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는 공간과 생동하는 몸의 언어
인디포럼 월례비행 <송주원 단편선-안무가 되는 공간, 공간이 되는 몸> 대담 기록
일시 2018년 10월 24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송주원 감독
진행 정지혜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윤영지 님의 글입니다.
인디포럼 월례비행 10월의 프로그램은 송주원 감독의 단편을 모은 기획전이었다. 공간은 숨을 쉬고, 몸짓은 말을 거는 황홀한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고 했던 것일까? 상영이 끝난 뒤, 송주원 감독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진행은 정지혜 영화평론가가 맡았다.
정지혜 평론가 (이하 정지혜): 송주원 감독님은 영화 작업도, 안무가로서의 활동도 함께 병행하고 계시고, 공통의 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감독님, 인사 부탁드리겠습니다.
송주원 감독 (이하 송주원): 안녕하세요. 저는 무용가이자 댄스 필름 감독을 하고 있는 송주원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지혜: 이번 송주원 감독님 단편선 월례비행은 ‘안무가 되는 공간, 공간이 되는 몸’이라는 제목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자 하는데요, 감독님께서도 항상 본인의 작업이 무엇이라고 명명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있다고 들었어요. 기존 영화 장르 안에서의 댄스 필름 작업일 수도 있고, 혹은 최근에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퍼포먼스 아트의 개념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또 영화 전반적으로 공간, 특히나 특정한 장소에서 벌어지는 신체적 움직임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은 장소 특정적인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가능성들을 작품 안에 가지고 있는데, 어떤 특징들이 그런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지 하나씩 짚어보는 것이 감독님 작품에 접근하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본인의 작품에 대한 명명을 어떻게 정리하셨는지, 혹은 어떤 생각의 궤적을 거쳐 작업을 이어오고 계신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송주원: 작업의 시작은 블랙박스, 공연무대에서만 공연을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공연장 밖의 공간에서, 도시의 장소에서 춤을 만들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한 것인데요, 사실 특정한 장소에서 하는 공연은 객석 확보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감상이 어려워요. 그래서 춤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영상으로 기록해서 웹상에 공개하고자 비디오로 기록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하다보니 점점 더 잘 보여주고 싶다는, 더 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게 되었어요. 옥인동 골목은 공연하기는 어려운 장소였지만 테마나 이야기상 가장 중요한 장소였어요. 그분들의 삶의 공간을 영상으로 담고자 해서 영화 촬영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영화적으로 확장이 된 것 같아요. 그 이후에 공연을 할 때에는 영상 따로, 공연 따로 두 개의 채널로 보이도록 만들고 있는데요, 밖에서 공연을 할 때는 장소 특정적 퍼포먼스가 무엇인지, 댄스 필름이 무엇인지, 제가 만드는 작업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 모든 것에 교집합들을 가지고 있는 작업들을 해오고 있어서 저는 스스로를 춤 만드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춤이라는 매체가 없다면 퍼포먼스가 될 수도 없고 시네마 워크가 될 수도 없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춤추고 춤 만드는 사람이란 말이 제게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정지혜: 말씀 중에 ‘투 채널’ 이야기를 하셔서요. 최근 들어 영화관과 갤러리를 오가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고, 채널이 바뀜에 따라 영상작업이 축소되거나 확장되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간에 따라 채널이 바뀔 수도 있을 텐데 이 작업들은 어떻게 반영이 되었는지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송주원: 지금 이 작품들도 전시관에서 상영되었던 적이 있었어요. 큰 프로젝터로 공연장에서 보여드린 적도 있고요. 16:9로 촬영을 했는데 화이트큐브(전시실)에서 상영을 했을 때는 화면비율을 2.35:1로 해야하는 상황이 있었어요. 무용에서는 손끝, 발끝이 잘리면 안 되는데 전시장에서는 프레임이 조금 잘리는 경우에 굉장히 속상하더라고요. 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불편한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관객분들은 오히려 그런 지점에서 새로운 해석을 하시더라고요. 신체가 잘림으로 인해 상상력이 배가된다고 할까요. 굉장히 다른 관점을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서 보는 것은 참 아름답네요. 저희가 애쓰고 공들여 만든 부분이 굉장히 많거든요.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의 경우에는 세월호 리본이라든지 ‘박근혜 하야하라’라는 문구라던지 달력을 찢는 장면 같은 부분이요. 저희가 2017년 1월에서 2월 사이에 촬영을 했는데 당시에만 해도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주장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들었는데 실제 프로젝션으로 봤을 때에는 그런 것들이 돋보이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영화관에서 보니 청파동에서 고양이가 지나가는 장면 등 소소한 부분들이 살아나 생명력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정지혜: 감독님의 작업의 출발이라고 한다면 몸 혹은 춤일텐데요. 물론 공간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감독님 작업의 최종적인 지점은 신체에 대한 탐미,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에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감독님께서는 무용수로서, 안무가로서 생각하시는 몸의 아름다움을 감독님의 영화 속에서 보여주고자 하시나요?
