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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요즘 세대들이란’에 대응하는 “나도 힘들어!” 인디돌잔치 <소꿉놀이>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3. 8.

‘요즘 세대들이란’에 대응하는 “나도 힘들어!”  인디돌잔치 <소꿉놀이>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21일(화) 오후 7 30분 상영 후

참석 김수빈 감독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영농 님의 글입니다.


언젠가 한 인터넷 기사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어 온 말이 ‘요즘 세대들이란….’이라는 웃지 못 할 대목을 본 적 있다. 옛날 석기시대부터 인류는 다음 세대를 늘 못마땅해 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많은 위계 설정을 감내하며 살아온 것도 언제나 한 시절의 ‘요즘 세대들’이었단 사실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아내, 엄마, 며느리 등 ‘김수빈’이라는 이름 대신 누군가의 무엇이 되길 강요받는 일상을 여과 없이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소꿉놀이>의 ‘요즘 감독’ 김수빈을 만났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진행): 영화 <소꿉놀이>는 작년과 재작년에 장안의 화제였고 2016년 2월에 시네마달 배급사를 통해 개봉했다. 지인 중 한 명은 이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라 보면서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고 한다. 나는 재작년 정동진독립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 매우 다양한 반응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속 시어머니 연배의 분들은 "정말 집 지저분하게 해놓고 산다"는 식의 잔소리를 했다면, 젊은 세대들은 시어머니가 권위를 내세우는 장면에서 "헐"하며 놀라기도 했다. 이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나’라는 존재를 절대 놓지 않는,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고민의 끈을 결코 놓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점이 같은 여성으로서 큰 힘이 되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수빈 감독(이하 감독): 굉장히 즉흥적으로 시작했다. 처음 임신을 하고 잠깐 패닉 상태에 빠졌다.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함께 어떡하면 좋을지 의논을 하다가 일단 찍자는 말을 했다.(웃음) 돌이켜보면 내가 영상학을 전공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 순간에 바로 소화되지 않는 것들을 일단 찍어놓고 나중에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던 것 같다. 매우 본능적이었다. 일은 벌어졌고, 어떤 식으로 진행이 될 진 모르겠지만, 우선 찍어놓고 보자는 거였다. 영화로 개봉을 하게 될 줄도 몰랐는데, 이렇게 돌잔치를 맞이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진행: 많은 사람들이 글로 일기를 쓰지만, 카메라를 가까이에 두고 있던 감독님은 영상으로 일기를 썼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를 눈으로 두고 엄청난 분량을 찍었을 텐데, 매우 짜임새 있게, 기승전결까지 갖춘 형태로 다듬어 완성했다는 점이 놀랍다.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내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 같다. 육아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 아이의 성장과 예쁜 순간, 그 과정 속 부모로서의 변화 등에 집중할 수도 있는데, 다양한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속 고찰이 잘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만들면서 염두에 둔 방향성과 편집 부분에서의 고민 등이 궁금하다.


감독: 6년 정도 촬영하고 편집했다. 카메라로 꾸준히 기록을 해두다 보니 내러티브화 할 수 있는 소재가 있었다. 처음엔 나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편집을 했는데, 다시 보니까 너무 내 얘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찍어보기로 했다. 편집할 때 모조리 다시 보면서 시어머니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런 과정들을 몇 번 거치면서 편집을 여러 번 바꾸게 되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세월이 가며 얻는 깨달음이 있더라. 작업을 진행할수록 매번 다르게 이야기가 확장되어가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진행: 나이든 여성과 현대의 여성 사이 관계의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서 ‘나’라는 주체로서 질문을 던지며 삶의 성찰로 이어진다. 관객들의 감상이 궁금하다.


관객: 영화 도중에 굉장히 큰 갈등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에 애니메이션이나 내레이션을 더했기 때문에 우울하지 않게,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 중인 작품이 있는지?


