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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매일이 크리스마스일 순 없지만 그래도 살아요 '인디돌잔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인디토크 기록

by indiespace_한솔 2019. 2. 8.

 




매일이 크리스마스일 순 없지만 그래도 살아요 

 인디돌잔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25일(화)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임대형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사진제공 신소영 님)





지난 크리스마스, 인디스페이스에서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인디돌잔치 상영 후 인디토크가 있었다.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의 진행으로 임대형 감독과 관객이 대화를 나눴다. 관객의 마지막 질문이 인상 깊다. “모금산은 이발사가 아니라 배우를 꿈꿨던 사람이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도 잃었고. 그런데도 모금산은 계속 살아가잖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곰곰이 생각하게 하는 질문들이 영화관을 따스하게 감쌌던 그 시간으로 초대한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김현민): 안녕하세요. 오늘 관객과의 대화 진행을 맡은 김현민입니다. 반갑습니다.

 

임대형 감독(이하 임대형): 안녕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연출한 임대형입니다. 반갑습니다.

 

김현민: 오늘은 아시다시피 인디돌찬지, 영화가 태어나고 상영된 지 1년 만에 만나는 자리인데요. 그래서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촛불 켠 케이크 등장) 감독님이 촛불을 불겠습니다. 방금 촛불을 불면서 소원을 비셨어요. 어떤 마음이었나요?

 

임대형: 그냥 제스쳐만 했습니다.

 

김현민: 아니, 요식행위로.(웃음) 1년 만에 관객분들과 만나는 자리인데 소감을 안 들어볼수가 없어요. 오늘 또 크리스마스잖아요.

 

임대형: 사실 크리스마스에 상영한다고 해서, 몇 분이나 오실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어제 예매상황을 봤는데 서른여덟 분이 예매를 하셨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이 보러 오신다는 생각으로 오늘 극장에 왔는데, 이렇게 더 많이 오실 줄 몰랐어요. 이 영화를 성탄절에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인사를 벌써 해버린 것 같네요.(웃음)

 




김현민: 저도 오늘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반갑네요. 요새는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감독님?

 

임대형: 제가 새 영화를 1월 중 찍게 되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현민: 작년(2017)에 저와 이야기하실 때,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찍으려고 한다는 말을 하셨어요. 그 영화인가요?

 

임대형: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이하 <메크모>)는 아버지에 대한 영화였다면, 어머니에 대한 영화를 한번 찍어보자 싶어서 이번에는 엄마와 딸이 여행을 하면서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찍고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찍게 될 것 같습니다.

 

김현민: <메크모>도 일종의 로드무비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영화도 그러면 로드무비 형식인가요?

 

임대형: . 여행을 하는 영화가 될 것 같아요. <메크모>처럼 여정을 따라가면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는 형식의 영화가 될 것 같아요.

 

김현민: 감독님이 여정을 따라가며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을 좋아하시나 봐요.

 

임대형: <메크모> 찍고 나서 다음 영화는 어떤 영화를 찍을까 고민을 했었는데 본능적으로 한 사람의 여정을 따라가는 서사를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김현민저는 이 영화가 크리스마스가 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됐어요. 작년에 처음 보고 이런 데뷔작을 만든 감독이라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내가 감독이라면 이런 데뷔작을 내고 너무 만족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감독님은 1년이 지났는데, 이 작품에 대한 감회가 어떤지요.

 

임대형: 찍은 지는 2년이 넘은 것 같아요. 저에게는 오래 전 지나온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되면 같이 작업했던 배우분들, 스탭분들, 특히 기주봉 선생님의 화면 속 모습을 보면 보고 싶고 그래요.

 




김현민: 그렇지 않아도 배우들 이야기를 묻고 싶었어요. 이 영화는 독자적인 의미로도 훌륭한 작품이지만, 배우들의 호연이 많은 것들을 살려낸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기주봉 선생님도 그렇고, 오정환 배우, 고원희 배우, 김학선 배우, 전여빈 배우까지 모두 각자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배우들에 대한 감회는 어떠세요?

