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만나는 촛불과 광장의 온기 SIDOF 발견과 주목 [광장의 촛불, 그 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1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넝쿨 감독, 고승환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기해년 새해가 밝았고, 박근혜 파면 2주년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 되었다. 2018년을 마무리하는 인디다큐페스티발 정기상영회는 광장과 촛불을 상기시키는 두 편의 영화와 함께 인디스페이스를 찾아왔다. 자유롭고 평등한 광장과 그 열기만큼 빛을 발하던 촛불. 광장과 촛불의 의의와 가치를 기억하며 그 이후의 일상과 삶을 되돌아 보았다. 과연 우리와 사회는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어떤 과정 속에 있는 것일까. 인디토크는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이도훈이 진행하였고, <일상의 촛불>에 참여한 넝쿨 감독과 <나를 위한 변명>의 고승환 감독이 참여하였다.
이도훈 진행(이하 진행): 고승환 감독님과 넝쿨 감독님 모시고 관객과의 대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두 분 각자 어떤 역할을 맡으셨는지 관객 분들께 간단하게 소개 부탁 드리겠습니다.
넝쿨 감독(이하 넝쿨): 안녕하세요. 저는 넝쿨이라고 하고요. <모든 날의 촛불>이라는 옴니버스 프로젝트에서 <일상의 촛불>을 연출한 김수목 감독님을 대신하여 퇴진행동에서 함께 기획을 했던 미디어 피디의 역할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고승환 감독(이하 고승환): 저는 <나를 위한 변명>을 공동연출한 고승환이라고 하고요. 박소현, 남아름 씨가 함께 연출하였는데 오늘은 저 혼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진행: 이 두 편의 작품을 가지고 굉장히 큰 주제이기는 하지만 촛불과 광장에 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 광장 안에서의 정치와 신념, 그리고 광장 밖 혹은 일상에서 촛불의 가치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고민과 대답이 들어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첫 번째로 공통 질문으로 이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대략적으로 들었으면 합니다.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가 나왔고, 어떤 기획 회의 과정이 있었는지 전반적으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일상의 촛불>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2016년, 2017년에 있었던 박근혜 퇴진운동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그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아마 여기 계신 분들도 한 번쯤은 나가셨거나 생중계를 보시거나 하셨을 것 같은데요. 그 안에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이라는 장을 만들고 무대를 열고 같이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미디어팀으로 많은 독립다큐멘터리 감독들과 미디어활동가들이 결합을 해서 활동을 했어요. <광장>이라고 하는 열 편의 단편을 묶은 옴니버스 작업도 같이 했고 그 작품은 17년 3월에 나왔어요. 최초로 나온 촛불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였을 것 같은데요. 정말 급히 만드느라 굉장히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어쨌든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선국면을 맞이하고, 탄핵, 파면선고가 된 이후의 국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관한 기획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광장의 사람들>, <광장에서>, 그리고 <일상의 촛불> 이렇게 세 작품을 같이 기획을 했어요. <광장의 사람들>은 말하자면 전사를 다룬, 처음에 시작하고 어떻게 진행이 되었고 이렇게 끝났다는 이야기들을 하는 작업이었고, <광장에서>는 조금 더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작품이고요. <일상의 촛불>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촛불의 경험을 가지고 광장 밖으로 어떻게 나갈 것인지 고민이 담겼습니다. 감독님과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작품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진행: 광장에서 긴밀하게 현장과 결합하기 위해 미디어활동가로서 결과물을 빨리 내놓다보니 옴니버스식으로 단편들을 모아서 만들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추가적으로 조금 더 여쭙자면 김수목 감독님의 <일상의 촛불>은 광장에 결집되어 있었던 힘의 파급력이 광장 밖으로까지 뻗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과 질문, 또는 그런 것을 확인하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갔는지 궁금합니다.
넝쿨: 그렇죠. 영화에서 인터뷰해주신 분들께서 다 말씀하시기는 하는데요. 박근혜가 탄핵된다고 해서 세상이 갑자기 바뀌진 않을 테니까요. 그리고 자유롭고 평등해보이는 광장에서 이상하고 미묘한 테두리를 벗어나면 바로 불평등의 한 가운데에 놓여있는 찌질하고 구질한 나, 벗어날 수 없는 나. 이런 간극을 미묘하게 다들 가지고 계셨을 것 같아요. 소위 세상을 바꿨다고 하는 행동들이 자기의 일상으로 들어왔을 때 어떻게 작용할 수 있을까 질문하고 싶었고요. 사실 조금 더 밀어붙이고 싶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행동을 자기 일상으로 가지고 와야 한다고요. 큰 변혁이라고 하는, 거대한 운동이라고 불리는 것이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촛불 들고 서 있어서 탄핵이 된 거잖아요? 이런 어마어마한 진실을 자기 일상으로 끌고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밀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죠.
