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환하는 삶에서 발견하는 공감과 연대 I-독립영화여성감독전 <구르는 돌처럼>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7일(목)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박소현 감독
진행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정은 님의 글입니다.
EBS국제다큐영화제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거쳐 온 <구르는 돌처럼>이 인디스페이스 개관 11주년 기획전 'I-독립영화여성감독전'의 첫 번째 인디토크로 찾아왔다. 함께 어우러지는 몸짓에서 수많은 서사를 담아내고 연결시키며 순환하는 삶들을 마주하는 영화가 끝난 후에는 열정과 관심 어린 질문과 진솔한 답변이 오고 갔다.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박소현 감독이 참석하였다.
박소현 감독(이하 박소현): 안녕하세요, <구르는 돌처럼> 감독 박소현입니다.
배주연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이하 배주연):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배주연입니다. 이 영화는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의뢰를 받아서 만든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는지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소현: 서울 영등포구에 ‘하자센터’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서 작은 규모의 다양한 대안학교들이 네트워킹을 하고 있어요. 그 중에 하자작업장학교는 하자센터에서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학교인데요. 저는 그곳에서 오랫동안 영상 수업을 진행해 왔어요. 영화 초반에 나왔던 것처럼 남정호 선생님과 2012년부터 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일주일 남짓한 시간을 ‘마스터클래스’라는 프로그램으로 만나왔는데, 작년 여름이 10번째가 되는 때였어요. 학교에서는 아무래도 10번째니까 기념으로 기록을 하길 바랐고 제가 주문제작을 의뢰받게 되었는데요. 저는 그 즈음에 다른 영역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 중에서도 제가 전혀 흉내낼 수 없는, 무용을 하는 분들과 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마침 재미있을 것 같길래, 그리고 제 작업에도 도움이 될 것 같길래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주연: 영화를 보다 보니 크게 3가지의 축으로 이어지는 것 같았는데요. 먼저 주문내용에 충실한 마스터클래스 과정이 담겨있고, 남정호라는 무용수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 또다른 한 축에 있어요. 또 다른 한 축에는 하자작업장학교의 친구들이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담겨있고요. 처음 구성과 지금의 구성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달라지기 보다는 새로 발견한 것이 있어요. 처음에 저와 하자작업장학교나 둘다 당황을 좀 했던 것이, 이전 아홉 번의 마스터클래스는 이번 프로그램과는 되게 다른 프로그램이었어요. 원래는 즉흥춤 클래스였어요. 즉흥춤을 추다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수업 시간에 굉장히 많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공간을 가득 채우는 학생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아주었으면 했고 저도 그걸 상상했어요. 그런데 남정호 선생님도 무언가 기념으로 남기고 싶으셨고, 이게 마지막 마스터클래스가 될 거라는 걸 선생님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계셨어요. 원래 ‘구르는 돌처럼’이라는 작품은 한예종 무용창작과 학생들하고 3,4개월에 걸쳐서 만든 안무고 공연도 올렸는데, 그걸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는 학생들하고도 8일 만에 같이 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예상했던 즉흥춤 마스터클래스하고는 다르겠구나 싶어서 당황했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같이 촬영을 했던 홍효은 감독하고 저도 같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어요. 처음에 의뢰를 받았을 때는 충실하게 메이킹 필름을 찍었고, 내 작업으로는 어떻게 담아낼지를 고민하면서 사람들의 몸을 담아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참여자들이 무용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던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써보지 않았던 근육을 사용했을 때 달라지는 몸에 대한 감각, 이런 이야기를 잘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촬영감독이랑 어떤 장비로 어떻게 담아낼지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그런데 8일 동안 수업을 지켜보면서 저도 모르게 남정호 선생님께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어요. 이 작업을 할 즈음에 제가 너무나 불안한 상태였어요. 내가 여성작업가로서 언제까지 이런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생계에 대한 불안함이 커졌어요. 여성으로서, 작업가로서 나이가 계속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일들의 영역은 점점 너무 좁아지는 것 같고, 일을 해나가는 것에 있어 굉장히 불안한 상태고, 저의 생애주기에 있어서도 과도기였기 때문에 스스로의 몸에 막 눈을 뜨고 집중을 하기 시작한 때였거든요. 남정호 선생님께서는 10대, 20대 참여자들을 보시면서 본인의 젊은 시절을 투영하셨는데, 저는 남정호 선생님에게 감정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처음에는 ‘얼마나 불안하실까’라는 마음이다가, 나중에는 굉장한 자극이 되고 영감을 주는 감정으로 바뀌었어요. 특히나 독립 다큐멘터리 진영에서는 50대, 60대, 70대의 여성작업자, 롤모델을 찾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분들이 존재하고 계시겠지만 잘 보이지는 않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분야를 막론하고 그런 여성작업자를 발견한 것이 저에게 너무 반가운 일이었어요. 이 과정에서 제가 새로이 발견한 것을 담고 싶었어요.
