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무에게 SIDOF 발견과 주목 [도시 속의 나무, 나무 안의 세계]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8년 11월 13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안용운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주창민 님의 글입니다.
나무는 언제나 우리 주변에 서 있는 존재이다. 수많은 나무를 지나치면서 나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영화를 통해 나무는 대상에서 주체로, 말을 할 수 없는 청자에서 움직이는 화자로 생동한다. 더 이상 조경적인 차원의 수동적인 대상이 아닌 역사의 산증인으로 존재한다. 나무에게 부여되는 다층적이고 다각적인 의미는 이 영화의 흥미로운 지점이다. 또한, 시적인 텍스트가 인상적인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무에 대한 진중하고 사려 깊은 감독의 태도가 담겨 있는 영화를 보며 각자 나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이도훈 진행(이하 이도훈): 관객분들께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안용우 감독(이하 안용우): 영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영화감독 안용우라고 합니다.
이도훈: <나무가 나에게>는 나무가 주인공인, 굉장히 독특한 영화입니다. 올해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된 후 정식상영은 오늘이 처음이지 않나요?
안용우: 2주전에 부산에서 한 번 상영했지만 극장에서는 이번이 두 번째 상영입니다.
이도훈: 먼저 첫 번째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제작 동기와 관련된 것인데요, 관객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이 여화는 상식을 깨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나무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인데 나무가 하나의 사물로서의 나무이기도 하고, 생명체로서의 나무 혹은 신화를 담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고, 때로는 초월적인 존재로서의 나무가 되기도 하면서 뒤로 가면 시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로 어떠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옛날에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나니 거리에 나서면 나무가 눈에 띄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았잖아요. 사무실 속에서 일하면서 살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서 먹고 살기 위해 프리랜서가 되어 거리를 돌아다닐 때 사람들하고 점점 멀어지고 혼자인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 주변에 ‘발 없는 나무’만 남아 있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나무를 많이 보게 되었는데 나무는 이상하게 말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바람에 흩날리기만 하잖아요. 그게 뭔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 같다는 생각들을 오랫동안 해왔던 거 같아요. 거기서부터 시작이 된 거 같아요.
이도훈: ‘발 없는 나무’라고 표현하신 게 되게 인상적이네요. 퇴사를 하고 나서 프리랜서로 이곳저곳 오가면서 감독님 곁을 스쳐지나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곁에 머물러주는 사람이 없을 때, 다리 없는 나무가 옆에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제목 또한 인상적입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심플한데, ‘나무’에 ‘가’라는 격조사를 붙여서 나무를 하나의 인격체처럼 형상화한 다음에 나‘에게’라는 또 다른 격조사를 어떠한 대상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말하자면 나무와 나의 관계를 설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목을 짓기 위해서 생략한 것 같긴 나무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준 것인지 궁금합니다. 나무가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지, 나무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등 뒷부분에 생략된 부분엔 어떠한 함의가 있는 것인지요.
안용우: 처음 자막에 나오는 ‘어느 날 나무가 내게 말하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을 가지고 제목을 ‘나무가 나에게 말했다’라고 잡았더니 뉘앙스가 좀 좁아지는 거 같다고 느꼈어요. 나무를 계속 보고 만나면서 제가 느껴왔던 것들이 보다 폭 넓고 포괄적인 것 같아서 선명하게 규정하지 않고 이렇게 풀어서 두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도훈: 나무가 중심이 되는 이미지들이 나오고 그 뒤에 풍경들이 담기다가 영화가 20분이 지나고 나면 인터뷰도 등장하게 되거든요. 처음부터 나무와 관련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담자는 계획이 있으셨나요?
안용우: 네, 그 생각은 처음부터 했습니다. 첫 번째 인터뷰에 담긴 이야기는 제가 이전에 들었던 이야기라 그렇게 나무 이미지와 자막이 흘러가면서 인터뷰를 삽입하자는 설계가 있었어요. 이후 나무와 관련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 보자는 생각으로 첫 인터뷰를 반복하고 변주하면서 계속 나아갔죠.
이도훈: 도입부의 흐름대로 갔더라면 영화가 나무와 관련된 일종의 풍경영화나 이미지를 실험하는 구조적인 영화에 가까워 질수도 있었는데, 후반부에 나오는 인터뷰를 통해서 좀 더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아내어 관객에게도 호소하는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앞서 영화의 나무가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풀이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밝혔는데, 한 편의 작품을 만들고 나서 나무의 형상이나 이미지 혹은 심상 등을 통해 가지고 관객 분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나무란 어떠한 것이다’하는, 종합적인 상 같은 게 있으셨나요?
안용우: 그렇게 선명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나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리고 굉장히 수동적으로 느껴지잖아요. 항상 잘려나가고. 무한한 침묵과 끝없는 수동성을 가진 존재인데, 오히려 이런 정신없이 바쁘게 시끄럽고 움직이는 세상을 버티는 힘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 번 상기시키면 좋겠습니다.
