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 아닌, 불평등 <어른이 되면>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2월 16일(일) 오후 2시 30분 상영 후
참석 장혜영 감독, 주인공 장혜정
진행 뮤지션 시와
*관객기자단 [인디즈] 권정민 님의 글입니다.
관계라는 것은 주고, 또 받는 것이다. 주기만 하는 것도, 받기만 하는 것도 관계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것은 장애인에게도 마찬가지다. 18년만에 장애인시설에서 나와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게 된 혜정 역시 주변인들과 많은 것들을 ‘주고 받으며’ 고군분투한다. 12월 13일에 개봉한 장혜영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은 혜영과 혜정이라는 두 자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자, 혜정과 사회 간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혜정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16일, 인디스페이스에서는 깜짝 게스트 혜정과 함께 뮤지션 시와가 진행하는 인디토크가 있었다.
뮤지션 시와(이하 시와): 하하. 오늘 여기 들어오기 전에 마셨던 음료를 먼저 얘기하셨죠. 그리고 관객 분들에게 인사를.
주인공 장혜정(이하 장혜정): 저는 커피를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객석으로 감)
시와: (웃음)네 알겠습니다. 장혜정님이었습니다.
장혜영 감독(이하 장혜영): 여러분들의 음료를 조심하라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웃음)
시와: 커피를 좋아하시는 건 이미 영화 보셨으니까 다들 아실 테고, 이미 한잔 마셔서 더 마시면 오늘 잠을 못 자게 되잖아요?
장혜영: 네, 그렇겠죠. 그런데 얻어내는 능력이 너무나 탁월해서. 긴장하고 있죠.
시와: 혜정님이 다시 나와서 얘기를 할 수도 있으니까, 기다려 보겠습니다. 저는 ‘생각 많은 둘째언니’의 팬이자, 또 장혜정님과 친해지고 싶은, 노래하는 시와입니다. 반갑습니다. 감독님이 자신을 소개할 수 있는 또 다른 말이 있을까요?
장혜영: ‘생각 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촬영을 하고 있는, 장혜정의 언니, 장혜영입니다.
시와: 영화 마지막 장면이 2018년 1월 1일을 맞는 것으로 마무리 되잖아요. 어느새 2018년이 끝나는 시기인데, 영화를 그렇게 완성하시고 지금까지 어떻게 지내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장혜영: 요즘은 상당히 복잡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는데, 우선은 감사하다는 마음입니다. 일단 어쨌든 영화를 많은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완성하고, 더 많은 분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정말 감사해요. 또 한편으로는 되게 슬프고 착잡한 마음도 있어요. 왜냐하면 어쨌든 올해에 장애인권을 둘러싼 많은 일들, 국회 예산이나 어떤 제도적인 틀에서 그리 성과를 얻지 못한 것. 그것을 보며 슬퍼하는 사람들을 많이 알다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의욕적으로, 의식적으로라도 기운을 내야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런 마음들이 요새 왔다갔다합니다.
시와: 그렇게 다른 분들을 격려하면서 같이 힘을 얻는 건가요?
장혜영: 그럼요. 그게 요새 저를 움직이는 중요한 마음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려면 저 스스로 일단 납득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고, 더 힘을 얻는 거죠.
시와: 그렇군요. 이 영화를 보는 분들이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분명히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힘을 얻은 에피소드를 말씀드리면,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작년에 제가 감독님을 만나기 전에 혜정님을 먼저 만난 적이 있더라구요. 작년에 탈시설 경험자들의 인터뷰집이 책으로 나왔는데, 그 책을 소개하는 자리에 제가 노래하러 갔었거든요. 근데 혜영님 없이 혜정님이 그 자리에 와있었고. 제가 노래를 하는데 혜정님이 나와서 춤을 췄어요. 되게 기쁜 순간이었어요. 왜냐하면 제 노래에 누가 춤 췄으면 좋겠다고 항상 상상만 해봤는데, 그걸 혜정님이 이뤄주셨어요. 그래서 저도 그 노래를 더 자신 있게 부르고 힘을 얻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어른이 되면>을 통해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은 것들을 영화 속에 담으셨을 텐데, 혹시 더해서 하실 말씀이 있나요?