진행: 다음으로 <나를 위한 변명>에 대해서 제작 배경과 관련된 이야기를 조금 여쭙고 싶은데요. 일단 세 분의 연출자가 계시는데 처음 만나서 어떤 식으로 얘기가 되었고, 어떤 방향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일단 저희 셋이 95년생 동갑내기 친구였는데, 작품을 논의하던 시기가 조기 대선이 결정되고 한 달 정도를 남겨둔 시점이었어요. 우리가 직접 투표를 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됐을 때 과연 우리가 진짜 우리의 기준대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가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시작을 했고, 만약에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왜 이런 것들을 알지 못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각자 자기들의 변명을 늘어놓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이게 우리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고 생각을 해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섭외해서 인터뷰를 기록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의도한대로 이야기들이 나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고, 저희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변명해주는 영화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진행: 정확히 그 시점이 언제 정도인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아이디어가 나온 게 대략 어느 정도인지, 박근혜 정권 퇴진 즈음인지 궁금합니다.
고승환: 전부터 같이 작업을 했던 친구들이어서 비슷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적이 있는데요. 그때는 ‘왜 이렇게 세상이 잘못됐을까’를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세상이 크게 변화한 걸 직접 마주한 거죠. 본격적인 촛불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획은 하고 있었는데, 촛불을 우리가 직접 보게 되고, 나가게 되고, 박근혜가 하야하는 걸 다 지켜봤잖아요? 나름 그 곳에 있었고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막상 대선이 눈앞에 다가오니까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게 어느 정도인지 의심을 하게 된 거죠. 그렇게 박근혜가 하야한 이후에 바로 만들어지게 된 것 같아요.
진행: 그러면 연출과 관련해서 세 분이 공통적으로 정치적인 무기력함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이 바뀐 과정에 있어서의 분노 표출을 해보자는 합의를 하고 시작이 된 건가요?
고승환: 세 명 다 의견이 조금씩 달랐어요.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내레이터, 그리고 내레이터가 지칭하고 있는 그녀가 다른 두 감독들의 실제 이야기예요. 가상의 인물이나 가상의 이야기를 쓴 게 아니라 자기들의 이야기를 표현했고, 저는 환경적으로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기간이 길지 않아서 조금 더 멀리서 이야기해보겠다고 해서 각자 나름의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아요.
진행: 두 번째로 영화들의 구성 방식 혹은 연출 방식에 대한 부분인데요. 아까 <모든 날의 촛불>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처음 할 때부터 <광장의 사람들>, <광장에서>, 그리고 <일상의 촛불>이 서로 다른 색깔로 가되, 전체로 묶였을 때 한 편의 서사 같은 게 만들어질 수 있는 식의 구성을 따르려고 한 것인지, 최초의 기획 단계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 궁금합니다. 뭔가 차별화를 두되 이어지는 느낌이 나야 한 편의 옴니버스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기획 단계에서는 각각 어떻게 포지션이 잡혔는지 궁금합니다.
넝쿨: 어떤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깊이 다루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을 정리하기 위해 기록을 남기자는 기획이었어요. 그리고 그 안에서 세밀하게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이후에 광장 밖에서도 다시 삶은 이어지니까요. 말하자면 ‘광장에서 인간으로’ 같은 느낌이 될 것 같은데요. 초반부터 이런 방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퇴진행동에서 같이 일한 박진님과 구성을 하는 과정에서 파트를 나누어서 기획했어요. 세밀하게는 각자 감독님들께서 주목하고 계시는 것들이 영화에 많이 담기기도 했고요. 사실 이게 엄청난 사건이기 때문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정말 다종다양한 영화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너무 욕심 내지 말자고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촛불과 관련된, 혹은 촛불이 묻어나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을테니 우리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것들을 담아보자는 정도로 이야기했습니다.