이도훈: 무작위적으로 찍으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나무를 찍을 때 연출자로서 어떠한 방식으로 찍어나가야겠다는 일련의 기준과 규칙이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안용우: 일단 나무를 찍을 때는 가장 정직하고 균형 잡히게 중립적으로 찍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이미지들을 붙여나가면서 영화가 만들어지도록 시도해보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앵글이 있으면 저런 앵글도 있어서 받아주어야 하는데, 너무 그런 것을 고려하지 말고 가장 중요한 대상인 나무를 사진처럼 보기 좋게 찍으려고 했던 거 같아요. 현장에서는 물론 생각을 하면서 찍죠. 본능적으로 계산을 하긴 하지만, 가능하면 담담하고 정직하게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도훈: 다양한 모습의 나무가 나오잖아요. 여러 지역의. 여러 계절의 나무가 나오는데 기준이 있나요? 예를 들어 ‘명동의 나무를 꼭 찍어야겠어.’, ‘보문사의 나무를 꼭 찍어야겠다.’ 이러한 계획이나. 지리적인 배경과 관련된 원칙 같은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일단은 저희 집 아파트 단지 나무들이 많이 나오고요. 그리고 가장 번잡한 도시의 모습인 테헤란로의 나무, 기미독립선언에 등장하는 자두나무, 조계사의 회화나무와 백송, 성균관의 아주 오래된 나무 같은 경우는 반드시 찍어야하는 나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머지는 주변에 있는, 제 생활 속의 나무들을 찍었습니다. 특별한 나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버티며 있는 나무들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도훈: 그 지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한편으로는 진부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영화적으로 말하기를 주저하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요. 그런 일상적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나무가 가지고 있는 여러 속성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의미, 사회적인 의미, 종교적인 의미, 신화적인 의미 등을 복합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크레딧을 보면 음악에도 감독님의 이름이 들어있거든요. 선곡을 하신 거죠? 선곡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안용우: 나무에 대한 이야기니 나무로 된 악기가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무 악기 중에서도 클라리넷 같은 관악기들은 구조화되고 복잡하게 되어있어서 보다 단순하고 원초적인 악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숲에 들어가면 호흡을 신경 쓰게 되니까 리코더나 피리 같은 악기들을 골랐어요. 르네상스하고 바로크의 사이의 음악들을 골라서 썼습니다.
관객: 감독님 영화 정말 잘 봤습니다. 영화를 보면 되게 다양한 요소들이 섞여서 나오잖아요. 사람과 나무, 정치적인 음성들이 계속 번갈아가면서 나오는데 서로 다른 것들을 아울러 영화 전체를 관통하고자 한 메시지가 따로 있으셨나요?
안용우: 나무는 우리가 지나다니면서 실제로 보는 존재기도 하지만 도시에 의해 가려지고, 지워지기도 하는 존재, 그러나 생명을 대표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했고요. 세계에서 유일하고 귀중한 그런 나무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옆에 있는 나무 이야기기 때문에 도시 속에 있는 소리들, 촬영하던 시기의 사회의 이야기를 넣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에 주인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복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는 게 좋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 요소를 넣어서 반복적인 편집을 했습니다. 그게 좋은 선택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분은 현실의 소리가 빠졌으면 좋겠다고 하시고고, 어떤 분은 인터뷰가 없어도 되지 않냐고 하셨습니다. 일면 동의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이 상태의 편집을 고수하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요.
이도훈: 크레딧을 보니 영화가 거의 1인 제작 시스템이더라고요. 문자 그대로 ‘독립영화’에 준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상적이었던 게 이 영화의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배경음이거나 이미 미디어에 나왔던 소리예요. 처음에는 나무가 우리에게 뭔가 말을 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입이 없는 생명체이지만 우리에게 무언의 말을 건네고 있다는 느낌이 들다가 정국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무가 귀가 없지만 모든 것을 다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안용우: 말을 하고 듣는 것을 딱히 구분한 건 아니지만 나무가 주인공인 영화이니 현실의 소리를 굽어보거나 들으면서 좀 더 주체적으로, 촬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공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짧은 시퀀스들을 매치했던 거 같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두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영화 중간 중간에 감독님의 텍스트들이 나오잖아요. 나무가 말 하는 거 같기도 하고 감독님이 말하는 거 같기도 한데, 텍스트들이 어떻게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건지, 평소 메모인지 궁금하고요. 그리고 도시의 나무들 이미지가 되게 인상적이었는데 어떤 카메라를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먼저 간단한 것부터 답변해드리자면, 혼자 다니기 때문에 카메라는 소니 CX900, AX100 같은 줌 기능이 좋은 작은 카메라들을 썼어요. 텍스트는 제가 옛날에 읽었던 책들을 변형하기도 하고 제가 떠오른 생각들을 붙여나가기도 했는데, 고전에서 가져온 것들이 많습니다. 맨 처음에 나오는 문장인 ‘동쪽 바다에 키가 300리에 이르는 나무가 있다.’는 동아시아의 전설을 담은 ‘산해경’에 나오는 말이고요. 중국 창세설화와도 관련이 있고, 일본에도 구상 설화와도 관련 있습니다. ‘인제록’이라고 하는 중국 선불교 경전에서 해탈을 하기 위해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나함을 만나면 나함을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는 극단적인 말이 있어요. 우상을 넘어야지 해탈을 할 수 있다는 말인 거 같아요. 이런 말을 겨냥해서 쓰기도 하고, ‘매미소리는 영원으로 스며든다.’ 는 마츠오 바시오의 일본 하이쿠를 비틀어서 사용했습니다.
