줄 관람평 


정성혜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건 잠깐의 따뜻한 손길

송은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내 마음 뿐이다

임종우 단어의 조각을 모아 새로운 언어의 물결로

김윤정 | 가장 보편적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김정은 고단한 오늘의 작은 위로로 나은 내일을 그려 보는 우리의 이야기






 〈오늘, 우리  리뷰: 가장 보편적인 오늘, 우리의 이야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오늘, 우리〉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문득 영화 〈벌새〉의 카피가 떠올랐다〈벌새〉가 주인공 은희를 따라가며 1994년 '아주 보편적인' 서사로 큰 울림을 주듯, 〈오늘, 우리〉는 네 명의 주인공을 따라가며 가장 보편적인 지금 우리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오늘, 우리〉는 〈2박 3〉(감독 조은지), 〈환불〉(감독 송예진), 514〉(감독 부은주), 〈대자보〉(감독 곽은미)까지 네 편의 단편영화를 하나로 묶어낸 옴니버스 영화이다. 〈오늘,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겪는 보편적인 삶에 대해 네 명의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한다.

 



2박 3


2주년이 된 날, 애인인 민규의 집으로 찾아간 지은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는다. 이별의 상황과 감정을 준비해온 민규와는 달리 지은은 이 상황이 믿기질 않는다. 해소하지 못한 자신의 감정들을 정리하기 위해 지은은 민규의 집에서 나가지 않겠노라 선포하고 이별로 인한 원망, 아쉬움, 속상함 등 자신의 모든 감정을 민규에게 23일간 쏟아낸다.


민규네 집에서는 또 다른 이별의 상황이 펼쳐진다.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난 민규의 엄마와 그런 아내를 찾아다니는 민규의 아빠, 둘을 바라보는 민규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 거기에 타인의 이별을 바라보며 이별을 겪고 있는 지은까지 뒤죽박죽 섞여있다. 마음이 떠난 아내를 보며 울부짖는 아빠에게 감정이 동요하는 민규의 모습, 새로운 사랑을 위해 차갑게 이별을 고하는 엄마에게 분노하는 민규의 모습은 자신의 사랑을 단호하게 정리하는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사랑과 이별이라는, 어찌 보면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수 있는 상황 속에서 〈2박3일〉은 이 모든 아이러니한 관계와 상황에 집중한다.


지은의 2박 3일간 한풀이는 민폐도, 미련한 것도 아닌 당연한 것이다. 지은과 민규, 사랑이라는 관계가 만들어낸 상반된 캐릭터이지만 우리는 누구나 지은이 될 수도, 민규가 될 수도 있다. 사랑이라는 게임 앞에 언제나 이기는 게임을 할 수는 없듯 ‘모두가 서로에게 한 스푼만 더 따뜻할 수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모든 관계들이 아이러니하니 말이다.


 




〈환불


꿈꿔왔던 직장인의 삶. 수진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입사 취소 통보를 받았다.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간 수진에겐 팍팍한 삶이 기다릴 뿐이다. 지낼 곳이 없는 상황, 모두 나눠주었는데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필요한 책들, 당장 필요한 돈,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입사 취소 사실, 입사를 위해 사둔 정장까지. 모든 것이 막막한 때 수진은 자신의 짐을 싸들고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려 한다.


수진은 스터디 모임으로 향한다. 자신의 취업 책들과 스터디 모임비를 환불받는 것이 목표이다. 다른 스터디원 친구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수진의 모습에 친구는 이야기한다. ‘그렇게 잘 따지면서 왜 회사에는 안 따지는거야?’ 결국 회사를 찾아간 수진은 부당 해고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회사라는 절대적인 위치 앞에 취준생 수진은 작아질 수밖에 없다. 회사를 나와 수진은 입사를 위해 구입한 정장을 환불하러 또다시 길을 향한다. 하지만 결국 수진은 환불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온다.


수진은 회사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 후 자신의 필요에 따라 많은 관계들을 환불하려 했다. 자신의 상황 속에서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에 다녀온 후 수진은 변화했다. 비록 자신은 회사로부터 필요에 따라 환불 당했지만 마지막으로 남은 자신의 물건에게 또 다른 환불을 저지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얽히고 얽힌 관계들 속에 그저 환불만 외치면 해결되는 손쉬운 방법은 없다. ‘사람은 환불되지 않으니말이다.