송주원: 실제적으로 몸짓, 춤이라는 것이 인간의 몸의 언어잖아요. ‘춤’이라 하면 인간의 생각과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각각의 무용수가 가진 생각이나 감정을 몸짓으로 표현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고,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자기답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할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모든 작업에 각각 솔로 엘리먼트(element)들을 만들고 그것을 구조적으로 반복시키거나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안무를 해 나가요. 가장 씨앗이 되는 부분들, 요소의 기초 과정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장소에서 발견한 것들,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질문들을 무용수들에게 하고, 그것에 대한 답변에서 키워드를 발견해서 그것을 몸으로 표현합니다. 그것을 통해 2인무나 3인무, 혹은 솔로로 이야기를 구축해나갑니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형태나 구조, 가동성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라고 읽어주시면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지혜: 그렇다면 시나리오의 과정에 있어서,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는 큰 틀은 있겠으나, 이외에는 배우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감독님께서 프리 프로덕션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가져오시고 그것을 시나리오에 담아내시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죠?
송주원: 네, 실제로 무용수들의 각각의 이야기들이 시나리오가 되는 것이에요. 저는 어찌 보면 각각의 이야기들이 하나의 우리의 질문으로 표현되도록 잘 배치하는, 잘 위치시키는, 혹은 리듬감을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정지혜: <풍정.각> 연작이야말로 공간에 대한 감독님의 지대한 관심이 녹아있는 것 같습니다. 공간에 절대적으로 기대고 있는 신체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작의 과정 중 공간을 서치하고 공간을 확정해야만 이 작업의 출발이 가능하겠다는 생각이요. 그 안에서 댄서분들과 그 공간을 해석하는 과정들이 있겠지만, 출발은 공간에 대한 끌림이 있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감독님께서 안무적으로 어떤 공간을 탐구하게 되는지 여쭤보겠습니다.
송주원: 일단 말씀하셨듯이 어떤 장소에 가면 장소가 너무 매력적이거나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이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풍정.각> 시리즈를 1편부터 8편까지 공연했고, 9편째 찍는다고 선언을 했어요. 총 9개의 장소가 있는데, 각각의 장소가 저희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각각의 장소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을 무용수들과 함께 수집하고, 제가 먼저 리서치 과정을 거친 뒤 굉장히 많은 연습을 쌓아서 중첩적이고 구조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거든요. 골목 작업 같은 경우도, 각자의 골목에 대한 이야기, 각자 삶에서의 골목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실제 우리가 청파동에서 찾아낸 질문들, 상황들, 사물들, 기억들을 모두 꺼내어 하나의 시나리오로 만들어요. 그래서 장소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은 제가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디디는 부분이기도 하고, 몸과 함께 살아있는 생명체로 살려서 이야기 나누고 싶은 부분이에요. 공간도 몸처럼 계속 움직이잖아요. 그 지점들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그 안에서 각자의 몸들이 어떻게 딛고 서있으며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지금까지 어떤 말을 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는 것 같아요.
