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바라다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종로의 기적> 인디토크
일시 2017년 2월 19일(일)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이혁상 감독 | 주인공 소준문, 장병권, 정욜
진행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송희원 님의 글입니다.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활동하는 장병권, 스파게티 가게를 운영하며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합창단 G_Voice에서 노래를 부르는 故 최영수, 영화를 통해 성소수자를 알리는 이혁상 감독과 소준문 감독, 직장을 다니며 동시에 인권운동을 하는 정욜. <종로의 기적>은 2011년 6월 개봉한 게이 다큐멘터리이다. 감독과 주인공들을 오랜만에 ‘촛불영화: 블랙리스트 영화사, 시네마달 파이팅 상영회’ <종로의 기적> 인디토크에서 만나보았다.
이혁상 감독(이하 이): 이게 블랙리스트의 힘인가요? 이제 대세 게이 영화는 <위켄즈>인데,(웃음) <종로의 기적>을 보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주시다니. 국정농단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웃음) 참고로 저도 블랙리스트에 올랐어요.(웃음) 이 정국이 낳은 기획전에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종로의 기적>은 다운로드 서비스가 안 되어서 보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오늘 같은 상영회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진명현 무브먼트 대표(이하 진): 여기 관객 분들은 다 알고 있겠지만 시네마달은 우리가 꼭 봐야 하는 작품들을 보여주는 일을 하는 영화사에요. 귀중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응원과 지지를 부탁드려요. <종로의 기적>은 개봉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어요. 근황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장병권(이하 장): 너무 많이 달라진 모습에 놀라지 않았는지요.(웃음) 지금은 ‘연분홍치마’(성적소수문화환경 모임) 꼬임에 넘어가 연분홍치마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준문(이하 소): 작년까지 계속 영화를 만들었고 지금은 시나리오 쓰고 있어요. <종로의 기적>은 잊힐만하면 상영을 해서, 연례행사가 된 것 같아요.(웃음) 저희끼리는 늙어가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 같으니 그만 좀 하자고 얘기해요.(웃음) 그래도 자리들이 계속 생기니 좋아요.
정욜(이하 정): 영화 찍을 때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어요. <종로의 기적> 개봉 즈음에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었고, ‘인권재단 사람’에서 모금과 관련된 일을 병행하면서 영화 속 주요 이슈였던 HIV/AIDS 활동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성소수자 단체나 기관을 만드는 활동들을 했어요.
이: 다큐멘터리를 계속 만들고 있어요. 최근에 <공동정범>이라는 용산참사 다큐멘터리를 완성해서 영화제를 통해 소개했어요. 정국이 너무 어수선해요. 조기 대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대선 이후 개봉을 해볼까 싶어서 개봉 버전으로 수정하고 있어요. 병권 씨와 연분홍치마에서 계속 활동하다가 지금은 안식년으로 쉬고 있어요. 쉬면서 <공동정범> 관련된 준비도 하고요. 새로운 걸 좀 해볼까 하고 있어요.
진: <위켄즈>가 대세가 됐다고 하지만, <종로의 기적>과 <위켄즈>는 이어지는 부분도 있어요. <종로의 기적>이 ‘소녀시대’ 같다면, <위켄즈>는 ‘트와이스’ 같아요.(웃음) <종로의 기적>은 굉장히 용감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루는 이야기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모두 느꼈을 거예요.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다큐멘터리 영화, 특히 LGBT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개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개봉 당시 힘든 점이 있었나요?
이: 사실 <종로의 기적> 때는 지금보다 상황이 나았던 것 같아요. 물론 이명박 정권이긴 했지만 초반이어서 이 정도로 시스템이 망가지기 전이었어요. 여기 주인공분들 비롯해서 시네마달, 연분홍치마 모두 함께 굉장히 노력하고 공을 들여서 7,000명 넘게 관람해주셨어요. 최근 <위켄즈>를 보면 알겠지만, 극장 잡기도 굉장히 힘든 상황이에요. 그때도 힘들었지만, 무언가 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조금이나마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명박 정권 때 <종로의 기적> 상영이 중단되었던 적이 있어요. 틀지 말라고 국정원에서 지시를 내렸어요. 일단 성소수자 다큐멘터리라는 점이 심기를 건드린 것 같기도 해요. 병권 씨가 ‘이명박 퇴진’ 피켓을 들고 투쟁한 장면을 문제 삼았어요. 화가 많이 났어요.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이제는 국민의 힘으로 많은 것들이 밝혀지고 변화하는 모습이 보여서 다행이에요.
진: 그만큼 시네마달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작품들을 소개해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봉 당시에는 관객과의 대화가 일상적인 행사는 아니어서 굉장한 추억으로 남았을 것 같아요. 당시의 경험들을 떠올려서 얘기해주세요.
장: 성소수자 다큐멘터리이다 보니 당사자분들이 많이 극장에 찾아주셨어요.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얘기하고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커밍아웃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던 것이 인상에 남아요.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관객들과 의견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후원인이 많이 늘어서 2011년도 당시 상근자로 일할 수 있게 되었죠. 이 다큐멘터리의 힘이 크지 않았나 싶어요.
