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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Review] <어른이 되면>: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by indiespace_한솔 2019. 1. 3.






 <어른이 되면>  한줄 관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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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다름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세상 속에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

승문보 | 두 개의 시간이 하나의 시간으로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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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마리솔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어른이 되면>  리뷰 :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마리솔 님의 글입니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라면 으레 걱정되는 것들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그저 안쓰럽고 불쌍하게만 느껴지는 것, 그런 마음으로 영화를 보고 있는 스스로를 확인하는 것이 불편했다. 장혜영 감독은 다른 방식으로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음을 <어른이 되면>을 통해 보여준다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서른의 혜정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언니 혜영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른이 되고나서도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을 혜정에게 혜영은 이렇게 답했다. 네 삶은 네가 선택할 수 있다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다.’, 이 당연한 명제가 장애인인 혜정에겐 아득하게만 느껴질까. 영화를 만든 장혜영 감독은 를 질문하고 있다.





함께 산다는 건 원래 녹록지 않다. 그게 누구든.


영화는 혜영과 혜정이 함께 살 집으로 이사를 준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땀을 뻘뻘 흘리던 혜영은 혜정에게 같이 선풍기를 사러 가자고 말한다. 혜정은 벌 서는 얼굴로 거듭 싫다고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터뜨린다. 선풍기 하나 사는 것부터 이렇게 어려워서야 같이 살 수 있나, 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함께 산다는 건 원래 녹록치 않은 일 아닌가. 그게 누구든. 동거하는 사람이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다른 사람과 생활을 공유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다만 어려움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지난 22, 인디스페이스 <어른이 되면> 싱어롱 상영회에서 장혜영 감독이 관객에게 했던 말이다. “혜정이는 정말 타고난 협상가예요. 원하는 게 관철될 때까지 몇 번이고 이야기해요. 안 되면 이야기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이야기하고. 저렇게 하면 안 될 일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 말 하나로 혜정의 다름이 충분히 납득되었고 이상하게 느껴질 것이 없었다. 혜영은 혜정의 다름을 세상의 여러 다름 중 하나의 다름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를 썰어주는 것이 아니라 써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혜영이 혜정에게 스테이크 써는 법을 가르쳐주는 장면이 있다. 혜정의 어색한 손놀림에 스테이크는 좀처럼 썰리지 않는다. 혜영은 혜정에게 고기를 썰어주는 대신 혜정이 고기를 썰 때까지 조곤조곤 방법을 가르쳐준다. 혜정이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혜정은 스테이크와 한참을 씨름하다가 한 점을 겨우 입안으로 넣는다. 이렇게 장애인과 어울려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격리된 공간에서 비장애인이 썰어준 고기를 먹을 것이 아니라 조금 더딜지라도 고기 써는 방법을 배우면서. 그럴 수 있다면 장애인도 장애인으로서의 자립을 어느 정도는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혜정이 시설 밖의 세상을 만나고 배워나가는 방식,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혜영의 모습에서 시작해보면 좋겠다.

 




장애인과 함께 살아간다면


혜정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이다. 아프리카 음악보다는 트로트를, 애니메이션 중에서는 <모아나>와 <인어공주>를 좋아한다. 스티커사진이 너무 찍고 싶다며 우기다가 서러운 나머지 울기도 한다. 이렇게나 욕구가 구체적이다. 혜영은 뚜렷한 취향을 갖고 있는 혜정에게 이따금씩 놀라는데, 이는 혜영이 혜정과 같이 살지 않았다면 몰랐을 혜정의 모습들이다. 비장애인이 장애인과 함께 살지 않아서 모르는 모습들에 대해 생각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인격을 갖고 있지만 동등하게 살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함께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현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삶을 완전히 동일선상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불가능하다. 잘 생각해보면 이건 장애인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백인과 흑인, 미취학아동과 청년, 여성과 남성, 이성애자와 비이성애자. 세상의 그 어떤 층위를 보더라도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공존은 얼마만큼 이야기 되었는가, 라고 따져봤을 때 할 수 있는 말이 많지 않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201812월로부터 10년 뒤인 202812월엔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있을까. 43살이 되어있을 혜정은 그때도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가는 중일까. 자신 없는 물음표만 자꾸 남지만, 그래도 기대하고 싶다.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하는 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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