장혜영: 어쨌든 영상의 방식으로 보여주다보니 말이 필요 없는 순간들에 대한 감정 같은 것들을 담아내기가 좋았다면, 일부러 배제했던 어떤 순간들이 있어요. 특히 시설에서의 혜정의 모습, 또 부모님의 모습도 일부러 배제했거든요. 왜냐하면 영화에서만큼은 부모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고, 그리고 시설에서의 모습과 시설 밖에서의 모습을 대비하는 순간 관객들이 느끼기에 디테일이 사라질 거예요. 시설과 비교해서 시설 밖의 삶은 웬만해선 다 좋아보이니까. 일상에서의 수많은 순간 안에서 혼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걸 담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는데요. 그래서 이후 책을 통해서 제가 감춰뒀던 부분들, 추가된 이야기들을 많이 했고요. 많이 욕심은 났지만 참았던 것들은, 그럼 지금 뭘 해야 할지에 대해 설득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생각의 여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와: 책의 마지막 챕터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걸로 마무리를 하셨잖아요. 아까 섬세하게 보여주기 위해 배제한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저는 그게 아마 ‘장혜정’이라는 사람, 어떤 개별적 존재를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뭔가 설득하려고 하기 전에 혜정이란 한 사람을 저희에게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나는 동생 혜정이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잘 모르는 혜정이 모습이 나오면 겁이 났다” 그리고 바로 이후에 “하지만 우리가 서로 잘 모르는 건 당연한 것이다”라고 수용하고 인정하면서 새롭게 다른 것을 쌓아가는 모습이 되게 인상 깊었거든요. 어떤 집단으로 묶이는 것보다 이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신 건지?
장혜영: 네, 정확하게 봐주신 것 같아요. 자꾸 착각을 하게 되는 게 있어요, 내가 사회에서 더 오래 살았으니까, 내가 한 살 더 많으니까, 내가 장애가 없으니까, 장혜정이라고 하는 사람의 삶이 더 나은 삶이 되는 것에 대해서 장혜정 보단 내가 잘 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또 지금도 쉽게 빠지는 것 같아요. 계속 조심하지 않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자체가 혜정의 목소리보다는 내 목소리가 훨씬 잘 들리는 형태로 빚어져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저에게는 아프지만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관객: 영화 너무 잘 봤구요. 가벼운 질문 하나 드립니다. 오늘이 16일이니까 8일 뒤면 혜정씨 생일인데요. 작년 생일 때는 좋은 자리를 마련했는데, 올해는 어떤 계획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시와: 마침 전하려는 소식이 있었거든요. 직접 전해주세요.
장혜영: 다행스러운 것은 혜정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바로 이 자리에서 혜정 생일 이틀 전에 또 <어른이 되면> 상영이 있어요. 싱어롱 상영으로 하기로 했어요. 춤추고 싶으면 춤추고,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는 상영회로 하고, 영화 끝나면 혜정과 인서의 작은 공연으로 혜정의 생일을 다함께 축하해주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장혜정: 저는 어우동 복장!
장혜영: 어우동 복장을 입고오고 싶나요?
장혜정: 네.
장혜영: 알겠습니다. 참작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시와: 관객의 기대감을 더 높여주시네요.
장혜영: 그러게요.
관객: 영화에 많은 노래가 나오잖아요. 그 중에 감독님이 제일 좋아하시는 노래가 어떤 건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제가 만든 노래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제일 많이 부르게 되는 노래는 역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인 것 같아요. 그 노래를 생각하고 부르면서 힘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어떤 창문 같은 느낌이라서 되게 고마운 노래라고 생각해요. 어렵네요. 이런 질문은 어떻게 대답하면 되나요, 시와님?
시와: 지금 하신대로 하면 돼요.(웃음) 저한테 묻진 않으셨지만, 저는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라는 곡을 가장 좋아합니다. 장혜영 감독님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녹아있어서 노래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제가 느끼는 바가 생겼어요. 제가 사실 노래를 만드는 길을 잃고 있었는데, 덕분에 다시 만들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장혜영: 정말 행복한 말이네요.