배주연: 사실 저는 보면서 남정호 선생님은 춤을 추시는 분이니까 몸의 움직임을 많이 보여줄 줄 알았는데 카메라가 얼굴도 열심히 쫓아가고 있더라고요. 남정호 선생님도 ‘가장 남정호스러운 얼굴’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잖아요? 여성 예술가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삶을 살아온 사람에 대한 동경 같은 것들이 카메라의 시선에서도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에 관한 질문은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어떻게 독립영화 쪽으로 일을 시작하셨는지, 또 지금까지 작업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영화를 공부하는 학교에 가면서 발을 들이게 되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얘기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감독처럼 안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간호학과나 유아교육과, 선생님처럼 생겼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런 게 어렸을 때는 굉장히 콤플렉스였어요. 예술가 같은 아우라가 나한테는 없구나. 그래서 머리도 볶아보고 여러 가지를 해 보았는데요.(웃음) 그리고 특히 한 겨울에 밤샘 촬영할 때 체력적으로 현장일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사람들 말로는 극영화 감독을 하려면 뭔가 아우라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는데 저한테는 그런 아우라가 없었고요. 그래서 나는 연출의 그릇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편집하는 걸 되게 좋아했어요. 같이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의 편집작업을 주로 제가 했을 정도로요. 제가 학교를 다닐 때 현장 수업이 있었는데, 제가 많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여자 교수님이 계셨어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전 공동집행위원장이셨던 분이에요. 교수님께서 항상 영화 현장에 계신 여성들을 찾아가서 견학을 시켜 주셨는데 여성 작업자분들은 주로 편집실에 계시더라고요. 그걸 보고 학우들에게 ‘나도 나중에 편집실에서 일하고 싶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잘 어울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요. 졸업하고 우연히 독립영화 작업에서 편집을 할 수 있는 조감독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편 다큐멘터리 조감독을 하게 됐어요. 벌써 10여년 전 일인데요. 다큐멘터리 현장을 경험해보니 제 성향에는 훨씬 더 맞는 것 같더라고요. 극영화 연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과 다큐멘터리 연출자에게 요구하는 역량은 확실히 다른 지점이 있었는데, 다큐멘터리 작업 속 촬영 대상자와 관계 맺는 일이 제 성향에 더 맞는 것 같았어요.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요. 첫 작품이 신선한 경험을 많이 하게 해줬어요. 그 후로 장편 다큐멘터리 조감독을 세 작품이나 했어요. 이미 한 작품 조감독을 끝냈을 때 서른이 넘어 있고, 세 작품을 하니 나이만 먹었고요.(웃음) 이제 조감독 좀 그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계 때문에 취업을 했어요. 직장 생활을 2년 밖에 안 했지만 제가 살면서 가장 길게 조직 생활을 한 거였고, 그만 두고나서 그 곳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찍은 게 저의 전작 <야근 대신 뜨개질>(2015)입니다.