진행: 지금 우리가 본 김수목 감독님의 <일상의 촛불> 같은 경우는 말 그대로 일상과 삶에다가 촛불의 의지를 가까이 들이미는 방식이에요. 전에 다른 작품들은 이런 표현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시민들이 모여 있는 스펙타클함 그 자체, 광장의 열기를 찍어왔는데요. <일상의 촛불>은 그와는 한 뼘 거리를 두는 방식이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일상의 관찰,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터뷰로 쪼개지게 된 거잖아요? 그것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협의가 된 부분이었는지요?
넝쿨: 아니요.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것인가는 감독님의 선택이었고요. 이 영화 자체의 디테일, 구성 같은 것들은 감독님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진행: <나를 위한 변명>도 구성과 연출이 궁금한데요. 아까 잠깐 이야기가 나왔지만 영화에서 내레이터가 ‘나’, ‘그녀’라는 말을 쓰거든요.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왔다 갔다 하고, 나중에 가면 ‘우리’라는 표현을 쓰기도 해요. 이런 식의 내레이션 구성을 하게 된 이유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아까 잠깐 말씀을 하시긴 하셨지만 오늘 참석하시지 못한 두 감독님의 경험담이기도 한데,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됐었던 배경, 그리고 그게 ‘나’, ‘그녀’에서 ‘우리’까지 점프하게 됐는지가 궁금합니다.
고승환: 일단 저희 셋 다 변명을 하고 싶었고, 변명을 하기 위해 나름의 선택이었던 건데요. 내레이션을 하는 친구는 오히려 세상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입장이었고, 내레이션이 지칭하고 있는 그녀는 그래도 이번 기회에 세상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입장이었고, 저는 어떻게 돼도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에.(웃음)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저희 세대의 이야기랄 것을 저희 셋이서 말한 건 아니잖아요? 저희가 끌어들인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의 입을 빌려서 표현을 했기 때문에 결국엔 ‘우리’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습니다.
진행: ‘그’는 없고 ‘그녀’만 있잖아요? ‘나’와 ‘그녀’는 오늘 참석하지 않으신 박소현 감독님과 남아름 감독님의 경험담이 녹아 든 내레이션인데, 조금 멀찍이 떨어져 있었던 감독님은 ‘그’로서 들어가지 않고 ‘우리’ 쪽으로 묶인 듯한 느낌이거든요?
고승환: 저도 그런 것 같네요.(웃음)
진행: 내레이션에 대해서 약간 소외감을 느끼진 않으셨는지요(웃음).
고승환: 사실 내레이션은 제가 대본을 쓴 거라서요. 그게 제 나름대로 개입을 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진행: 그럼 일부로 빼신 거네요? 이것 또한 일종의 변명인가요?(웃음) 내레이션을 빌미로 삼아서 그 뒤로 숨으신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기도 하는데요. 이 영화의 구성 방식은 성장담처럼 보이기도 해요. 시간대별로 배열한 흐름을 따르고 있거든요. 유치원, 초등학교 입학,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이런 시간의 흐름대로 구성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고승환: 저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우리가 태어난 시점부터 지금까지, 즉 우리나라의 가까운 역사만 들여다봐도 크고 많은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변화들이 일어났다고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자라온 동안에 분명히 그런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정작 우리들은 그것에 대한 체감을 못하고 살았던 거죠. 우리가 살아있었지만 그때 일어났던 변화들에 대해서는 인지를 못하고 우리가 하는 것에 묶여있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영화를 사실 처음 만들 때 이건 정치적인 이야기지만 정치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 안에 어차피 정치는 다 들어 있었고, 그 둘을 같이 보여주는 방식으로 구성을 해보려고 한 거죠.