감독: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차후에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을 촬영하는 작업은 계속하고 있다. 처음엔 멋모르고 촬영했는데, <소꿉놀이>를 통해 이런 영상들이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나서는 카메라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확실히 있다. 그래서 예전만큼 솔직하게 드러내기 어려워 고민이 많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가능한 것은 일상 촬영이기 때문에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극장을 나간 후에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지금 겪고 있는 일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전에 어떠한 정보도 없이 봤다. 제목이 ‘소꿉놀이’라서 그냥 젊은 부부의 신혼생활을 담았겠구나 했는데, 예상외로 어떠한 테마를 가진 영화를 만난 것 같아 행복하다. 무거운 내용을 가볍게 커버하려는 의도를 가진 제목인 듯한데 제목을 지은 배경이 궁금하다. 오히려 이 영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제목은 영화 속의 "나도 힘들어"라는 말이 아닐까 싶다. 등장인물 모두 힘들어하는 일상이 영화에서 완연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감독: 제목은 영화의 말미에 나온 ‘인생은 다 소꿉놀이‘라는 시어머니의 말에서 따온 것이다. 달관하여 쉽게 나온 말이었겠지만, 나는 그 순간 매우 소름이 돋았다. 소꿉놀이는 아이들이 하는 놀이이고 저마다 역할을 정해서 하는 놀이이지 않나. 만약 인생이 소꿉놀이라면, 누가 부여한 것인지도 모르는 역할들을 더 이상 떠맡아 연기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소꿉놀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관객 분 말씀을 들어보니 가볍게 보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누구의 딸 혹은 아들, 회사의 직책 등 정체성이 역할로만 명명된다는 것을 특히 결혼을 하면서 많이 느꼈다. 나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데, 며느리, 아내, 엄마 등의 직함을 달아주는 것에 이질감이 들었다. 시어머니의 입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의 시어머니가 된 상황일 테니까. 결혼은 행복하려고 하는 것인데, 왜 서로를 구속하는지 의문이었다. 서로를 괴롭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모두가 편할 텐데, 너무 ’역할의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영화는 그렇게 살기 싫다는 나의 외침이 반영된 영화다.(웃음)


진행: 이 영화를 여성/육아 다큐멘터리로 구분 지었을 때, 가장 기분 좋게 볼 수 있었던 점은 모성 이데올로기에 결코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가 매우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게 신기하다. 어쩌면 잘 길들인, 학습된 결과가 아닐까 싶다.(웃음)


감독: 처음엔 그렇지 않았다. 내가 카메라를 휴대전화처럼 항상 들고 다니니까 다들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인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그냥 별 것 아닌 게 되었다. 다들 적응한 것이다. 의식을 하지 않는 시점이 됐을 때, 속 얘기가 거침없이 나올 수 있었다. 적응하기까지의 기간이 꽤 길었다. 겪어보니 모성이라는 것은 성격처럼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른 법이다. 모성이라는 틀, 사회가 만든 이데올로기에 전혀 갇힐 필요도, 휘둘릴 필요도 없다.


진행: 분만실에서 출산 후 처음으로 아이가 산모의 배 위에 올려졌을 때 보통은 감격스러워 하거나 경이로워 하는데, 감독님은 ‘얜 뭐지?’하는 듯한, 낯설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관객: 영화를 보면서 결혼이 현실과의 타협 혹은 포기의 연속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도 육아에 묶여있는 상황이라 들었는데 앞으로의 계획이나 개인적인 꿈이 궁금하다.


감독: 나의 뮤지컬을 만드는 것이 꿈이다. 작든 크든 작업물을 만들어내고 세상과 공유하는 일을 하고 싶다. 창작자로서의 활동은 다 재미있다. 요즘은 뮤지컬을 번역, 각색, 개사하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진행: 영화가 가족들에게 미친 영향, 변화들도 있을 것 같다.