지금까지 계속 작업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저의 동료들인데요, 영화의 엔딩크레딧에 제 마음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더 가깝게는 저와 현재 같이 작업실을 쓰고 있는 여성 작업자 동료들, 저와 비슷한 경험을 살았던 제 또래의 여성 감독들이에요. 내일 8시에 상영할 <이태원>(2016)의 강유가람 감독, <의자가 되는 법>(2014)의 손경화 감독과 공동작업한 <자, 이제 댄스타임>(2013)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그 때부터 작업실을 같이 쓰면서 같은 팀은 아니지만 서로의 작업에 있어서 품앗이처럼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빌려주고, 같이 밥도 해 먹고, 모니터링도 해주고, 스텝도 필요할 때 가서 도와주고 있어요. 그 친구들이 저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 되고 있는데 ‘선생님도 마찬가지구나, 그런 동력을 가지고 일상을 살아갈 수 있구나’하는 마음이 이 영화의 엔딩에 담긴 것 같아요.
배주연: 그런데 팀을 만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웃음).
박소현: 일단은 강유가람 감독은 이미 ‘영희야 놀자’라는 팀이 있고, 저는 조직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네요.(웃음) 송경화 감독도 이미 이전에 ‘반이다’라는 팀을 한 번 경험해봤고요. 일단은 지금처럼 느슨한 연대 식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모두 만족을 느끼고 있고, 구체적으로 시현되고 있지는 않지만 레이블 같은 걸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항상 있어요. 서로 꿈처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관객: 몸의 움직임들을 느끼면서 영화를 즐겼는데요. 저는 영화에 나온 무용가 분에게 관심이 가요. 제가 지금 남정호 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고, 특히 페미니즘에 대해 알게 되면서 원치 않는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아요. 저 자신을 믿고 에너지를 많이 주려고 하고, 저 자신을 잃었을 때는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힘들기도 한데요. 그래서 그 이야기에 대해 더 들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옷을 하나씩 벗는 무용에서 마지막에 다시 옷을 입는 모습을 보여주던데요. 그런 연출을 한 이유나 상황을 혹시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박소현: 남정호 선생님께서 소위 말하는 ‘기 센 여자’라는 표현을 너무 많이 듣고 살아오셨어요. 인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어떤 소신에서 나온 것일 텐데요. 아무래도 살아오면서 본인보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제가 추측하는 건데, 정년퇴임을 하시고 이 정도 경력이면 퇴임 후에 어느 협회 회장 같은 직함을 가지잖아요? 선생님은 그런 게 하나도 없고 유일한 사회적인 직함이 한예종 교수 하나더라고요. 물론 명예교수로 남아계시기는 하지만 은퇴 후에는 사회적인 직함은 없어지는 거잖아요. 더 많은 직함을 가지거나 출세할 수도 있었을 것 같지만 세 보이는, 센 척하는 기질 때문에 더 힘들었던 것 같다는 말씀이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인터뷰에서 이어졌어요.
옷을 다시 입는 것의 의미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몇 년 사이의 제 상황하고도 비슷하셨을 것 같은데, 역할이 너무 많으니까 감당하기가 힘드신 거예요. 그래서 일단 벗어볼까? 하고서는 극을 통해서 벗어봤는데, 벗어보니 그래도 내가 그걸 가지고 있는 게 훨씬 더 좋겠다, 느낀 거예요. 잠깐의 이탈이었던 거죠. 역할에 대한 현실적인 통념 같은 것 있잖아요? ‘그래도 내가 결혼생활을 시작했으면 끝까지 책임져야 해.’ 이런 식의, 그 세대 분들이 가지는 책임감, 짐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으면 다시 입자’ 이런 심정으로 다시 옷을 입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가지고 있고 싶지만 벗어놔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는 고다를 통해서 옷을 주워 입지 않고 돌아서요. 남정호 선생님의 옛 작품 ‘자화상’에서처럼요. 발견하신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지만, 고다가 처음에는 옷을 다 벗었는데 사실은 모자를 다시 쓰고 나가거든요. 여전히 내려놓고 벗어놓을 수 없는 욕망 같은 것을 되게 솔직하게 표현하시는 분이셨어요.
