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끝나지 않을 그날 용산참사 10주기 도시 영화제 <공동정범>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9년 1월 13일(금)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김일란, 이혁상 감독
진행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2009년 1월 20일, 경찰이 철거민을 강제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망루가 불탔고, 철거민 5명과 경찰 특공대원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김일란 감독과 이혁상 감독의 <공동정범> (2016)이 개봉했던 작년 1월 ‘용산참사 9주기’를 맞이했고, 여전히 제대로 밝혀진 게 없이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많은 사람이 그날을, 국가폭력으로 인한 비극적인 과거를 잊어간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위한 운동과 노력은 멈추면 안 된다. 왜냐하면 과거는 깨어져 부서진 조각이 되어 도시 곳곳을 배회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생존자와 유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불타는 망루에 묶여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1월 13일에 진행된 인디토크는 ‘도시 영화제’의 참된 의미를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원호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이원호): 안녕하세요, 눈썰미가 좋으신 분들은 영화에 잠깐 나온 저를 발견하셨을 텐데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이원호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공동정범>을 연출한 연분홍치마의 김일란 감독님과 이혁상 감독님을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감독님 두 분도 인사해주시죠?
이혁상 감독(이하 이혁상): 미세먼지를 뚫고 이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저는 연분홍치마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혁상입니다.
김일란 감독(이하 김일란): 저도 연분홍치마에서 같이 활동하고 있는 김일란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원호: <공동정범>을 이전에 보신 분 계신가요? 대부분 오늘 처음 관람하셨나요? 아, 오늘 대부분 처음 보셨군요. 엄청 충격을 받으실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한데요. 지난 9주기를 앞두고 이 영화가 개봉했고, 개봉한지 벌써 1년이 되었어요. 이 영화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도 많이 했죠? 상을 몇 개 받으셨나요?
이혁상: 그건 아마 김일란 감독님이 정확히 알고 계실 거예요.
이원호: 그러면 2018년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을 했던 김일란 감독님에게 질문을 드려야겠네요.
김일란: 저희가 11개? 그 정도 받은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원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을 해서 이 영화의 이야기나 배경을 알고 계신 관객도 계실 것 같아요. 우선 두 분 감독님께 간단한 소회 정도 여쭤본 다음에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용산참사 10주기가 됐어요. <공동정범> 개봉 1주년에 대한 소감일 수도 있고, 용산참사가 벌어진 후 함께 하면서 생긴 소회일 수도 있는데, 들어볼 수 있을까요?
김일란: 이런 질문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10년의 소회를 말해달라고 하면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요. 2009년 1월 20일에 용산참사가 일어났고, 2010년 1월 9일에 장례식을 했었는데, 그날 눈이 펑펑 내렸어요. 저를 포함한 연분홍치마는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그 때 장례식을 촬영했는데, 미디어 팀 중 한 사람이 여기가 다 헐리고 새로운 건물이 지어질 때까지 누군가가 촬영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거 아니냐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미디어 팀 활동가들이 웃으면서 누가 그런 일을 하겠냐고 했는데,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요, 뻔한 레퍼토리 같은 말이지만 여전히 참사와 관련해서 밝혀진 게 없고, 그리고 유가족들이 가족을 잃은 고통을 겪어야 하는 원인을 아직도 알 수 없고, 시간만 흘러가는 상황에서 안타까움마저 무뎌져 가는 게 아쉬워요. 이제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경찰에서 지금 진행 중인 과거사진상규명이 잘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원호: 연출은 아니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두 개의 문>(2011)에 참여하시면서 지금까지의 세월을 함께 보낸 이혁상 감독님의 소회도 궁금한데요. 용산 현장에 아직 건물이 다 올라가지 않았어요. 공사 중인 현장의 이름이 ‘용산센트럴파크해링턴스퀘어’라고 하는 정말 알 수도 없는 이름의 주상복합건물인데, 지금 김일란 감독님 말씀대로 공사가 끝날 때까지 촬영을 한다면 영화 한 편을 더 찍어야할 것 같아요. 이혁상 감독의 소회는 어떠신지요?