관객: 영화 잘 봤구요. 감명 깊게 봐서 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리고 싶어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영화에서 한 말씀 중에, ‘혜정이하고 같이 살지 않았을 때 가슴 한 켠에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최근에 들어서 장애인권 프로그램을 참여하고 있는데, 흔히 장애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잖아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도와야하고, 배려 받아야할 존재고, 비장애인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착각을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혜정님이 온전한 감정의 소통을 하고, 또 혜영 감독님한테 혜정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영화로 보여주신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가 사실상 사회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상당히 적잖아요. 저는 이 사회에서 장애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 분들이 좀 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다른 사람들과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영감과, 선한 영향을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린다는 이야기 드리고 싶었습니다.
시와: 감사합니다. 그 마음 혼자 간직하지 않고, 주변에 많이 알려주세요.(웃음) 좋은 영향력이 더 많이 퍼질 수 있도록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독님, 어떠세요?
장혜영: 새해덕담을 미리 들은 것 같은 느낌이네요. 너무 감사하죠. 사실 쑥스러워서 도망가고 싶은…(웃음) 너무 감사합니다.
장혜정: 저요!
시와: 다음엔 혜정님으로 갈게요.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구요. 촬영하는 분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제가 느꼈을 때는 굉장히 통일감 있게 느껴졌고 굉장히 일관성 있는 시선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꼭 마치 장혜영 감독님 혼자서 찍은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좀 뜬금없는 말씀일 수도 있지만, 저는 관계가 너무 어렵고 팀플 하나를 같이 할 때에도 너무 힘든데, 이렇게 일관성 있는 시선으로 혼자가 아니라 다 같이 영화를 제작했다는 것에 되게 감명을 받았어요. 그래서 장혜영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사람들 간의 관계의 의미가 뭔지, 철학적인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들어보고 싶습니다.
장혜영: 굉장히 본질적인, 제가 좋아하는 질문이네요. 관계라는 건 혜정이 탈시설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순간부터 저한테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에 하나였고, 저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느냐고 묻는다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대답하는 사람인데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혜정의 삶은 수많은 관계들로부터, 혹은 관계를 만들어갈 기회로부터 아주 일찍이 박탈당한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한번 사회에서 추방당한 사람이 다시 사회로 돌아올 때 어떤 길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미 마련된 길이 있지는 않을 테고 길을 내면서 돌아오는 걸 텐데, 그렇다면 그건 아마 ‘사람길’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의 길을 통해 다시 사회로 나와서 이 관계망 속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 영화의 연출에 있어서 제가 감독으로 팀을 짠 거라고 생각해요. 그 친구들과 어떤 기본적인 원칙을 합의했어요. ‘생활이 먼저고, 작업은 나중이다’라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어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순간 상황에 화학적인 변화가 생긴다고 느끼면 촬영을 그만두자고 약속했고 그건 잘 지켜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우리가 이 모든 작업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장혜정이라는 한 사람이 그저 집으로 돌아오는 게 아니라 시민으로서 사회로 돌아오는 일에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조력한다는 거였어요. 그랬기 때문에 저희가 먼저 좋은 관계를 갖지 않으면 좋은 작업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이 고민했어요. 사실 처음에 혜정을 만나고 가까워질 때 어떻게 혜정을 대해야될지 모르겠다는 질문을 스텝들도, 그리고 저 스스로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어떤 명확한 길이 있다기 보다는. 어쨌든 우리가 아무리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있어도 혜정이 이것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다는 제스쳐가 있다면 그러면 일단 멈추고 보자. 멈추고 다른 방법을 찾자. 이런 태도를 가진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있든,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든, 뭐가 됐든, 내가 생각하기에 나에게 남이 이것 이상으로 강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어떤 층위가 있다면 이 사람에게도 그런 부분이 있겠죠. 설령 우리 모두가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한대도 이 사람이 “No”라고 한다면 우린 그걸 존중해야 한다고 합의하는 게 건강한 관계에서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시와: 본질적인 질문이라고 하시더니 좋은 얘기를 해주셨네요. 물어보는 게 실례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넘겨짚는 배려를 하다보면 외려 배려가 아닐 때가 많잖아요. 근데 혜정님은, 해요. 저희가 말로 물어보는 방식이면 혜정님은 온몸으로 부딪힌다고 할까. 포기를 하지 않는 것 같아요.(웃음)
장혜영: 맞아요. 시와님도 예전에 특수교육에서 종사를 하셨기 때문에 더더욱 섬세하게 보시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말하기, 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말하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도 들을 수 있고 저렇게도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혜정 같은 경우는 ‘내가 말하는 건 이거야’라고 도저히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게 전달하기 때문에 저도 되게 명확하게 반응할 수 있게 돼요.
