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객관성이 섬세한 포착의 원동력이 되다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공사의 희로애락>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0일(토) 오후 3시 상영 후
참석 장윤미 감독
진행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승문보 님의 글입니다.
장윤미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 <공사의 희로애락>은 평생 건설 현장에서 작업만 해온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한다. 제목에 담긴 중의적인 의미처럼 이 다큐멘터리는 주인공이 한평생을 바친 현장인 ‘공사장’에 보이지 않는 노동과 주인공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다룬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나타나는 감독의 촬영방식은 주인공과 카메라 사이의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주인공은 어느 한 노동자이기 전에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카메라 뒤에서 던지는 순간, 객관성은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이 덕분에 대상을 포착하는 섬세함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감독의 세밀한 포착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삶과 성찰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그 자리에서 본인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영화적 경험이 <공사의 희로애락>의 매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모은영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모은영): 안녕하세요. <공사의 희로애락>이라는 영화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화인 것 같아요. 일단 저희가 먼저 <꽁사의 희로애락>을 만드신 장윤미 감독님의 인사를 듣고 시작하겠습니다.
장윤미 감독(이하 장윤미): 안녕하세요, <공사의 희로애락>을 만든 장윤미 감독입니다. 영화를 관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은영: 감독님과 말씀을 조금 나누고, 관객 분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감상을 말씀해주셔도 좋습니다. 우선 제가 감독님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영화를 볼 때 정보가 많이 없으면 영화 제목을 보게 되는데, 이 제목은 굉장한 궁금증과 본능적인 끌림을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보다보면 제목 자체가 중의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공사장 이야기도 있고,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다루는 이야기도 있는 것 같아요. 전작 <어머니가방에들어가신다>(2014)에서도 중의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제목을 지으셨는데, 이와 같이 제목을 중의적으로 짓는 이유가 궁금하고, 제목을 영화와 어떻게 연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말씀해 주신대로 <공사의 희로애락>의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어요. ‘공사’는 우선 건설노동자이신 아버지와 아비지의 동료분의 작업터인 공사장을 의미하고, 또 다른 의미로는 한 인물의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가리킵니다. 사실, 아버지가 가부장적이면서도 산업화를 겪은 가장으로서의 삶을 살아오신 분인데, 공과 사가 굉장히 명확한 분이세요. 물론 저는 연출자로서 이와 같은 이분법에 동의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이 인물의 입장에서는 공과 사가 철저하게 구분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존중하는 마음을 ‘공사’라는 제목에 담아내려고 했어요. 연출자로서 저는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면서도, 이 두 가지를 섞는 방식으로 계속 편집을 하고 싶었어요.
모은영: 그렇게 공과 사를 구분하다가, 구분이 흔들리기 시작하게 된 지점이 감독님이 직접 질문을 던지는 장면인 것 같아요. 일하면서 기뻤던 일, 화나셨던 일 등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하셨는데, 제목에는 ‘희로애락’이라고 되어있지만, 보다보면 ‘노’와 ‘애’만 많아 보이는 것 같아요.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 계기나 이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장윤미: 인터뷰 자체는 하루 만에 끝냈었는데, 저는 아버지가 아닌 노동자로서의 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그리고 막연하게 노동자로서의 아버지가 공사장에서의 화났던 기억과 보람찼던 기억을 갖고 계셨겠지만, 저는 아버지의 화났던 모습을 많이 봤었고, 이것이 개인과 가정에 영향을 끼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부문에 중점을 두고 싶었어요. 근데 아버지가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주실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해서 안 좋은 기억만 갖고 계신 건 아니라서 균형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고, 세세한 질문은 인터뷰 사이사이에 틈이 생길 때 던진 건데 그 질문도 최대한 살렸습니다.
