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힘들지만 마주해야 하는 이야기 

 용산참사 10주기 도시 영화제 <마이 스윗홈-국가는 폭력이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월 11일(금) 오후 7시 40분 상영 후

참석 김청승 감독

진행 공미연 서울영상집단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2009120일 새벽 재개발 보상대책에 반발하던 철거민들은 용산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 위에서 이주대책을 요구하였고, 경찰과 대치하던 과정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났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그동안 구속되어 형을 지낸 국가 폭력의 피해자인 철거민들이 출소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크게 변함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무자비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고, 국가 폭력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두 개의 문>이 공권력과 철거민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용산참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공동정범>이 현재 시점에서 용산 철거민 대표와 연대 동지 사이의 갈등을 비추며 용산참사에 대해 새로운 시선을 부여하였다면, <마이 스윗홈-국가는 폭력이다>는 철거민 대표들의 구속 이전에 상황을 그려내며 그들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감정적으로 그려낸다. 투박하고 다소 감정에 치우지는 면이 있으나 어느 영화보다 솔직하고, 언론이 외면했던 그들을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공동정범>을 보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일지 모른다. 단순히 이 영화가 이맘때쯤 볼 수 있는 영화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이 스윗홈-국가는 폭력이다>의 영상을 통해 수많은 철거민 분들과 국가 폭력의 피해자분들이 연대하고 융화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관객과의 대화를 기록하였다.

 





공미연 서울영상집단(이하 공미연): 안녕하세요. 서울영상집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공미연입니다.

 

김청승 감독(이하 김청승): 안녕하세요. 김청승입니다.

 

공미연: 감독님이 <마이 스윗홈-국가는 폭력이다> 영화를 찍고 나서 서울영상집단에 입단하였는데요. 지금까지 8년 정도 함께 활동하고 있어 매년 이맘때 쯤 상영회를 통해 이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도 김청승 감독이 영화를 함께 보는 모습을 못 봤는데 오늘은 여러분들과 함께 몇 년 만에 영화를 보신 거 같아요. 소감부터 여쭤보고 이야기를 이어나고자 합니다. 그동안 왜 안보셨어요? 분위기가 무거워져서 사실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생각이 많이 드네요.

 

김청승: 편집하면서 많이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나면 마음이 너무 무거워져서 말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본 건 저도 오랜만인데 많이 힘드네요.

 

공미연: 약간 텀을 주는 의미에서 지금 하고 있는 용산참사 10주기 도시영화제에 대해 간단히 설명 드리고 넘어갈까 합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10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건 없고 악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실은 굉장히 우울하긴 한데요, 영화를 보고 다시 분노를 하면서 내가 어떻게 서 있어야 하는가 생각을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도시영화제는 보이지 않은 존재들을 드러내고, 가장자리에 있는 이웃들과 함께하는 영화제로서 2011년 강제 퇴거위기에 처한 홍대 두리반 식당에서 처음 시작하였습니다. 올해는 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이해서 도시영화제를 계속 진행해왔던 리슨투더시티와 인디스페이스 그리고 연분홍치마가 함께 기획을 하게 되었고요. 오늘부터 27일까지 진행합니다.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되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같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가벼운 질문부터 먼저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첫 다큐멘터리작업이라고 알고 있는데, 처음부터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용산을 방문하셨는지요.

 