관객: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저는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첫째는 영화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는 장혜영으로서의 시간과 장혜정 언니로서의 시간, 두 개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고, 그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셨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궁금하고요. 둘째로, 저는 사회복지학과 학생인데요. 이번 여름에 중증장애생활시설에서 실습을 했습니다. 그때 지적장애가 있는 세 명의 자매와 함께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여행을 갔는데, 그때 이 자매들이 제 친구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제가 보호자 같기도 해서 계속 양가감정이 들었어요. 어떤 상황에서 주의를 줘야하는지, 웃어넘겨도 되는지 계속 갈등이 되는 거예요. 사실 웃어넘기면 그 친구들이 하는 행동들이 다 너무 재밌고 즐거운데 사회에서 요구하는 사회적 기능을 회복하고자 한다면 또 어떠한 수준의 요구를 해야 되고, 그러면 이 친구들의 면면이 개성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보호자와 친구, 그 사이의 갈등이 있었는데 감독님도 영화에서 어느 정도는 갈등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를 싫어하게 되는 걸 인정을 해야 하고, 그런 갈등을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을 하자면요. 초반에는 저는 그 두 가지가 분리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근데 일 년 반 정도 같이 살다보니 생각보다 그건 그렇게 분리되는 게 아니고, 오히려 혜정하고 같이 살기 전에 두 가지 시간이 분리되어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함께 살아가면서는 그게 합쳐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에는 ‘나에게는 발달장애 동생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려고 해요.’라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그 두 가지가 분리되어 있었어요. 내 안에서 중요한 정체성이 빠져 있었던 거예요. 근데 지금은 제 인생의 여러 가지 선택 중에 가장 나다운 선택이 혜정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선택이었고. 그걸 삶을 통해서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때보다도 장혜영다운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또 저는 혜정의 언니이기도 하니까요. 이 두 가지는 굉장히 훌륭하게, 하나의 세계로 다시 합쳐졌다고 여기고 있구요.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늘 고민스러운 부분인 것 같아요. 혜정과의 시간 속에서 누구로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비슷한 고민을 했는데, 저는 특히 초반에 ‘어디까지 통제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잠정적으로 답을 얻은 것은, 통제는 불가능하며 통제라는 개념 자체가 더 문제를 어둡게 만든다는 거예요, 통제가 아니라 협상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통제는 오히려 나가고자 하는 명확한 방향이 있고 성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젠데, 협상은 해보기 전에는 결과를 모르는 거죠. 혜정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말 집요한 사람이에요. 제가 늘 많은 것을 배우는데. 뭔가 한 가지 의지를 전달할 때 저렇게까지 집요하면 나같은 사람도 설득이 된다는 거예요. 나에게 왜 하루에 두 잔째의 커피를 주지 않는가에 대해 하루에 40번씩 들으면 41번째에는 주게 되기도 하거든요.(웃음) 그렇게 결론짓지 않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관객: 안녕하세요. 저는 감독님을 올해 알게 돼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영화는 오늘 처음 보게 되었어요. 처음에 제도적인 측면에 있어 실망스러운 부분들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2018년을 되돌아볼 때 어느 정도의 변화가 있었고 어떤 점이 실망스러웠는지,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알고 싶고요. 네덜란드를 갔다 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실지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장애인권운동의 맥락에서 올해를 정의한다면, 저는 장애인권운동의 ‘백래시’의 해였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백래시라는 단어는 페미니즘 언어잖아요. 이런 말이 있죠. “백래시는 페미니즘의 얼굴을 하고 온다.” 거기서 착안해서 저는 ‘장애운동의 백래시는 장애인권의 얼굴을 하고 온다.’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어쨌든 문재인 정부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대선 공약으로, 국민명령 1호라는 이름으로 내걸었어요. 수많은 언론을 통해서 장애계의 숙원사업이 드디어 이루어진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이름만 그렇고 사실상 원했던, ‘원하는 서비스를 원하는 만큼’이라는 슬로건에는 전혀 다가가지 못하는 내용이었죠. 예산도 자연증가분 이상의 예산이 나온 것도 아니고. 다른 서비스가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사실상 제도적으로는 셈법이 달라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채 ‘장애등급제가 폐지됐다’는 프레임만 홍보가 됐어요. 이 문제에 대해 늘상 고민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뭔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럼 이제 ‘장애등급제도 폐지됐는데 장애인들은 왜 아직도 저렇게 난리를 치는 거야.’라는 여론이 나올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기 때문에. 