진행: 저는 지금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서 크게 공감하는 바인데, 예를 들어서 영화의 한 장면에서 누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때부터 대학교까지의 일대기가 영상을 통해서 전개가 되는데, 보고 있으니 러닝머신을 뛰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속도 조절을 할 수도 없는데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까 러닝머신 위에서 계속 뛰어야 하는 느낌. 그걸 돌리고 있는 게 정치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공통 질문으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두 작품이 공통적으로 인터뷰 대상을 섭외를 해서 그 분들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어떤 인물들을 섭외하고자 했고 어떻게 구성했는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일상의 촛불>에는 대학생, 세월호 관련활동과 영상 작업을 하시는 두 분,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와 자영업자. 이렇게 네 팀이 나오시잖아요? 앞에 두 팀은 저희가 이런 분들이 있으면 좋겠다고 짚어서 말씀을 드렸고, 그리고 뒤에 두 분은 감독님과 인연이 있어 나오게 된 분들인데요. 앞에 대학생 분은 한 지면에 칼럼을 쓰신 적이 있어요. 촛불집회 당시 광장에서 자유로운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을 때의 나의 모습에서 괴리를 느꼈다, 나의 일상은 변할 수 있을까, 그런 글을 쓰셨던 분이어서 섭외했습니다. 이런 괴리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자기 일상을 바꾸고 싶다고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한 분은 촛불집회를 할 때마다 오셨던 분이에요. 오랜 기간 촛불집회를 했잖아요? 매번 자원봉사자들이 촛불을 나눠주거나 피켓을 나눠주거나 하셨는데, 영화에 등장하신 남성분도 자원봉사에 참여하셨던 분이에요. 촛불집회를 지켜보았던 사람, 일상과의 괴리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 사람과 이런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기획 단계에서 나왔습니다.
진행: 광장으로 다가가고 싶어하지만 아직 다가가지 못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고, 광장에 속해있지만 문득 어느 순간 일상에서의 괴리를 느끼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촛불 또는 광장이 가지고 있는 굉장히 포용적이고 따뜻한 느낌이 있지만, 어쩌면 그게 완벽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간극들이 무너져야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넝쿨: 말을 자꾸 길게 해서 죄송합니다만(웃음). 감독님께서 섭외해놓으셨던 분 중에서도 이런 말씀을 하셨던 분이 안다미로 사장님이셨어요. ‘촛불집회 나랑 별로 상관없지 않나? 정치 나랑 별로 상관없지 않나? 그냥 내 행복이 중요한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장사 때문에 한 번도 가 볼 수가 없었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분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기도 했고요. 항상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게 되는데, 오지 못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같이 들을 수 있어서 그 부분이 되게 반가웠죠.
진행: 촛불의 빛이 전해지면서 멀리 있지만 마음으로도 같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으로 <나를 위한 변명>에서 인터뷰 인물 구성을 보자면 아무래도 지인 분들, 친구분들이 나오셨던 것 같고요. 그 친구들의 공통점이 지방에서 상경한 분들이었다는 거죠? 인터뷰를 섭외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우리가 하고 싶은 변명이 있는데 우리가 하기는 그렇고 친구들의 입을 빌려보자는, 조금 이상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는데요.(웃음) 가까운 친구들을 통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했는데, 저랑 한 친구는 친구가 별로 없어서요. 정말로 가까운 친구들이 다 나온 거구요. 그나마 친구가 많은 다른 한 명이 나머지 친구들을 다 섭외해줬어요. 다들 기준이 뚜렷했던 건 아니고 내가 알고 있는, 섭외할 수 있는 가장 친한 친구, 그리고 편하게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그런 기준으로 채워나간 것 같아요.
진행: 감독님께서는 아까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해외에 계신 기간이 많아서 그런 거죠?(웃음) 듣다 보니까 제목이 변명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계속 우리들의 변명, 연출자분들의 변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 왜 항변이 아닌 변명이라는 타이틀을 쓰신 건지 궁금하네요.
고승환: 방금 말한 게 가장 큰 이유인데, 저희가 저희 입으로 직접 말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에요. 그래서 맨 처음에 시작할 때 내레이션에서 ‘지금부터 들려 줄 이야기는 내가 하고 싶은 변명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시작을 하고 인터뷰들이 쭉 나온 다음에 ‘지금까지 들려 준 이야기는 우리들의 변명일 지도 모르겠다.’라고 끝이 났거든요.
진행: 변명이라고 하지만, 과거에 겪었던 혹은 현재에 당면해있는 시국에 대한 비판, 국가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비판, 혹은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것들을 고찰하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잖아요? 실제 영화 속에서 담긴 것 말고도 현장에서의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성토의 장이었는지, 아니면 이성적으로 대화를 하는 느낌이었는지. 친구분 중에 한 분이 아무래도 카메라 앞에서 조금 경직된 모습을 보였거든요. 존댓말을 써야 할 지 아니면 평소에 하듯이 반말을 해야 할 지. 그런 부분에 있어서도 톤이 조정된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현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는지, 그리고 영화에서는 어떤 부분들이 걷어지고 어떤 부분들이 담기게 된 건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고승환: 오히려 친한 친구들이어서 어려웠던 부분인데요. 평소에 친구들이랑 진지하게 각 잡고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카메라 앞에서 각 잡고 이야기하려니까 서로 조금 어색했어요. 그래서 공감을 많이 해줬던 것 같아요. 사실은 저희도 카메라 뒤에서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저희들이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고, ‘너도 이러지 않았니?’ 했을 때, ‘맞아, 나도 이랬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게요. 점점 편해지면서 각자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넝쿨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이 영화에서 인터뷰는 대선 조금 전에 촬영됐던 걸로 보이고 아마 완성도 그 즈음에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대선이 진행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때부터의 시간들에 대해서는 출연하신 분들이나 아니면 공동기획자로 참여하신 감독님의 생각은 어떠한 지가 궁금하네요.
