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번째 용의자〉 리뷰: 영화와 관객 사이의 현실 감각
*관객기자단 [인디즈] 임종우 님의 글입니다.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는 왜 지금 관객에게 왔을까. 이 영화는 왜 지금 만들어져야 했던 걸까. 그리고 어떤 이유로 2019년 가을에 개봉했을까. 이러한 일련의 질문은 역사화된 시간을 영화로 재구성하려는 사람에게 동시대성, 유효성, 현재성 등의 문제로 부과된다. 포스트 세월호 세대의 관객 앞에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품고 등장한 〈벌새〉(2018 제작, 2019 개봉)처럼, 혹은 박근혜 정권 이후에야 도착할 수 있었던 〈공동정범〉(2016 제작, 2018 개봉)처럼, 아니면 〈당신의 사월〉(2019)처럼 말이다.
〈열두 번째 용의자〉를 위한 지면임에도 양해를 구하고 잠시 〈벌새〉 이야기를 하자면, 지금 돌이켜볼 때 영지는 영화의 시간 위에 쉬이 발붙이지 않는 인물이었다. 은희에 대해 다 알고 있는 듯 마치 미래에서 온 것처럼 등장하지 않았나. 은희의 마음을 가장 먼저 ‘말한’ 사람이었다. 영지는 감독이 투영된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그는 1994년과 2019년 사이의 간격에서 부유하며 영화 속 인물과 오늘날 수용자의 현실 감각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픽션적 재구성물로서 영지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에 타격을 받지 않고 관객의 보편적인 승인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다시 돌아와 〈열두 번째 용의자〉는 (종영하는 시점까지) 영화가 가진 장치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관객성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다방이라는 특정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고 다중의 등장인물이 그 안에서 영화의 시간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다. 여기서 이상한 점 하나는 인물 어느 누구도 주어진 상황에서 이탈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관객 또한 영화가 극단적인 방향으로 형성한 연극성에 그다지 반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열두 번째 용의자〉 속 인물은 심리적으로 다방의 ‘밀실화’를 허용했고, 관객은 작품 안에서 형성된 현실 감각에 동의하고 있다. 어떤 말과 노력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 낙인을 체화한 사태랄까. 오늘날의 언어로 표현하면 〈열두 번째 용의자〉는 한국사회 블랙리스트의 전사를 구체화한 셈이다. 덧붙여 인물들은 용의자로 호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추리장르 서사처럼 다른 용의자를 확실한 범인으로 만드는 데 집중하기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증명하는 일을 충실하게 수행할 뿐이다. 어느 누구도 범인이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영화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은 여전히 고민스럽다. 홀로 남겨진 박인성의 표정과 몸짓을 2019년의 타임라인에서 번역하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끈질긴 레드 콤플렉스의 유령인 걸까. 그럼 마지막에 〈열두 번째 용의자〉는 그것을 향한 대항의 의지를 작게나마 암시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영화가 이 부분에서 다소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 번 지금 우리의 현실 감각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 〈열두 번째 용의자〉 이후의 시간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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