이혁상: 10년이 지났지만 바뀌지 않은 상황을 보고, <공동정범>을 연출한 제 입장에서는 ‘과연 다큐멘터리가 정답일까?’라는 질문을 많이 던지고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이 활동이 물론 의미는 충분히 있었고, 지난 과정에 관해 후회는 없어요. 하지만, ‘이 이야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좀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길이 꼭 다큐멘터리일까?’라는 생각을 요즘 부쩍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원호: 그렇다면 극영화를 고민하고 계시는 건가요?
이혁상: 아니요.(웃음) 극영화를 하겠다는 것 보다는... 글쎄요, ‘극장이라는 공간이 이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알맞은 공간일까?’라는 생각부터 ‘창작의 방식이 아예 다른 방식이어야만 했는가?’, ‘TV에 나와 유명해져야 하나?’ 등 굉장히 여러 생각들을 하고 있어요. 그건 아무래도 이 영화에 응답하고, 함께 봐주시고 그리고 각자의 생각을 함께 공유해주시는 관객 여러분의 존재와는 별개로 참사의 진상이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고, 아직도 여러 외압에 시달리게 되니까 미약한 힘을 느끼게 돼서 약간 우울해지더라고요. 이맘때면 되면 <공동정범> 주인공들도 정신적으로 우울해 하시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원호 사무국장님의 소회를 듣고 싶네요.
이원호: 이혁상 감독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면서 작년에 <꽁동정범> 개봉 운동을 하면서 했던 얘기들이 생각나네요. 그때가 촛불로 정권이 교체된 후 첫 용산참사 추모행사를 앞두고 <공동정범>이 개봉하는 상황이어서 극장을 광장으로 만들자는 이야기를 나눴거든요.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게 아니라,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이 광장에서 냈던 목소리를 극장에서 다시 내서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힘을 모으는 일을 개봉을 통해 해보자고요.
10년의 소회를 저한테 물으셨는데, 저는 부정적 말을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10주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마음을 먹을 때부터 그렇게 다짐했어요. 9주기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특히 유가족들이 ‘하나도 달라진 게 없고 우리는 여전히 2009년에 머무르고 있다’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사실 10주기를 맞이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의 의미를 고려할 때 우리가 10주기를 패배적으로 상상하거나 만들어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0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싸워왔고, 어떻게 목소리를 내왔고,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용산을 기억하면서 손 잡아줬는지를 드러내자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미약하지만 검찰의 과거사진상조사단 결성과 같은 것이 우리가 10년 동안 목소리를 내온 결과라고 생각했어요. 밝혀진 게 여전히 많이 없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초입에 들어섰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 저희가 365일 만에 장례를 치렀잖아요. 장례를 치르면서 유가족들에게 10년 안에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했어요. 10년을 보내면서 진상규명의 마침표를 찍지 못했지만, 진상규명에 들어가는 시작점을 찍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혁상: 지금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요?
이원호: 지난 8월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용산참사 조사 결과를 발표했어요. 6개월 간 조사를 실시했고, 이 조사의 결론에 따르면 경찰의 과잉진압, 특히 경찰 수뇌부가 안전을 버리고 성급하게 진압을 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인명 피해 사건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했어요. 그리고 참사 직후 이것과 관련된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경찰이 조직적으로 이를 왜곡했다는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어요. 또한 정부 총리실에서 이번 조사와 관련한 사과의 입장을 표명했어요. 그런 면에서 큰 진전이 있었다고 봐요. 왜냐하면 그전까지 정부의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철거민은 그저 생존자와 경찰관을 죽인 사람으로 기록되었고, 판결문은 죽음의 원인이나 책임을 묻지 않았는데 어쨌든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통해서 묻혔던 진상의 일부가 밝혀졌기 때문이죠. 다만 과잉진압이나 사후 여론조작 등 관련된 모든 것들이 공소시효가 7년이에요. 그래서 당시 주요 책임자라고 언급되는 현재 자유한국당 소속 국회의원 김석기 전 경찰청장이 최근 경찰청 조사를 부인하고 있죠. 공소시효도 지났으니 지금은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고 있고, 또한 검찰 과거사진상조사단도 이 사건이 과거 검찰의 잘못된 기소나 수사가 있었다는 판단 하에 사전조사를 마치고 본조사를 시작했지만, 예정된 시간 안에 끝나지 않았어요. 