 

임대형: 오늘도 다 같이 모이고 싶었는데 각자 스케쥴이 있어서 저 혼자 오게 됐어요. 기주봉 선생님은 작업할 때에도 좋은 분이었지만 작업이 끝나고도 계속 얼굴을 뵈면서 술도 마시고 선생님 댁에도 놀러갔어요, 선생님이 고양이 키우시는데 고양이 만지러 가고. 배우와 감독의 관계 이상으로 정말 좋은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생각했고요, 같이 작업하면서는 연배가 있으신 선배님이신데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분이셔서 편했던 기억이 있어요. 배우분들 한 분 한 분 다 좋은 사람들이라 현장이 힘들지 않았어요. 이 영화는 현장이 좋았던 기억으로 계속 남을 것 같아요.

 

김현민기주봉 선생님 하면 생각나는 게, 챕터 5가 시작될 때, 모금산의 일기장 나레이션이 나오잖아요. 저는 다시 봐도 그 부분이 너무 좋고 가슴이 울리더라고요. 발음도 분명하시지만 목소리가, 형형하달까요. 말의 어미 하나를 닫을 때에도 공력이 있는 배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끝맺음이었어요. 문장을 쓰실 때 기주봉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정하신건지, 감독님이 쓰신 그대로를 기주봉 선생님이 소화하신건지 궁금하더라고요.

 

임대형: 작업 후반에 녹음을 했거든요. 선생님이 대본대로 다 읽어주셨는데, 가령 아내가 그립다하는 목소리가 한 번에 나왔어요. 따로 연출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워낙 연극도 많이 하셨으니 특성이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에 쭉 녹음이 됐던 것 같아요.

 

김현민: 크리스마스 트리를 츄리라고 발음하는 디테일과, 거기서 먼지에게 욕을 하잖아요. 그 발상이 재밌더라고요.

 

임대형크리스마스 츄리라고 대본에 썼는데, 선생님께서 그대로 살려서 츄리에 방점을 찍어서 읽어주시더라고요. 이런 게 연륜이구나. 딱히 말씀을 드리지 않아도 어떤 부분을 정확히 캐치를 하셔서 살리는 구나 싶었어요.

 

김현민: 먼지에게 욕을 하는 발상이 평소 감독님의 성향이나 생활상이 반영된 것인가요?

 

임대형: 제가 화가 좀 많은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영화를 찍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속으로 쌍욕을 중얼거리며 살진 않지만, 모금산이라는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어떤 감정이나 생각들을 밖으로 표출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욕을 해도 일기장에 쓰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김현민그런 의미에서, 모금산이 자다가 막 베개를 뜯고 울컥하는 것도 감정표현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상적이더라고요.

 

임대형: . 다른 사람이 보지 않을 때, 아무도 없을 때 혼자 있을 때, 잘 때, 정말 혼자가 된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화를 낸 것이죠.

 




김현민: 이 영화가 겉으로는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지만 저는 데뷔작을 낸 감독으로서 상당히 포부가 있고, 야심이 큰 시도가 있다는 생각을 해요. 일단 중년을 넘어선, 인생을 마무리해 가는 사람의 삶을 그린다는 것. 그래서 삶과 죽음이라는 거대한 테마를 다룬다는 것부터가 야심적이란 생각이 들었고, 흑백 화면이나 영화 속 영화의 활용도 그렇고요.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는 서사적으로 클리셰적인 장치가 있어요. 출생의 비밀이라던가, 암선고를 받게 된다던가. 자극적일수도 있는 드라마적 요소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을 잘 본인의 색으로 아우르면서 하나의 도전, 실현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임대형: 말씀하신대로 출생의 비밀이나 암을 발견하는 소재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자, 나라면 다르게 할 수 있어, 그런 만용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첫 장편인데. 어려운 것들을 해보고 싶었어요.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들, 클리셰들을 모아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어쩌면 계속 영화를 할 수도 있겠다는 도전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특히 흑백영화로 작업하면서 다시는 흑백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을 하고, 항상 영화 찍는 과정이 도전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항상 힘들어요. 왜 이렇게 영화 찍는 게 힘든지 모르겠어요.(웃음)

 

김현민: 흑백을 선택하신 것을 후회할 정도로 힘드셨다고 했는데, 특히 어떤 부분이 난항이었는지 듣고 싶어요.

