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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에움길〉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9. 7. 29.




기억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에움길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7월 22일(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승현 감독

진행 박상근 영화사 그램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승현 님의 글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다큐멘터리 영화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문제이다. 2016년 위안부 이야기를 그려낸 영화 귀향에서 조연출과 다나카역을 맡았던 이승현 감독은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만들었다. 기존에 위안부 문제를 다루었던 작품들과는 다르게 에움길은 나눔의 집 할머니들의 일상과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둔 영화다. 같은 주제를 두 번이나 다룬 만큼 그 과정에는 감독의 절실한 문제의식과 윤리적인 고민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이승현 감독의 그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박상근 영화사 그램 대표(이하 박상근): 오늘 인디토크 진행을 맡은 박상근입니다. 옆에 계신 분은 에움길을 만든 이승현 감독님입니다. 직접 인사 한번 해주시죠.

 

이승현 감독(이하 이승현): 안녕하세요.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을 연출한 이승현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김군자 할머님2주기를 맞이해 진행한 나눔상영회 자리라고 들었습니다. 저희 영화는 이옥선 할머님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인데요. 이옥선 할머님께서 김군자 할머님과 가장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사이가 굉장히 좋으셨는데요. 항상 김군자 할머님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칭찬도 많이 해주셨고요. 김군자 할머님께서 의미가 있는 좋은 일들을 많이 선행하셨기 때문에 이옥선 할머님께서 부러워하시고 존경하셨습니다. 그런 이옥선 할머님이 주인공인 영화를 상영하고, 김군자 할머님도 같이 추모를 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굉장히 영광으로 생각하고 감사드립니다.

또 간단하게 소개를 드리자면, 아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2016년도에 영화 귀향이 개봉했었거든요. 이 영화도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 피해 사실을 소재로 한 영화였고요. 그 영화에서 저는 흔히 '착한 일본군'으로 불리는 역할로 참여를 했었습니다. 스태프로도 참여를 했었고요.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할머님들과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게 되어서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 에움길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박상근: 보통 관객분들이 첫 질문을 꺼리시고 민망해하셔서 저희가 질문을 두 가지 정도를 준비했습니다. ‘에움길이라는 단어가 생소하셨을 것 같아요. 이 영화의 제목을 에움길이라고 붙이신 이유와 에움길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승현: 일단 에움길이라는 단어는 저도 잘 몰랐었던 단어였어요. 제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목을 정할 때 순우리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우리말이 예쁜 느낌이 들더라고요. 뭐랄까요. 유니크한 느낌도 있고요. 오랜 기간 단어의 의미를 지켜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특성을 보았을 때 할머님들과 닮아있지 않나, 그래서 순우리말을 고집했습니다에움길은 굽은 길, 에워서 돌아가는 길이라는 뜻으로 지름길의 반대말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할머님들이 과거에 고초를 겪으시고 현재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시면서 돌아온 길이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리고 할머님들이 앞으로의 목표, 문제에 대한 해결, 먼저 떠나신 할머님들의 한과 원을 풀어드리는 것, 자신의 바람 이런 것들을 이뤄내는 데에 있어서 현실은 순탄치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이 앞으로도 곧은 길은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에서 에움길로 짓게 되었고요또 제 바람을 담기도 했었어요. 고난과 역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굽이 굽이마다 웃음도 있고, 즐거움도 있고, 함께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있었다는 것, 앞으로도 그런 굽이들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습니다.





박상근1600개가 넘는 테이프와 옛날 자료들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관객분들에게 소개해드리지 못한 장면에 대한 아쉬움도 많아요. 관객분들에게 소개해드리지는 못했지만, 꼭 한번 설명해드리거나 소개하고 싶은 장면이 있으신지요.