김청승: 아니요. 저는 원래 혼자 글 쓰고 연극하고 싶었던 놈팽이었는데요. 어쩌다보니 출판사인줄알고 취업을 한 곳에서 영화를 찍어오라고 해서 갔던 곳이 용산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작업이 처음이었고, 사실은 투쟁 현장을 가본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별 계획 없이 일단 촬영하게 되었는데요. 다만 회사에서 내린 지령은 용산사건에 상징적인 존재는 전재숙씨라고, 돌아가신 이상림씨의 아내이자 구속돼있던 이충현씨의 어머니인 분을 찍어 오라고 했어요. 당시에 용산참사가 우리나라에서 큰 사건이어서 용산 남일당에 가면 늘 카메라가 많았습니다. 그 카메라들이 다 전재숙씨를 비롯한 유가족들을 놓고 보이지 않는 경쟁을 했습니다. 유가족들을 찍으려면 활동가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요. 그리고 막상 촬영했을 때도 어느 순간 이분들이 워낙 인터뷰들을 많이 하셔서인지 반복되는 이야기들, 이미 외운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반면 신기했던 것은 제가 용산에 간 게 8월 달이었거든요. 재판이 다시 속개될 때였는데 재판받고 있는 당사자들이 남일당 미사 같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런데 카메라들이 아무도 이 사람들을 찍고 있지 않은 거예요. 전부 다 유가족만 찍고 있어서, 그래서 다른 분들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저씨들을 따라다니며 촬영했습니다. 그렇게 찍어온 걸 회사에 가져가면 대표는 뭐라고 하더라고요. 왜 아저씨들을 찍고 왔냐기에 싸웠고요. 그래서 싸우다가 촬영테이프를 훔쳐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청승이라고 개명을 했습니다. 지금도 김청승으로 살고 있고요.

 

공미연: 아주 독하신 분입니다.(웃음) 마지막 장면도 사람들이 너무 지독한 거 아니냐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는데, 마지막 장면을 두고 염두에 두고 구성을 하셨을 거 같아요.

 

김청승: . 사실은 관객 분들이 많은 건 아녀도 이중에 철거 투쟁, 재개발 투쟁 당사자 분들이 꽤 많이 계셔서 말을 하기 조금 조심스럽네요. 장위동 철거민 조합 분들도 계시고 도시난민 이희성 님도 계시고 굉장히 무거운 자리인데요. 김영태 변호사님이 2심 끝나고 나서 화가 많이 나셨어요. 그래서 기자를 모아놓고 자기가 받은 영상들, 재판에 증거자료로 나온 기자들한테 공개를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들이 안 가져갔어요. 저하고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을 만들었던 김일란 감독, 둘이 받아서 쭉 봤습니다. 이게 왜 압수가 되었는지 알겠더라고요. 여기에 정확하게 화재 장면 등이 나오지 않지만 누가 봐도 사람의 감정을 건드리는 게 무언가가 있어서 공개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불타는 망루의 사진은 참사 이후부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보아와서 그 이미지에 무뎌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최대한 길게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당시에 현장에 없었고,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용산참사를 불타는 망루 한 장짜리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알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통스러운 장면이기는 하지만 다 같이 지켜보자는 마음으로 최대한 길게 붙였습니다. 최대한 길게 붙인 영상을 관객들이 볼 수 있게끔 앞에서부터 나열하는 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공미연: 사실 재판 기소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철거민들을 기소했으면 안 되고, 국가폭력에 기소를 했어야 됐는데 실질적으로는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재판이 진행되었고요, 이 영화 초반 흐름은 재판에서 무언가 밝혀지기 바라면서 보았거든요. 감정이입해서 변호사 혹은 주변인들이 무언가를 밝혀내기를 바라게 되는 마음으로요. 재판과정을 현장성 있게 다루고자했었던 특별한 의도가 있었나요?

 

