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과 오늘의 목소리에 담긴 진실을 비추다 〈김군〉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6월 6일(목) 오후 3시 30분 상영 후
참석 강상우 감독
진행 변영주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5·18항쟁 40주년을 앞두고 〈김군〉이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여느 언론이나 매체가 그러하듯 광주의 상흔을 들추어내기 보다는 현재의 일상을 담고자 했던 카메라는 무고한 시민을 겨냥한 빨간 점을 역으로 따라간다. 첨예한 시선과 분석은 여전히 반복되는 왜곡과 혐오의 뿌리를 끊어내고 은폐된 국가폭력을 밝히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그날의 기억을 안고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의 증언을 통해 미래를 살아갈 사람으로서 책무를 고민하도록 한다. 강상우 감독이 참석하고 변영주 감독의 진행으로 인디토크가 시작되었다.
변영주 감독(이하 변영주):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진행을 맡은 변영주 감독입니다. 강상우 감독님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강상우 감독(이하 강상우): 안녕하세요, 강상우입니다.
변영주: 영화 잘 보셨나요? 제가 우선 감독님께 몇 가지 질문 드리겠습니다. 영화에서 인터뷰가 잘 디자인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 독립영화를 많이 보시는 분들이라면 알아보셨을텐데, 초반에는 김예은 배우가 뜬금없이 인터뷰어로 등장하기도 해요. 여러 인터뷰어들이 등장을 하는데, 그렇게 만드셨던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요?
강상우: 저희가 작업을 2015년 5월부터 시작했어요. 영화에 나오는 주옥 선생님을 다른 작업을 통해 만났어요. 주옥 선생님께서 5·18 기록관을 다녀오셔서 저희에게 같은 동네에 사셨던 청년 ‘김군’의 사진이 걸려있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 무렵 지만원 씨와 일베(일간베스트)가 그 사람이 평양 사람이고 북한 특수군 출신이라고 왜곡하면서 사진 속 광주 시민의 얼굴에 빨간 화살표와 점을 찍어서 지목을 했어요. 처음에는 저희가 얼마나 유의미한 증언들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여러 가능성들을 고려해서 초반 작업을 했어요. 증언을 얻지 못할 경우에는 이 증언을 찾아나서는 젊은 사람들의 비중이 커질 수도 있고, 인터뷰어들이 자료를 찾는 과정이 주요하게 등장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2016년 여름에 찍은 영화 초반 조사실 장면에서는 김예은 배우님과 광주의 20대 배우지망생 분들이 리서치를 하면서 실제로 인터뷰를 하셨어요. 영화에 전반적으로 나오는 분은 조연출 안지환 씨인데,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시고 그 분이 감독일 거라고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웃음) 결론을 알 수 없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향을 열어두고 진행을 했어요. 프로덕션 방식도 다양하게 고려하면서 예은 배우님을 모셨고요. 만약에 유의미한 결론을 얻지 못할 경우에 조금 더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좋은 자료들이 나와서 아쉽게도 젊은 추적자들의 비중은 굉장히 줄어들었습니다.