정지혜: 청파동의 경우에는 재개발이라는 이슈가 있기도 했죠. 이 공간을 역사적인 공간으로 바라보신 것 같아요. 한국전쟁 당시 시체들이 쌓여있었던 계단이 있고, 무용수분들이 그 공간으로 가서 다시 그것을 재현하거나 자기화해서 보여주는 방식인데요, 감독님께서 작품 안에서 다루는 그 공간들이 지금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국 개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그 흥망성쇠를 겪고 있는 공간들이라는 인상이 짙었습니다. 무용에 있어서 감독님께 말을 거는 공간은 모두 역사적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공간이 주는 호기심이나 매력이 분명히 있나봐요.
송주원: 네, 당연히 있는 것 같아요. 그 공간이 가진 성격이 분명하고, 그것들을 발견했을 때 이 장소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고요. 실제 청파동 작업의 경우엔 처음에 귀신들이 나무를 한 바퀴 도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이 600년 된 은행나무이고, 작품 속 등장하는 집은 과거의 프랑스 대사관저였다고 해요. 그런데 사실 지난주에 가보니 그 집은 부서져있었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집도 부서져있었거든요. 저희가 촬영했던 장소가 사라진 거죠. 서울로7017이 생기면서 청파 언덕에서 남산을 바라보고 살던 분들은 이제 대형 빌딩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굉장히 낙후된 장소인데, 도시화된 주변의 풍경 같은 것들이 주는 콘트라스트가 굉장히 특별하다고 생각을 했고, 많은 상황들이 혼재되어 있어요. 각각의 집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이야기들, 사라질 것 같은 각 장소의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들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서울로 위에 영상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일주일간 전시를 했어요. 사실 청파동에서 한 이야기는 서울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누구의 삶이든 존중받아야 하고요. 그래서 도시 개발, 재개발, 도시 재생이라는 말로 그 지역에 사시는 사람들의 삶은 존중하지 않은 채 집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고, 문화 공간과 전시 공간을 짓는 것이 타당한가, 타당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저에게 장소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정지혜: 퍼포머 분들과의 협업이 매우 긴밀하고도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송주원: 일단 작업을 시작하게 되면 저의 미술 과정이 3개월가량 걸리고, 무용수분들을 실제로 만나는 기간은 연습실에서의 리허설과 현장 리허설을 합쳐 보통 1달 반에서 2달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특히나 저희 같은 경우에는 전문 무용수와 비전문 무용수가 함께 참여하기 때문에 리허설도 따로 잡아야 해요. 실제 프리 프로덕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들은 연습실에서 어떤 언어와 문장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고, 그래서 연습실에서 실제 시나리오를 짠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정지혜: 일종의 ‘안무노트’를 가지고 계시잖아요. 오늘 상영했던 작품들의 안무노트의 경우는 어떤 형태로 남아있을까 궁금한데요, 언어화가 가능하다면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주원: 우선 저는 안무노트를 저희가 함께 기억하고 기록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전체 작업 과정을 정리하는 거죠. 제가 뭘 하다 보면 갑자기 욕심이 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것이 안무노트예요. 다시 한 번 내가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되짚고 장면에 대한 타당성을 찾는 거죠. 그래서 안무노트는 지도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고, 저는 각 장면마다 제가 재밌어야 해요. 그를 위해 많은 장치들을 사용하는데 <풍정.각 세운상가에서 낙원쁼딍으로>의 경우 그 공간이 수족관 같잖아요. 실제 주인공인 공영선 퍼포머가 바다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해서 그곳이 어항 혹은 바닷속이라고 설정했어요. 그래서 ‘고래밥’ 과자를 이용해서 춤을 만들고 낙원빌딩 상가의 벽화로 무브먼트를 만들며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을 거쳤어요. 청파동의 경우 무용수가 28명이었어요. 28명의 무용수가 광장과 서울로에서 그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 각자의 골목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배치시키느냐가 고민이었죠. 동선이 복잡했어요. 그래서 안무노트로 그것을 기억하게 했던 것 같아요. <풍정.각> 4번째 작품의 경우 ‘졸라맨’처럼 그림을 그려서 무용수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하고, 연습실 벽에 붙여두고 숙지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어요. 최근 낙원 악기상가 전시장에서 안무노트를 전시한 적이 있었어요.