감독: 이 작품을 계기로 가족들과 더욱 견고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시절을 같이 보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희미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시간을 영상으로 남기니 매우 선명해졌다. 물론 나의 주관적 시선에서 만들어지긴 했지만. 남편의 경우 안 좋은 댓글에 신경을 쓰기도 한다. 본인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며 상심하는데, 공감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라고 다독여준다.(웃음) 내 입장에서 만든 영화라 다른 사람들의 입장이 상대적으로 덜 반영된 부분이 있다. 만들 때 옆에서 가장 많이 도와준 사람은 남편이다.


관객: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시집살이를 했다. 혹시 예비 며느리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감독: 최근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긴데, 나도 공감을 많이 했기에 이야기를 하자면, 친정이든 시댁이든 어려움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집값을 아끼는 것이니 그걸 급여 개념으로 생각해보면 사장과 직원의 관계라 생각할 수 있다. 말 잘 들어야 한다. 사장님이 사옥을 내준 것이다.(웃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역시 좋은 점은 재정적으로 많은 부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잠을 편히 못 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긴장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결혼했을 당시 독립을 할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만약 했다고 해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거다.


진행: 개인주의에 익숙한 인물이 가족 질서에 편입될 때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성에 대한 문제가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이 시점에 엄마를 비롯,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 김수빈 감독의 이야기는 분명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주변의 많은 여성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감독: 이제 곧 남편이 일본에서 돌아오는데, 우리 가족은 어디서 살아야하는가 고민하고 있다. 현재는 눈치껏 가사를 도우며 친정에서 지내고 있지만 남편이 처가살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시집살이를 되풀이 하고 싶지도 않아서 남편에게 어차피 시댁에 방이 남으니 각자의 집에서 따로 사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일주일에 다섯 번씩 만나기로 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더니 집안사람들 모두가 극구 반대하더라. 남편은 그동안 오래 떨어져 살았으니 이제는 함께 살고 싶다 했다. 솔직히 그게 왜 안 되는지 모르겠다. 안 된다고 하니까 어쨌든 순응하겠지만, 앞으로의 주거와 가족 형태는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제도적, 물리적 제약 때문에 왜 우리는 행복할 수 없는지 의문이다. 10년 쯤 지나면 떠오르는 대안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웃음)


진행: 감독님 생각을 들으면 언제나 재미있다. 고민의 기저가 결코 현실에서 동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는 생각이 든다.


관객: 둘째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웃음)


감독: 없다.(웃음) 몸이 너무 많이 상했다. 육체적인 문제부터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은 생각이 없다. 영화를 만들면서 여러 사례를 찾아봤는데 북극곰의 사례가 꽤 인상적이었다. 도저히 자기 새끼를 키울 환경이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 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자식을 키울 환경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행: 앞으로의 화두나 질문, 이야깃거리들이 궁금하다. 


감독: 신학에 관심이 많다. 관련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한다. <소꿉놀이>는 궁극적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탐구하고 알아가는 과정, ‘나’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현실적 제약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른 관점에서 연장해보고 싶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삶만 살아간다. 옷 갈아입듯 인격을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때때로 ‘내가 제일 잘났어’ 혹은 ‘내가 제일 힘들어’ 등의 교착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지나친 자기 애착은 상대방의 인생을 폄하하는 실수로 이어지고, 이는 보상 심리의 근거가 된다. 영화 <소꿉놀이>는 결혼과 출산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 속 갈등을 다뤘지만,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입장 차이의 딜레마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요즘 OO들이란’의 비난에 대응하는 “나도 힘들어!”는 절대 나만 힘들어가 아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온전히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를 깎아내림으로써 어떤 위계를 설정해선 안 될 것이다. 이는 배려와 공존을 위해 개인에게 요구되는 첫 번째 자세이다. 이렇게 ‘요즘 것들’의 이유 있는 반항에 “내가 이러려고 OOO을 했나….” 따위의 모노드라마로 받아치는 사회가 되지 않길 바란다. 나도 힘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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