넝쿨: 안타깝게도 제가 연출은 아니어서요.(웃음) 주인공들과 인연이 직접적으로 있지는 않아서 어떻게 보고 계시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 드려도 괜찮다면, 정권이 변하며 천지개벽할 것 같았지만 사실 별로 바뀐 건 없죠. 그다지 많이 바뀐 건 없는 것 같아요. 내 미래를 설계하고 내 일상을 유지하면서 살고자 할 때, 특별히 평등한 조건이 만들어졌다거나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있게 된 건 아닌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정치상황이라던가 경제상황 같은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는 특별히 많이 바뀐 건 없다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런데 촛불집회를 겪기 전과 후에 시민들의 자신감과 평등이나 자유에 대한 감각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저도 이 작품을 오랜만에 보면서 ‘맞아, 우리 이랬었지’ 싶었던 게, 과거를 말할 때면 탈출구가 없고, 주저앉아서 무기력하게 살 수 밖에 없고, 그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마음들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지나오면서 만연했던 것 같아요. ‘부패? 그래, 다 부패하지. 부패하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어. 불의? 누가 정의로워? 기회만 있으면 불의하더라도 내 이득을 따라야지.’ 그런 식의 사고방식이 만연했는데, 변화의 기점이 됐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 사실 그렇지 않잖아. 나 사실 그런 사람 아니거든? 너도 그렇지 않니?’라는 말들을 서로 확인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촛불집회라고 하는 게 단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켰던 시간만이 아니라 ‘우리 그렇게 못난 사람은 아니잖아. 우리 조금 더 근사한 사람들이잖아.’라고 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그래서 그런 감각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고요. 이런 부분들은 사실 정치상황, 경제상황 같은 것들로만 이야기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누구나 품고 있다는 가슴 속 삼천 원 같은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진행: <일상의 촛불>의 후반부에 광장 안에서 많은 분들이 전단지를 돌리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거든요. 혹은 피켓을 들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거기에 보면 뭔가 각자 다 다른 사안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계세요. 그런 여러 목소리가 그 광장 안에 다 들어가 있었다는 건데요. 정치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큰 판이라면, 여러 군데로 쪼개져 있던 것들이 촛불과 광장을 계기로 해서 다시 그 안에 모여서 새롭게 퍼즐이 맞춰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1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마치 급류가 휩쓸듯 한 번에 확 왔다가 지나가는 바람에 그 퍼즐이 아직은 완성이 안 되었고요. 이제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가는 단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쨌든 이 영화를 통해서도 확인했고 우리가 실제로 광장에서 느낄 수 있듯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그 안에서 새롭게 배치되면서 감각이 조금 재편되고 바뀌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일단 좋은 영화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일상의 촛불>을 보니 인터뷰하신 분들께서 너무 말씀들을 잘 하셔서요. 이 분들이 몇 년 뒤에 다음 정권이 될 텐데 그때는 또 어떻게 살고 있을 지 다시 찾아가서 후속 인터뷰를 한다면 굉장히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넝쿨: 감독님께 건의해보겠습니다.
관객: (이어서) 그리고 고승환 감독님께 질문이 있는데, 영화에서 일상적으로 학교 교육을 받으면 정치에 관심을 갖기도 어렵고 삶의 속도가 너무 버겁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잖아요? 한 분이 자기가 되게 한심하다고 말한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러면서 친구분들이 학교에서 이런 정치에 관한 교육이 있었다거나 만18세에 투표권이 있었으면 조금 더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이런 대안에 대해서 고민해보신 적이 있으신지 듣고 싶네요.