배주연: 남정호 선생님의 무용 장면이랑 하자작업장에서의 공연 장면을 연결을 시키셨잖아요? 의도하신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처음부터 생각한 건 아니고요. 8일 동안 지켜보고 마스터클래스 공연이 완전히 끝난 후에 남정호 선생님을 계속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작업의 구성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순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10대 참여자들도 있었고, 20대 참여자들도 있었고, 60대의 남정호 선생님이 계셨고, 40대의 선생님이 계셨고, 30대의 제가 그 사이에 있었던 거거든요. 남정호 선생님이 옷을 벗었다가 다시 입은, ‘자화상’이라는 작품을 하실 때의 모습이 잠깐 나오는데 그때가 지금의 제 나이예요. 연결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물론 남성참여자들도 있었지만 여성들의 몸의 연대와 같은 느낌을 살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고다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들을 대하시는 모습도 그렇고, 참여자들이 남정호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상상하는 것도 그렇고, 제가 남정호 선생님을 보면서 그리는 몸의 역사도 그렇고요. 연결되는 것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사실 남정호 선생님께서 펜싱을 하다가 중학생이 되니까 도장에 있는 남자애들이 짓궂게 굴고, ‘여자 냄새’라는 표현을 들었다고 하시는데 고다도 ‘여자 냄새’라는 표현을 인터뷰할 때 썼었어요. 그건 고다가 스스로 말한 게 아니라 자기 몸에 남겨진 손길, 신체에 남겨진 흔적에 대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때에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들은 말이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같이 일을 했던 오빠가 ‘너도 남자를 만나보면 여자 냄새가 날 수 있을 거야.’ 이런 식의 표현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남정호 선생님이 그런 표현을 언급한 이야기는 저만 들었는데, 고다도 돌고 돌아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요. 계속 연결되는 순환도 느꼈지만, 남정호 선생님도 삶을 하나씩 하나씩 정리하는 불안 속에서 그래도 다른 누군가의 존재를 보면서 위안을 받았고, 고다를 비롯한 다른 참여자들도 앞으로가 불안한데 남정호 선생님 같은 분을 보고 영감을 받았잖아요. 작업하는 여성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는 느낌,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영감을 주면서 순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었어요. 마침 옷도 서로 비슷한 것을 입어서 연결 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관객: 중간에 남정호 선생님이랑 고다씨랑 서로 조우하고 있는 장면에서 남정호 선생님이 ‘고다한테서 나의 모습을 종종 봐요’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둘이 대면하고 있는 모습처럼 감독님이 특별히 의도하셔서 연출을 하셨던 부분, 혹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불안함이나 순환 같은 메시지를 잘 보여주기 위해 연출을 하셨던 부분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아니면 감독님 특유의 시선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말씀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박소현: 아까 말했듯 <아무도 꾸지 않는 꿈>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든 홍효은 감독이랑 8일동안 촬영을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를 같이 만들었는데, 이 작업은 홍효은 감독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어요. 제가 평생 노예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너무 고마운 친구고 힘이 되는 동료예요. 다른 사람이나 남성 촬영감독님이 촬영을 했으면 어땠을지 생각을 해보면 상상이 안 되기도 하고요. 홍효은 감독이랑 촬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긴 말이 필요 없이 살아왔던 세대 속에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여성 작업자로서 함께 맥락을 읽어내는 부분이 있었어요. 촬영을 할 때 제가 별다른 주문을 하지는 않았어요. 말씀하셨던 장면도 둘이 마주보게 찍어달라고 한 적은 없어요. 물론 큰 틀, 큰 맥락에서는 항상 둘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요. 이건 홍효은 감독의 시선이 저하고 맞았던 지점이 되게 컸던 거죠. 촬영된 소스를 가지고 구성을 짤 때 장면들을 제가 의도하는 대로 배치를 해줬고, 다시 한 번 편집을 하면서 ‘평생 노예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너무 고마웠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마치 강강수월래를 하듯이 학생들하고 손을 맞잡고 남정호 선생님이 무아지경 춤을 추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제가 발들을 메인 스틸 이미지로 쓰는데, 춤을 추는 몸, 그 중에서도 특히 춤추는 여성에게 항상 요구되는 이미지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발은 다 다르게 어떤 사람은 양말을 신고 있고, 어떤 사람은 벗고 있고, 어떤 사람은 무릎이 늘어난 츄리닝 바지를 입고 있고, 어떤 사람은 바지 한 쪽을 걷어 올렸고, 그런 다양한 다리와 발 모양이 보기 좋아서 강강수월래처럼 도는 장면이 제일 좋아요.
