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어른이 되면> 장혜영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우리는 죽지 않고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감독 장혜영은 묻는다. 그는 다큐를 찍고 노래를 만들며, ‘생각많은 둘째언니라는 이름으로 사회이슈와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인권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 채널도 운영한다. 18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아온 중증발달장애인 동생 혜정을 다시 사회에 데리고 나와 함께 살아가면서, 사회에 발달장애인의 탈시설과 자립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영화는 그가 동생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일을 그만두고, 함께 보내는 일상을 유투브 영상으로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펀딩을 통해 세상에 나온 <어른이 되면>은 감독이자 언니인 장혜영과 제작팀 사람들이 시설 밖 세상에서 혜정과 만나 서로를 키워가는 이야기다. 자매는 우리가 질문하게 한다. 함께라면, 제도를 바꾼다면, 무사히 나이 들 수 있지 않을까?



 



Q. 반갑습니다. 인터뷰나 시사회 등 공식 일정이 없는 날 장혜영, 장혜정 자매의 하루일과가 궁금해요.


A. 같이 살아보니 둘 다 엄청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리듬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일정이 없으면 둘 다 새벽까지 놀아요. 같이 놀지는 않아요. 동생은 동생의 방에서, 저는 제방에서 각자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가끔 혜정이 저에게 말을 걸 때가 있죠. “언니! 유쾌 상쾌 통쾌 해줘!” 귀찮아서 나오지도 않고 방에서 소리치거든요. 저도 안 나가고 제 방에서 유쾌! 상쾌! 통쾌!” 그러면 이제 충족돼요. 제가 요즘 동생한테 나는 너의 아이폰 시리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춰라.” 그런 이야기를 해요.(웃음자고 일어나면 혜정이 커피를 찾죠. 그럼 혜정이 원두를 갈고 제가 내리고, 귀찮은 날엔 같이 나가서 커피를 사먹고, 밥 먹고, 동네 마실도 하고. 혜정은 요새 그림을 많이 그리고 있어요. 다큐멘터리 찍을 때는 음악수업을 주3회 했었는데 인서가 혜정의 활동지원사를 하면서 음악 수업은 그만하게 됐어요. 영화 끝나고 나서도 2-3개월 정도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서 고생했어요. 인서가 자기가 해보겠다고 교육을 이수하고 활동지원을 했는데, 늘 같이 있는 사람이 되다 보니까 갑자기 각 잡고 음악선생님으로서 수업하면 혜정이 싫어하는 거죠. 그렇다면 다른 것을 할 때가 됐다, 미술수업을 해보자 해서 그림을 그리게 됐죠.



Q. 지금도 인서님께서 활동지원사를 하고 있나요?


A. 그렇다면 정말 좋겠지만. 인서도 사정이 있어서 쉬게 되었고 지금은 또 보다 못한 다른 친구가 교육을 이수하기로 한 상태예요.

 


Q. 활동보조인이 구해지면 편하겠다고 두루뭉술하게 짐작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자매의 삶이 어떻게 변하게 될까요?


A. 지금은 전적으로 사적인 자원으로 혜정을 돌보고 있으니까, 제가 혜정 옆에 붙어있거나 늘 다른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야 하거든요. 말 그대로 개인적인 부탁’을 해야해요. 활동지원제도는 보조서비스를 하는 사람의 급여를 90% 정도 국가가 지원해요. 그러면 더 이상 개인적 부탁이 아닌 거죠.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적법하게 찾아서, 그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줄 수 있어요. 충분한 대가로 보기엔 아직은 너무 적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훨씬 대등한 입장에서, 감정적인 커뮤니케이션에 의존하기 보다는 원하는 서비스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훨씬 풀도 넓고 자유로워요. 고맙지만 미안하지는 않은 일이 되죠.