이도훈: 텍스트가 인용이 됐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텍스트들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색상을 가지고 있잖아요. 초록색으로 나오는 건 나무가 한 말일 것 같고, 흰색은 감독님의 사유가 담겨있는 주관적인 자아가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두 직접 쓰신 줄 알았습니다. 인용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연출 방법이었나요?
안용우: 인용 같지 않게, 나무가 던지는 말처럼 느껴지게 문장을 다듬어서 통일성을 가지고 정돈이 되도록 좀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나무에 대한 다층적인 의미들을 들어볼 수 있어서 좋았고, 인터뷰도 좋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무가 된 사람’ 이야기랑 ‘나무를 섬기는 사람’ 이야기에서 과거와 현재,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떻게 뒤바뀌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옛날에는 나무나 자연이 존중 받는 문화였는데 지금은 자연이 배경 같은. 정화의 기능을 가진 조경 차원에서 이용되는 모습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삽입된 텍스트가 세로쓰기 방식으로 나오던데요, 영상 안에서 가독성이 조금 떨어지는 방식일 수도 있는데, 세로쓰기 방식과 더불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끔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우선은 나무가 사실은 수직적으로, 세로로 서 있잖아요. 그리고 엣 경전들이 이렇게 내려오기도 하고, 위에서, 하늘에서 큰 존재가 내려다보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시각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사용했습니다.
이도훈: 저도 말씀해주신 부분에 대해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 나무는 자연적인 것 혹은 초월적인 존재로서 그려지는데 그게 인간사회 내지는 문명사회와 대비되면서 오늘날의 도시문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지점을 주었다는 해요. 사실상 이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도 조금 있었던 거 같아요.
안용우: 거창한 것은 아니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쌓였던 것이 영화가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무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못하지만, 지구는 나무가 없으면 망하잖아요.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존재가 쉴새없이 움직이는 시끄러운 세상을 겨우 겨우 지탱하고 있는 게 현실인데, 나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이러한 침묵과 부동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정도의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노자의 도덕경 47장에 옛날부터 좋아했던 말이 있어요.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알고, 창문을 열지 않고도 하늘의 이치를 안다.” 내가 너무 많이 움직이다보니 많이 쓰고 많이 욕망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해요. 지리상의 발견에는 호기심도 있고 낯선 것들에 대한 재미도 있었지만 그에 따라 탐욕도 커지고 식민지를 약탈하고 학살하고 전쟁이 일어났죠. 더 극단화되고 세분화되는 속에서 가만히 침묵과 부동한 것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거 같습니다.
관객: 좋은 인문학 책 읽는 기분으로 재밌게 봤습니다. 아까 다른 분이 말씀하셨다시피 텍스트를 수직으로 사용하셨던 기법 때문에 책을 읽는 것처럼 느꼈던 부분도 있는 거 같아요. 저는 내레이션과 같은 보다 영화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텍스트로 표현하신 이유도 궁금합니다. 또 나무가 화자로서, 청자로서 등장하는데, 나무가 인간으로 따지자면 어느 부분으로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보다 친절한 전달방식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무라는 존재는 말을 할 수가 없잖아요. 거기에 구체적인 인간의 목소리가 얹어질 때 다른 감정을 만들게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내레이션 보다는 글자 형태의 언어로 나무의 말을 듣는 게 정직하겠다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나무의 말을 누구도 들은 적은 없잖아요. 그쵸? 나무는 아마 발성기관 보다는 전체적인 움직임, 포즈, 흔들림으로 말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객: 영화 잘 봤습니다. 중간에 거리를 찍다가 일시정지 되는 쇼트들이 있잖아요. 한 세 번 정도 반복되는 거 같은데 연출이유가 궁금하고, 또 바깥풍경을 나오다가 어느 순간 집안으로 들어가서 익스트림 클로즈업에 가깝게 촬영된 쇼트들이 있어요. 아마 감독님의 집이 아닐까하는 추측이 드는데요, 쇼트들이 왜 그렇게 배치되었던 것인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안용우: 정지화면에 ’매미소리가 영원으로 스며든다.‘는 텍스트가 나올텐데, 이 표현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짧은 순간을 표현한 것 같습니다. 미분된 장면이 아주 짧은 순간이 아니라 긴 시간과 닿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아요. 실내샷 이전의 색을 많이 빼 모노톤에 가까운 시퀀스를 사실 약간은 꿈이라고 생각했어요. 꿈에서 깨어서 이제 현실의 시간으로 돌아왔다는 설정이 있었어요. 꿈에서 깨어나 주변이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지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크게 클로즈업해서 찍었던 거 같습니다.
