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봄> 한줄 관람평
승문보 | 죽음과 거짓이 아닌 시시한 진실로 봄이 만개했다면, 울리지 않았을 그의 기타 선율
주창민 | 우리의 삶을 위한 기억과 예의
<1991, 봄> 리뷰 : 우리의 삶을 위한 기억과 예의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국가의 불의에 저항하는 영화들을 보고 글을 쓸 때면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잊고 있는 사건을 두 눈으로 보았다는, 위선적이고 다소 민족주의적인 만족감에 어느샌가 글이 감정적으로 되거나 중요한 사건들만 나열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혹은 분노의 감정과 함께 동시에 엄청난 무기력함이 밀려온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들이 그러했듯이 항상 비슷한 사건들이 반복되는 현실과 항상 강자의 위치에 있는 국가의 위압감을 마주하면서 회의적인 무기력함을 느끼게 된다. 무기력은 씁쓸함과 피로감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이때 영화와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위험이 발생한다.
사실 아직 나는 단순히 이러한 영화들을 볼 때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옳은 감상법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1991, 봄>을 보면서 일련의 영화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감상해야 할지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과거를 잊지 말아야하지’의 결의를 넘어서 현재의 삶에 미치는 방향을 고려하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 그런 면에서 <1991, 봄>은 스스로 기록물이 되기를 자처하거나 스펙터클을 불러일으키는 영화와는 조금 다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 영화도 과거의 사건을 기록하고 전시한다. 그러나 재단법인 진실의힘 송소연 팀장이 말한 것처럼 ‘잊지 않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삶과 공간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려깊은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과거의 시공간과 현재의 시공간의 봉합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다. 잊혀진 1991년의 봄, 그 공간에는 국가의 폭력에 의한 상처들이 꿈틀대고 있었다. 영화는 김기설 씨의 서강대 투신 현장과 함께 시작한다. 그날의 현장이 소환되고 싸늘한 주검과 죽음을 선택한 청춘들의 초상이 전시된다. 그들은 죽음을 통해 소통하지 않는 국가들에 대해 메시지를 던진다. 처참하고 억압적인 사회적 단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전민련(전국 민족민주운동 연합)의 과거의 활동 공간은 현재 살아 있는 전민련들의 음성에 의해 불린다. 혹은 과거의 공간이 살아있는 그들을 소환한다. 연세대, 명동성당, 대학로의 공간은 과거와 현재의 벌어진 시간 틈을 서로 투사되면서 봉합되어진다. 그날의 공간을 현재의 공간에서 어떠한지, 우리의 공간은 과거에 어떠했는지. 이러한 연결 과정에서 과거의 공간은 현재의 공간에 투영되고 기록은 현재의 기억이 된다. 이 봉합의 과정이 끝난 후 ‘챕터 6’부터는 현재의 공간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1991의 봄은 2014년 봄과 연결되고, 국가의 폭력에 대해 코멘터리를 덧붙이고, 희생자들을 반추한다. 여전히 존재하는 무리와 반복되는 문제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 되어 그다지 변하지 않은 우리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무기력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사람들의 연대와 행동의식을 통해 우리가 생각해야 할 모습, 그리고 현재의 공간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현재완료형으로, 지금을 보기 위해 계속해서 과거의 것들을 비추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강기타
기타소리와 함께 강기훈이 등장한다. 영화는 분명 5월 투쟁의 11명의 열사와 강기훈 유서 대필조작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사건보다 선행한다. 그의 삶과 태도, 그리고 음악은 앞서 언급한 과거와 현재를 직조하는 실이 되어 앞으로 끌고 가는 동력이 된다. 27살의 그는 24년이 흐르고 나야 무죄를 입증받았다. 이 야만의 시간 속에서 그의 삶은 무너져 내렸다. 세상은 정권이 바뀌어도 그의 억울한 판결을 외면하였다. 진실의 힘과 살아있는 민경련의 연대로 무죄 판결을 얻었지만, 국가의 폭력은 너무나 폭압적이고 무자비하다. 죽음을 선택한 청춘들은 죽음으로 국가에 대항하였지만, 그에게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영화는 강기훈이라는 한 사내를 대상화하여 소비하지 않도록 노력한다. 감독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려내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이다. 강기훈은 계속 카메라를 의식하고 긴장을 하며 거부하기도 한다. 굳이 이러한 장면을 넣은 의도는 그만의 세계를 인정하고 깊숙이 들어가지 않겠다고 감독이 선언한 것이다. 또한 사려 깊은 태도로 그날의 기억을 묻기보다는 주변의 인터뷰와 스스로 말하는 언어들을 통해 그와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그간 우리는 모든 대상을 소재로, 대상으로, 기록물로 소비해온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감독은 쉽게 다룰 수 없는 인물 혹은 사건을 다룰 때에 생각해야 할 예의를 표한다.
그의 음악이 내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애절한 기타 소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청춘들과 살아있는 것을 수치라고 생각하는 그들을 어루만지고 감싼다. 감정적으로 고양되거나 혹은 반대로 무기력하지 않았다. 폭력에 의해서도 끊어지지 않았던 연대와 과거를 과거에만 가두지 않고 현재를 성찰해볼 지점을 바라보며 또 다른 현재를 보게 되었다. 카바티나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살아남은 그들과 기억해야 할 그들의 이름 석 자 하나하나 간직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들과 나 자신의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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