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담 B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담 B> 윤재호 감독 인터뷰
*관객기자단 [인디즈] 도상희 님의 글입니다.
<마담 B>(2016)는 윤재호 감독의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2018) 시나리오 기획 과정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다. 주인공 ‘마담 B’는 탈북해서 중국으로 갔지만, 분단에 의해 희생된 탈북 여성의 상징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일 뿐이다. 비록 매매되었을지라도 자신의 의지로 사랑을 한다. 중국에서 새 사랑을 찾았을지라도 자신이 믿는 책임감의 방식을 따라 북한의 자식들을 부양하려 애쓴다. 프랑스의 소설가 가브리엘 마르셀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당신은 죽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목숨을 건 삶의 언덕을 넘으면서도 당당히 사랑하고 사랑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보인다. 마담 B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아내고 싶었다고 말하는 윤재호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국내 개봉을 축하드린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인 <뷰티풀 데이즈>도 21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11월 15일 인터뷰 진행) 다큐멘터리 <마담 B>는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의 각본작업 단계에서 시작된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인 탄생 과정이 궁금하다.
<뷰티불 데이즈>는 2012년에 기획을 시작했다. 기획 중에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위해 정보가 더 필요해서 중국에 갔다. 전작들을 작업하며 알게 된 브로커를 통해 인터뷰 할 탈북자를 찾았는데, 브로커마다 자기는 사정이 있다며 다른 브로커를 연결해줬다. 4번째 시도로 마침내 만나게 된 브로커가 마담 B였다. 마담 B가 연결해줘서 중국에서 인터뷰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마담 B에 대한 다큐를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분이 자기 집에 한번 가자 하셔서 중국인 남편과 함께 사는 시골집으로 갔다. 일주일 정도 같이 지내면서 이것저것 궁금한 게 생긴 정도였다. 그런데 2013년 5월 즈음이었나, 마담 B에게서 갑자기 연락이 왔다. 조만간 한국으로 갈 거라고 해서 나도 같이 가도 되냐고 묻고 함께 가게 된 것이 시작이다.
그때 카메라 하나 들고 혼자 간 건가?
맞다. 아주 작은 카메라 하나에 마이크 하나 챙겨서 갔다.
카메라를 들고 밤에 국경을 넘어가는 장면이 있다. 감독님 숨소리가 거칠게 들릴 정도로 힘든 상황인 것 같았는데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그렇게까지 산을 넘고 고생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무턱대고 따라가겠다고 했지. 제일 힘든 게 그 산을 넘는 일이었다. 저녁 7시쯤 중국 땅에서 산을 타기 시작해서 그 다음날 12시쯤에 라오스에 도착했다. 체력도 딸리고 밤에 불법으로 국경을 넘다 보니 쉽지 않았다. 이후 방콕으로 가는 버스에 함께 올라탔는데 중간에 도저히 내릴 수 없는 분위기였다. 휩쓸려가듯이 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낯선 땅에서 마담 B도 감독님을 믿었고, 감독님도 마담 B를 믿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궁금한데, 마담 B의 첫인상은 어땠나.
그냥 편한 사람이었다. 그때 마담 B를 ‘이모’라고 불렀다. 처음부터 자료조사를 하고 일부러 만난 게 아니라서 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로 전혀 모르고, 만나면서 알아갔기 때문에 그 사람 자체를 보게 되더라. 마담 B가 우연히 찾아온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출생, 바탕, 지금의 사회적 위치를 알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짐작하고 편견에 갇히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내게 편견이 있었다면 그분이 처음 집에 오라고 했을 때 의심하거나 안 갔을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그분을 그냥 사람으로 봤기 때문에 믿고 따라갈 수 있었고, 타국의 시골길에서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면서 함께 버스를 타고 네다섯 시간을 갈 수 있었다.
마담 B를 보면 인간은 다면체라는 말이 생각난다. 브로커로서 표독스러운 생활인처럼 보이다가도 강아지나 같이 산을 넘은 여성의 아이를 걱정하는 다정한 사람이기도 하다. 감독님은 그냥 ‘사람’으로 마담 B를 보셨다고 했지만, 영화적 연출을 피할 수 없었을 텐데 그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길 바랐는지 궁금하다.
그 모습이 다 마담 B다. 그분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싶었다. 마담 B라는 사람을 직접 만나게 되면, 정말 영화에 있는 그분 그대로다. 그는 ‘나는 나다’라는 식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찾으며 살아나가는 강한 사람이다. 물론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는 그분도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극복하며 자신을 찾으려는 모습들이 좋았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여성, 불리한 환경에서도 끝까지 싸워나가는 인물인데, 그 자체가 바로 마담 B다.
제목을 <마담 B>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마담(Madame)’은 프랑스에서 보통 상대방을 부르는 존칭이다. 그분의 성이 B로 시작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프로듀서와 내가 프랑스어로 ‘마담 베’라고 불렀다. 또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도 마담이라고 부르는데, 그곳의 대장 같은 뉘앙스다. 그런 이중적인 의미도 있고 그분과 잘 어울리기도 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정해졌다.
아들과의 인터뷰를 보면 속내를 이야기하긴 하면서도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네”라고 말하면서 어려워한다. 촬영부터 개봉까지 마담 B와 그녀 가족의 허락을 얻기가 어렵지는 않았나.