배주연: 그 장면에서 남정호 선생님의 몸이 너무 가볍고 자유롭게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관객: 남정호 선생님이 댁에서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끝나잖아요? 그것도 감독님께서 순환적인 구조를 생각하신 건지, 어떤 메시지가 담겼는지 궁금합니다.
박소현: 일단 거실에서 스트레칭 하는 장면을 엔딩으로 써야겠다고 찍을 때부터 생각했어요. 오프닝은 일단 한 번 붙여봤어요. 같은 장면인데 다른 카메라 렌즈로 찍었거든요. 같은 공간에서 찍은 비슷한 장면인데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첫 장면에서 선생님의 얼굴을 클로즈업했을 때 석양이 얼굴에 진 것이 왠지 쓸쓸해 보이고 많은 생각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거친 촬영본이었지만 그걸 오프닝으로 했어요. 엔딩은 그래도 희망차게 끝나는 느낌이어서요. 그런데 얼마 전에 남정호 선생님과 제주도에서 상영이 있어서 같이 가는데 그게 마음에 좀 안 든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엔딩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점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하셨어요.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끝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요. 그런데 남정호 선생님께서는 본인도 아무래도 창작자다 보니까 그것들을 가끔 이야기하시기는 하지만, 절대 강요하시거나 잘못이라고 하신 적은 없어요. 한 명의 관객으로서 다시 집으로 오면서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하신 거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공감이 되었어요. 그런데 고다가 밖에서 춤을 추잖아요? 그 장면이랑 대비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배주연: 마지막 장면이 되게 희망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고다는 영화 속에서 대부분 실내에서 찍힌 장면이잖아요? 그런데 고다가 춤추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야외에서 확 펼쳐지는 느낌이 있어서 조금 더 해방감이 느껴지기는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춤으로 다큐를 찍고 싶어서 너무 재미있게 관람했는데요. 원래대로 즉흥춤 클래스였다면 그때는 촬영을 어떻게 하려고 하셨는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제가 극작업을 할 때는 항상 먼저 기획을 해놓고 그대로 작업해나갔는데, 다큐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지 여쭤보고 싶고요. 세 번째는 촬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여쭤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박소현: 원래 ‘몸을 잘 담자’라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였고요. 몸을 예쁘게 담기보다는 쓰지 않았던 근육을 썼을 때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 발견하는 참여자들의 얼굴, 그런 것들을 담는 것이 큰 목표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만약에 즉흥춤을 했다면 참여자들의 말을 많이 담았을 것 같아요. 저는 즉흥춤 마스터클래스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상상만 할 뿐인데, 참여자들이 즉흥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거잖아요? 영화에도 잠깐 즉흥춤을 추는 장면이 나왔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거든요. 아마도 각자 지금의 고민, 마음이나 기분 같은 것을 얘기했을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을 많이 담았을 것 같아요.