고승환: 저희들끼리 그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확실히 제도적인 개선이 있고 교육 현장에 잘 반영이 된다면 지금 같은 문제가 반복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던 때에 저희가 열아홉 살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때가 저희들한테는 되게 알 수 없는 분노를 심어줬던 시기예요. 그러면서 투표권 연령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됐고요. 그런 문제들뿐만 아니라 정치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과연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생각해봤을 때, 정치가 학생들의 관심 영역이 아닌 것이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게 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직접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바꿨다고 믿는다면, 또는 바뀌어져 가고 있다고 믿는다면 조금씩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진행: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덧붙이고 싶은데요. 교육, 제도적인 부분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때 경제관을 빨리 심어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초등학교 때 통장 개설하라고 하고, 은행에서 돈 찾는 방법, 송금하는 법까지 일일이 가르쳐주고 저축을 장려하며 경제관은 심어주는데 왜 정치관은 잘 안 심어줄까요. 투표권을 1, 2년 앞당겨준다면 고등학생 때 이미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고, 정치에 관해 학교에서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관객: 소감도 말씀을 드리고, 조금 반복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제 언어로 다시 여쭤서 대답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일단 저는 이 두 편의 영화가 다 교집합적인 온기가 있고, 타인의 목소리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확인하는 연대의식을 포착하고 반영하는 동시에 연대 혹은 변화라는 알레고리가 가지는 막연함 또는 불완전함 또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나를 위한 변명>의 고승환 감독님에게 조금 더 여쭤보고 싶어요.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항변이 아니라 변명이 된 이유 중에 하나가 사실 가부장적이고 부르주아적인 지배 양식 속에서 학교가 이데올로기적 장치로 작용을 한 결과, 학생들에게 어떤 무력감 내지는 순종심을 심어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처럼 보이는데요. 제도의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개인의 책임 의식을 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본인의 무기력을 발견하고 해석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 부분을 넘어 실천 내지는 창조하는 것도 할 수 있을 텐데, 변명이라는 힘없는 목소리에서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조금 있고요. 만약 이게 변명이 아닌 항변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식의 고민이 나오고, 그에 대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는지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고승환: 변명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하자면, 일단 만드는 저희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없었어요.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고 했고요. 똑같이 모르는 입장에서 우리가 왜 몰랐을까를 탐구해보는 게 더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제도적으로 무언가가 잘못됐는지, 또 우리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아는데 왜 너희들은 몰랐는지 묻고자 접근을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항변은 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는 몰라, 우리는 왜 몰랐을까, 우리는 이래서 몰랐구나’가 전부인 영화라서요. 이걸 항변으로 발전시켜 보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저는 할 수가 없네요.
관객: 영화 두 편 다 너무 잘 봤고요. <일상의 촛불>에서는 저도 집회를 매주 다니다시피 했던 사람으로서 대학생분 인터뷰에 굉장히 감정을 이입하면서 보게 되었고요. 광장 안에서의 촛불의 힘을 온전하게 느끼고 나서 집에 돌아왔을 때,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300원 더 비싼 걸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하게 되는 제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 일상에서 변화된 것들이 있느냐는 질문이 많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영화에서는 그 질문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럼 일상에서는 어떻게 내가 촛불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혼자서 흔들리는 촛불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야기 해주신 것 같아서 굉장히 좋게 봤고요. 그리고 <나를 위한 변명>은 사실 변명을 하게 될 때는 굉장히 많은 밑밥들을 깔게 되잖아요? 그런데 대선이 다가오고 투표를 하게 됐을 시점에 가지게 된 고민과 변명을 하기 위한 밑밥들을 까는 과정들이 굉장히 단단하고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까도 살짝 나오기는 했지만 인터뷰를 준비하고 질문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어떤 질문들을 넣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마지막 질문으로 어떤 걸 물어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을 것 같아서요.