 

임대형: 색이 빠져있으면 단순하고 쉬워 보일 수 있는데 오히려 어려운 작업인 게, 화이트에서 블랙으로 가는 사이에 수많은 색들이 있는데 그걸 어떻게 배치하고 활용할 건지, 어떻게 입체감을 주어야 할지를 미술 세팅부터 배우들 의상 하나하나에 걸쳐 미리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위험한 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현장에서 후회 많이 했습니다.(웃음)

 

김현민: 그래도 배우들의 얼굴이, 골격이나 굴곡 같은 것들이 흑백 화면과 참 잘 어울렸던 것 같아요.

 

임대형: 모니터를 흑백으로 봤는데 기주봉 선생님과 다른 배우들 얼굴이 주는 무드가 흑백이랑 잘 어울리더라고요. 배우들이 화면 속에 있는 걸 보면 그 때 좀 안도감이 들었어요.

 

김현민: 저는 이 영화만의, 임대형 감독만의 호흡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초반에 모금산이 아들하고 통화가 되지 않자 아들의 애인인 예원과 통화를 하죠. 그리고 아들이 어렸을 때 찍었던 홈비디오 화면을 보는데요. 강냉이를 먹으면서 이미 세상을 뜬 아내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순간이 있는데, 눈물이 차오르려는 찰나 모금산이 사레가 들어 강냉이를 뱉어버리거든요. 영화가 관객보다 앞서서 담백해져버리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임대형: , 제가 느끼한 순간들을 잘 못 참는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 배우들이 깊이 들어갈 때, 카메라가 멀리 빠진다거나 전환을 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을 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모금산 못지않게 재미있고 인상적인 인물이 아들 스데반인데요. 영화를 하려고 하는 입장부터 왠지 감독의 자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등장부터 한심스럽게 굴더니 예원에게 이런 말을 들어요. “말을 순서대로 해봐.” 라고. 거기서 모든 게 느껴지거든요. 스데반이라는 인물 구상에 있어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듣고 싶어요.

 

임대형: 스데반은 항상 핵심이 있으면 근처만 맴도는 사람인 것 같아요. 오정환 배우와 대화를 할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건데 이걸 말하기 위해서 수많은 길을 에둘러서 가야하는 그런 사람인 것 같다고 말하며 캐릭터를 잡았던 것 같고요. 저와 닮은 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제가 썼으니까 저의 면면이 반영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김현민: 모금산이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스데반은 내 아들이지만 멍청한 놈이다. 예원이 왜 사귀는지 모르겠다. 그런 식으로까지 표현을 하는데, 이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감독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스데반은 버림받아야 마땅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웃음)

 

임대형: . 그렇다고 생각하시지 않나요?

 

김현민짓궂게 대하시는 것 같아요, 스데반이란 인물을. 스데반이란 인물 자체가 가진 활력이나 코미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임대형: 저도 스데반을 볼 때 이 사람이 마냥 답답해 보이고 한심해 보여도, 그 선이 너무 심하면 안 되겠다, 이 사람에게도 몰입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선을 배우와 함께 잡는 과정이 난이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현민: 그래도 귀엽게, 충분히 사랑스럽게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영화를 다시 보다가 제가 새롭게 다가온 장면이 있었는데. 고향에 가서 스데반이 예원과 길을 걷다 느닷없이 비비탄을 줍잖아요. 쓸데없는 행위라고 생각을 했는데, 비비탄을 주우면서 어린 시절 총싸움했던 이야기를 하고, 예원은 쪼그려 앉아서 비비탄을 같이 주워주죠. 그 때 카메라가 전환되면 그 뒤에 여러 풍경이 보여요. 거기에는 아파트 같은 건물들이 있는데. 그 전 컷만 해도 그냥 시골의 한적한 공간을 둘이 하릴없이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런 풍경이 보이니까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임대형제 실제 경험인데요. 그 곳이 원래 무덤가였어요. 마을 뒷산에 있는 무덤터였는데 제가 영화를 찍으려고 가서 보니 아파트 단지로 바뀌었더라고요. 제 기억 속에는 공간들이 남아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 공간에 갔을 때 , 이 공간을 담아야겠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현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나 미묘한 슬픔 같은 감정이 모금산이 흑백 영화를, 무성 영화를 찍는 이유기도 할 텐데요.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하니까요. 크리스마스날 영화 상영을 할 때, 열 명 남짓 한 관객들이 있을 때 처음에 저는 쓸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10명이 아니더라고요. 이 영화를 보는 우리도 그 영화의 관객이 되어있다는 걸 느꼈어요. 영화 속 인물들이 모금산 씨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든 아니든, 우리가 그렇든 아니든 결국은 모두가 다 그 영화를 보면서 각자의 감상을 갖게 되잖아요. 영화는 굉장히 사적인 매체잖아요. 이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 우리는 왜 영화를 보고, 영화를 왜 만드는가. 그런 질문들을 다시금 던졌어요.