투자받기 좀 더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모든 이슈를 그게 아니라고 다시 한 번 설명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매스컴이 장애이슈를 다루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렇게 되고 싶지 않으면 열심히 사세요’같은 식으로, 여전히 하나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특수학교 설립에 있어서 부모들을 어떻게 조명하는지 보면 장애인들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기 보다는 ‘이렇게 비참한 사람들이 있는데 동정하지 않을 거야? 너희들은 인류의 수심이다.’라는 식으로만 그들을 비난하죠. 탈시설 문제에 있어서도 사실 하나하나 얘기하자면 끝이 없어요. 명확하게 나아간 실적은 많이 없어서… 기득권 제도 정치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부분에 있어서는 절망감을 많이 느꼈지만, 제가 희망을 보는 건 여기 앉아계신 한 분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변화하는 모습들을 느낄 때예요.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트위터를 통해, 유튜브를 통해, 사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언제 가슴아파하는지, 무엇을 보며 행동하고자 하는지를 볼 때 저는 좀 기운이 나는 것 같구요.
그래서 올해 말과 내년에는 여전히 열심히 말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일 년 반 동안 떠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지 제가 더 떠들고 싶지는 않은데, 어쨌든 이건 장애인들의 힘든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게 서로 어떤 환경에 처해있냐에 따라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결국 어떤 부분에서 막히는지 보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걸 더 열심히 얘기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어른이 되면>이 여러분 덕분에 개봉관까지 왔으니까. 한분이라도 좋은 환경에서 영화를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영화와 책을 알리고, 또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얘기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와: 장혜영 감독님 덕분에 저의 생각이 열리는 계기가 몇 번 있었거든요. 그 중 하나가 ‘불행이 아닌 불평등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거였어요. 문제를 불행으로만 바라보니까 좋은 얼굴을 하고 다가와서 당사자들이 오히려 더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들이 많죠. 아예 관점을 바꾸어야 하는 일인데요.
관객: 나오는 음악들이 너무 재밌고 특색 있어서 영화보기 전에도 들으면서 친구들이랑 같이 부르고 그랬거든요. 짤막한 노래부터 긴 노래까지,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작곡을 하시는지도 궁금하고, 혹시 음악을 따로 배우신건지 궁금합니다.
장혜영: 일단 노래를 만드는 방법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그러하듯 저도 일찌감치 많은 시간을 노래방에서 보내는 중학생이었고요.(웃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긴 했습니다. 시와님 노래도 참 많이 들었죠. 인서하고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혜정과 함께 지내는 데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소통 수단이란 걸 알게 됐어요. 인서는 하여간 노상 뭔가를 치고 있어요.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친구가 자기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까, 왠지 나도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냥 어느 순간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입히고. 좋은 노래를 만드는 건 또 다른 이야기지만 어쨌든 노래를 만들긴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하루는 되게 마음이 안 좋은 상태로 일기를 썼어요. 그런 날 일기를 많이 쓰게 되죠.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하고 싶지는 않고 어딘가 풀기는 해야겠고. 그래서 일기장에다가 막 혜정은 오늘 이런저런 사고를 쳤고, 나는 화를 냈고, 우리가 이렇게 하루하루를 쌓아서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지, 이런 내용의 일기를 썼어요. 일기를 다 쓰고 한번 쭉 읽어봤는데 그 글귀가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이, 제가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되게 공감할 것 같은 문장이었어요. 한번 음악을 만들어 볼까 싶어서 멜로디를 붙였고, 그날 저녁에 인서한테 들려줬더니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예요. 역시 옆에 어떤 사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인서가 별로라고 했다면 이 노래는 이 세상에 없었을 텐데. 옆에서 격려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다음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관객: 혜정님이 스테이크 써는 장면을 인상적으로 봤습니다. 처음에는 썰기 힘들어하는데 뒤에는 능숙하게 쓸면서 ‘생활의 달인’이라고 말하고.(웃음) 그 장면을 보면서 살아갈 힘이나 용기를 얻었어요. 사실 저는 장애인 인권문제는 많이 몰랐고, 관심을 가질 계기가 많지 않았고, 어떻게 보면 스스로 외면해 온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감독님이 ‘나와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의 인간적인 삶 없이는 우리의 인간적인 삶은 없다’고 말하신 게 많은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사소한 질문인데, 노래를 듣다보니까 외계인에 대해 많이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스스로 외계인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웃음) 외계인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 이유가 있다면 궁금합니다.