들은 바로는 12월 말이 되어서야 당시 검찰 17명과 수십 명의 수사관으로 구성된 대규모 용산참사 수사본부가 꾸려졌는데, 구성원 중 아직도 현직에 있는 사람은 10년이 지났으니 고위직 검찰이 되었고, 퇴직한 검찰들은 퇴직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전관변호사가 되어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라 수사에 외압이 가해져 거듭 파행되고 있었음이 드러났어요. 그나마 다행인 건 수사기간이 3개월 정도 연장이 돼서 올해 2월까지 실질적으로 수사가 진행될 예정이고, 3월에 수사 결과가 공표될 예정이에요. 기한도 문제고, 여전히 외압 문제가 해소되지 않아서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걱정이 많은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혁상: 영화에서 목소리로 당시 용산참사 대법원 판결문을 읽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사범농단의 주범임에도 현재 용산참사 수사에 빠져 있어서 조바심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원호: 김석기도 최근 경찰의 발표에 대해 대법원에서 판결이 난 사건을 갖고 무슨 재조사를 하냐고 말하고,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법원이 사법농단 주범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임을 망각하거나 사법농단이 없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가 아니죠? 원래 <공동정범>의 기획의도가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자는 거였잖아요?(웃음) 이 영화를 오늘 처음 보신 분이라면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혀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보셨을 텐데, 생각과는 다른 영화라서 의문을 가졌을 같기도 해요.
김일란: 사실 참사가 일어난 후로 긴 시간이 흘렀고, 감옥을 갔다 오면 세상이 어느 정도 바뀌었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출소를 했는데 세상이 바뀌어 있기는커녕 용산참사는 잊히고 있고, 진상규명위원회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이분들은 자신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가까이에 있던 동지들에게 표출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공동정범>을 찍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어느 누구도 이 영화가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애초에 이 영화는 <두 개의 문> 속편으로 기획이 되었고, 가제 역시 <두 개의 문2> 정도로 생각하면서 이 영화를 기획을 했어요. 과연 그날 망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화재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적어도 밝혀야 할 진실은 무엇인지 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찍었지만, 여전히 그런 질문들은 유효함에도 그 질문에 못지않게 주인공들이 겪고 있는 갈등, 긴장, 서로 원망하는 마음 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용산참사 진상규명 관련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대한 회의감이 들 것 같았어요. 그때는 다큐멘터리에 이런 내용이 담길 거라고 생각은 못했지만, 이분들의 어그러진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진상규명과 다큐멘터리 활동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문제를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이들의 갈등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단순히 생기는 어그러짐이 아니라, 이 자체가 국가폭력의 한 형태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분들의 갈등을 다큐멘터리 안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주인공 분들에게 <공동정범>의 기획의도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면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이원호: 사실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보신 분들이 궁금하실 거 같아서 말씀드리자면 영화에 나오는 모습보다 관계가 많이 나아졌습니다. 영화 덕분이에요. 정말로. 개봉 전에 이 영화를 다 같이 보시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자기 주변 사람이 왜 힘들어 했는지 보게 되면서 서로에게 사과하고, 그때 이해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면서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분들이 나서주기도 했어요. 영화 홍보 일에 열심히 동참해주셨어요. 그런 과정에서 관계가 회복되기도 했어요. 말씀해주셨다시피 갈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국가폭력이 어떻게 내밀하게 작동하는지 섬뜩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관객분의 소감이나 질문을 받아 봤으면 좋겠어요. 묵직한 영화를 보신 다음 복잡한 생각을 하셨을 텐데, 개인적인 느낌을 말씀해주셔도 좋고, 영화나 용산참사와 관련한 궁금한 점을 물어봐주셔도 좋습니다.