 

 





"제 삶으로 대입해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Q. 처음에 동생 혜정의 탈시설을 결심하고, 사회에 나오기 전 함께 거친 적응기가 1년 정도였다고요. 그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A. 시설에 들어간 걸 납득하지 못하는 시간은 길었지만 시설에서 나와서도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몇 년 안됐어요. 되게 안타까운, 화가 나는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혜정이 있던 시설에서 불거졌던 인권침해 문제요. 저는 그 문제를 앞장서서 공론화하고 싶어 했던 유일한사람이었어요. 놀랍게도. 당시 제가 가장 어리다는 이유로 학부모 회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 때 생활재활교사 분들이 내부고발을 하셨어요. 상습적이고 일상적인 인권침해가 있다고요. 강간이나 살인 같은, 영화가 그려내는 중범죄행위는 아니지만 일상생활에서 동등한 인간에게 한다고 볼 수 없는 처우들이 보호란 이름 아래 자행되고 있는 것을 더 이상은 볼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공론화를 학부모회에 요청을 하셨고, 긴급 학부모 회의를 개최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저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회의를 하러 온 게 아니라 막으러 오셨던 거더라고요. 공론화 과정에서 문제가 심각해져서 시설이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면 자녀들이 집으로 돌아오니까.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돌볼 여력이 없다는 거였어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게, 동료보호자가 저에게 그렇게 싫으면 혜정이 언니가 혜정이 데리고 나가세요. 우리는 여기 좋으니까.”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어요. , 이게 원초적인 욕망에 관계된 것이구나. 이 사람들도 살고 싶어서 이러는구나. 놀라고 슬펐지만 이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적어도 알게 된 한 가지는 제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시설의 전문적인 지원이나 보호, 이런 것들이 모두 환상이었다는 거예요.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되어서 격리되어 있던 것이고, 격리 수용된 사람들의 인권은 바닥도 없이 떨어지는구나, 싶었어요.

 

그 당시 함께 했던 단체 중에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란 단체의 활동가가 있어요. 지금은 친한 친구가 되었는데, 그 활동가가 처음으로 저에게 혜정 씨는 자립준비 안하세요?” 하고 저에게 화두를 주었어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질문이었어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저는 당연히 자립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랬더니 그 활동가가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 대신에 시설에서 생각을 시작하지 말고 혜정의 삶에서부터 생각을 시작하면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했어요. 한참을 고민해서 제가 나름대로 해석한 그 뜻은, ‘내 인생을 내가 바라보는 것처럼 동생의 삶을 바라보면 본질적으로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지 않겠냐.’예요. 혜정의 삶에서 일어난 일을 제 삶에 대입해보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오랜 시간 동생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하고 생각해왔지만, 한 번도 제 삶에 대입해보는 식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는 거잖아요, 사랑과 차별이 함께일 수 있구나. 그걸 알았어요. 그때 탈시설을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결심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같은 인간이라는 걸 내가 믿는다면, 이걸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는 거구나. 적어도 무언가 행동을 해야 하는구나. 아주 유려하게 해결할 수는 없어도, 본질적인 수준에서 문제를 제기하려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의 형태를 고민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먹은 후에 동생의 법적보호자인 아버지에게 계획을 털어놨고,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죠. 네 인생을 살아야지 왜 부모 죄를 네가 짊어지느냐, 혜정에겐 시설이 오래 살아온 집일 텐데 네가 생각을 바꿨다고 동생의 삶을 결정하는 것도 폭력이지 않느냐. 반대의 이유는 이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 이유에 답하는 건 어렵지 않았어요. 나의 행동은 부모나 동생에 대한 감정적인 차원이 아니다. 나 자신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 내가 세상을 보는 신념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그리고 두 번째로는, 그럼 내가 혜정을 직접 설득하겠다, 혜정에게 프로포즈를 해서 예스를 받아내겠다, 한 거죠. 그 프로포즈의 과정이 1년이었는데, 그건 제가 스스로 준비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함께 살아간다는 건 정말 많은 자원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에 금전적으로도 준비해야 했고 저를 둘러싼 관계를 재정비해야 했어요. 탈시설을 하겠다는 결심은,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과정이었어요. 그 전까지 저는 너무 독불장군 같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Q. 독불장군이요?


A. . 그런데 영화보고 제가 교우관계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더라고요.

 


Q. 저도 그 부분이 궁금했어요. 의지가 굳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은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김예슬 선언이 있을 때 대학을 자퇴하며 쓰신 대자보를 보고 짐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혼자 가셨을 때 친구들이 혜정과 함께 지내잖아요. 나에게 같은 상황이 닥치면 누가 나를 저렇게 도와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니 너무 부러웠거든요.