변영주: 굉장히 정돈되어 있고, 자기가 궁금한 게 무엇인지 결정하고 들어가는 인터뷰였어요. 그래서 인터뷰가 대화가 돼요. 사실 오늘날 한국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이런 인터뷰가 많이 사라져서 개인적으로 조금 안타까워요. 인터뷰라는 것이 내러티브이고 담화문이기 때문에 대화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요새 보는 다큐멘터리의 대부분은 답만 듣지 않습니까? 이 작품은 그런 부분에서 영화 안에 발을 들이기가 조금 더 편했어요. 인터뷰를 볼 때 ‘저런 일이 있었어?’라고 생각만 하면서 멀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에 발을 걸치게 되는, 그런 도움을 주는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료를 정말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자료 조사를 어느 정도로, 어떻게 진행을 하셨어요? 사실 5·18은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사건은 아니니까요. 그런 사건일수록 ‘나 저거 뭔지 알아’하면서 지나치기 마련인데,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끔 이미지들이 구축되어있어요. 그만큼 아카이브가 잘 되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상우: 주옥 선생님을 찍고 나서 한 3개월 뒤에 이창성 선생님과 차종수 선생님을 만났고, 기자님께서 당시 항쟁 때 촬영하셨던 시청 사진들을 원본으로 스캔해서 제공해주셨어요. 굉장히 고용량의, 500기가바이트 정도 되는 걸 주셔서 800%, 900% 줌인을 들어가도 깨지지 않았어요. 그 사진들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게 큰 부분이고요. 그 외 다른 사진기자님들께서도 사진을 제공해 주셨고 영상도 518기념재단이나 기록기관에 보관되어 있는 것들을 많이 받았어요. 기존 5·18 자료들, 뉴스나 방송 다큐에서 흔하게 다루던 5·18의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군사 대치나 군중 시위 같은 모습도 저희 영화에 나오기는 하지만, 최대한 새로운 맥락에서 단순히 희생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잘 보이지 않았던 무장시민군이나 즐거웠던 순간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을 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변영주: 마지막에 김군의 사진을 극장에서 영사를 하고 세 분이 굉장히 어색하게 만나시잖아요?(웃음) 감독님의 특별한 의도가 있는 게 분명할 텐데요.
강상우: 우선 그 극장이 실제로 학살이 이루어졌던 송암동에 위치한 광주CGI센터의 상영관입니다. 영화에서 보시면 아시겠지만 각자 기억하는 부분들이 다 다르거든요. 각자 감정적으로 동했던 순간들이나 디테일들, 마음들이 다 다르셔요. 그런 것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조용한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고, 사진의 디테일들을 보여드리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CGI센터 상영관을 생각했습니다. 그런 맥락 외에도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어두운 현재의 공간에서 밝게 빛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바라보는 나이든 중년의 사람들의 모습들을 계속 생각했어요. 영화 오프닝에서는 혼자 외롭게 방에서 있다가 영화 결말부에 이르러서는 세 분의 선생님이 모이는 장면을 구상한 건데요,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실제로 도착하신 순서대로 들어오신 건데 이강갑 선생님은 조금 쭈뼛쭈뼛 오셨어요.(웃음)
변영주: 정말 좋았어요. 피해자의 기억이라는 것은 어떤 부분만 굉장히 과장되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렇기 때문에 실제 사실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피해를 받는 그 순간은 너무 무서운 순간이고 그 이후는 끊임없이 그것을 지우기 위해서 삶을 사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인터뷰를 하는데, 겨울에 끌려간 할머니가 당시에 진달래를 봤다는 거예요. 나팔꽃도 보고요. 사실은 끌려갈 때 본 게 아니라 위안소에서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상상했던 고향의 모습인 거죠. 어느 순간에 그 기억은 한겨울에 나팔꽃을 보며 끌려간 것으로 변한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다 대고 ‘당신의 증언은 비과학적이니 잘못되었고 가짜다’라고 할 수는 없죠.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생각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예요. 이게 어떻게 보면 전문가들의 영역인 거죠.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각자 증언이 다 달라요. 어느 분은 이 사진이 김군이 아니라고 기억하고, 어느 분은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고, 또 어느 분은 김군의 마지막을 함께 했다고 말해요. 그 기억들은 바르거나 틀린 기억이 아니라 갇혀 있는 자기의 기억들이 몽타주 되는 과정이고요. 되게 마음 아프지만 좋았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하나 더 드리자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에 담을 때에는 굉장히 고민이 돼요. 예전에 제가 어느 다큐멘터리의 가편집본을 보는데 혐오세력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너무 분노하게 되고 작품 자체를 보기가 싫게 되더라고요. 결국 영화 자체가 일종의 전시이고, 우리는 그 전시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그런 고민도 하셨을 것 같아요.