김청승: 나름대로 미드 같이 긴장감을 가지길 바랐던 거구요. 일종의 미끼였던 거죠. 뒤에 나오는 이야기를 볼 수 있게 하는 미끼였던 건데요. 김영태 변호사님이 재판을 다시 맡아서 이어가기 전에 권영국 변호사님이 맡았었는데, 권영국 변호사님의 입장은 검찰 기소부터 말이 안 되니 재판을 하지 말자는 부정의 입장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재판부에서 그래? 우리가 알아서 변호사 붙일게.‘ 하고는 국선변호사 단 1명을 붙여준 거죠. 상황이 급박해지니까 새로 변호인단을 꾸렸고 이때 맡아주신 분이 김영태 변호사였습니다. 김영태 변호사님은 재판과정에서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놓자, 이렇게라도 자리를 이용하자라는 입장이었습니다. 제가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 당시 안이 굉장히 어두웠고 정신도 없고, 김창수씨 말대로 연기가 나오고 시야가 굉장히 어두운 상태였습니다. 또한 망루 자체가 굉장히 좁게 만들어져있었습니다. 그래서 안에 계신 당사 분들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했습니다. 단지 망루 밖에, 바로 앞에 위치한 두 세대의 채증 카메라가 있는데 정말 중요한 순간들이 짤려 있었죠. 재판 제출됐을 때부터 그랬고 변호사님이 풀어서 보여주실 때도 그랬어요. 앞에 있던 카메라들은 중요한 순간에 다 꺼져있고, 경찰 쪽, 시민방송 쪽 모든 영상을 타임라인으로 배치해보았지만 아무리 조합해도 알 수가 없어요.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불이 났는지 정말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다만 확실한 것은, 그 화재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불이 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경찰특공대가 갑자기 투입됐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 한명을 포함해서 여섯 분의 목숨이 사라진 것은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그 책임을 직접적인 공권력 투입, 특공대 투입 문제에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가. 그것을 지시한 김석기 당시 경찰정장 아니면 당시 경찰청장이 눈치를 볼 수 없었던 이명박 대통령의 존재만이 문제인가 생각해봤어요. 이 영화 부제가 국가는 폭력이다이잖아요. 뒤에 앉아 계신 철거민 분들도 아시겠지만, 동네 재개발 소문 돈 순간부터 모든 것이 다 국가의 폭력의 과정인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상황은 경찰특공대가 피해자이든 아니었든 누가 죽어도 이상한 상황이 아닐 정도였어요. 그리고 용산이 아니어도 지금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어떻게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환경, 재개발 시스템이 전부 국가폭력이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재판과정을 앞에 미끼로 깔아놓고, 이후 세 명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미연: , 오늘 여기에 김창수 씨와 천주석 씨가 지금 와 계신데, 어떻게 보셨는지 말씀 여쭤 봐도 될까요? 영화가 처음 공개됐을 때 두 분 다 감옥에 계셔서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마 극장에서 이렇게 같이 보는 것은 처음일 것 같아요.

 

김창수: 먼저 영화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당시에 너무 힘든 과정이었고 그러한 시간들의 연속이어서 집에 DVD도 있지만 보지 못했어요. 아니, 보지 않았어요. 이런 기회가 아니면 보지 못할 거 같아서 오늘 감독님도 뵙고 영화를 보았는데요. 정말 보기 너무 힘들었어요. 앞으로 안 볼 거 같아요. 언젠가는 봐야할 거 같아서 마음먹고 봤는데 울기도 하고 저희들끼리 웃기도 하고 그랬는데, 절벽 끝에 서 본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텐데 설명하기 어려울정도로 고통스러운 과정이어서 사실 김청승 감독님의 얼굴이 기억이 안날정도였거든요. 구속되고 나니까 얼굴이 기억이 안 나더라고요. 영화를 봐도 기억이 안 나서 그렇게 집중을 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10년이 지났어도 힘든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고요. 이 자리에 못 오신 김성환 씨와 어제 통화를 했었는데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오롯이 진실 되게 드러나지 않으면 여전히 그대로 살았을 거고 똑같은 상황 속에 처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주석: 아유, 먹먹하네요. 구속되기 전에 김청승 감독 밥을 많이 먹였는데, 오늘 밥값 받으러 왔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는데요. 감독님이 아까 말씀하실 때 영화를 맨 처음에 용산을 집중적으로 찍으려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바깥에 연대 위주로 많이 찍게 되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연대 동지를 대변한 거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보면 <공동정범>을 보기 전에 먼저 이 영화를 보셨으면 좋겠어요. <공동정범>이라는 영화의 스토리가 왜 그렇게 됐는지를 보셨으면 해요. 오늘 고맙게 찾아주신 분들도 그 영화를 봤겠지만, 모두 가장이고 지역의 위원장이고 과장들이에요. 그분들은 철거민 동지라는 이유로 아무 대가 없이 용산을 도우러가서 망루까지 올라갔던 거예요. 그리고 징역도 갔다 왔습니다. 후회하지는 않아요. 동지라는 이름이 머릿속에 남아 있으니까 하지만 서로 그 일이 다 끝났을 때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데 못했기 때문에 <공동정범>이라는 영화에서 험한 얘기가 나오게 됐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를 보지 않으면 <공동정범>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 영화를 보면서 가족 생각이 나고 가족들한테 미안하단 마음이 드네요. 고맙게 잘 봤습니다.