관객: 이혁상 감독님께 질문이 있어요. 아까 ‘과연 다큐멘터리가 정답일까?‘라는 고민을 하고 계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고민과 관련해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이혁상: 아마도 저를 포함한 다큐멘터리 감독님들은 이 반복을 겪지 않을까 싶어요. 영상 활동가들이 어떤 작품을 만들어낸 후 변화를 모색하지 못할 때마다 하게 되는 고민인 것 같아요. 그에 더해 영화 흥행여부나 생계 고민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다큐멘터리가 과연 정답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 상황에서 소폭의 진전이 있기도 했지만, 아직 그 자리에 머물러있다는 생각도 있어서 제 다음 행보를 계속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이 고민은 오래 전부터 해왔었고, 엄연히 따지면 <두 개의 문> 때부터 했던 고민인 것 같은데요. 다큐멘터리가 아닌 극영화를 만들까 생각도 했어요. 아예 다른 길을 모색해보는 것도 생각했어요. 아니면 카메라 없이 다시 현장에 뛰어들까 생각도 했고요. 현장에서 영상 활동가의 위치와 스마트폰으로 매체를 소비하는 세상에서 누군가에게는 서서히 잊히는 극장이라는 공간을 고려하면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콘텐츠의 방향성을 고민하게 되었어요. 아직 정답이 있지는 않아서 올해는 제 활동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원호: 사실 <공동정범>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한데, 저는 두 분이 만든 용산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혹은 용산을 기억하기 위한 다큐멘터리가 유일한 정답은 아니지만 여러 정답 중 하나였던 점은 분명했던 것 같아요. 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용산참사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용산참사는 10년 전에 일어난 과거의 일 중 하나로만 기억될 수밖에 없고, 그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면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인 것 같아요. 진상규명위원회가 이런저런 활동을 한다고 해도 대중적으로 관심을 받는 활동이 아니면 무엇을 그동안 해왔는지 모르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이 누적관객수보다 더 엄청난 파급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이혁상: 감사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릴지 말지 고민을 했었는데,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대부분 영상 활동가들이 비슷한 컨디션을 가졌을 거라고 봐요.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을 고려하며 다른 전략을 짜야 하지 않겠냐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이원호: 이미 알려진 이야기도 하지만, 김일란 감독님이 영화 개봉을 앞두고 암 판정을 받았고, 지금은 수술 후 회복을 잘 해나가고 있습니다. <공동정범>을 만드는데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죠.
김일란: 뭔가 말을 해야 할 거 같은데요.(웃음) 제가 투병한 이유를 <공동정범>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혁상 감독이 다큐멘터리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할 때 그 말에 동의는 해요. 근데 저는 그 말이 진짜 다른 방법을 찾고 싶다는 마음일수도 있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문은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과연 다큐멘터리가 최선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다양한 방법이 있죠. 10주기를 앞두고 여러 매체가 용산참사를 다루고 있을뿐더러, 특히 다음 주부터는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이야기가 나올 예정인데요. 방송이 해야 할 일은 방송이 알아서, 책으로 다가가야 하는 일은 책으로 다가가야 하는데, 그렇다면 다큐멘터리로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장르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라기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어려워지니까 장르를 향한 회의감까지 생기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많은 활동가와 고민하고 있어요.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은 제 인생에서 되게 중요한 작품이고, 저에게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해요. 7만 이상의 관객들을 만났다는 개인적인 경험이 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태도에 많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관객을 만나는 경험이야 말로 감독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큰 발판인데, 그런 기회가 많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에게 주어지지 않은 현실이 굉장히 안타까워요. 관객을 만날수록 감독으로서 어떻게 이 이야기를, 이 주제를, 내가 사랑하고 있는 이들의 말을 전달할지 고민하는 방식이 각자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런 고민을 용산참사 사건과 유가족들 덕분에 하게 된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운 일이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이기도 했어요. 다큐멘터리 작업 때문에 제가 암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해요. 그냥 제 성격이 별로인 거 같아요.(웃음) 이렇게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객: 오늘 <두 개의 문>과 <공동정범>, 두 편의 다큐멘터리 잘 봤습니다. 일단 영화 만드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른 지역도 이와 같은 재개발에 대한 아픔이 많이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폭력적인 진압을 당하기도 했고, 가재울 지역에서도 사람이 죽었지만 한때 이야기 되다가 결국 묻혔잖아요. 