 

임대형: 저도 그런 질문들을 하면서 영화 작업을 했던 것 같고요. 지금도 항상 영화는 무엇이며, 왜 내가 하고 있는지 당위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아직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질문인 것 같고요. 삶을 놓고 봤을 때도 삶의 당위를 꼭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좀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영화 속 크리스마스라는 특정한 날이 그냥 클리셰의 한 부분인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해 대조적인 상징이 있는 건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임대형크리스마스라고 배경을 잡은 이유가, 제가 어렸을 때는 크리스마스 하면 선물 받는 날의 어떤 향수가 있었는데 자라면서 사실 크리스마스도 잊게 되더라고요. 오늘이 크리스마스인 것도 저는 엊그제 알았거든요. 그런 유년기의 향수가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시간적 배경을 크리스마스로 잡았던 것 같고요. 크리스마스는 찰리 채플린의 기일이기도 해요.

 


관객: 질문이 두 가지인데요. 첫 번째는 아까 일부 답변해주시긴 했지만, ‘쪼다같은 남성들과 훌륭한 여성들의 이야기랄까요,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의도하시거나 녹여내신 이미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두 번째는, 왜 모금산 씨가 슬랩스틱 코미디를 찍은 건지 궁금합니다.

 

임대형: 찌질한 남자와 멋있는 여자. 이런 구도 역시 어떻게 보면 클리셰라고 생각을 하는데, 한국 영화가 찌질한 남자를 정말 잘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남자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좀 들지만. 그런데 스데반이 단지 찌질한 남자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고요. 빈틈이 많고 부족한 친구지만 정성이 있는, 뭔가 노력을 하는 친구였던 것 같아요. 다음 답변으로, 제가 원래 슬랩스틱 코미디를 좋아했고요.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을 좋아했었고. 이 영화의 대본을 처음 쓸 때 사실 무성영화 대본부터 썼어요. 그걸 먼저 구상을 하고, 거기에 살을 붙여가면서 이런 형태가 됐거든요. 언어로 혹은 소리로 어떤 정보를 주는 것 보다 말이 다 빠진 상태에서 몸짓만으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을 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김현민: 저는 그 영화 속 영화에서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면서 동작이 상당히 정확하고 노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어렸을 때 보던 찰리 채플린 영화에서처럼요, 이런 몸짓들은 감독님이 다 구상을 하신건지, 배우와 함께 만든 건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임대형기주봉 선생님께서 몸을 되게 잘 쓰세요. 이 영화에서의 모금산의 연기는, 배우가 아닌 이발사였던 사람이 하는 어색한 느낌이어야했기 때문에, 오히려 조금 어색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김현민: 제가 부연을 하면, 저도 여성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었거든요. 예원과 자영, 잠시 나온 스데반 친모의 딸도 입체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현명해 보인다는 게, 저는 납작하지 않아서였던 것 같거든요. 기능적으로 활용되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서 여성들이 더 돋보였던 것 같아요.

 




관객: 작품의 인물들이 소소하더라도 개성이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 다음 작품도 기다려집니다. 영화의 장소를 금산으로 정하신 이유가, 황량하면서도 소박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하신건지 궁금하고요. 영화 후반부에서 스데반이 예원에게 마음속에 담아뒀던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그 때 예원도 나도 고마워.’라고 해요. 예원은 스데반에게 뭐가 고마운지 알고 싶습니다.

