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즈 기획] 지금, 독립영화
오늘도 독립영화는 우리를 기다립니다. 극장에서, 집에서, 때로는 우리가 뜻을 모아 함께하는 공간에서, 독립영화는 우리와 만나고 있습니다. 여기 독립영화와 좀 더 가까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립영화의 지금을 생생히 경험하는, 인디스페이스의 관객기자단 인디즈가 전해드립니다
영화가 우리 모두의 예술이 될 수 있도록
-대안으로서의 장애인 영화제를 중심으로
* 관객기자단 [인디즈] 성혜미 님의 글입니다.
현재 한국 독립영화는 아동,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폭력에 노출된 자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로 넘쳐나고 있다. 끊임없이 언급하고 인식시키며 변화의 바람이 분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소수자에 대한 영화와 소수자의 영화는 엄연히 다르다. 다시 말해 그 안에서 사회적 소수자, 특히 장애인을 다루는 방식은 ‘소재’로 쓰이는 것에 그치며, 매순간 약자의 자리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접하게 된 그 첫 번째 시작과 제19회 장애인 영화제 상영작을 만난 현재에 이르기까지 절감했던 것들에 대한 보고라 할 수 있다.
영화 〈오아시스〉 스틸컷
1. 영화 〈오아시스〉 속 장애인의 위치
장애인을 소재로 한 영화를 처음으로 마주했던 것은 2002년,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였다. 사회부적응자 홍종두(설경구)와 중증뇌성마비 장애인인 한공주(문소리)의 사랑을 그린 〈오아시스〉가 개봉했을 당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 영화를 호평했으나 정성일 평론가(이하 정성일)는 홍종두가 꽃을 들고 처음으로 한공주의 집을 들어가 고백하는 장면에 대해 “아무리 다르게 말해도 결국은 강간하러 찾아간 장면”이라고 언급했다. 그 근거로 정성일은 홍종두가 한공주의 집 열쇠를 훔쳐서 침입했으며 한공주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다짜고짜 옷깃을 젖혔을 뿐만 아니라 한공주에게 거리낌 없이 욕설을 뱉었다는 정황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후 한공주는 홍종두를 경찰에 신고하기는커녕 그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부르고 용서한 후 옷가지를 빨아 준다. 이해할 수 없는 자비에 대해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성일은 말한다. 또한 두 사람은 행복해지기 위해 흔히 말하는 정상인의 범주에 서로를 욱여넣는다. 다시 말해 그들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현실에 눈을 감는다는 것이다. 1 이러한 비판에 공감하는 입장에서 해당 소재 관련 영화를 〈오아시스〉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는 것은 불편함, 그 자체였다.
영화 〈달팽이의 별〉 스틸컷
2. ‘인간’으로서의 ‘나’를 말하는 〈달팽이의 별〉
〈달팽이의 별〉(2012)은 ‘보고 듣는’ 감각을 상실한 시청각 중복 장애인 영찬과 그의 아내 순호의 일상을 쫓아가는 여행기이자 평범한 사랑 이야기이다. 점화(점자를 손가락과 손등에 찍어 대화하는 방식)라는 소통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부부의 일상적 에피소드가 하나의 구성 축을 이루면서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와 같은 이야기나 갈등구조보다 세상을 느끼는 주인공들의 특별한 감각에 집중한다. “시청각 중복 장애인은 달팽이 같다”는 영화 속 영찬의 시에서 따온 영화의 제목 〈달팽이의 별〉은 달팽이 촉수처럼 촉각에만 의존해서 느리게 소통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달팽이는 시력과 청력이 없는 암수 한 몸으로 촉각에 의지해 살아가는데, 인간의 청각기관은 나선형의 달팽이관이 청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감각의 차원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2 영화가 장애인을 담아내는 시선이 어떠해야하는지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한다.
영화 〈달팽이의 별〉 스틸컷
3. 영화를 보고 듣는다는 것
그렇다면 보고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보고 듣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보고 들을 수 없는 사람에게 영화란 무엇일까. 〈달팽이의 별〉은 2012년 3월 국내 최초로 일반 영화 버전과 배리어프리 영화(한글자막 화면해설 영화) 버전을 전국 극장에 동시 개봉했다. 배리어프리 영화는 대사와 음향과 같은 사운드를 설명하는 자막과 상황을 설명해주는 음성 내레이션을 넣어 시청각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영화이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에서 매달 주최하는 무료 상영회나 농아인협회의 '가치봄' 상영회 등이 있으나 상영관 및 상영 일정이 제한되어 있고, 상영작 또한 적은 편수로 한정되어 있어 배리어프리 영화를 자유롭게 관람하기란 사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중들의 인식은 어떠할까. 시‧청각 장애를 가지지 않은 지인들은 대상으로 영화를 보여주자 ‘확인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짚어줘서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상상하면서 보고 싶은 부분들까지 설명해주며 관객의 역할을 제거했다’, ‘영화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특히나 해외의 작품들은 더빙이 더해지기 때문에 영화 속에 들어가는데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얼마나 문화예술이 장애인을 배려하고 있지 않은가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다. 여기에 대안을 찾아가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장애인 영화제다.
영화 〈터치〉 스틸컷
4. 영화가 우리 모두의 예술이 될 수 있도록, 제19회 장애인 영화제
‘장애인 영화제’는 장애를 소재로 제작되었거나 장애인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작품이 한글자막 화면해설 버전으로 상영되는 영화제로, 2012년의 〈달팽이의 별〉을 지나 제19회 장애인영화제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을 다루는 영화의 태도는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제19회 상영작을 중심으로 그 이유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19회 장애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미지 감독의 〈터치〉는 시각장애인 엄마와 함께 사는 일곱 살 현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변의 타박에도 불구하고 소리 나는 신발을 신는, 너무도 빨리 철이 들어버린 아이와 그 소리를 들어야만 안심이 되는 시각장애인 엄마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현실적이기에 자칫 비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단단한 그 모습은 왜인지 희망을 품게 한다. 뿐만 아니라 신경과 치료약을 먹는 초등학생 우석이 부작용을 겪던 중 약을 잃어버리게 되며 아름답기를 강요받았던 것에서부터 벗어나는 〈무지개 약〉, 지체장애인 태일과 시각장애인 대성이 서로의 눈과 다리가 되어 기적이 일어나는 장소, 베데스다 연못으로 향하는 여정을 그린 〈베데스다 가는 길〉 등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가 조명했던 ‘장애인이 받는 차별’이 아니라 이들의 ‘내면’에 오롯이 그 힘을 다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영화 속에서 장애인은 늘 약자로 설정되며 이들과 주변인은 장애를 감내해야하는 존재(〈순희〉, 〈수련회 가는 날〉) 혹은 희생(〈오래된 사랑의 실체〉)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들의 연대(〈칼국수 먹으러 가는 길〉, 〈푸른 아이〉)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앞서 말한 것처럼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들이 속속히 등장하면서 사회적 약자가 그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평범하게 사유하고 슬퍼할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면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다시 말해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곧 장애인을 얽어매는 또 다른 장애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화(〈인애장〉)가 출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화 〈인애장〉 스틸컷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이 없지만 한 번도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다 때가 되면 주인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달팽이의 별〉 속 주인공의 대사처럼 이들에게 돌아올 ‘때’가 그저 구호로만 존재하는 현실, 즉 ‘소수자를 소재로 하는 영화’에서 영화적 언어가 갖는 이미지를 통해 보다 명확한 방식, 즉 ’소수자의 영화‘를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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