그런데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의 경우 꾸준히 상영된다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도 이런 경험을 겪었는데, 제 가족도 용역 깡패한테 맞기도 했어요. 요즘 다들 먹고 사는 게 힘들다 보니 이런 문제에 대해 꾸준히 많은 관심을 두려고 했지만, 계속 희석되더라고요. 제도나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서민에 대한 삶을 이해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기식 정책 혹은 성과주의식 정책을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 같아요. 제가 있던 뉴타운 지역의 경우 외관상으로는 잘 되어 있지만, 원주민의 정착률이 10%가 안 되는 곳이 많고, 생계의 터전을 잃고 외곽으로 쫓겨난 경우가 많아요. 이런 상황에서 <두 개의 문>이나 <공동정범>이 흥행 여부를 떠나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는 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한 여러 형태로 문제제기를 하는 태도가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다른 영상매체에 대해 고민하시고, 제도적인 부분도 같이 고민하신다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공동정범>의 주인공들처럼 상처를 받으신 분들이 많은데, 이런 문제 역시 우리가 같이 계속 고민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빨리 김일란 감독님 쾌차하셨으면 좋겠고요, 힘들겠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연대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하는 말이 두서가 없지만, 마지막으로 같이 꾸준히 연대하고 고민하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혁상, 김일란: 정말 감사합니다.
이원호: 비슷한 경험이 있으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사실 여기 들어오기 전에 제 가슴에 달려 있는 용산참사를 상징 리본을 본 김일란 감독이 왜 이렇게 낡았냐고 물어보셨어요. 보통 제가 용산참사 추모행사를 앞두고 새 리본을 다는데요.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작년 12월 초 아현동 재건축 지역에서 강제 철거를 당하고 갈 곳이 없어 길거리를 헤매던 박준경 씨가 한강에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어요. 아현2구역 철거민대책위원회가 꾸려지고 시신으로 발견된 후 40일 만에 장례식이 열렸어요. 그때 지금 달고 있는 리본을 달았었거든요. 한 달 이상 넘게 달고 있다 보니 많이 헐었죠. 제가 용산참사가 저와 아직도 크게 연관 있는 사건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리고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들도 자신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건이라고 여겨야 한다는 주장을 아까 말했죠. 방금 말씀하신 관객 분처럼 용역깡패의 폭력이나 강제 철거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용산참사와 같은 일을 이해할 수 없을 수도 있죠. ‘저렇게까지 농성을 했어야만 할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요. 근데, 용산참사 이후로 최근까지도 강제 철거를 당한 분들이 찾아오셔서 항상 고백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2009년에 일어난 용산참사와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자기도 욕했던 사람이라고, 빨갱이라고 욕했는데, 정작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 당시 뉴스에서 보던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세요. 경험하지 않으면 당연히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의 반복되어 온 개발의 역사에서 누가 도시를 향유하게 됐는지, 누가 표를 가져가는지, 누가 새롭게 지어진 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용산은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자기 집을 가졌다고 해도 대출금 때문에 다른 걱정을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잖아요. 특히 도시에 살고 있으면 집 걱정을 안 하는 사람은 없는데, 저는 우리가 집 걱정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은 도시 개발 역사에서 우리의 주거권을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보거든요. 전국에서 집을 100채 이상 소유하고 있는 가구 수가 3,000천 가구라고 해요. 지난 50년간 쌃값이 7배 오른 반면, 땅값은 3,000배나 올랐거든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기존의 집을 허물고 새롭게 짓고, 새로 지은 집들을 이미 많은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져가기 쉽게 허용하는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용산참사 문제를 개발이나 철거로 생각하여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접근하기 어렵다면, 현재 자신의 주거 문제를 고민하면서 접근해야 할지 않을까 싶어요.
관객: 일단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용산참사 때 새벽에 뉴스를 보고 그해 겨울 용산에서 항상 촛불을 들고 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저는 그후 외국에 살게 되었어요. 추운 1월이 돌아올 때마다 구글 지도나 다른 포털 사이트 지도를 통해 그곳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했어요. 그리고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극장이 과연 답인가에 대한 감독님의 질문에 대해, 어쨌든 개봉 당시 영화를 못 본 저한테는, 그리고 이 날을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은 사람한테는 안락하고 적당한 추모의 장소가 바로 극장인 것 같아요. 너무 회의감을 가지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또 질문은, 영화를 찍으시면서 두 감독님 모두 어려움과 보람을 동시에 느끼셨을 텐데, <공동정범> 이후 두 분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원호: 저도 궁금한데요, 혹시 용산참사와 관련한 세 번째 다큐멘터리를 찍으실 건가요?