 

임대형보통 연인들이 헤어질 때 즈음에 고맙다는 말 많이 하더라고요. 별로 서로 고맙지 않은 데 고맙다고 하는. 그런 의도였던 것 같아요. 스데반은 정말 고마워서 그렇게 말할 수 있지만, 예원은 그동안 고마웠다의 느낌이...

 

김현민: 진짜 두 사람 헤어지는 건가요?

 

임대형그렇게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제가 너무 노골적으로 말씀드린 것 같은데, 보시는 분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금산은 제 고향입니다. 제가 어릴 때 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살았던 저의 고향이고, 제 기억 속의 공간들을 직접 가서 보면서 촬영지로 삼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를 쓸 때에도 아무래도 제 기억속의 공간을 바탕으로 쓰다 보니까, 구체적인 정서들이 있어서 금산에서 찍게 됐습니다.

 

김현민감독님이 살았던 곳이고 좋아하던 곳이고, 꼭 한번은 영화 속에 담아보고 싶던 장소인데 그것을 데뷔작에서 이룬 거잖아요. ‘내 것으로 소화하고 나서 그 공간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임대형: 제가 좋아하는 공간들을 영화에 담으면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금산이란 공간은 특히나 특색 있는 공간도 아니고,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흉물스러운 인삼동상 같은 게 있고.(웃음) 그런 곳을 특별해 보이게 만들고 싶었던 것 같아요. 서울 생활을 한 지 10년 좀 넘었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곳들이 제가 잘 가는 공간들이에요. 낙산공원이나 서울역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이나. 공간에 대한 저의 애정이 영화에 드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찍었습니다.

 

김현민: 마지막에 모금산 씨한테 여기저기 안 가보냐고 물었을 때, 모금산 씨가 구체적으로 동네들을 읊는 장면이 있어요. 미아리, 종암동, 이문동, 장이동 등. 이분이 살아온 삶의 이력 같은 것이죠?

 

임대형: 제가 저희 아버지께 실제로 여쭤봤을 때 그 동네들에 다 사셨더라고요. 그걸 다 옮겨 적었어요. 모금산이 좋아하는 영화배우 이름을 나열한 부분도 아버지한테 전화로 여쭤보니 쉴 틈 없이 배우들 이름이 나열하시더라고요. 그걸 그대로 받아 적어서 대사에 썼습니다.

 

김현민: 그럼 아버지에게 바치는 영화이기도 하겠네요, 이 영화는?

 

임대형: , 저희 아버지는 그렇게 믿고 계세요.(웃음)

 

 



관객: 이렇게 좋은 영화인지 몰랐어요. 초반부에는 조금 졸리기도 했지만, 맨 끝 장면에서 불발不發이라고 크게 나오는데 이 장면의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임대형: 저도 가끔은 제 영화 보면서 졸아서 괜찮습니다. ‘불발이라는 자막은 저희 아버지가 직접 써주신 글씨인데요. 저희 아버지가 난도 치시고 붓글씨를 잘 쓰세요, 아버지께 직접 써달라고 해서 화면에 심었어요. 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한글로 들어갈 수도 있고 영어로 들어갈 수도 있지만, 불발이라는 자막이 한자로 들어갔을 때 주는 정서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한국 고전영화들이나 일본 고전영화를 좋아하는데, 그 영화들에서 크게 한자로 나오는 자막들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언젠가 한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 자막을 다르게 보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모금산의 인생이 불발된 건가?’ 하시는 분도 있고요.