강상우: 일반적으로 독립다큐멘터리에서 지만원 씨와 같은 사람들을 다룬다면 언론에 나온 장면을 쓰거나 간접적으로 전달을 하는 게 보통이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게 적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제작진들도 직접적으로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 분의 빨간색 화살표가 저희 영화의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기존에는 5·18 관련해서 집단이나 군중을 주제로 한 담론들이 많았다면, 지만원 씨의 화살표는 개인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했어요. 그리고 그 화살표를 역으로 따라간다면 오월항쟁 때 존재했던,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개개인의 삶을 조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또 오월항쟁 때 총으로 광주 시민들을 가해한 것처럼 지금은 그 빨간 화살표를 통해 특수군이라는 누명을 씌우면서 비주얼적으로, 이미지적으로 공격하는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레드 헌트('빨갱이' 사냥)’의 21세기적인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부분을 넣어 다큐멘터리로 만들게 됐습니다.
관객: 계속 뇌리에 남는 게, ‘증명하라고 하는 게 여기서 인터뷰하는 거랑 똑같지 않느냐’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분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사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트라우마를 자극하거나 결국에는 그때 당시를 재연하고 증명하라고 말하는 게 되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고민하시고 이분들의 상처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변영주: 그 인터뷰가 이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갈등이 되는 지점일 것 같아요. 그냥 무시하지 않고 어떤 것을 증명하겠다고 하는 순간 그건 공식적인 말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게 문장이 되고 하나의 주장이 되어 버리는 것에 대한 분노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강상우: 김군에 대해서 입증을 굳이 할 필요가 있는지 가장 먼저 문제제기를 해 주셨던 분이 오기철 선생님인데요, 오기철 선생님은 80년 이후부터 90년 말까지 오월단체 사무국장으로 계시면서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신 분입니다. 그렇다보니 더 증언도 많이 하시고 특히 피해 사실에 대한 증언이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어요. 매년 오월만 되면 기자들이 와서 자극적인 피해 사실만 묻고 짧게 기사화하고 유월이 되면 모두 잊어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셨기 때문에 그런 지적을 해 주셨어요. 저희 제작진도 처음에 사진 한 장과 주옥 선생님의 증언에서 출발했는데, 다른 분들께 연락을 드렸을 때 연락을 받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괴로워하시는 듯한 느낌으로 답을 하셔서 그후론 연락을 못 드린 적도 있었어요. 약속을 잡았는데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으시거나 전화를 드리니 갑자기 화를 내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아니면 가족 중에 공무원이 있어서 5·18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면 가족에게 불이익이 간다고 생각하고 피하시는 분도 계셨고요. 여러 가지 이유로 증언하는 것을 여전히 두려워하고 기억이 들춰져서 아파하는 분들을 많이 뵙고 나서 저희도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단지 선생님들이 촬영에 협조해주시고 영화를 응원해 주신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영화가 상영되고 난 뒤에도 저희가 계속해서 가지고 가야하는 고민이에요. 사실 〈김군〉에 마지막으로 등장하시는 세 분께서 저에게 부탁하신 건 송암동의 양민학살 문제를 보다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시민군의 죽음을 포함한 양민학살에 대한 증언이 아직까지 제대로 채록이 되지 않았고 광주시에서도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국회에 출범할 진상조사규명회에서 그 부분들을 주요하게 다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영화가 조금이나마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으세요. 저희는 그런 것들에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들도 증언을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고통스러워 하지만 동시에 살아남은 자의 책무로서 해야 된다는 딜레마를 가지고 이 작업에 참여해 주셨어요. 저희도 그 딜레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정답을 내리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계속해서 선생님들과 관계를 가져가면서 풀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변영주: 사실 많은 사람들이 광주에 대해서 ‘더 조사할 게 있나?’ 생각할 정도로 다 해결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국가기념일로 지정해서 기념식도 하고 유족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도 하고 있고요. 대부분의 시민들은 학살자가 아직 책임을 지지 않고 있으며 감옥에서 무죄로 석방되었다고 우기면서 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광주에 가봤더니 아직 시체조차 발견이 되지 않은, 그리고 아직 규명조차 되지 않은 학살 현장들이 있는 거예요. 피해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모든 게 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우리를 보며 얼마나 분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게 어쩌면 이 영화의 엔딩이 아닐까 싶고요.
