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한줄 관람평
권정민 | 세상에 내던져진 영주의 성장기. 비틀비틀 걸어가다 마침내 혼자 서는 일
김정은 | 위태롭고도 애틋한 구원과 용서
승문보 | 축적된 이미지와 서사가 전하는 믿음과 소망
주창민 | 연민을 강요하는 못된 시선
도상희 | 영주야, 계속 걸어가
<영주> 리뷰 : 영주야, 계속 걸어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주인공 영주는 열넷에 타인의 음주운전으로 부모를 잃었다. 몇 년 뒤, 영주는 가해자 내외의 두부가게에서 일한다. 부모의 부재 속에 엇나간 동생의 합의금 마련 때문이기도 하고, 그 면면을 똑바로 보고 뭐라 한마디라도 쏘아붙여주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영주의 처음 목적인 ‘상처주기’는 영주의 정체를 알게 된 가해자 내외가 괴로워하며 완벽히 성공한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히 무너진다. 복수의 대상을 이미 사랑하게 되었으니까.
우리는 언제 한 존재를 사랑스럽다고 느끼는가. 그가 완전할 때? 덧없고 하찮을 때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쓰는 모습을 볼 때다. 죄를 지었으나 그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때다. 그렇게 나만큼이나 당신도 불완전함을 깨달을 때다. 결여만이 결여를 이해하기에. 그렇게 영주는 살인자와 그의 아내를 속이고서 부모인양 따르며 지내기 시작한다.
기름진 얼굴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었다면, 두발 쭉 뻗고 잘못은 다 잊은 채 사는 사람이었다면 차라리 맘 편히 복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시장 한구석에서 서럽게 하얀 두부를 만들어 파는 것을 보았을 때, 죄책감에 목이 매여 밥을 삼킬 때면 가슴을 치고 밤마다 술을 들이켜는 것을 보았을 때, 두 사람의 아픈 자식을 보았을 때 측은지심이 어린 마음에 깃들었을 것이다.
영주는 빌린 돈을 착실히 갚으며 두 사람 곁에 식구처럼 머물고자 한다. 그리고 자신이 피해자의 딸이라는 고해성사를-일종의 테스트로서-한다. 지나치게 사랑받고 싶었음으로, 자신의 모든 부분을 사랑해주길 바랐음으로.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 믿을 만큼 순진했음으로. 그리고 고백은 결국 의도치 않은 복수가 되었다.
두 사람은 자신이 죽인 사람의 자식인 영주의 얼굴을 다시 보기 힘들어한다.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갓 찐 두부처럼 연약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영주가 고민에 빠져있다 떨어트려 짓이겨졌던 두부처럼 그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진실을 말한 영주에게 죄가 있다면 사랑받고 싶었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고해성사의 밤이 지나간 새벽, 영주는 삶을 포기하려다 말고 주저앉아 실컷 울고 다시 일어선다. 그리고 그녀가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영화는 끝난다. 영주가 걸어서 계속 걸어 나가서 어떻게든 버텨나갔으면 좋겠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 그것이 부모를 죽인 살인자라 해도 사랑을 받고 싶다는 마음은 틀린 게 아니니까. 힘껏 행복했으면 좋겠다. 영주야, 계속 걸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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