배주연: 추가해서 질문 하나 더 드리면, 카메라가 춤추는 장면을 찍을 때 너무 잘 조직되어있다고 해야 하나요? 되게 유려하더라고요. 사람들의 동작을 따라서 계산된 카메라처럼 움직여요. 아마 즉흥춤이었다면 그렇게 찍을 수 없었을 것 같은데, 계획을 해서 찍으신 거죠?
박소현: 네, 계획을 했는데요. 제가 즉흥춤을 경험을 해 본적이 없어서 그런지, 즉흥춤이라 해도 이렇게 담길 거라고 예상을 해왔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홍효은 감독 덕분에요.(웃음)
배주연: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기획을 어떻게 하는지도 물어보셨어요.
박소현: 다들 그렇겠지만 일단 다큐멘터리도 기획과 방향을 가지고 시작을 하죠. 그렇지만 만들어가면서 발견하는 것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요.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식상한 답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무언가 완성된 상태에서 작업을 이어간 것이 아니라 만들면서 공부하고 발견하고, 그러면서 새롭게 정리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시작할 때는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시작해야하죠, 단지 그것이 바뀌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고요.
배주연: 마스터클래스 후에 대화를 나누면서 방향을 구체화시키셨다고 하셨는데, 그 이전에 촬영을 어떻게 진행했는지요.
박소현: 촬영을 하면서 계속 구성하고 바뀌는데요. 촬영된 소스 안에서 최대한 만들어 보려고 했고 후에 추가 촬영을 진행했죠. 사실 이런 경우가 흔치는 않아요. <구르는 돌처럼> 메인 촬영이 8일 동안 진행됐는데, 아까도 말씀 드렸듯 장편 조감독을 하나 하고 나니까 나이가 이만큼 들어 있었거든요. 보통 작업 하나가 2년은 기본이고, 그 이상도 걸리잖아요? 사실 8일 동안 촬영한 걸로 장편을 만드는 경우는 드문 것 같은데요. 우선 제가 8일간의 소스를 메인으로 찍고 그 후에도 계속 촬영을 이어갔어요. 선생님께서 정년퇴임 하실 때까지, 그리고 고다랑도 촬영을 했고요. 올 초까지도 보충 촬영을 했던 것 같아요. 필요하면 추가 촬영을 했어요.
관객: 이 작품을 의뢰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마스터클래스에 대한 관심이 생겨요. 남정호 선생님께서 마스터클래스를 더 이상 안 하시는 건지, 아니면 이후에도 클래스는 계속 진행이 되는 건지 궁금하고요. 두 번째는 이 작품을 찍으신 감독님께서도 남정호 선생님께 감정이입이 많이 되었고, 남정호 선생님도 고다라는 친구가 자기 자신을 표현해주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남정호 선생님이 고다라는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관계를 맺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영화에 많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많은 대화들이 오고 갔을 것 같아요. 관계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박소현: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드리자면, 제가 하자센터에 오랫동안 있었어요. 마스터클래스의 참여자들과 모두 긴밀한 관계를 맺었던 건 아니어도 저라는 존재가 낯이 익고 익숙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다들 마음을 잘 열어주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남정호 선생님의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수업에 굉장히 몰입을 했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촬영하는 저희의 존재감이 전혀 안 느껴졌다고 그러더라고요. 그것도 여성 촬영감독이라는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어요. 시선이라든가 그런 면에서요. 그리고 남정호 선생님의 인터뷰는 세 차례 정도 이뤄진 것을 모은 거고요. 고다의 집으로 가서 촬영을 하다 보니 고다랑도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고, 10대, 20대의 참여자들하고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런데 저는 10대, 20대 참여자들보다 남정호 선생님한테 너무 깊게 감정이입을 해서요. 미래가 너무 불안해가지고 계속 희망을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이 이런 방향을 가지게 된 첫 단추가 무엇이었나 하면, 원래 남정호 선생님이 마지막 수업을 하시겠다고 하셔서 퇴임식 같이 연출을 했는데요. 