모은영: 인터뷰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이 영화에서 감정의 전환이 일어나는 지점, 감독님이 아버지에게 전화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인터뷰는 형식 자체가 일종의 공적인 요소를 갖고 있지만, 전화할 때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공적인 이야기를 할 때와 다른 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 두 부분을 편집할 때 어떻게 섞으려고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말씀해주셨다시피 인터뷰는 공적인 작업인데. 사실 어느 정도는 아버지께서 어떤 대답을 하실지 제가 예상하고 있었어요. 다만 아버지가 이렇게 극적으로 대답해주실지 몰랐어요. 인터뷰를 할 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예상을 했다면, 공적인 이야기가 아닌 사적인 이야기는 전화로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는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잘 하지 않았는데, 이 다큐멘터리를 계기로 통화하기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전화 한 통이 많이 의지가 되셨나 봐요. 저도 아버지께서 솔직한 대답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고요. 저는 아버지와의 전화 내용을 좋아하는데, 전화할 때 당시의 저는 스스로 고립시키려고 하고 계속 우울감에 빠지려고 하시는 아버지를 도와드리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아버지께서 본인이 그렇게 보이냐고 물어보셨을 때가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모은영: 인터뷰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감독님께서 약간 사건을 만드시잖아요. 아버지와 함께 이전 작업 현장에 직접 찾아가는 여정과 고속버스를 타는 감독님의 여정이 있잖아요. 공사의 현장에 있다가 여정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지기 시작하는데, 이게 영화에서 다른 감정을 이끌어 냈던 것 같아요. 이런 구성을 처음부터 구상하셨던 것인지, 구성과 얽힌 제작과정이 궁금합니다.
장윤미: 아버지의 대답에 생각할 점이 많았어요. 그래서 거리를 두고 생각할 여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저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만든 건물로 가면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을 편집했어요. 애초에 기획 단계에선 건설 노동자와 건물의 기억을 결합시키려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를 찍다 보니 기획에 변화를 줄 수밖에 없었지만 건설 노동자와 건물의 기억을 연결 짓는 구상을 계속 끌고 갔어요.
모은영: 영화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마지막 장면에서 집안에서 재건축이 되고 있는 건설현장을 바라보는 모습이 어쩌면 영화의 출발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마지막 장면을 포함한 전반적인 장면 배치가 궁금합니다.
장윤미: 저는 항상 공사장을 보면 마음이 끌렸어요. 개인적으로 아버지의 노동이 저기에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아버지의 노동에 빚지고 살고 있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어요. 그래서 항상 건설노동과 산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보통 건축 다큐멘터리하면건축가가 주목을 받지만, 저는 제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건설 노동자에 초점을 두고 싶었어요. 첫 번째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자신의 확실한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다가, 그 말을 조금씩 바꾸면서 과연 본인이 이 신념대로 잘 살아왔는지 되묻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성찰의 시기를 지내고 있는 아버지의 마음 상태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카메라로 담았어요. 말씀해주신 마지막 장면 같은 경우도 지금 말씀해주신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기획과 관련된 출발점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긴 여정에서 돌아와서 이 공사현장이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하면서 찍었어요. 물론 시간이 흘렀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어요. 원래 그 자리가 공터였는데, 1년 사이 새로운 건물이 건설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모은영: 이 작품을 보면서 전작의 스타일도 그렇고, 보여지거나 말해지는 게 처음에는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다가, 다시 연결이 되는 구성이 인상 깊었어요.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 “저 사람 입에 파리가 들어갔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장면 뒤에 그 다음 장면에서 파리를 하나의 이미지로 포착을 해 보여줬을 때 앞에 지나갔던 이야기가 다시 환기되는 경험이 신선했어요. 또 다른 예시로 어린 시절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이야기할 때 보여줬던 장면은 어디서 봤을지도 모르는 아이의 모습이었잖아요.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이지만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어가는 구성 때문에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사실 그런 것들은 미리 생각한다고 해서 찍을 수 있는 게 아닌데, 베란다 밖으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장면의 경우는 아이의 시간과 노인의 시간을 생각하며 찍었어요. 고속버스 장면의 경우는 이 작업을 하면서 고속버스를 많이 탔는데, 이동하면서 아버지의 구술 인터뷰를 많이 들었어요. 들으면서 어떤 정서가 떠오르면 어떤 장면을 찍어서 편집을 했습니다. 주차장 장면 경우는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 많은 자동차가 주차되었는데, 가끔 보면 헤드라이트를 킨 채로 집에 들어가시는 운전자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게 집에서 보이는데, 그분들이 굉장히 피곤해보였어요. 그분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노동의 피로를 생각하면서 이미지를 찍고 편집했어요.