A. 환골탈태했다고 할 수 있죠. 그 계기가 혜정이에요. 그 전까지 중증발달장애인의 비장애인 형제라는 저의 아이덴티티는 사회적으로 숨겨야하는 것이었어요. 차별이 싫어서도 있지만,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 이야기를 함으로써 이 사람들이 거북해하며 어쩔 줄 몰라하는 분위기가 싫었어요. 어쨌든 우리가 대놓고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 살고 있기는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이건 사적인 문제니까 내가 잘되어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뿐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선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도움을 요청하는 건 되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동정 받는 일이고.

근데 혜정과 살아갈 생각을 하니까, 내가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닌 이상, 시간이라는 자원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존재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건 타인의 존재 자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저의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된 거죠. 내 곁에는 누가 있나? 내가 진실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누구에게 말해왔지? 살아가면서 '나는 당신이 사귈만한 사람이에요라는 신호를 보내는 일들은 계속 해왔지만, ‘나는 이런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이런 삶을 살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게 꼭 아름다운 일만은 아닐 수 있다.’ 라는 마음은 처음으로 솔직하게 드러내게 됐어요.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그나마 한줌 남아있던 친구들에게 한 거죠. 그게 작품과, 작품을 떠나서 혜정과의 생활을 지속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동력이 됐어요. 결정적이죠. 그게 없었다면 전혀 다른 양상이었을 거예요.

1년간의 적응기 동안 혜정을 틈만 나면 보러 가거나, 데리고 나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혜정이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을 해보고. 그 과정에는 혜정과 서로 좋아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자꾸자꾸 만나게 하는 것도 있었어요. 혜정의 세상이 그 야산 꼭대기에 있는 작은 건물 안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훨씬 더 넓은 세상을 느꼈으면 했어요. 분명히 호기심을 느낄 것 같으니까. 제가 아는 혜정은 호기심 많은 아이였으니까요. 결정적으로는 디즈니랜드에 다녀오면서 혜정의 혼을 쏙 빼놨죠. 매일매일이 디즈니랜드에 가는 것 같은 날들은 아니겠지만. 너 나랑 살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이런 거죠. (웃음)

 




Q. 혜정님이 그때 만난 인어공주를 아주 좋아하시죠.


A. 인어공주랑 토이스토리를 진짜 좋아했어요. 그때 찍어놓은 영상을 보면 , 이런 얼굴도 있구나. 기쁨을 주체 못하는 얼굴은 이런 거구나.’ 싶죠. 퍼레이드가 지나가면 진짜 기쁨으로 소리지르는 얼굴로 춤 추고. 일본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죠.

 


Q. 혜정님 이야기 하실 때 정말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네요.


A. 맞아요. 유투브 생방송할 때 저는 덕질을 한 적이 없다.” 하니까 사람들이 막 성토했어요. “동생 덕질을 그렇게 하고 있는데 한 적이 없다니요!”(웃음) 그래서 저는 성덕이라고 그랬어요. 덕질 대상과 함께 살고 있잖아요.

 


Q. 아까 혜정과 서로 좋아할만한 사람들을 만나게 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A. 혜정은 약간 엉뚱한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문법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들하고 약간 엇박자나는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Q. 특히 인서님을 좋아하시던데요.


A. 인서는 정말 반사회의 아이콘입니다.(웃음) 일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여름에 밖에 나갔다 들어오면 덥잖아요. 모두가 시원한 음료를 마시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자기 것만 딱 따라 마시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입이 아니냐?” 하니까, “필요하면 달라고 하실 줄 알았어요.” 하더라고요. 혜정하고 만나니까 인서의 그런 점이 특장점이에요. 무언가를 미리 가정하고 만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인서는 정말 딱 혜정이 말하고 행동하는 그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요.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고. 따로 짐작하지 않고 맨눈으로 혜정을 보는 사람이에요. 혜정은 그런 사람들하고 빨리 친해지는 것 같아요.

 


Q. 인서님이 편곡하시고 감독님이 작사, 작곡한 배경음악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연약하다는 것은 약하다는 것이 아냐' 등이 모두 좋아요. 원래 음악을 하셨는지요.


A. 아니요. 제가 이번 작업 하면서, 또 혜정과 같이 살면서 얻은 게 참 많아요. 음악을 만드는 취미도 그런 거죠. 이 영화를 음악영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던 것 같아요. 일단 혜정 자체가 음악과 춤을 항상 옆에 두는 사람이기도 하고, 인서가 본격적으로 생활에 합류를 하면서 집안에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게 됐어요. 인서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을 때에도 기타를 치거든요. 음악을 만드는 걸 곁에서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주 특별한 과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훌륭한 노래를 만드는 건 소수의 일이겠지만 노래를 만든다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일이겠다 싶었어요.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이면 되니까요. 그러다보니 나도 해볼까 싶고. 또 무의식 저편에는 영화에 음악이 들어가야 할 텐데 예산이 없네.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그렇게 만들었는데 즐겁더라고요.

