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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이월>: 겨울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by indiespace_한솔 2019. 2. 19.

 





 <이월>  한줄 관람평


권정민 | 겨울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김정은 그토록 차갑고 모호한 시절을 버텨내며

주창민 | 삼한사미가 되어버린 겨울, 춥고 텁텁하다 

승문보 | 결국 끊어져 버린 이해에서 공감으로 나아가는 길

박마리솔 끝날 듯 말듯 끝나지 않는 겨울


 




 <이월>  리뷰: 겨울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는 인간이 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버리는 젊은이가 있다.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상처 입히는 여자가 있다. 20대 중후반의 민경은 노량진에서 도둑강의를 들으며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다.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는 사고를 쳐서 감옥에 가 있고, 월세는 밀려 사는 집에서 쫓겨났고, 음식과 돈을 훔치다가 알바는 잘렸다. 그는 이 모든 상황에 재빠르게 적응한다. 그저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상황을 대한다. 마치 살아남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짐승처럼, 그는 부끄러움과 두려움 따위의 사치스러운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싸늘한 표정으로 세상에 적응한다.

 




김중현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이월>은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과 비전-감독상을 수상했고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심리적으로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이 영화를 구상했다고 밝혔다말 그대로 <이월>은 물리적 상황과 맞물려 심리적으로 극한 상황에 내몰린 한 인간이 어떻게든 탈출구를 찾아 살아나가는 이야기이다이 이야기에는 허무한 냉소주의도, 지나친 치열함도 없다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고인간은 그에 맞춰 왼쪽 아니면 오른쪽으로 몸을 움직일 뿐이다그게 어느 쪽이든 나아갔다’ 또는 후퇴했다고 표현할 수 없는 삶의 기로들을 민경은 오고 간다.


기존의 독립영화에서 흔히 보여주었던 가난하고 젊은 여주인공의 작법을 비틀어 만들어진 것이 바로 민경이라는 인물이다. 민경은 사회구조 속의 피해자인 동시에 영화 속 인물들과의 사이에서 가해자의 입장에 놓인다. 기존 영화들에서 연대를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는 주인공을, 혹은 구조에 의해 연대가 파괴되는 모습을 주로 보여주었다면 <이월>은 상처입지 않기 위해 상처 주며 살아온 민경이 스스로 연대를 부서트리고 재빠르게 또 다른 생존방식을 모색하는 방법에 집중한다. 영화에서 시종 반복되는 컨테이너로의 회귀도 도피나 회피보다는 재시작에 가깝다. 민경은 끊임없이 세상에게 배신당하는 동시에 스스로 타인을 배신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온다.

 




분명하게 두 파트로 구분되는 이 영화는, 처음과 끝에서 다시 맞물리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이룬다. 영화는 민경이 여진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해 여진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민경은 자살 시도를 한 여진 앞에 쪼그려 앉아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여진의 집을 다시 한번 떠나며 생사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했던 행동을 똑같이 반복한다. 악의로 보이는 의도가 담겨있는 그 행동에는 사실 네가 죽든 살든 나랑은 상관없다는 결의가 담겨있다. 네가 죽든 살든, 나는 내 모든 걸 이용해서 살아가겠다는 결의가 담겨있다. 민경은 애초부터 그 결의를 잊은 적이 없고 영화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민경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이월>은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경이라는 존재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보는 이로 하여금 답답함과 좌절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민경의 결의는 어느 순간부터 연대를 믿지 않게 된 인물의 안타까운 삶의 방식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동안 민경의 삶에서 펼쳐졌을 수많은 부서짐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느껴지는 답답함과 좌절감에 우리는 익숙하다. 비단 민경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연대를 통한 구원을 믿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저 타인은 타인으로, 나는 나로서 존재할 뿐이고 서로가 서로의 인생을 잠시 스쳐지나갈 뿐 그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인생에 깊숙이 들어올 만하면 떠나고, 또 들어올만 하면 멀리 사라져버리는 상황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단절의 경험이다. 영화에서는 민경과 여진, 민경과 진규를 통해 이러한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민경은 결국 그들의 인생에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들어가지 못하고, 그들도 민경의 삶 속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들 모두는 스스로의 몫만큼의 삶만 감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래서 겨울은 지독하게 춥다.




 

그럼에도 희망적인 부분이 있다면 어린 성훈과의 시간들이다. 여진과 진규는 민경에게 동정어린 선의를 베푼다. 그들에게 민경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아니지만, 민경에게 그들의 재물은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성훈은 그러한 이해관계 바깥에 존재한다. 민경은 너무 일찍 철이 든 성훈을 보살피며 트라우마와 마주하고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최고의 구원은 타인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민경은 성훈을 구원하면서 스스로도 구원받을 실마리를 찾는다. 둘의 대화에서도 이것이 드러난다. 성훈은 사회복지 공무원이 뭐하는 사람이냐고 묻고, 민경은 불쌍한 사람들 도와주는 거라고 대답한다. 많은 직렬 중에 민경이 택한 것이 하필이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일이라는 것, 성훈이 그것을 묻고 민경이 답을 해준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때문에 영화의 엔딩은 우울하지 않다. 민경은 다시 컨테이너로 돌아왔고 늘 그랬듯이 뭔가를 재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변화가 생긴다. 컨테이너는 철거를 시작하고 민경이 돌아올 곳은 없어진다. 그렇다는 것은 더 이상 고립된 컨테이너 안에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있는 진짜 세상안에서 뭔가를 새로이 시작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 보금자리로 보였던 컨테이너의 철거가 아이러니하게 희망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일 것이다. 민경은 어쩌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것이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지독한 세상 안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며 끝내 겨울을 버텨낼 것이고 어쩌면 지금과 같은 관계들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조금씩 나아질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민경은 성훈과 그랬듯이 세상 안에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도우면서 결국은 스스로를 도울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 겨울인 이월을 버텨낸 민경이 앞으로 어떤 계절을 살아갈지 확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민경이 그럼에도 불구하고계속해서 살아나가리라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상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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