5월 14


514일에 열리는 동생의 결혼식, 부처님의 생일까지, 1년에 단 한 번인 514일 생일의 주인공인 민정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자신의 생일날 동생의 결혼식 케이크 심부름을 해야 하는 민정. 자신의 상황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욕심 속에서 결정타로 그저 옆에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한 애인 영기의 이기심을 직면하자마자 가족들, 애인, 동료까지 철저하게 축제의 중심에서 민정을 끌어내린다.


민정은 참고 참아온 모든 감정을 터뜨린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주인공이 될 수 없었던 민정은 아이러니하게도 낯선 슈퍼에서 처음 만난 주인아주머니로부터 주인공이 된다. 성의 없고 일방적인 영기의 케이크와 편지 같은 선물이 아닌,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진심이 담긴 따뜻한 말 한마디가 필요했다. 민정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진정한 생일선물의 의미는 슈퍼에서 주인이 민정에게 건넨 위로의 약과에 모든 의미를 담고 있다.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사람이 오히려 나에 대해 가장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실망감은 나의 인생 곡선을 밑으로 곤두박질치게 한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낯선 누군가에게 위로를 받는다는 것은 삶의 큰 울림이 되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다. 상승과 하강이 반복되며 살아가는 우리의 커다란 인생 그래프에 대해, 514일〉은 이 얄궂은 상호작용 속 우리에게 담담한 위로를 건넨다.

514일〉은 영화가 끝난 후 더 큰 울림을 선물해준다. ‘나는 누군가에게 약과를 건네는 사람일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나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져보는 울림의 진동은 끝나지 않을 숙제이자 선물인 것만 같다.




 

〈대자보


대학생 혜리는 학내 비리 교수를 규탄하는 활동을 하며 비리를 비판하는 대자보를 쓴다. 그리고 혜리는 비리 교수로부터 고소를 당한다. 영화는 고소 사실을 알게 된 혜리의 불안한 감정을 따라가며 시작된다영화는 25분의 러닝타임 동안 철저히 혜리의 감정을 따라간다. 동아리에 신입 부원이 찾아온 상황 속 혜리는 동아리 부원인 민영에게 교수에게 고소를 당한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민영과 신입 동아리 부원이 흥겹게 비리 교수에 대한 새로운 대자보를 써 내려간다. 흰 종이에 까만색 글씨가 채워진다. 검은 글씨로 인해 고소당한 혜리는 온통 검은 옷을 입고 고소 사실에 까맣게 속이 타들어간다. 〈대자보〉에 보이는 흑과 백의 색은 혜리의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혜리는 새로운 대자보에 이름을 넣지 말자고 말하고 민영은 돌변한 혜리의 태도가 혼란스럽다. 갈등의 상황 속 혜리는 결국 자신의 고소 사실을 이야기한다. 부당한 상황이 자신에게 펼쳐질 수도 있을 거라는 공포 속 세 사람 사이의 공백은 불안한 혜리의 감정을 더욱 잘 보여준다. 결국 신입 부원은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혜리는 부당한 상황에 혼자 맞서기로 결심한다. 새로운 대자보에 자신의 이름만을 써서 밖으로 향한다. 하지만 혜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민영이 자신의 이름을 쓴 대자보를 들고 혜리의 옆을 지키며 초조한 감정 속 대자보 쓰기는 끝이 난다. 25분이라는 시간 동안 흑백의 질감과 원쇼트로 혜리의 불안한 감정을 온전히 따라가며 보여준다는 것은, 마치 관객을 대자보 쓰는 동아리방 현장으로 불러들인 듯한 효과를 준다.


‘25분의 시간을 함께하는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대자보에 써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변화를 위해 개인이 용기를 내야하는 모든 상황 속, 혜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결코 낯설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우리〉는 지은, 수진, 민정, 혜리 4명의 인물을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지은, 수진, 민정, 혜리의 서사를 따라가며, 우리는 라는 하나의 이야기 발견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인간도 환불을 외치는 부당한 세상에 대해, 얄궂은 우리 삶의 인생 그래프에 대해, 변화를 위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이 모두는 우리의 삶이라는 이야기를 전하며 마무리한다.


단편영화들을 새롭게 엮어 관객들과 만나는 이러한 시도는 또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며 신선함을 선사한다. 단편영화는 영화제에 찾아가야만 볼 수 있으며 '씨네필' 관객을 제외하고 일반 관객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박 3일〉, 〈환불〉, 514일〉, 〈대자보〉 네 편의 단편영화들이 서로 합쳐져 보편적 서사가 주는 힘을 보여주었듯, 영화계 안에서 단편영화들을 새롭게 구성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이끌어주는 시도들이 이어지길 바라며, 단편영화들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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