 






"우리에게도 평범함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Q. 두 분이 함께 살기 시작하신 이후로 또 어떤 새로운 즐거움, 행복이 있었나요?


A. 우리에게도 평범함이라는 게 가능하구나, 그게 느껴질 때요. 저 어렸을 때는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건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요. 장애는 질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것이고,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니면 절대적 불행의 상징이었거든요.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어쨌든 우리에겐 평범한 일상이 있어요. 그런 일상의 순간이 기뻐요. 아주 평범하게 시간이 가는 걸 보고 있을 때. 밥 먹고 같이 소화시키면서 멀거니 있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Q. 안다고 생각했던 동생으로서가 아닌, 한 사람 장혜정의 몰랐던 모습도 많이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A. 인간의 영혼이 언제 생동감을 얻는가. 그런 생각을 혜정을 보면서 많이 했어요. 시설에 있었을 때의 혜정이 하는 말은 사과가 대부분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영화 초반에도 그 모습이 드러나죠. 다른 사람의 눈치를 진짜 많이 봤어요. 늘 혼날 것에 대비해서 싹싹 비는 것을 많이 봤었어요. 그게 너무 가슴 아팠고요. 이제 혜정은 라고 하는 사람의 욕망이 존중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게 되고 그런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드러나는 성향도 있어요. 트로트를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까지 좋아하는 줄은 몰랐죠. 음식에도 명확한 기호가 있고요. 디테일한 부분을 알게 될 때 그 사람을 알아간다고 느끼게 되잖아요. 혹은 감정적인 경험을 공유할 때도요. , 이 사람은 농담을 좋아하는구나. 장난꾸러기구나.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구나. 그런 것들을 알게 됐어요.

제가 잠들면 혜정이 나와서 집안을 탐험하거든요. 평소엔 저의 오더가 있잖아요. 저의 영향력을 강력하게 느끼기 때문에 제가 거실에 있으면 방에서 잘 안 나오고, 제가 방으로 들어가면 혜정이 거실의 지배자가 되죠. 요새는 술맛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술을 되게 싫어했는데, 하루는 뭐하나 싶어서 노크하고 방에 들어갔더니 혜정이 한손에는 청하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물병을 들고 번갈아 마시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혜정이 액체는 한 번에 쭉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 위험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알콜류는 자기 전에 다 제 침대 밑으로 빼놓고 자죠. 그렇게 혜정이 세상을 탐험하는 영역이 넓어지기 시작하면 제가 몰랐던 면들을 보게 돼요.

 


Q.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A. 주눅 들어 있지 않다는 것. 이제 지나칠 정도로. 나한테 너의 욕구를 맡겨놨니? 할 정도로.(웃음) “나는 너의 시리가 아니야하게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그걸 조절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겠죠.

 




 



Q. 편집을 위해 촬영본을 시간 순으로 쭉 보면서 혜정님 뿐만 아니라 감독님 자신의 변화도 많이 느끼셨을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가분수의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실행하는 건 손발이잖아요. 그런데 실행하기 전에 생각을 훨씬 많이 하는 타입이에요. 생각으로 이미 저만큼 가버리기 때문에 그냥 실행해보면 수월하게 할 수 있는 것들도 도식화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커요. 장애라고 하는 요소를 지나치게 많이 의식했던 것 같아요. 많이 벗어나려고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장혜정이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큰 특징은 장애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러다보니까 초반에 저희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장혜정이라는 인간이 아니라 장애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그걸 개선하려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제 모습이 보여요. 사실 그것 때문에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거든요. 혜정한테 더 많은 것들을 더 빨리 하게 원하게 되고, 제가 원하는 수준으로 못하면 되게 스트레스받고 그랬어요.