 

이승현: 원래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조금 무거운 이야기들을 했었거든요. 할머님들이 지내오신 삶들이 대부분 가볍지 않기 때문에 비디오테이프들에 무거운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있었어요. 김군자 할머님에 대한 영상을 말씀드릴게요. 김군자 할머님을 뵈었던 분들은 아실 거예요. 김군자 할머님이 굉장히 강하신 분이거든요. 20년 전이죠. 당시에도 연세가 있으셨지만 그래도 조금 더 젊었을 때의 김군자 할머님은 다른 할머님들, 강일출 할머님, 이용수 할머님과 다 같이 있으시면 그렇게들 많이 싸우시더라고요. 엄청 싸우셨어요. 되게 사소한 걸로 많이 다투셨는데요. 할머님들이 과거에 힘든 시간을 갖고서 돌아오신 거잖아요. 타국에서 오랜 시간을 따로 살다가 한곳에 모였으니 많은 문제들이 있었겠죠. 굉장히 사소한 문제예요. 욕실 하수구에 누가 이쑤시개를 버렸다, 그러면 누가 버렸냐고 쌍욕도 하시고요(웃음). 또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셨는데요. 사투리의 심한 억양이 섞여가면서 듣도 보도 못한 욕들을 막 하시면서 싸우시는데 그게 전 인상적이었어요. 기억에 강렬하게 남더라고요. 그 모습들이 보기 불편하다는 것이 아니라 정겨운 느낌이었어요. 정말 우리 곁에 계시는 할머님들이시구나, 그런 친근함을 많이 느꼈던 일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박상근: 감동적인 이야기를 해주실 줄 알았는데(웃음), 할머님이 싸우신 이야기들을 소개해주시네요. 감동적인 이야기도 하나 해주시죠.

 

이승현: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님들도 계시는데, 수요집회를 주간하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 소속되어 있는 할머님들도 있으시고, 지방 단체에 함께하시는 할머님들도 계시거든요. 그 할머님들께서 과거에 다 같이 모이셔서 금강산을 한번 방문했었어요. 할머님 중에 이북에 적을 두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금강산에 도착해서 이북 땅을 밟자마자 정말 통곡과 오열을 하시면서 몇십 년 만에 이제야 돌아왔습니다, 부모님 저 돌아왔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세대는 남북 민족 간 끈끈함, 반드시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중요성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습이 낫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영상을 보았을 때 할머님들이 정말 힘든 삶을 사셨구나, 일본에게 삶을 뺏긴 것뿐만 아니라 할머님들의 고향도 잃어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향에 얽힌 추억들, 또 부모님들, 가족, 친구들 이런 것들을 다 빼앗겼구나, 그래서 마음이 좀 아팠습니다.

 

박상근: 이번에는 관객의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사실 이런 얘기를 저희가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는 행동하는 것이 없었거든요. 한 개인으로서 미약하게나마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요?

 