 

김현민: 제가 상당히 신성하다고 느낀 부분이, 영화가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한데 영화 속 내용이 성경에 나오는 한 사람의 의인만 있어도 그 성을 열락시키지 않겠다.’는 구절과 비슷하게 느껴졌거든요. 폭탄을 터트리려고 하면 누군가 지나가고, 누군가 지나가고, 결국 불발되는 그 과정이 성경 속 이야기와 닮아있어서 여쭤봤더니 전혀 그런 의도는 없으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오히려 재미있었거든요. 영화라는 것은 정말 사적인 매체고 각자의 주관적 기억과 추억과 경험에 의거해서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느껴졌어요.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임대형: 제가 롤랑 바르트 카메라 루시다라는 책을 되게 좋아하는데, 돌아가신 어머니 사진을 볼 때 다른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상처나 어머니와의 기억, 이런 것들을 바르트 본인은 알고 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만 알고 있는 상처 같은 게 특히 영화를 볼 때 각자 다들 다른 감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가령 어떤 배우가 어떤 표정을 짓는데 저 표정이 나의 옛 연인을 닮았다거나 이럴 때 나만 느끼는 감정이 있으니까요. 이 영화도,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 모두가 모금산에 대해서 다르게 알고 있을테니 각자 다른 감상을 가졌을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김현민: 푼크툼 이야기 해놓고 너무 용어를 남발했나 생각했는데 감독님이 이렇게 쉽게 정리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분만 더 질문 받아볼게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고요, 이 영화를 오늘 두 번째 보는 건데 저는 처음 볼 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모금산은 배우를 꿈꾸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런데 그냥 평범한 이발사가 됐고, 혼자 살아가는데, 내가 만약 모금산이었으면 사는 재미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런데 상실과 실패를 겪었는데도 모금산은 계속, 계속 잘 살아가잖아요. 어떻게 저 분은 저렇게 많은 걸 겪어내면서 살아가실까. 두 번을 봐도 잘은 모르겠어요. 제가 너무 덜 살아봐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웃음) 감독님은 모금산 씨가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했어요.

 

임대형: 부모님들을 보면 그런 걸 느끼는 것 같아요. 가끔 대단하다고 느끼는데, 저도 아버지 어머니가 어떻게 저렇게 사는지 모르겠거든요. 저희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셔서 날마다 운동을 하세요. 20년 넘게 헬스를 하셨고요. 어떻게 저렇게 근면하게 사실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정말 대단하고요, 그렇게 삶을 지탱해나가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금산이라는 사람도 순간순간 고비가 있었겠지만 그때마다 항상 주변 사람들이 있거나, 아니면 병실에 있을 때 밖에서 불꽃이 터지잖아요.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도 있었을 테고요. 그렇게 사소한 행복들이 삶을 지탱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어려서 아직 모르겠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김현민: 삶을 지탱한다는 표현이 저한테도 와 닿아요. 항상 좋은 일이나 큰 사건이 있지 않아도, 여기 있는 분들 모두 삶을 견뎌내고 지탱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인생인 것 같고. 그것을 이미지로 은유해서 표현하신 부분이 있어요. 모금산 방에 일기장을 꽂아놓은 책장 있잖아요. 책장을 잘 보시면 책의 무게들 때문에 휘어있거든요. 저는 그것이 모금산 씨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했었어요.

 

임대형: 맞아요, 자세히 보시면 연도별로 라벨이 붙어있어요. 오랫동안 똑같이 생긴 노트에 일기를 써왔던 사람이고, 그게 같은 자리에 오래 있다보니 책장이 구부러졌을 거라고 생각을 했고요. 그러다 우연히 휘어진 책장을 구했을 거예요.

 

김현민: 크리스마스에 긴 시간 자리 함께해주셨는데요. 감독님이 처음에 살짝 이야기를 해주셨잖아요. 다음 작품은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라고.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들을 순 없고 임대형이란 감독이 어떤 테마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서 여쭤보고 싶어요.

 

임대형: . 페미니즘을 담아내는 영화가 될 것 같고요. 제가 남성 감독이기 때문에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어요. 많이 부딪히면서 노력을 해보고 있습니다. 새 시대에 어울리는 가치가 있는 것 같고, 그 가치에 조금이라도 영화가 기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해보고 있습니다.

 

김현민두 번째 작품도 상당히 도전적인 작품이 될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남성으로서 페미니즘 이슈를 다루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영화가 완성되면 저도 동참해서 생산적인 비판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와주신 관객분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 부탁드릴게요.

 

임대형: 성탄절 날 영화 한편의 시간을 내주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모두 감사드리고요,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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