 




공미연: 어려운 말씀 감사드립니다. <공동정범> 이야기가 나와서 말씀드리는 건데, 이 영화에 나오시는 주인공분들이 공동정범에도 나오기 때문에 함께 보시면 당시 상황 그리고 지금 현재의 상황들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2010, 2011년도에 용산 관련한 다큐멘터리들이 나왔어요. 공개되지 않았고 많이 상영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모두 모아서 상영을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자리인거 같아요.

 

김청승: 사실 저는 철거민 당사자분들 보시라고 만든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영화를 굉장히 독하게 만들었는데요.

 

공미연: , 그렇죠. 철거 당사자분들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늘 말씀하셨고, 이 영화를 본 사람이 목격자가 되기를 요구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의미에서 영화를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른데 오늘 꽂혔던 말은 김창수 씨께서 말씀하셨던 내가 철거민이 될지 몰랐고 다시 철거민 투쟁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라고 하시는 부분이었어요. 너무 힘든 싸움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10년이 지난 후 재개발의 방법들이 더 교묘해지는 거 같고, 저희 동네도 굉장히 많은 곳이 재개발로 휩쓸려 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거기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요. 그 정도로 폭력이 일상화되고, 나아가 어쩔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다는 심리를 88년부터 쭉 심어오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청승이명박, 오세훈 서울시장 때에 뉴타운 재개발을 쭉 하고 난 다음에 박원순의 반사심리로 뉴타운이란 단어가 없어진 거잖아요. 그런데 단어만 바뀐 거지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이 사라진 게 아니거든요. 과거에 동작구, 용산구 쪽이 집중적으로 재개발 되었다면 그 이후부터는 강북 쪽으로 올라와서 서대문, 마포, 은평 지역의 재개발 규모도 만만치 않거든요. 사실 똑같은 뉴타운인데 이름이 바뀌었다고 또는 대표하는 시장이 바뀌었다고 아무도 관심을 안 가지는 상황에 화가 많이 납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용산참사 관련 영화제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요. 제 영화가 <나홀로 집에> 같은 영화가 된 거 같아요. 성탄절만 되면 나오는 영화처럼 이맘때 쯤 되면 틀어지는 영화. 그러고 나면 아무런 반응도 없고, 가끔 제 영화한테 화가 나고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는데, 왜 마지막 장면을 이렇게 했을까 싶어요. 왜 용산 망루에 많은 상징이 많이 담겨있게 만들었는지 약간 후회되네요. 저는 용산참사라는 상징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이게 너무나 많은 것을 가리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공미연: 무언가가 상징처럼 되는 것은 저희가 경계를 해야 될 거 같아요.

 

김청승: 편하게 할 얘기들을 다 해보겠습니다. 운동이나 언론이 조명하는 것은 하나이고 나머지는 없는 존재가 되어버려요. 영화도 마찬가지거든요. 영화가 있으면 영화제나 개봉하기 전에 볼 영화, 밀어줄 영화가 정해져있어요. 저는 그 과정에서 말하자면 아웃된 거구요. 사실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다가 많이 실패하고 무기력해지는 상황이 계속되었어요. 여기에 나오는 김성환 아저씨가 용산 지역 철거민이신데도 불구하고 타 지역 분들하고 계속 어울리셨어요. 사실 재판 때 마다 유가족들은 법원 안 식당에서 밥을 먹었거든요. 그러는 와중에 타 지역 분들은 법원 바깥에 모여서 얘기를 하거든요. 법원에서 밥 먹는 장면을 보고 인간미 넘친다고 제 영화를 좋아하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그러면 제가 무엇을 찍는 것인지 싶고...

 

공미연: 저도 밥 먹는 장면은 인상적이었는데요.

 

김청승: 같이 재판을 받으면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천주석: 제가 밥을 덜 싸가서 그래요.