장혜영: 네. 일단 SF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느꼈던 경험들이 많기 때문에 유독 그랬던 것 같아요. 사실 다르기 때문에 배척받은 사람들이 되게 많은데, 외계인이라고 하면 귀엽잖아요. 공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혹시 나는 외계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죠. 저는 지금도 아예 의심을 거두고 있지는 않아요.(웃음) 때가 되면 갑자기 내 안에서 ‘지구의 탐험을 끝낼 때가 됐군.’ 이러면서 진정한 인격이 나올 수도 있고.(웃음)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장혜정: 저요. 암 쏘 커피 매니아. 예쓰.
시와: 혜정님이 커피매니아라고.(웃음) 저는 혜정님 생일날 파티를 했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줘서 영화 속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다는 게 느껴졌어요. 감독님이 영화 속에서도 말씀하시고 여기서도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오로지 가족의 몫으로만 남겨지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그 장면이 보여줬던 것 같아요.그럼 이제 감독님 이야기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장혜영: 파티장면의 해설을 준비하던 때의 마음이 기억나요. 딱 요맘때쯤에 했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은 받기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관계라는 것은 주고받는 것이잖아요. 혜정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것은 그 특유의 에너지, 흥, 이런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을 위한 가장 적절한 자리가 음악을 나누는 자리일 거라고 생각했고요. 관계를 언제 만지고, 느끼고, 지각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결국에는 목소리를 듣거나, 얼굴을 보거나, 같이 맛있는 걸 먹거나, 그렇게 시간을 공유할 때 우리 사이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걸 느끼게 되잖아요. 그래서 혜정에게 연결되어 있는, 우리가 시설에서 처음 나왔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이후에 우리에게 연결된 관계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보고 싶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자리였죠. 그래서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아까 관객분이 질문해주셨는데, 사람답게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런 생각을 되게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2018년의 인간은 도대체 어디쯤 있는 건지 많이 생각하는데요. 지금의 인간을 정의하는 건 아마 가장 강하고 가장 잘살고 장애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가난하고 가장 비참한 환경에 있는 사람이 2018년의 인간의 지위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이라는 말이 상대적으로 흔해졌는데, 그건 태어났으니까 당연히 주어지는 개념이 아니라, 전쟁을 겪고, 인간이 인간위에 서도 좋다는 생각이 제어되지 않았을 때 얼마나 비참하고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아픈 가슴으로 약속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권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가. 우리 안의 욕망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이 어느 정도로 이행되고 있는가 보면, 우리는 그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그건 현재의 약속이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혜정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가 서로의 삶을 규정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자신의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불편을 겪지 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올 연말도 내년과 함께 기운내면 좋겠습니다. 이 영화 다른 분들께도 많이 권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Review] <버블 패밀리>: 환상에 대한 욕망과 공간에 대한 젊은이의 의미 있는 해석 (0) | 2019.01.06 |
---|---|
[인디즈 Review] <어른이 되면>: 무사히 할머니가 되어 춤추고 노래했으면 (0) | 2019.01.03 |
[인디즈 Review] <다영씨>: 약자들의 연대와 사랑으로도 견뎌내기엔 역부족인, 씁쓸한 블랙코미디와 같은 현실 (0) | 2018.12.30 |
[인디즈] 한겨울에 건네는 귤 같은, 그런 사랑 <다영씨> 인디토크 기록 (0) | 2018.12.30 |
[인디즈] '화해'에 대한 아름다운 머리말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방문> 인디토크 기록 (0) | 2018.12.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