모은영: 말씀하신 것처럼 창밖으로 바라보는 건설현장의 장면을 자주 확인할 수 있는데요, 누구의 시점인지 궁금했었어요.
장윤미: 제 시점이 아니었을까요? 건물이 세워진 곳에 많은 육체노동자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노동 분야 내에서 특히 건설 노동자의 노동 강도가 여전히 높을뿐더러 노동 인권 자체가 낮은데, 그럼에도 건물을 세운 노동자를 향한 존중이 담긴 제 시점인 것 같습니다.
모은영: 이 영화를 보고나면 저희가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해 새삼 다시 느끼게 되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런 생각이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에서 극명해지는 것 같아요. 첫 장면에서 숙련된 노동자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지만, 그 이후 그분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등장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이런 존재들이 있었음을 알게 된 이후 건물을 바라보면 그 이면에는 저런 노동자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안전이 눈에 보이지 않은 노동자 덕분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빈 공간을 보여주면서 그 자리에 있었던 존재의 부재를 정서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것 역시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해요.
장윤미: 전작에서도 그랬는데, 제가 어떤 이미지를 보면서 다른 상상을 하는 걸 좋아해요. 아직 편집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어떤 이미지를 보여줄 때 관객들이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작업의 경우 부재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할머니 집일 텐데, 아버지와 제가 느끼는 부재에서 비롯된 슬픔이기도 해서 각각이 느끼는 부재를 보여주고자 하는 욕심이 있었어요. 전작에서도 그랬고, 나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제가 아버지라는 대상을 어떻게 애도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모은영: 감독님의 전작을 봤던 관객이라면 선산에 가는 장면이 특별하게 보였을 것 같아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묘가 하나에서 두 개가 되었는데, 이와 같은 사적인 이야기를 집어넣으셨어요.
장윤미: 주인공은 한 노동자이자 가장인데, 조연으로 한평생 땡볕 아래에서 노동을 해오신 할머니와 카메라로 노동하는 제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 연결성을 이야기가 산만해지더라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할머니에 대한 단편을 찍을 때 몰랐는데, 그 자리가 할머니의 묘자리가 되었을 때 놀랐어요. 어쨌든 시간이 흐르면서 작업의 연속성이 생겼어요.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고요. 감독님께서 줌을 굉장히 많이 사용하셨더라고요. 줌인으로 시작하는 장면도 있었고, 줌인을 했다가 줌아웃을 하는 장면도 많았는데, 줌을 사용하신 이유나 사용하실 때 감독님께서 세운 원칙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줌을 많이 사용하면 장면이 투박해 보이거나 거칠게 보일 수 있지만, 찍고 싶은 대로 찍다보니 그런 생각을 못하는 것 같아요. 다 찍고 보면 그 호흡을 다 살리고 싶어져요. 줌을 사용하는 장면 중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앞부분에서 아버지를 인터뷰하는 장면이에요.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본인의 인생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본인의 삶을 성찰하는 말로 전환하셨기 때문이에요.
모은영: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아버지께서 운전하실 때 감독님께서 아버지 손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장면이에요. 핸들에 묻어 있는 아버지의 손때와 기타 흔적이 시간처럼 보여서 대단히 섬세하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른 궁금한 점을 갖고 있는 관객분 계시나요?
관객: 아버지께 이 영화를 보여드렸는지 궁금하고, 아버지께서 보셨다면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장윤미: 아버지께서 이 영화를 두 번 보셨는데, 정식상영 전에 보셨을 때는 끝까지 보시고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알겠지“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셨어요. 그리고 아버지께서 대구단편영화제에서 보셨을 때는 내용에 대해 말씀하지 않고 영화에 대해 조언을 해주셨어요. 아버지께서 ”저렇게 새나 구름처럼 평소에 보는 걸 찍지 말고 새로운 이미지를 고민해 봐라“ 라고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아버지께서 원래 영화를 되게 좋아하는 사람이었더라고요. 아버지 기준에서는 이 영화가 평소에 보던 거랑 다를 게 없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저는 그래도 새로운 이미지에 관심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웃음)
모은영: 영화에 등장하는 새나 이파리 같은 이미지가 오히려 보기 힘든 이미지 아닌가요? 저는 새가 전선 위에서 뒤로 걷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장윤미: 알아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새가 뒤로 걷는 이미지가 중요했거든요(웃음). 멈춰서 쉬면서 삶을 뒤돌아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어요.