강상우: 최진수 선생님이 증언하신 송암동 양민학살의 경우 사실 가해자가 명확하거든요. 5월 24일 송암동에서 11공수 63대대는 수백 마리의 닭과 칠면조, 젖소까지 죽이고 물놀이하던 아이들까지 죽였어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살상을 저질렀어요. 2000년대 중반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렸을 때 최진수 선생님께서 진정을 넣으셨는데, 이건 강제력이 없어서 초인종을 눌러서 안 열어주면 그 사람에 대해 조사를 못 하는 거예요. 권한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제가 만난 많은 분들은 가해자들이 양심선언이라도 할 수 있도록 증언을 하면 보상을 하는 당근 정책을 써서라도 진실이 밝혀졌으면 하는 바람을 보여주셨습니다.
관객: 오늘 영화를 처음 봤는데, 개봉 버전과 영화제 버전이 엔딩이 다르다는 후기를 봤어요. 바뀌기 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강상우: 조금 많이 달라졌어요. 이 영화는 5·18을 잘 아는 분들이 보아도 좋지만 무장시민군의 사진이 낯선 젊은 관객들, 민주화운동이라는 단어로만 5·18을 배웠던 관객이나 아직 어린 미래의 관객들이 김군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과 생존자들의 현재 삶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처음부터 있었어요. 기존 엔딩은 도청이나 망월동 묘와 같은 5·18과 관련된 굉장히 익숙한 이미지들을 낯선 방식으로 보여주는 컨셉이었는데요, 5·18에 대해 익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젊은 관객들에게는 그 공간들마저 낯설기 때문에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또 기존에는 끝까지 김군의 추적에 돌진했다면 지금은 생존자들, 죽음들을 목격한 죄책감 속에서 살아오셨던 선생님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자리를 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아요. 저희는 어디까지나 이 영화가 역사 다큐멘터리가 아닌 현재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에 그분들의 마음과 정서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엔딩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변영주: 지만원 씨가 초반부에 하는 주장을 보고 유튜브에서 찾아서 영상 풀버전을 봤어요. 그런데 그 영상을 보면 다 증명할 수 없는 말들이에요. 자기가 자기의 뒷받침을 만든 거짓말들이 있어요. 5·18에 관한 이런 거짓말이 세월호 유가족에게 했던 거짓말과 되게 비슷한 경로예요. 이렇게 600명을 비슷한 얼굴로 만들어서 북한군이라고 우긴 뒤 몇몇 사람들이 북한군이 아님이 드러나면 어떻게 이들이 북한군인지를 밝혀야하는데 반대로 나머지 580명을 증명해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거죠. 그들에게 김군의 사진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시체조차 발견이 되지 않았으니까요. 또 얼마 전 국회에서 그런 말들을 하더라고요. 5·18 유가족들이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간다, 진짜 유가족이 있고 가짜 유가족이 있는데 무조건 모두에게 퍼주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해야한다고 하는 거죠. 세월호 유가족에서도 진짜 유가족과 가짜 유가족을 나누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이 저들의 어떤 디자인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사실 이 영화가 나온다고 했을 때 보기 싫었던 이유가, 그런 말들을 듣기가 너무너무 싫어서예요. 그래서 영화를 보기가 쉽지 않았어요. 개인적으로 〈김군〉을 봐주신 만명이 넘는 관객들이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극장으로 오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저는 후반부에서 완전히 무너졌어요. 내가 모르고 있었던 이야기가 있고, 나는 여전히 피해자를 규격화하고 있었던 거예요. 광주항쟁의 피해자들을 덩어리로만 놓고 있었던 거죠. 이 영화에 나오셔서 증언하신 분들 한 명 한 명을 못 잊을 것 같아요. 이제 아는 사람이 되어버린 거예요. 주먹밥 나눠주시던 주옥 선생님을 우리가 어떻게 모르는 남이라고 하나요? 저는 그게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하고요. 감독님이 의도했는지 아닌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의도하지 못 한 거길 바라요. 이렇게 훌륭한 감독이 많으면 제가 힘드니까요.(웃음) 그 미덕을 어떻게 더 확장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관객: 변영주 감독님 말씀과 연계해서 질문을 드리자면, 80년 광주에서 주먹밥을 나눠주시던 주옥 선생님이 세월호 광장에서도 주먹밥을 나눠주시는 장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 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맥락이 희한하다고 생각했어요. 