이혁상: 저는 요즘 뭐 공부하고 있어요.(웃음)
김일란: 3편은...(웃음). 저는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만 먹고, 일단 건강을 잘 챙기는 걸 우선으로 두고 있어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연분홍치마 활동을 하거나,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친구를 만나면서 올해를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당분간은 새로운 계획은 없고 하고 싶은 다큐를 하기 위한 준비를 해볼 생각입니다.
이혁상: 네, 그래서 저랑 같이 연분홍치마 베란다 앞에 텃밭을 가꾸고 있어요(웃음). 화초도 키우고요.
이원호: 요즘 화초를 잘 안 가꾸시더라고요.
이혁상: 이런 저런 사정이 있다 보니.(웃음) 저는 연분홍치마 프로젝트로 한국에 성소수자 자녀를 둔 부모모임을 만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어요. 변규리 활동가가 연출을 하고 있고, 저는 프로듀서로 참여해서 저희가 이전에 만들었던 ‘커밍아웃 3부작(<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에 이은 그 다음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내년쯤에 관객 분들을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저는 아마 그 기간 동안 제 다음 프로젝트를 어떤 방식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아요. 사실 시나리오를 쓰고 있기도 했고, 꼭 영화가 아니어도 다른 형식의 창작물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서 미술 작업이 될 수도 있고, 글 작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일단 다양하게 펼쳐 놓고 고민 중입니다. 그런 와중 현재 김일란 감독과 텃밭을 가꾸며 재정비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이원호: 감사합니다. 딱 일주일 후가 용산참사 10주기 되는 날입니다. 다음 주부터 기자회견도 하고, 집회도 하고, 김석기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경주에 내려가 ‘김석기가 이런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알리는 시간도 갖고, 토론회를 열 예정입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모일 수 있으신 분이 계신다면 19일 저녁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저녁 7시에 추모 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참가비가 드는 행사가 아니니까 시간이 허락되신다면 와주시면 좋을 것 같고요. 혹시 21일 마석모란공원 묘역 추모제를 진행할 예정인데, 12시 대한문에서 출발합니다. 사전에 탑승 신청을 하셔야 하는데 저희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홈페이지를 검색해서 관련 정보를 얻으실 수 있고, 혹은 페이스북에서도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페이지를 검색해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용산참사가 잊히지 않게 관심 많이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모제가 끝나도 올해 역시 용산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다른 활동도 고민하고 있으니까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추모 영화제를 인디스페이스에서 같이 주최해주셔서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보니 재밌는 다큐멘터리가 여기서 상영하고 있더라고요. <버블 패밀리>라는 다큐멘터리인데, 개발과 가족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 영화라서 한 번 관람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도 용산참사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용산참사 10주기 도시 영화제’는 인디스페이스에서는 오늘로 끝나지만, 여러 현장에서 도시문제, 개발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이 계속 상영되고 있거든요. 청계천 을지로, 노량진 수산시장 등에서 도시 영화제를 계속 진행하고 있으니까 도시영화제 책자를 보시면서 관심 있는 영화를 관람하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용산참사 10주기 추모위원을 모집하고 있다는 말씀 드립니다. 혹시 이 자리를 마무리하기 전에 감독님께서 전달하고 싶은 당부의 말씀이 있나요?
김일란: 내일부터 일주일 동안 용산참사를 추모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니까 많이 참여해주시면 좋겠고, 다음 주에 여러 채널에서 용산참사와 관련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본방 사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원호: 19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를 포함해서 여러 채널에서 용산참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송될 예정이에요. 2월 초에는 PD수첩에서 이와 관련된 검찰 문제를 다룰 예정이고, 신문 매체에서도 관련 기획 기사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꼼꼼히 찾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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