 

공미연: 밥을 충분히 싸 가셨어야 했는데. (웃음)

 

천주석: 그 마음을 이해하는 건, 저도 맨 처음에 법원 식당에서 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재판 받는 것도 더러운데 법원 식당에서 밥을 먹는 게 더러워서 밥을 싸가기 시작 했던 거거든요. 다음에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밥을 많이 싸가겠습니다.(웃음)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내내 사운드를 배제하다가 갑자기 음악을 되게 크게 트시더라고요. 왜 이런 음악을 선택했고, 왜 마지막 장면에서 음악을 넣어서 이렇게 감정을 이입시키게 되었는지 의문이 들어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공미연엔딩음악 관련 질문은 매번 나오는 질문이고 호불호도 갈리는 부분인데 감독님의 솔직한 대답을 들어보도록 하죠.

 

김청승: 음악은 사운드 믹싱해주시는 분이 해주신 거구요. 제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공미연: 보통 감독이 의도하잖아요.

 

김청승: 중간에 들어가 있는 정태춘의 노래랑 마지막 김민기의 노래는 제가 넣으려고 했던 노래구요. 중간에 대니 보이는 그런 느낌의 음악을 한 번 넣어 보려고 잠깐 넣어놓고 수정하던 와중에 외장하드가 터졌어요. 소생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대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굳이 음악을 넣어서 감정이입을 일으킨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단 음악을 안 깔고 끝까지 그 장면을 보여주면 좋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지만 제가 그렇게까지 독한 사람은 아니었던 거구요. 이 영화는 외부인들이 보라고 만든 거지만 마지막 장면에 들어간 음악은 당사자분들을 위한 나름의 선물 같은 의미로 담았습니다. 굉장히 신파 같은 영화잖아요. 일부러 작정하고 사람들을 울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만든 영화입니다.

 


관객안녕하세요. <두 개의 문>이랑 <공동정범>을 보고 다음에 이 영화를 보았는데, 저는 마지막 장면이 꼭 저희가 알아야 될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어렸기 때문에 잘 모를 수 있지만 이런 영화가 있어서 저 역시 목격자가 될 수 있었다는, 공동의 마음을 느낀 것 같습니다. 분량이나 선택의 문제로 넣고 싶었지만 넣지 못한 장면이나 빠진 장면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청승: 제가 20098월부터 2011년 말까지 촬영을 했었는데요. 영화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20098월부터 10월말 까지 두 달 정도의 분량입니다. 사실 재판으로 구속되거나 또는 돌아가셨던 분들이 대부분 각 지역 철거대책위원장이었습니다. 위원장들이 하나같이 남성이었다는 것은 생각해볼 지점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당시 전철연 조직이 약화되어있었고, 세 분이 감옥에 들어가시고 난 다음에는 그 분들의 아내 분들을 찍었거든요. 아내 분들을 1년 반 정도 가끔 촬영했습니다. 처음 만들었던 가편집본은 세 시간 분량인데 용산지역 여성 철거민들을 찍었어요. 그 부분을 따로 떼서 한 시간 분량으로 만든 담에 독립적으로 DVD에 부가영상으로 넣었습니다. 구매를 원하시면 서울영상집단에 문의주세요. 오늘 보신 영화는 유투브에 있습니다. 주변에 영화를 못 보신 지인 분들한테 알려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공미연: 말씀 감사합니다. 현재 싸움을 진행 중인 분들이 자리해주셔서, 말씀 좀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희성: 안녕하세요. 저는 도시난민 희성씨로 활동하고 있는 이희성이라고 합니다. 2015년도에 디자이너를 꿈꾸며 생활하던 청년이었는데 거주하던 곳의 재개발 이주기간 때 용역들이 들어와서 집의 불을 다 꺼버렸어요. 모든 것을 잃고 나서 억울하다고 싸움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일년 뒤에는 집이 철거되어 집 주소가 없다고 주민등록증을 말소시켰어요. 그래서 현재는 대한민국 사람이 아닙니다. 노숙인이죠. 영화에서 기억에 남았던 것은 담배랑 동물원이라는 단어인데요. 사실 철거민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사소한 일 하나에 감사함을 느끼는 사람들이구요. 오히려 저는 철거민이라는 편견에 맞서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잘 나타내주셔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투쟁한 지 5년이 되다 보니까 사람들이 저를 활동가로 인식해요. 가끔씩 안타까운 것은, 철거를 앞둔 사람들이 뭉치지 않고 개별적으로 연락이 와요. ‘재개발 지역 30020에서 살고 있는 청년인데 갈 곳이 없어요.’ 이런 연락이 오면 제가 아는 것에 한해서 보증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말씀드리지만, 아직도 변한 게 없다는 것을 느끼기도 해요. 정부나 관공서는 이런 것을 직접 관리해줘야 하는데 다들 모르쇠 하고 있어요. 다들 자기들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며 회피하고. ‘우리는 모르겠다, 조합의 책임이다라는 인식이 변해야지 다 같이 사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늘 영화 너무 잘 봤고, 앞으로도 철거민이지만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관객: 저는 제가 눈물이 이렇게 많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공동정범>을 본의 아니게 너무 여러 번 보게 되더라고요. 이 작품도 마찬가지로 보면서 눈물이 쏟아지고 감정이입되고 작품을 소장하게 되면 죽는 날까지 보지 않고 가지고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이 어떤 스토리의 영화라는 것을 알지만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게 내가 되니까요. <공동정범>에 그런 장면이 나와요. 이충현 씨가 말한 대사 중에 그 상황 속에서도 배는 고프니까 밥은 쳐먹더라구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눈물이 쏟아져서 멈출 수가 없었는데 같이 보는 사람들은 다 폭소를 하더라고요. 겪은 사람과 옆에서 보는 사람의 심정이 이렇게 다를 수 있나 싶었습니다. 재개발 가입자가 세입자가 됐든 영업권자가 됐든 다 큰 피해를 보는 건데, 그 프레임이 다르다는 이미지로 서로 다르다고 찢어 놓고 서로 뭉치지 못하는 현실은 지금도 마찬가지구요. 지금 영화에서 사람들이 융합하는 모습을 보면서 감독님께 굉장히 감사한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모두 각자 맡은 분야에서 당면한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저도 주거세입자, 상가세입자 등을 뭉쳐보려고 굉장히 애를 썼으나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가능하겠구나 싶었고 큰 역할을 맡아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미연: 말씀 감사합니다. 김청승 감독이 다른 작품을 이어가려고 했으나 못하고 있었어요. 개인적인 상황들 때문이었는데 최근에는 무언가 새롭게 해보겠다는 심경의 변화가 보이는 거 같아요. 요즘 변화가 있으신가요?