관객: 나무라는 테마를 갖고 비슷한 되게 다양한 분들을 인터뷰 하셨잖아요. 접점이 없을 것 같은 분들을 각각 어떻게 알게 되셨고, 어떻게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처음에 등장한, 호주의 숲에서 나무를 만나 위안과 깨달음을 얻은 친구는 원래 알던 친구구요. 그 친구의 이야기는 예전부터 들었던 이야기라 나무에 관한 영화를 만들면 넣고 싶었습니다. 그 다음 분들은 제가 작업을 진행하면서 검색하여 찾아내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서로 아는 관계도 아니고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무를 좋아하고 나무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지닌, 나무만을 그리는 사람, 나무로 작업을 하고 나무를 섬기는 사람, 이런 사람을 찾아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도훈: 한 분씩 나올 때마다 소개되는 문구들이 있잖아요. 제가 적어보았어요. “나무를 만난 사람 고재필, 나무를 그린 사람 최용태, 나무를 다루는 사람 이병익. 그 나무를 섬기는 사람 황건희, 황용화, 그리고 나무가 된 사람 박홍규.” 이렇게 나오는데요. 일종의 내러티브가 느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를 단순 배열하기보단 어떤 것을 염두에 두고 순서대로 배열하신 거 같아요.
안용우: 맨 처음에 나무를 만나서 특이한 경험을 했던 친구가 나왔으니 좀 더 다른 측면에서 나무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나무의 종교성을 드러낼 수 있는 이야기를 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인터뷰 진행은 순차적으로 되지는 않았어요. 촬영을 해놓고 순서가 바뀌기도 했고, 배치해둔대로 맞지 않을까봐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래도 거의 다 배치가 맞았던 거 같습니다.
이도훈: 제가 자막 중에 궁금한 것이 있어서 적어놓은 게 있는데, 보문사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나무들을 몰락한 왕조의 묻혀져있다.’는 흰색쟈막이 나와요.
안용우: 그건 인용은 아니고 제가 쓴 겁니다. 도시에 나무들이 크게 세워져있고 멋있게 서있긴 하지만 이질적인 존재잖아요 도시에서 나무는 능동성을 가지지 못하고 정복당한 땅에 기구만 남겨 놓은 것처럼 무력해 보인다는 의미로 썼던 거 같아요.
이도훈: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나무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안용우: 맞아요. 나무는 훨씬 긴 세월동안 지구를 지배했고 주도적인 존재였죠. 몰락한 왕조로 비유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였던 거 같아요.
이도훈: 대부분 어떠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대상이 무생물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념비나 건축물, 도시의 잔해물과 같이 대부분 무생물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근데 생물을 그런 식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는 것이 놀라운 발상의 전환이라고 느꼈습니다. 혼자 외롭고 고독하게 촬영을 하시면서 나무와 교감하고, 나무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을 텐데, 나무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저는 사실 도시의 사람이고 자연을 많이 체험한 적도 없는 사람이에요. 영화를 찍어가면서 도시 내에 있는 나무도 들여다니 근원적인 생명의 말단을 만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나무에게 인사도 하게 되고, 소통하는 느낌. 그것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과 융합되는, 무언가 닿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감촉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어요. 변화는 조금 있었던 거 같습니다.
이도훈: 앞으로의 작업에서 변화를 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그리고 이 영화가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안용우: 이제는 구체적인 사람 삶속으로 들어가서 찍고 싶은데요. 원래 생각은 사람들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면 사람의 삶을 표현하는 것도 구성적으로, 구조적으로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도훈: 이번 작업의 스타일이 사람과 만났을 때도 어느 정도 적용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보면서 다큐멘터리가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전에 비평가나 연구자들이 다큐멘터리 시적 양식이라고 하면서 다큐멘터리 이미지가 마치 하나의 시처럼 여러 가지 의미들을 압축하고 상징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 더 나아가서 그러한 시적 이미지 표현방식만이 아니라 서사를 가진 이야기 또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이 영화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감독님을 뵈면 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관객분들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용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영화는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고향에서 만들 거 같습니다, 계속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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