얼굴도 나오는데 괜찮냐고 했을 때 다들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오랜 시간 마담 B와 함께 있었기에 다 받아들여줬던 것 같다. 마담 B는 이 영화를 보셨는데, 재미있어했다. 부부싸움 장면을 볼 때는 허허 웃으면서 ‘그런 날이 있었나?’ 하기도 하고. 중국에서 태국까지 가는 여정을 보면서는 ‘아이고, 그 고생을 했는데.’ 하면서 왜 그 길었던 여정을 짧게 밖에 표현을 안 했느냐고 묻기도 했다.
마담 B와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내나 보다.
그렇다. 마담 B는 지금은 경기도에 따로 바(bar)를 차려서 독립을 했다. 어느 가족도 선택하지 않았다. 중국도, 북한 가족도. 돈을 벌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대로 살고 계신 것 같다. 자식들에게 용돈도 주고.
왜 중국의 남편에게 가지 않았을까?
복잡한 것 같다. 마담 B가 한국 여권을 받고 나서 중국에 보름 정도 갔었다고 하더라. 문제는 중국인 남편이 비자를 받을 수도 없고 현실적으로 한국에 오는 게 불가능했다. 마담 B 입장에선 그렇다고 자식을 두고 중국에 가서 살기도 그렇고. 여러 가지 벽이 많았던 거다. 그래서 결국 독립을 한 것 같다.
‘아이러니의 시대, 당신의 사랑은 온전한가?’ 라는 포스터의 문구가 흥미롭다. 정점이 ‘사랑’에 찍혔는데, 마지막 노래방 장면에서도 애틋함이라는 정조가 크게 드러난다. 왜 ‘분단’ 이나 ‘탈북’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나.
<마담 B>에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사회적 분위기는 있다. 하지만 사람의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는 마담 B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분단으로 인해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기도 하다. 그래서 꼭 분단을 내세우지 않아도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담 B의 인생을 보며 떠올리는 것들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보고 나면 굉장히 씁쓸한데, 그 씁쓸함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질문을 던져보면 답은 분단이나 남북관계 등으로 연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일 씁쓸했던 부분은 마담 B가 “누가 이해할까 우리의 운명을” 내용의 편지를 읽는 부분이었다. 마담 B가 실제로 일기를 즐겨 썼나.
그렇다. 실제로 오래 쓰셨고 탈북할 때부터 항상 일기장을 들고 다녔다. 촬영을 한참 하고 있을 때 그분이 꺼내서 읽고 싶은 이야기들을 직접 읽어주셨다. 그 때 녹취했던 걸 편집할 때 쓰게 됐다.
서울 도심이 나오면서 반공 웅변이 등장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그건 어느 시점에 어떤 촬영 및 자료조사를 통해 얻게 된 음성인지 궁금하다. 또 의도는 무엇이었나.
웅변 음성은 2015년 자료다. 특정 단체에서 ‘나라사랑하기’ 행사를 열어서 특정 방향으로 분위기를 유도하는 웅변이었다. 어쩌다 그 음성을 구했다. 처음 들었을 땐 아주 옛날 자료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충격이었다. 한국에 와서 마담 B의 서울 생활을 찍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있다. 그걸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가 웅변과 지하철 풍경을 넣었다. 마담 B가 그렇게 고생을 해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는데, 그때 사람이 너무나 허물어져있었다. 더 가난했던 중국에 있었을 때가 아이러니하게도 더 따듯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더 생명력이 있었다. 마담 B가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에서 나와서 이제는 신나게 삶을 시작하겠지 짐작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내가 느낀 충격, 감정선을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웅변 장면과 함께 지하철에서 지금도 볼 수 있는 간첩 신고와 같은 글귀를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쪽으로 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아이러니의 상황이다.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오래 살아왔기 때문인지 전작들 <약속>(2010), <히치하이커>(2016), <레터스>(2017) 등을 통해 꾸준히 디아스포라적인,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특히 탈북자의 이야기가 많아 보이는데.
내 지금 나이의 절반은 한국, 절반은 프랑스에 있었으니까 영향이 없지는 않다. 탈북을 포함해 경계에 선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파리에서 음악 하는 불법체류자, 대만의 소외계층을 다룬 작업들이 그렇다. 그리고 실제로 관심 가지는 것은 ‘경계에 서 있다’는 것 자체보다는 ‘가족’이라는 주제다.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하려다 보니 분단으로 연결이 되기도 한 것이다. 생계를 위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중에서는 여성이 더 많고, 그러다보니 여성, 또 엄마인 여성도 많이 이야기하게 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작들에서도 기둥이 되는 주제는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경계에 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할 생각인가.
그렇다. <뷰티풀 데이즈> 같은 경우엔 3부작으로 기획을 했다. 앞으로 아마 2편이 더 있을 것이다. <마담 B>는 다큐멘터리로 풀었고, 극영화로는 <뷰티풀 데이즈>를 통해 중국인의 시점으로 지금의 세대를 이야기하려 했다. 연결될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들은 다른 시점들이다. 아버지의 시점, 또 다른 젊은 여성의 시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기획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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