그 정점이 이제 노들야학이었죠. 노들은 저에게 혜정이 사회에 나온다는 상징이었어요. 노들에서도 못하면 이 사회 어디에서도 못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건 그저 저의 생각이고, 혜정의 관점에서는 드라마틱한 변화가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게 매우 힘든 일이라는 걸 알았어요. 저에게 있는 좋은 재능 중에 하나가 일단 멈추고 보자인데요. 그래서 일단 멈추고 제주도에 가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완전히 착각하고 있구나, 그게 터닝포인트였어요. 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밟아야 하는 트랙은 없구나, 그런 상징은 없구나. 사실 상징을 만드는 이유는 조바심이 나기 때문이죠. 그래서 인서가 혜정의 삶을 바라보듯이 나도 맨눈으로 혜정과 좋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면, 그걸 적응이라고, 좋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발전이 아니더라도 보면 느낄 수 있잖아요. 이 사람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긴장하지 않고 있구나. 그런 게 살고 있으면 제 자신에게는 잘 안보이는데, 촬영본을 보면서 많이 변했다는 걸 알았어요. 그래서 이전 제 모습을 검열하고 싶다는 충동을 많이 느꼈어요.(웃음)

 


Q. 하하, 검열 하나도 안하셨나요?

 

A. 검열을 하게 되면 너무 중요한 이야기가 빠지더라고요. 사람들은 이걸 장혜정의 성장스토리라고 생각하며 들어오겠지만, 사실은 제가 변하는 이야기, 혜정을 둘러싼 사람들이 훨씬 더 크게 변하는 이야기기 때문에 제가 물먹는 건 뺄 수 없는 시퀀스였습니다.(웃음)

 

 




"혜정이는 뭔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을 때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라고 내게 물었다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혜정이는 그 말을 들어왔을까나 또한 혜정이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나중에' 라고 말해왔지만 대체 그 나중이 언제쯤인지 생각해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영화 <어른이 되면> 내용 중



Q. 제목을 어른이 되면으로 붙이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어른이 되면이라는 말이 정확한 지점을 담고 있단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아날로그적인 습관이 있어서 기획서를 쓸 때 손으로 쭉 써나갔는데, ‘어른이 되면이라고 써둔 게 눈에 확 들어왔어요. 서른인 혜정이 어른이 되면 할 수 있어?” 물었을 때 제가 받았던 충격이 떠올랐고요. 이 단어야말로 영원한 미성숙함의 저주에 관한 완벽한 상징이다, 싶었죠.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렇고요. 영원한 미성숙이거나 절대적 불행이라는 것. 그 두 가지를 넘어서서 동등한 인간으로서 일상성을 회복하고 싶었어요. 자연스럽게 성장하고 소멸해가는 존재로서의 혜정을 되찾고 싶은 이야기기 때문에 어른이 되면이라는 제목이 적절했어요. 또 중의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처음에는 불행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볼 텐데, 막상 영화를 보고 나면 그런 의미의 제목이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테니까요.

 


Q. 장애인을 보는 프레임에는 완벽한 미성숙’, ‘절대적 불행그리고 극복의 대상도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는다는 식의 극복 서사가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혜정과 함께 춤 대회에 나가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이요.

 

A. 하하, 맞아요. 탈시설을 결심하면서 장밋빛 미래를 전망하는 건 너무 순진한 일이잖아요. 특히나 저는 뭔가를 하기 전에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서, 나와서 혜정의 상태가 더 심해진다 해도 탈시설을 할 것인지 가정해 볼 정도였어요.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는 데 일조했던 몇몇 사건들이 있잖아요. 부산의 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이 갓난아이를 집어던져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아이가 내 동생이었어도 나는 탈시설을 했을까, 라는 질문을 마주하고도 그 답이 그렇다였기 때문에 나왔던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대회나 상 같은 것은 제 머릿속에 있을 수 없는 것이었어요. 탈시설의 의미는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액션인 것이지, 장애의 개선을 바라는 액션은 절대 아니니까요. 여전히 경계하는 지점인데, 혜정의 변화가 나오니까 개선됐어요.’라는 식의 이야기로 읽히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어요.

 






"‘혜정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 엄청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해요."