정지혜: 또 궁금한 것은, 영화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계획된 상황들을 가지고 있어도 현장에서 일어나는 즉흥성을 절대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을 것이고, 타협의 지점도 분명히 있을 것 같거든요. 안무노트를 기반으로 하되 현장과 즉흥성, 혹은 퍼포머가 보여주는 즉흥성은 작업에서 어느 정도까지 수용이 되는 것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송주원: 대략 10-20%가 가미되어요. <풍정.각> 첫 번째 편 같은 경우, 사실 실제 무용수분들이 본인들끼리 촬영이 너무 힘들다보니 괜히 머리도 잡아당기고 뛴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 장면을 보고 ‘이거다. 한 번 더 뛰자.’싶어서 그 상황을 살려서 연출을 했고, 실제적인 무브먼트는 다 짜고 들어갔기 때문에 몸짓으로 세운상가와 낙원빌딩 사이를 이동하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했어요.
관객: 작품들이 다소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어려운 지점들이 결국 작품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또 확실히 공간이 안무를 통해 살아나고 안무가 공간을 통해 살아나는 새로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도 무용을 전공하는 사람 입장에서 영상에도 관심이 많은데, 제가 사는 동네도 도시재생처럼 공간이 곧 사라질 위기가 곳곳에 있거든요. 그 부분을 가지고 영상을 찍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는데 영상을 찍을 때 주의해야하는 사항이나 어려운 점을 조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주원: 처음에는 너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그들의 삶의 무게가 몸으로 전달되는 것이 힘들었어요. 그것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고, 간혹 내가 그 장소의 색을 정해 놓았는데 그것이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제작기간이 짧아도 6개월 이상 지속되는데 그 동안에 그 장소가 변한다는 거죠. 그런 상황에 유연히 대처해야할 것 같고요. 현장에 변수가 많으니 담대한 마음을 가지셔야 할 것 같아요. 종교를 가지시는 것도 추천합니다.(웃음)
관객: 작품이 전체적으로 일상과 비일상, 과거와 현재의 간극이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풍정.각-세운상가에서 낙원쁼딍으로>에서 전반적으로 카메라가 고정된 상태에서 넓은 공간을 촬영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중간중간 무용수들 가까이서 핸드헬드로 촬영된 장면도 있었잖아요. 의도나 기준이 궁금합니다.