이승현이런 질문을 받으면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민이 많이 드는데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드는데 최선을 다했고요. 우리 개인이 거창한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할머님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부터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재 많은 피로감이 쌓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대략적으로 문제를 알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드니까 잠깐 내려놓자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할머님들은 수요집회를 1991년부터 지금까지 매주 쉬지도 않고 참석하시거든요. 우리가 할머님들을 봤을 때, 이 문제를 지겨워하거나 부담스러워하거나 힘들어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죄송스럽잖아요. 할머님들은 연로하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그것을 꾸준히 지속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것을 봤을 때 우리가 관심을 절대 내려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할머님들이 계시는 곳들 있잖아요. 나눔의 집, 정대협, 지방에 있는 단체들, 그런 곳에 정말 작은 후원이라도 한 번쯤 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 집회에도 참여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소녀상을 지키는 단체나 소녀상 건립 추진 단체들도 있더라고요. 그 단체에도 후원을 해주셔도 좋고요. 행사에도 같이 참석해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 관심을 가져보고 기회가 된다면 추진하는 일에도 같이 참여를 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상근좋은 질문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보태면 여기 계신 할머님들은 나눔의 집에 계신 할머님들이시거든요. 나눔의 집 홈페이지에 들어가시면 정기 후원이나 나눔의 집을 돕는 관련 업체들이 있어요팔찌나 배지 같은 것을 판매해서 그 수익금을 나누는 많은 업체들이 있으니까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또 혹시 질문 있으신가요?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아까 앞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TV나 언론을 통해서 많이 듣기는 했지만 행동할 수 있는 용기나 동기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를 만드는 건 오랜 기간이 걸리잖아요. 이승현 감독님은 편집하는 내내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셨는지, 그리고 이제 마무리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싶은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승현: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신기하면서도 재밌기도 했었어요. 할머님들이 장난도 많이 치시고 즐거운 모습이 많이 담겨있거든요. 저는 복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그 영상들을 다 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나눔의 집에서 그 영상들을 외부에 공개한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것을 제가 볼 수 있었던 거예요. 제가 정말 행운아인 거죠. 힘든 부분도 있었어요. 증언하시는 영상이나 장례식 영상도 담겨있거든요. 편집을 하기 위해서 할머님들의 말, 등장인물, 카메라 앵글, 시간, 장소 그런 요소들을 문서화하는 작업도 했거든요. 그러면 하나의 영상을 몇십 번씩 돌려서 봐야하기 때문에 증언 영상이나 장례식 영상을 볼 때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편집을 하면서 작업을 병행했는데요. 영화 후반부에 나오죠. 정기 등록되신 할머님은 몇 분이시고, 생존하신 분은 몇분이다, 그 내용을 담은 자막이 있는데 그것은 제가 편집 초반부터 집어넣은 거예요. 그 인원이 무조건 들어가야 된다는 생각에 그랬고요. 처음에는 생존자가 오십몇 분이셨죠. 그런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숫자가 줄어드는 거예요. 영화는 뼈대를 갖추고 할머님들의 각자 이야기가 붙으면서 완성이 되어가는데, 그 숫자는 줄어드는 게 굉장히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하루라도 빨리 영화를 완성해야겠다는 마음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완성된 후에는 영화를 통해서 많은 분들이 단순히 이 문제를 일본의 성노예제 문제로서만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을 가진 할머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바랐어요. 친근한 할머님으로 기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더라고요. 물론 이 문제는 할머님들의 일부인데, 할머님들끼리 생활하시면서 나오는 습관, 말투, 사소한 것들 또한 할머님의 이름과 자신을 구성하는 큰 일부라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금까지 우리가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할머님들의 일부는 언론을 통해서 많이 지켜봤죠. 그래서 이 영화는 할머님들의 일상과 다른 일부를 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계기가 있었습니다.

 

박상근: 너무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이승현 감독님도 그렇고, 저도 조금 울컥했던 것 같습니다. 오늘 꼭 한 말씀 드리고 싶었던 게, 오늘 여기 계신 관객들 덕분에 저희 영화의 관객이 7,000명을 넘었습니다.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또 질문이 있으시면 받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감독님 영화 잘 봤습니다. 할머님들 살아계실 때 영화 촬영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두 가지 질문을 하고 싶은데요. 직접 촬영한 자료보다는 기존에 있던 자료들을 많이 모으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할머님들을 만나서 촬영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할머님들을 찍었을 텐데 새로 오신 감독님이 어떻게 신뢰를 얻고 촬영할 수 있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두 번째는 여러 할머님들이 있었는데 왜 이옥선 할머님을 주인공으로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승현: 사진 같은 경우에는 90년 초반대 자료들이 있었고요. 영상도 2000년대 초반부터 있었는데 대부분 나눔의 집 관계자분들이나 봉사자분들께서 촬영하신 거예요. 사진 찍으시는 작가님들이 몇 개월 봉사하실 때 할머님들의 모습을 찍기도 했고요. 나눔의 집에서도 할머님들의 일상과 하루하루가 역사이므로 기록해야 한다는 취지가 있었고요. 그런 촬영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할머님들이 카메라에 대한 거부감은 없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저는 20173월부터 10월까지 촬영을 시작했는데요. 처음에 저희가 스태프를 꾸려서 촬영을 갔을 때는 저희가 불편해서 못 견디겠더라고요. 할머님들께서는 괜찮다고 하셨는데, 저희는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하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조명, 오디오 등 팀들을 꾸려서 갔었거든요. 촬영하는 공간은 할머님들이 실제 거주하시는 공간인데 거기서 촬영한다는 게 저희가 죄송스럽기도 하고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촬영을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스태프들을 다 돌려보내고 한 달 정도 저 혼자 촬영을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촬영도 안했었어요. 아침에 가서 할머님들에게 인사드리고, 같이 아침을 먹고, TV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도 먹고, 먹은 후에는 또 이야기하고, 노래도 부르고, 저녁도 먹고, 이렇게 한 달 가까이 생활을 했어요. 그러니까 할머님들께서도 친근하게 대해 주셨고요. 보통 할머님들이 인터뷰를 할 때는 항상 해오시던 대답을 하세요. 끌려가셨을 때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무조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던 거죠. 할머님들의 다른 이야기들이나 즐거웠던 이야기들은 듣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같이 생활하니까 그냥 TV 보면서 할머님들과 편하게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런 시간이 쌓여서 할머님들이 마음을 열고 촬영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고요.