제가 영상을 하니까 PPT를 잘 만들 거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사실 저는 PPT를 잘 못 만들어요. PPT에 사진과 글씨밖에 얹을 줄 몰라요.(웃음) 그런데 PPT를 맡게 되어서 제가 선생님 학교연구실로 찾아갔고, 선생님이 사용할 사진들을 넘겨주시면서 하나하나 설명해주셨어요. 남정호 선생님께서 좋아하신다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사실 요즘 나의 얼굴이 너무 적응이 안 된다. 60대의 이 얼굴이 적응이 안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저도 지금 그렇거든요. 너무 공감이 되는 거예요. 저도 작년까지 10년 전에 찍은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었는데 애들이 이제 양심상 그만 쓰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특히나 남정호 선생님께서는 몸으로 자신을 표현하시는 분이잖아요? 무용가가 나이 들어갈 때 그 심정은 어떨 지 궁금하고 계속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남정호 선생님의 하자 마스터클래스가 있을 수 있게끔 만드신 분이 여기 와 계세요. 하자센터에 남정호 선생님을 초대해서 마스터클래스를 열어달라고 설득하신, 선생님의 동료시죠. 올해부터 은평구에 크리킨디센터라고 하자센터 2호점 같은 곳이 새로 생겼어요. 마스터클래스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하자작업장센터가 은평구에 있는 크리킨디센터로 이사를 갔거든요. 최근에 크리킨디센터에서 마스터클래스가 한 번 열렸어요. 이건 그냥 추측인데 남정호 선생님은 정년퇴임을 하셨잖아요? 지금까지는 조교 역할로 세 분의 대학원 학생들이 마스터클래스에 함께 했는데요. 이번에 새로 마스터클래스를 여셨을 때, 예전에 같이 췄던 고다랑 까르랑 푸른이 조교 역할로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쩌면 일상의 변화가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제 학교에서 학생을 만나진 않으니까요. 혼자 추측을 해봅니다.
배주연: 마지막으로 끝인사를 부탁드리려고 하는데요. 인생의 시련기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극복하신 건지, 혹은 어떤 방식으로 그것들을 극복하며 살아가시는지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마무리를 지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소현: 저의 불안함은 끝은 없을 것 같고요.(웃음) 그렇지만 얼마 전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90살의 나이로 영화를 찍기도 하셨잖아요? 그런 존재들이 계속 보여야 할 것 같아요. 저는 대학 졸업 후에 생계를 교육을 통해 해결하고 있는데, 이 일에 있어서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한계를 느끼거든요. 교육자로서도 남정호 선생님을 보면서 많이 영감을 받았어요. 롤모델이 될 수 있는 그런 작업자들이 계속 눈에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인사가 길어지면 안 될 것 같지만, 여담으로 제가 이 작품을 만들고 춤을 다루는 잡지와 인터뷰를 했어요. 제가 60대 이후에도 작업을 하고 있는 여성 작업자 롤모델 이야기를 꺼냈더니, 기자분이 ‘무용 쪽은 다 여자뿐인데요?’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는 사실 60대 이상의 여성들이 한국 무용이 아닌 현대무용을 추는 모습을 처음 봤거든요. ‘왜 주류 미디어에서 춤추는 여성의 이미지는 고정되어 있고, 나는 이런 여성들은 보지 못했을까?’라고 질문했을 때, 우리에게 고정된 시선을 만들어주는 사회적 분위기와 미디어의 영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쨌든 불안함을 떨치고 길을 이어가기 위해 계속해서 롤모델이 될 여성 작업자분들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다큐를 처음 만드시는데 어렵다고 하신 분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었는데요. 이번 여성감독전 상영작에 많은 다큐멘터리가 있거든요. 꼭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오셔서 다양한 작품들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주연: 박수와 함께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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