송주원: 저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기에 카메라를 다루는 법이라든지 효과를 잘 몰라요. 그래서 일단 기본적으로 무용수 분들과 연습을 할 때 휴대폰 카메라로 그것을 찍습니다. 그 촬영물을 통해 촬영감독님께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보여드리고 의견을 조율해나가면서 탄력적으로 움직이는 방식이에요. 실제 <풍정.각-세운상가에서 낙원쁼딍으로>작업 같은 경우에는 카메라가 두 대였는데 한 쪽 카메라에 영상이 담기지 않았어요. 그래서 살리지 못했어요. 춤이라는 매체가 가진 스펙트럼을 굉장히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블랙박스는 정면에서 2D로 보이지만 영상으로는 몸 전체를 보여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살리고 싶어서 시도를 했는데 실제적으로 그런 부분을 살리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저는 기술적인 것보다는 춤이 가지고 있는 성격을 최대한 드러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정지혜: 공간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 영화 안에서 공간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퍼포머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몸을 움직여서 표현하고 공간을 감각하는, 흔히 우리가 배우라고 하거나 모델이라고 하는, 혹은 퍼포머나 댄서라고 하는 주체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는데요, 사실상 이분들과의 협업과 교감이 영화를 풍성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개인의 스토리를 영화 안으로 가져오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중에서도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의 경우 김윤하 무용수는 비전문 무용수지만 그 구분이 불필요해 보일 정도로 영화의 서사와 이미지를 장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영선 퍼포머의 경우도 그렇고요. 감독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작업하시는 배우분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송주원: 기본적으로 저는 무용수와 사랑에 빠지고, 제가 그들에게 반해서 함께하고 있어요. 반하게 된 이유는 일단 ‘솔직함’이에요. 어떤 대화를 하건 간에요. 그것을 굳이 자신의 방식대로 포장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솔직해요. 그래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두텁고요. 또, 이것은 정말 중요한 부분인데, 성실해요. 그리고 정확합니다. 시간 약속을 어기는 일도 없고요. 이 세 가지가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고요, 춤도 너무 잘 추시고요. 그래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공영선 배우님 같은 경우에는 지붕 위에 서있는 장면이 있잖아요. 다른 분들이 만류하시는 도중에 이미 올라가고 계셨어요. 김윤하 배우님의 경우에도 눈밭에서 맨발로 뛴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모든 분들이 대체로 항상 열려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어떤 조언을 주면 몇몇 분은 불편해하시기도 하는데 이분들은 저와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열려있고, 제가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이죠.
정지혜: 감독님께 춤을 잘 춘다는 것의 의미를 묻고 싶은데요. 특히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의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우가 신체의 움직임이나 흐름을 가장 명확하고 직접적으로 볼 수 있었던 경우인 것 같은데, 첫 번째 에피소드로 말씀을 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송주원: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의 첫 번째 에피소드 같은 경우에는 ‘Contact Improvisation(접촉 즉흥)’이라는 현대무용의 기술 중 하나예요. 김윤하 배우는 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 기술을 알고 시작하신 것은 아니고, 무용수와 연습실에서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그 기술들을 알아 간 거죠. 그 기술들을 알아가면서 김윤하 배우님이 처음에는 무용수의 리드에 따라가시다가 어느 순간 플레이를 시작하시더라고요. 그 과정을 거치고 실제 공간에서 몸과 몸이 만나서 어떤 움직임을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는 춤이라는 매체를 기술로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 같아요. 현대무용이라는 매체가 가진 많은 기술들이 있어요. 그중 어떤 부분을 적용해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술을 뺀 기술’이 나오는 것을 선호해요. 무용수들이 팔꿈치, 손목, 무릎, 표정, 무엇이 되었든 척추를 중심으로 해서 각각의 신체 구조를 가지고, 몸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요. 그 몸들이 조형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에너지도 있어야 하고, 리듬감도 있어야 하고, 언어로서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치가 들어가는데, 많은 훈련과 이해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정지혜: 가장 자연적인 움직임이 기술적이고 통제적인 상황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말씀하신 접촉 즉흥의 경우도 단순히 우연한 돌발이라기보다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가지고 그 상황 속에서 자신의 신체를 움직여 나간다는 의미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안무가 되는 공간이자 공간으로서의 안무를 생각하면서 감독님 작업 안에서는 댄서가 혼자 퍼포밍 하는 방식은 거의 볼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솔로극이라고 하더라도 공간과 함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었고요. 댄서의 신체 안에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송주원: 그렇죠, 신체 안에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이야기의 무게를 어디에 주느냐에 따라 시간이나 감정이 몸 안에서 계속 움직인다는 뜻이에요. 자기도 모르게 그 흐름 안에 몸을 맡기는 거죠. 저희가 점을 찍고 좌표를 찍어 어떤 행위를 하기로 약속해서 만들어 해보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도 변수는 계속 일어나거든요. 그래서 훨씬 더 많이 열어둔 상태로 진행해보고 싶었고, 의인화된 신체라고 해서 이불 속에 사람을 넣어 춤을 추는 상황을 연출했잖아요. 그건 저도 처음 해보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탄력적으로 연출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해나갔던 것 같아요.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 같아요. 몸으로 듣는 거요. 이 사람이, 이 공간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듣는 것이요.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관객: 대담 내용이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배우는 게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배우분들의 생각을 알고 계신다면 전해 듣고 싶습니다. 네모난 공간에서 춤을 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간과 교류하며 춤을 춘다는 것은 새롭고 압도적인 경험이셨을 것 같아요.