모은영: 감독님은 무언가를 포착하시는 능력이 되게 섬세하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일상의 이야기를 풍경으로 잡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감독님께서 이전에는 단편작업을 하시다가 이번에 첫 번째 장편을 찍으셨는데, 단편에서 장편으로 옮겨 갈 때 호흡을 포함한 어떤 변화를 겪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사실 첫 작업이 장편영화였어요. 병역거부자를 다룬 <군대에 가고 싶지 않은 마음>(2012)이라는 장편 다큐멘터리가 제 첫 영화였습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다큐멘터리를 찍고 싶어서 병역 거부하는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영상을 찍고, 찍은 영상들을 붙이다보니까 장편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어요. 이번 영화도 밀도 있는 호흡보다 주인공의 모습을 있는 대로 보여주면서 다른 이야기까지 연결 짓다보니까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차이는 작업시간 외에는 없었습니다.
관객: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느끼는 것은 관객의 몫이기도 하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으면 하는지 감독님의 바람이 궁금합니다.
장윤미: 사실 여러 가지가 있는데, 관객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현재의 좋은 기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또한 아버지도 그러셨으면 좋겠고, 저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크게는 한국사회가 너무 노동에 치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저희 세대도 마찬가지지만 아버지 세대는 산업화를 겪으신 세대다 보니 오로지 생계가 중요해서 일에 치여 사셨는데, 그러다보니 아버지처럼 현재가 행복하지 않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분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사회구조의 문제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마음을 영화에 담았습니다.
모은영: 제가 아까 전부터 계속 말씀드렸지만 영화를 보면서 이상하게도 공감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일이 인생의 전부였다가 없어졌을 때 몰려오는 우울 혹은 번아웃(burn out)에 공감하게 되더라고요.
장윤미: 메시지는 제 작업에서 드러나는 단점이기도 해요. 제가 항상 기획 의도나 주제를 잘 정리하질 못해요. 그래서 보시는 분들이 뭘 이야기하고 싶은 건지 질문을 던지기도 하세요. 매번 작업하면서 제 스스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하나로 정리하는 게 어려운데, 특히 이번 영화가 더 심했어요. 많은 내용을 하나에 담아내려는 욕심도 있지만, 영화를 명확하게 하나의 주제로 읽기보다는 풍부하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모은영: 풍부하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감독님의 마음이 이 영화에서 실현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아버님에게 사진을 찍어보라고 말씀드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런 부탁을 드린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께서 찍으셨던 게 딸의 모습인지, 셀카인지, 아니면 다른 대상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앞부분은 아버지께서 카메라 들고 있는 딸의 모습이 신기해서 제 모습을 본인 카메라로 찍으신 거예요. 저도 몰랐는데 제가 본인이 찍은 거랑 남이 찍은 거랑 다르니 사진을 찍어보라고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더라고요. 아버지께서 본인 셀카를 보는데 저는 전반적으로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너무 빠져있다고 생각했어요. 성찰의 지점이지만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제가 도와주고 싶었어요. 마지막 장면의 경우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싶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앞에서 인터뷰하시면서 살면서 좋았던 기억이 없다고 말씀하셨지만, 이 소소한 순간이 아버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과 말년이 좋은 기억으로만 가득 찼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어요.
모은영: 원래 세웠던 기획이 인터뷰를 하면서 바뀌었다고 아까 말씀해주셨는데, 바뀐 게 기획뿐만 아니라 감독의 태도뿐만 아니라 감독님과 아버지의 관계도 뒤로 가면서 변화가 일어난 것 같아요. 처음에는 감독님이 다큐멘터리 안에 개입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즉 공적으로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사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가는 변화를 보여주셨어요. 감독님 스스로 어떤 변화를 겪으셨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장윤미: 사실 어렸을 때 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반발하고 싶은 사람일 뿐더러 정치적인 성향도 다른 존재였어요. 이 영화를 찍기 전까지 아버지와 제 사이에 대화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이 작업을 할 때만큼은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을 있는 대로 담아내서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어떻게라도 반박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게 된 부분이 할머니의 인생이 비참했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이었어요. 힘든 날도 당연히 있었겠지만 할머니도 여러 기억을 갖고 계셨을 텐데, 말년에 안타깝게 돌아가셨을 때 남은 자들이 그 삶을 비참하다고 말씀하실 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렇게 말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고, 제 생각을 영화에 집어넣다보니 작업을 하면서 이런저런 변화를 겪었던 것 같아요.