 



Q. 동생과 함께하는 언니로서의 삶과 한 사람, 장혜영으로써 삶의 균형은 어떻게 맞춰나가고 있나요?

 

A. 제가 원래부터 밸런스 좋은 삶을 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한 가지 일에 빠지면 그것에 허우적거리다가 다음 시기로 접어들어요. 처음 혜정과 살 당시에는 장혜영이라는 개인은 집어넣고 혜정의 언니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살아보니 두 가지가 분리되지 않더라고요. 지금까지 분리되어 있었던 두 삶이 한 삶으로 변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장혜영의 언니이기도 한 장혜영은 이렇게 기꺼이 살아가는 것이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저는 성격이 나쁜 것 같아요. 그래서 저와 혜정과의 삶 중심이 혜정에 있지 않아요. 내가 원해서 이런 실천을 하는 것이죠.혜정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순간 이건 엄청난 거짓말이라는 생각을 해요. 이게 혜정에게 어떤 영향인지는 마지막에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어쨌든 삶을 대할 때 우린 동등한 인간이지, 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어요. 다행히 혜정이 그런 언니와의 삶에 함께 해주는 것이고요.

 


Q. 답변을 듣고 보니 질문을 위한 질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독님의 삶이 분리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차별적이었나 싶기도 하고요. 저에겐 비장애인 언니가 있는데 아무도 저에게 나로서의 나의 삶을 묻거나 언니의 동생으로서 나의 삶을 물어보지 않거든요. 영화를 보면서 감독님이 정말 긍정적인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생각을 많이 한다는 점이 놀라워요.

 

A. 그게 오히려 긍정적일 수 있는 든든한 토양인 것 같아요. “결국엔 죽잖아, 그럼 한번 살아볼까?” 이런 식의 생각인 거죠. 최악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런 최악이 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면서 선택이 좀 더 명확해지고, 자신감이 붙는 거죠.

 


Q. 영화 개봉을 포함해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혜영, 혜정 자매가 어느 정도 유명인이 되었는데요. 채널에 댓글들도 많이 달리고요. 부담은 없나요?

 

A. 제가 그런 쪽에 둔감한 것 같아요. 보내주시는 의견들을 보면서 실제로 힘을 많이 받는데, 그걸 통해 제가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지 반응 자체에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힘들어질 거예요.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삶은 없으니까요. 예를 들면 이렇거든요. 제 채널에서 다루는 이슈가 다양한데, ‘장애관련해서 활동한 것을 보고 정말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동성애를 옹호하다니, 구독 취소하겠다!’ 이런 반응도 있거든요. 반응에 무심해지는 건 그런 일들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따로 있는데요. 특히나 발달장애 이슈에 대해서는 제가 가장 마이크를 많이 잡은 사람들 중 하나일 거예요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서 제가 문재인 대통령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는 사실이 그걸 보여주고요. ‘그렇다면 나는 발언기회를 많이 가지게 된 사람으로서 나의 할 일을 다 하고 있나? 내가 충분히, 한 번도 마이크를 잡지 못한, 시설에서 평생을 보내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면 엄청 좌절감이 들어요. 개선되고 있지 않거든요.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있고요. 그런 걸 볼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런 뉴스를 보는 것이요. 이번에도 결국 국회에서 발달장애인 관련 예산 증액 논의가 본회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그런 걸 보면 마음이 차갑게 식어요. 기운이 빠진다는 건 아니고, 시퍼런 불꽃이 일어나는 거죠. 내가 유명해졌다거나 올라왔다는 생각보단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죠. 작품도 살려고 한 거라서, 이제 시작이죠.

 





Q. 이전에도 <당신은 아름답다> 외 두 작품을 하셨어요. 앞으로도 영상으로 뭔가를 계속 해나갈 생각이신가요?

 

A. . 영상은 저에게 자연스러운 언어 중 하나예요. 애니메이션고등학교를 나왔는데, 거기서는 친구들이 그림 그리고 만화 만들고 게임 만들고 뭐 찍고, 다 그러고 있어요.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창작을 한다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자연스럽게 유튜브로 이어지는 토양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하면서 살아갈지는 모르겠지만 창작자로 살아갈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부터 했어요. 음악을 만든 것도 그 연장선상이에요.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른 사람도 경험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 놓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Q. 그러면 저희가 중년이 된, 노인이 된 장자매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을까요?

 

A. 저희가 잘 살아남는다면요. 그때가 정말 궁금해요. 그때의 지구가 상상이 안돼요. 조카들이 태어나는 걸 봤는데요, 이제 큰조카가 2, 막내조카가 2개월 정도 됐는데 그들이 살아갈 세상이 진짜 걱정돼요. 20년 뒤면 저희는 중년이고 조카들은 20대일텐데 그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지금 뭔가를 해두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을 잘 살면 그때는 그래도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해요.

 

 




 

Posted by indiespace_한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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