80년대에 집단적인 죽음이 이루어지던 곳에서 밥알들이 뭉쳐진 주먹밥들을 나눠주던 행위가 여전히 우리 현대사에서 반복되고 있고, 집단적으로 사람들의 죽음을 경험하는 일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장면이 묘하게 느껴졌어요. 죽음의 사연이나 양상이 다르기는 해도 서로 정서적으로 연대감을 가져볼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강상우: 그 장면은 저희가 김군이라는 사진 속 인물을 알기 전인 2014년 5월 17일 광주 금남로의 5·18광주항쟁 기념식 전야제 현장에서 촬영된 거예요. 매년 금남로에서 5월 17일날 광주의 영령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는데, 2014년도에는 4월에 워낙 큰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세월호 참사로 돌아가신 영령들을 추모하는 이중적인 맥락이 형성된 거예요. 저희는 그때는 김군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고 5·18에 대해서 관심도 없을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광주' 하면 '5·18'로 소환되는 게 거부감이 있었고 현재 광주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일상만으로 구상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주옥 선생님의 일상을 쫓은 거였어요. 그때만 해도 5·18에 대한 증언은 선생님께 들은 적은 없었어요. 단지 조선대학교에서 축제 때 폭죽소리가 들리면 괴로워하신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고요. 그런데 전야제 날 선생님께서 주먹밥을 그 당시처럼 나눠주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 모습을 찍게 되었어요. 그 이후인 2015년 5월부터 김군에 대해서 말씀해주셨고, 사실상 그 장면이 저희가 최초로 찍은 장면인 거예요. 영화제 버전에는 그 장면이 없었어요. 어떤 관객분들께는 그게 과잉된 감정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관객분들께서 생각하시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관객: 저 같은 10대들은 어떻게 보면 5·18이라는 사건이 굉장히 낯설어요. 교과서에서 신파적으로 배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 인터뷰하신 분이 ‘우리는 전두환이 누구인지 몰랐다’고 말씀을 하시잖아요? 그런 것처럼 우리 또래의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김군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주옥 선생님의 한 마디, 김군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추적으로 이 영화를 시작하셨다고 했는데요, 프리프로덕션 과정이랑 촬영 기간을 어떻게 버티셨고 진행하셨는지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강상우: 저 혼자였다면 못 버텼을 거예요. 4년 동안 저희 프로듀서님들과 같이 계속 협업을 하면서 편집을 했어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출발해서 기자님들을 만나면서 초반작업이 진행됐고 그 다음으로 항쟁의 생존자 선생님들을 만나 뵙는 게 조금 어려웠어요. 단체에서도 외부자들이 오면 조심스럽다보니까 처음에는 촬영 허용을 안 해 주셨어요. 그러다가 2015년 가을에 변영주 감독님께서 사회를 보셨던 인천 다큐멘터리 포트에서 펀딩이 되면서 다들 상을 받아왔다고 하니까 조금 더 마음의 문을 열어주셨어요.(웃음)
변영주: 15년 박근혜정권 말기. 아주 암울했던 인천 다큐멘터리 포트였죠.(웃음)
강상우: 저희 영화는 다른 곳에서 지원금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안타까워 보이셨는지 상을 주셨어요. 그 힘을 받아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조연출님과 PD님까지 4명이서 9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광주에서 지내면서 작업했어요. 9개월 지나니까 예산이 다시 제로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혼자 촬영을 다녔어요. 최진수 선생님은 재작년 12월에 만나뵙게 되었지만 촬영허락은 안 하셨는데, 작년 5월에 마음을 바꿔주셔서 선생님의 마지막 증언을 찍고 촬영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관객: 역사 영화가 아니라 현재에 대한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현재 광주와 광주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들이 있다는 것처럼 들렸어요. 그런데 그 원인의 일부로 5·18 왜곡처벌법이 논의만 되고 있잖아요? 이것도 특정 역사적 사건을 법률로 단죄하는 게 맞냐는 반론도 있고 복잡한 걸로 아는데, 이것에 대해서 직접 추적하고 탐구하고 작품도 만드신 감독님 생각이 궁금합니다.