정지혜: 자리에 나와 계신 김윤하 퍼포머님께 답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김윤하 배우 (이하 김윤하): 안녕하세요. 저는 계속 말씀하셨듯이 전문 무용수가 아니라서 블랙박스나 무대 위에서 춤을 춰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낯설다는 생각은 못 했던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미술을 하는 사람이라서 현장에서 ‘뭐하고 놀지?’ 하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실 준비기간이 너무 힘들어서 매번 이번이 마지막 작업이라는 생각을 늘 하는데 촬영이 재밌어서 계속 또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공간에서 노는 느낌으로 했던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저희들도 감독님께서 리서치해주신 공간에 대한 이야기나 꼭 전해야 하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공간에 대해서는 비슷한 느낌들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감독님이 오늘 해주신 말씀들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정지혜: 영화 속에서 전화 통화를 하시는 장면이 대본에 있었던 장면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김윤하: 제가 실제로 일을 할 때 통화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을 하고 연기했어요. 당시에 시안 컨펌이 나지 않아 약간 짜증이 나 있는 상태에서 했던 통화를 상기하며 촬영했고, 그 후에 찍었던 엄마와의 통화도 실제로 엄마와 통화할 때의 내용을 많이 가져왔던 것 같아요.
정지혜: 갑작스럽게 마이크 드렸는데 답변 감사드립니다. <풍정.각> 시리즈는 최종적으로 총 11편을 만드시는 것이 목표라고 알고 있어요. 현재까지 8편의 작품이 완성되었고, 청파동과 관련된 작품은 서울독립영화제에서도 상영을 한다고 합니다. 이후의 작품이나 작업에 대한 계획을 들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송주원: 최근에 저희가 재개발 시행 장소에서 작업을 하다가 도시 재생이 발발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이태원에 있는 우사단로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작업을 준비 중입니다. 전시 방식으로 진행할 생각을 하고 있고요, 장한평 중고시장에서 기계와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재미있게 놀 수 있을지 한 번 시도해보려고도 하고 있어요. 돌아다니면서 계속 재미있는 장소를 수집하고, 작업을 하고 싶으면 실행하려고 합니다. <풍정.각> 시리즈를, 정지혜 평론가님을 처음 뵈었을 때에는 당당히 11편을 하겠다고 했지만, 철회하겠습니다.(웃음) 실제로 할 때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고, 지금 작업하고 있는 것들도 막상 해봐야 완성이 언제 될 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춤이라는 매체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요. 오늘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는데, 제가 계속 필름 작업을 하면 주변 분들께 영화 공부에 대한 권유를 많이 듣고 있어요. 어찌해야하나 고민을 이어나가고 있는데요, 올해를 그런 고민들을 정리하는 단계로 가져가고 있어요. 사람들이 제게 물어보더라고요, 영화를 할 때 어떠냐고요. 그런데 모르면 무식해서 잘 할 수 있잖아요. 저는 모르기 때문에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몰라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하고 있고요. 삶을 살아나가며 저의 상상, 하고 싶은 질문과 주장들을 계속 필름 안에 춤이라는 매체에 담고 싶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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