이옥선 할머님을 주인공으로 한 것은 이옥선 할머님이 무언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으시더라고요. 옛 영상들을 제가 다 보았는데, 정말 수많은 사람들이 자료를 찍었는데 결국 카메라가 이옥선 할머님에게 가요. 그게 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다들 이옥선 할머님을 많이 찍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니까 사람을 끄는 무언가가 있는 거죠. 저도 그 할머님의 마력에 이끌림을 당한 거예요(웃음). 또 이옥선 할머님이 20006월에 중국에 사시다가 한국에 오셨는데요. 그 전에 90년대 초부터 활동하시던 많은 분들이 계셨고 지금까지도 활동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옥선 할머님은 그 중간지점에 오신 할머님이실 거예요. 이옥선 할머니 이후에 해외에 거주하시던 분들이 한 분, 두 분 합류를 하시게 된 것이고요. 90년대에 활동하시던 분들은 대부분 돌아가셨어요. 정말 어려웠던 90년대에 힘든 싸움을 하셨던 분들을 이옥선 할머님이 지켜 봐왔고 이옥선 할머님이 그 의지를 이어받았고요. 그 이후에 합류한 할머님들에게는 의지를 건네주고 계세요. 할머님들의 운동 역사를 보면 이옥선 할머님이 시기적으로도, 역할로도 가운데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옥선 할머님이 모든 할머님들을 봐왔고, 운동 역사의 중심이 되셨기 때문에 할머님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도 너무 잘하세요. 할머님에게 질문을 드리셨던 분들은 이옥선 할머님이 철학자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박상근: 우리 감독님 말이 좀 기시죠(웃음).

 

이승현: 싫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웃음).


박상근저기 있는 꼬마 손님들이 기지개를 열여섯 번 정도 하셨어요(웃음). 





관객: 영화 너무 잘 봤는데요. 울림이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처음 영화를 만든 계기가 상업영화도 있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영화의 주제를 할머님들의 이야기로 하신 건가요?

 

이승현: 또 너무 길어질 것 같은데요(웃음). 최대한 간략하게 정리해서 말씀을 드릴게요. 원래는 제가 이 문제에 대해서 무지했었는데요. 귀향을 통해서 알게 되었어요. 굉장히 충격을 받았고요. 할머님들에게 죄스러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자기반성이랄까요. 여태까지 몰랐던 것에 대한 반성인 거죠.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려고 했었어요. 할머님들이 먼저 말씀을 건네주시고 친하게 대해주셨어요. 저는 그냥 할머님들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영화를 하게 된 거예요. 문제를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저는 할머님들이 그냥 좋았어요. 그게 가장 큰 이유예요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었던 것은 옛 영상들을 보고 결심을 하게 된 것인데요. 영상들을 보면서 할머님들이 친근하게 느껴졌고, 사랑스럽게 보이고, 함께하고 싶고, 못 뵈었던 할머님들은 보고 싶고, 이런 마음들이 생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이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똑같이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다큐멘터리를 고집했어요. 극영화는 한차례 가공이 들어간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런 가공 없이 생생한 그대로 모습을 보여드리자, 그런 생각으로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박상근: 나눔의 집에 가면 할머님들께서 이승현 감독님에게 되게 잘해주세요. 잘생겨서 좋아하시고요(웃음). 이승현 감독님은 나눔의 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으신 분 중 한 분이십니다. 오늘 여기까지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한마디 해주시죠.

 

이승현: 영화가 개봉한 지는 많은 시간이 지났죠. 이미 IPTV로도 나왔고요. 극장에서 찾아보기는 힘든 시기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많은 분들께서 단체관람도 해주시고, 의미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너무나도 감사드리고요. 저희 영화,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보다 더 많은 분들이 할머님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여러분께서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많은 힘을 보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너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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