강상우: 사실 처음에는 어떠한 이야기든 우선 허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형사적인 처벌 대상은 되지 않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고요. 다만 민사적인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대로 제가 작년 5·18에 현충원에 가서 80년 광주에서 '북한군'에 의해 돌아가신 계엄군을 추모하는 행사를 보고 나서는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웃음) 지금은 5·18 왜곡특별법을 통해 형사적인 처벌도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변영주: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언젠가 저는 그런 고민이 들었어요. 내가 나이가 들어서 보수화된 것인가, 아니면 억하심정이 생겨서 이러는가. 그런데 사실 어떤 정의롭고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망할 거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래서 항상 경계를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놈을 혼내 주려다가 나중에 우리도 혼나게 될 까봐 걱정하는 거죠. 이런 게 언제나 딜레마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지만 가야하는 방향을 붙잡지 않으면 안 되고요.
강상우: 그게 가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안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혐오 발언을 떠나 5·18 현충원 행사에서 제가 놀랐던 건, 지만원 씨는 단순한 스피커였고 그 주변으로 당시에 80년 5월에 광주에 내려가서 학살을 지휘했던 사람들이 북한군들이 와서 계엄군들을 학살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어요. 그 당시 자신들이 죽였던 시민군이 북한 특수군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그래서 그것에 대한 처단이 다시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혐오 발언은 그 다음 문제인 것 같습니다.
변영주: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감독님의 차기 작품 같은 건 묻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5년을 고생해서 이제 첫 작품을 개봉한 사람인데 조금 더 즐기게 놔두려고요.(웃음) 마지막 질문인데요, 영화를 개봉한 첫날 이후로 계속 관객과의 대화를 다니면서 관객들을 직접 만나는 이 상황에서 ‘나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장면을 이렇게도 보시는구나’라고 생각했던 경우가 있나요?
강상우: 개봉 전에 시사회를 하는데 질문을 하시는 분께서 ‘결국 영화 안에서 지만원 박사님의 과학적인 분석에 대해서는 반박을 못 한 건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하셨어요.(웃음) 그렇게 보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박하는 영화는 아니니까요. 제가 든 생각은 ‘지만원 박사님의 과학적인 분석틀은 윈도우 그림판이구나.’(웃음) 어쨌든 윈도우 그림판도 과학적인 분석용으로 쓸 수도 있으니까요. 영화는 참 다양하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희가 그 반박을 누락했던 것은 북한군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이분이 왜 사라졌을까? 왜 나타나지 않을까?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당시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이 있지는 않을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었고요. 지만원 씨는 저희 티저에서 감사하게 잘 활용한 맥거핀 같은 존재예요.(웃음) 진입할 수 있는 통로 역할로 굉장히 좋은 분이었는데, 그런 반박을 하시는 분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주장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영주: 정말 고생하셨어요. 아마 오늘 이 영화 때문에 인디스페이스라는 공간을 처음 오신 본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이곳은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독립영화만을 전용으로 상영하는 독립영화전용관입니다. 명징하게 직조된 좋은 영화들을 여러분들께 선물하려고 노력하는 곳입니다. 오신 김에 둘러보시고 이런 곳이 있고, 이런 영화도 상영한다는 것을 알아주신다면 지금 어렵게 상영이 되고 있는 독립영화에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놀라셨을 거예요. ‘만이천 명 밖에 안 봤는데 이렇게 칭찬을 받고 있다고?’ 그런데 요즘 정말 독립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개봉을 해서 만 명 넘는 게 어려운 현실이에요. 그렇지만 그 만 명이 결국 한국영화가 끊임없이 새로워지도록 요구하는 중요한 코어 관객이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금 더 이 극장과 친해지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요. 오늘 무엇보다도 저희들에게 〈김군〉을 보여주신 강 감독님께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강상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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