고승환: 일단 질문을 한 저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다 정해져 있었어요. 처음에는 친구한테서 어떻게든 이걸 이끌어 내보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과연 그런 식으로 질문을 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거야말로 ‘우리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데, 너희는 사실 모르지?’ 처럼 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질문 방식을 아예 다 엎어버리고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질문하는 방식이 ‘너 그때 기억나? 너 그때 나랑 친했잖아.’ 이런 식으로 진행된 거고요. 얘기를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정말 오래된 친구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가능했던 것 같은데요. 저희는 ‘그때 그랬지? 너 그때 기억나?’가 사실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시기적으로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상황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진행: 이 두 작품은 설득적이지도 않고, 해석적이지도 않은 것 같고, 소위 말하는 프로파간다적인 영화가 아닌 대신에 그 당시의 정세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요. 뭔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살짝 뒤로 물러서서 다시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 이 촛불의 열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가거나 촛불의 역사적인 가치와 의의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돌이켜보는 영화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촛불과 광장을 하나로 묶어서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잖아요? 각자의 촛불이 있고 각자가 가지는 광장에 대한 의미가 있는데, 이제는 각기 다른 모양새가 있는 촛불들이 통시적으로 묶일 수 있는 시대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조금 묵직한 질문을 하나 드리려고 합니다.(웃음) 각자 영화에서 생각하는 촛불에 대한 의의와 의미는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강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 그런 고민들을 담고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개인적인 소견도 좋고, 아니면 영화를 같이 만들면서 나눴던 의견을 종합해서 말씀해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넝쿨: 박근혜가 파면되고 나서 그런 얘기를 조금 했던 것 같아요. ‘정말 우리의 일상이 바뀌는 순간이 올까?’ 박근혜를 파면시켰지만 사실 촛불을 들면서 우리가 광장에서 외쳤던 게 그것만은 아니었잖아요? 제일 큰 목소리는 박근혜 퇴진이었지만 내 일상의 변화를 같이 요구했는데, 그런 변화는 언제 올까 생각도 많이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는데요. 앞서 잠시 미선이 효선이 사건이나 광우병 사태 촛불집회들을 말씀해주셨는데 저는 2016년 이전에는 우리가 87년 체제를 살았다고 하면, 2016년 이후에는 촛불 체제를 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분들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셨고요. 사실 무언가 하나가 딱 이루어지기 보다는 앞으로 한 30년은 이 사건의 자장 안에서 살아가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조금 더 획기적인 변화라고 하는 것, 더 많은 자유와 평등 같은 것들이 담기면 좋겠죠?
고승환: 제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을 말씀드리자면, 살아온 세월이 얼마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오며 삶에 깊숙이 새겨져 버린 것들이 몇 가지 있어요.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이랑 촛불이 저에게 새겨졌다고 생각을 해요. 저희가 의식적으로 그런 것들을 몸에 지니고 있었던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방향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합니다.
진행: 실례를 무릅쓰고 거창한 질문을 드렸던 이유는, 어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무언가 상징으로 남겨진 다음에 그것만 남고 잔여물은 빠져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비단 촛불, 광장, 박근혜 퇴진 이런 것들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를 포함해서 그 이전의 모든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기념비화되고 새겨지고 난 다음, 그것만 남고 사라지게 되는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처를 해야 할까, 이런 자리에 모였을 때 의견을 나눠보고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지금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에서 만들어진 단편들이 모여서 옴니버스 형태로 나왔는데 그 작품들을 보시면 굉장히 다양한 목소리들이 들어있거든요. 각각의 목소리들이 어떤 식으로 담겨 있는 문제들을 해소할건지가 앞으로 남은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요. 정리하는 차원에서 두 분은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실 것인지, 혹은 못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하시면서 마무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승환: 사실 작품을 완성한 지는 꽤 됐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났다는 게 신기할 정도네요. 제가 살짝 무기력한 태도로 보였을 것 같은데요. 그 동안 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과연 내 안에서 혹은 세상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고민을 더 하게 되어서 그런지, 지금 하는 말들은 변명에 변명을 더 하는 것밖에 안 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는 계속 작업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넝쿨: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고 나서도 사람들이 계속 집에 안 가고 토요일마다 나와서 ‘너무 지겹다, 왜 안 가냐, 그만 좀 갔으면 좋겠다’라고 농담으로 이야기했는데, 제가 아직도 그 짓을 하고 있어요.(웃음. 저도 촛불의 처음부터 끝까지 혹은 박근혜 정권의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일종의 촛불 영상 백서라고 할까요? 그런 것을 희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내년 3월이 되면 박근혜 파면 2주년이잖아요? 그 즈음에 맞춰서 개봉을 해서 많은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진행: 박근혜 대통령이 이렇게 많은 영화를 만들어주네요.(웃음)
넝쿨: 촛불이 만든 거죠.(웃음) 제목은 광화문의 ‘광화’이고요. 언젠가 만날 수 있게 된다면 반갑게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진행: 그러면 수고해주신 두 분께 박수 드리면서 자리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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