모은영: 다큐멘터리의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감독님 같은 경우에는 흔히 우리가 말하는 사적 다큐멘터리 영역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계시잖아요.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보편적인 이야기로 나아가는 작업 방식으로 다큐멘터리를 찍고 계시는데, 이런 방식에서 어떤 매력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장윤미: 저는 딱히 사적인 이야기를 하겠다고 해서 시작한 적이 없어요. 그냥 그때그때마다 제가 풀고 싶은 고민이 떠오를 때마다 작업을 시작하는 것 같아요. 웬만한 고민은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해소할 수 있지만, 도저히 풀리지 않는 고민은 직접 작업을 해야 풀리더라고요. 저는 어머니를 시작으로 할머니와 아버지를 찍었는데, 실은 가족을 찍는 일 자체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어요. 왜냐하면 반응이 어떨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물론 스스로 윤리적인 고민을 하면서 찍었음에도 이상하게도 가족을 찍는 작업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조금 더 당당해져서 제가 풀고 싶은 고민이 있으니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이야기가 더 보편적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어요. 다음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찍을지 모르지만, 아무튼 가족을 찍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은영: 아버지께서 처음에 공적으로 인터뷰를 하실 때 본인이 삶을 헛되이 살았는지 의문을 가지다가도 나중에 본인이 만든 건물을 감독님께 보여주실 때 굉장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더라고요. 후반부에서 아버지께서 시골집에서 도리깨 치는 장면이 되게 귀여우시지 않았나요, 감독님? 그 장면은 어떻게 찍으셨는지 궁금했어요.
장윤미: 인터뷰를 한 뒤에 서로 통화를 시작하면서 관계를 형성해서 그런지 몰라도, 아버지께서 점점 편안해 하시더라고요. 저는 아버지께서 본인의 삶을 능숙하게 이야기하시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본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거리낌이 별로 없으시더라고요. 그날은 아버지께서 할머니 집에 가실 때부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으셨어요.
모은영: 편집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이셨을텐데 작업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도 궁금합니다.
장윤미: 촬영은 1년 정도 했고, 편집은 3~4개월 걸렸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니면서 작업한 거라서 작업 기간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어요. 그전에는 직장 다니면서 작업을 해서 시간이 걸렸지만, 이번 영화는 학교에서 빠르고 밀도 있게 편집했습니다. 그래서 총합 1년 조금 넘게 걸렸습니다.
모은영: 편집을 하시면서 어떻게 얼개를 만들어 가셨나요?
장윤미: 미리 구성을 짜긴 했지만, 많은 피드백을 받았어요. 우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상하고, 시퀀스는 공사장, 아버지가 만든 건물을 찾아나서는 여정, 할머니, 그리고 집에서 제 공간을 중심으로 편집을 했습니다. 그래서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은영: 이 영화는 제23회 인디포럼에 초청을 받았고,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는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을 탔고, 이번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관객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많은 호평을 받고 있고, 주목을 받고 있는데, 감독님의 다음 작품 계획이 궁금해졌습니다.
장윤미: 아버지의 일터가 구미인데, 어쩌다 구미와 인연이 돼서 지금 구미공단에 있는 노동조합을 촬영을 하고 있어요. 구미공단에 세워진 제1호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을 촬영하고 있어요. 전작을 찍었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노동의 문제를 다룰 예정이에요.
모은영: 이번 인디스페이스 기획전은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감독 특별전인데요, 특별히 독립영화여성감독전이라서 오늘 보신 영화가 상영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가장 돋보이는 감독의 작품을 모으다보니 이러한 특별전을 열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님의 마무리 인사를 들으면서 오늘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장윤미: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리고요, 더 좋은 작품으로 다음에도 뵐 수 있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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