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들>  한줄 관람평


권정민 | 옆으로 앞으로 때로는 뒤로 움직이면서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

김정은 어느 겨를에 스쳐갔지만 함께 숨 쉬는 얼굴들을 담담하고 고요히 마주하는 시간

승문보 | 이미지의 총체가 전달하는 삶의 운동성

주창민 의미를 찾는 것이 무의미한 인상 채집







 <얼굴들>  리뷰: 이미지의 총체가 전달하는 삶의 운동성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파산의 기술記述>(2006)<보라>(2010)라는 다큐멘터리로 알려진 이강현 감독은 세 번째 연출작으로 자신의 첫 번째 극영화 <얼굴들>을 찍었다. 일반적으로 극영화는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 간의 인과 관계로 인한 내러티브가 뚜렷하다. 하지만 <얼굴들>의 경우, 장면과 장면 사이의 합리적인 연결보다 여러 이미지를 합쳐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반()내러티브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를 이미지의 총체의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접근한다면 일상을 기록하는데 굳이 극영화로 접근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이미지를 하나의 집합으로 묶어 곱씹어본다면 미세한 삶의 운동이 불러일으키는 전진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얼굴들>의 이야기 전개는 인과성을 따르지 않지만, 이야기의 꼭짓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역할을 하는 인물은 '기선'(박종환)이며 유일하게 넓은 범위로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난다. 기선은 본인이 일하는 고등학교에 소속된 축구부 학생 '진수'(윤종석)를 만나고, 가끔 옛 애인 '혜진'(김새벽)을 만나고, 직업을 바꾼 후에는 택배기사 '현수'(백수장)를 만난다. 그는 자신이 만났거나 스친 인물의 존재를 궁금해 한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에게 집요하게 질문을 건네지 않는다. 대신 그의 눈은 카메라의 시점과 동일시되어 그들과 그들의 주변을 이미지로 포착해 담아낸다.

 




포착된 이미지를 한데 모아 본다면 분명 일상은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 무언가에 분노한 얼굴, 상기된 얼굴, 또는 그냥 거리를 거닐며 무언가를 휘둘려 살펴보는 얼굴 등으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도시 속의 삶에 익숙해진 나머지, 얼굴의 넓은 스펙트럼에서 고독감과 허무함에 빠진 얼굴만 목견하게 된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다가간다면 지금까지 간과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영화의 중심인 기선과 그가 만나는 주요 세 인물이 미세하게 전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독감과 허무함에 가려져서 잘 안 보였을 뿐이지 그들은 무뎌진 삶의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 공허한 삶과 줄다리기 싸움을 하고 있다. 줄다리기 싸움을 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찾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욕을 되찾다가도 주변을 배회하는 절망적인 사건을 만나 다시 감각이 무뎌져 버린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향하고자 하는 종착점을 알 수 없을지라도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삶은 역행 및 정체를 하는 대신 조금씩 전진해간다.

 




결국 <얼굴들>은 카메라가 포착한 이미지, 여러 이미지가 이루어 낸 합()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거나 감각이 무뎌진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다. 또한 이강현 감독이 심신으로 지친 이들을 대신해 카메라로 삶의 반복적인 좌우 운동을 기록하려고 했던 점, 그리고 이 기록을 보다 더 뜻깊게 전달하기 위해 극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반()내러티브 방식을 채택했다는 점은 한국 독립영화에 신선한 희망이 된 게 아닐까 싶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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