 

김청승창작자들은 옛날로 치면 무당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신기를 받아서 무언가를 알려준다는 게 아니라, 무당처럼 누구한테 이야기를 받아서 있는 이야기를 약간의 필터를 거쳐 전달한다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당사자만큼의 고통은 아니어도 이야기가 저를 통과하면서 제 안에 고통이 쌓이는 거죠. 그래서 어느 순간 철거민들도 찾아가지 않게 되고 재개발 지역도 마찬가지구요. 한 번 이렇게 취재를 하니까 눈에 보여요. 남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조합설립 플랜카드 같은 것들이 눈에 박혀요, 영화 가끔 상영할 때 마다 관객 분들한테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본인이 사는 동네에서 반경 1km만 돌아보면 개발 정지된 곳, 철거 진행되는 곳, 개발로 아파트가 들어선 곳, 그 개발과정을 다 볼 수 있어요. 특히 서울은 심한데 대부분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죠. 그런 과정이 계속 되면서 무기력함이 쌓였고요. 그러다가 최근에 파인텍과 제주 강정마을의 노력을 보면서 내가 너무 내 상처만 크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어떤 능력이 있을텐데 계속 남탓하며 묻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공미연: 조만간 또 새로운 작품들로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청승: 좋은 세상이네요.

 

공미연: 도시영화제 첫날인데 이후 다른 상영일정들도 있고 하니 많은 관심가지고 함께 지켜봐주셨으면 좋겠고 각자 목격자로 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김청승: 인디스페이스 외 다른 곳에서도 상영을 하고 있는데, 모두 지금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입니다. 현재 갈등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영화 보시고 투쟁하고 있는 분들도 만나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미연: 이후 도시영화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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