진: 소준문 감독님 같은 경우 극영화 연출자이기도 하고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기도 하잖아요. 낯설기도, 새롭기도 한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소: 영화를 통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웃음) 많이 부끄럽긴 하지만요.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정: <위켄즈> 팀도 관객과의 대화 후에 꼭 뒤풀이를 하더라고요. 당시에도 거의 매번 그랬던 것 같아요. 출연자와 관객의 경계가 뒤풀이 자리에서 없어져요. 성소수자로 살아가면서 생기는 고민들, 정체성을 알아가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되게 편하게 얘기했어요. 저는 당시 감염인 분들과의 접촉이 많지 않았어요. 이후 감염인 분들과의 만남이 수월해졌고 영화가 경로가 되어주었어요. 지금은 감염인 당사자 모임에서 간사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게 사실 쉽지 않아요. 늘 마주하는 분들이 감염인이니까요. 이 영화를 통해서, 그리고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들이에요.
이: 저는 뒤풀이 때문에 간이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웃음)
진: 네 분 다 웃는 게 너무 예뻐요. 특히 욜 씨가 예쁘게 웃거든요. 저는 <종로의 기적>하면, 욜 씨가 웃는 장면이 계속 떠올라요. 이렇게 현장에서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좋네요. 이제 관객 질문을 받겠습니다. 언제 또 올지 몰라요, 이 네 명의 ‘핑클’들이.(웃음)
관객: 소준문 감독님의 <REC 알이씨>(2011)를 정말 감명 깊게 봤어요. 저는 소설을 써요. 감독님이 게이에 관한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저의 정체성도 소설에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영화에서 감독님이 자신은 그냥 영화감독이 아니라 게이 영화감독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로 그냥 소설 쓰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지만 정체성을 드러내고 작품을 쓰면 장애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어요. 감독님은 자신의 성정체성이 창작 활동을 하는 데 긍정적인 면으로 작용하나요?
소: 우선 감사해요. 스스로 굉장히 닫혀있던 상황들이 있었는데, 커밍아웃하면서 나와 보니 오히려 더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내 작품이 퀴어영화, 게이영화로 보이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았어요. 그 과정에서 많은 고민들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거침없이 드러내는 게 되게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스스로 큰 자신감을 찾을 수 있게 해주고요. 저는 <종로의 기적>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잖아요. 그 이후 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읽든 안 읽든 숨기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관객: 제가 볼 땐 영화 속보다 훨씬 멋있어진 것 같아요.(웃음) 다운로드 서비스는 앞으로도 예정이 없나요?
이: 만약 하려면 다시 한 번 여기 출연한 분들과 얘기를 해야 돼요. 개봉한지 오래됐는데 관객 분들이 많이 온 걸 보니 한 번 해볼까 싶네요.(웃음) 모든 성소수자 관련 다큐멘터리가 같은 경험을 할 것 같아요. 사회적인 커밍아웃이기 때문에 주인공들만 합의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배경에 조금이라도 나오는 모든 분에게 확인받아야 하고, 안 된다고 하면 모자이크를 하나씩 해야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너무도 보수화된 한국사회라서 겪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돌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한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진: IPTV나 다운로드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DVD라도 만들면 팬들에게 좋을 것 같아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위켄즈>는 2차 판권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해외 영화제 버전, 국내 영화제 버전, 국내 개봉 버전, IPTV 버전 다 따로따로 판권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에요.
관객: <위켄즈>를 보고 관련 영화로 <종로의 기적>을 알게 되었어요. 감독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 네 분의 이야기를 선정했는지 배경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영화를 찍으면서 종로로 나와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 것 같아요. 거의 10년이 지난 이 시점에 종로에서 또 어떤 기적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이가 드니 종로에 나가는 일이 뜸해졌어요. 새로운 세대들이 종로를 주름잡기도 했고요. 게이로 나이 드는 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좀 들어요. 지금 젊은 세대들은 스스로를 일찍 긍정하고 즐겁게 삶을 꾸려나가는 것 같아요. 별개로 사회적 분위기는 굉장히 심각해지고 있는데, 계속해서 맞서 싸워야죠. 개봉 당시 네 명을 선정한 이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때를 기억해보면 우선 예뻐서,(웃음) 그리고 저와 동년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30대 중반이었으니까 미래에 대한 고민을 서서히 하고 있는 친구들을 중심으로 선정하려고 했어요. 그 과정에서 나름 평범한 삶을 사는, 보통의 관객들과 접속하기 쉬운 주인공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게이들의 삶이 평범하지는 않지만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게이들은 출연 자체가 그 삶을 깨는 것이더라고요. 그래서 캐스팅이 순조롭지 않았어요. 자연스러운 귀결일 수도 있는데, 그래서 제 주변의 친구들, 같이 인권활동을 한 친구들 중심으로 찍었어요. 원래는 5명이었는데, 한 명이 사회적 커밍아웃을 하면 염려되는 부분이 있어서 중간에 고사하게 되었어요. 만약 5명이었다면 편집할 때 미쳤을 것 같아요.(웃음) 각각 개성이 있고 메시지가 확실한 캐릭터들이에요. 첫 다큐멘터리를 축복 속에서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진: 세 분은 출연 제안 받고 한 번에 승낙했나요?
정: 바로 했던 것 같아요. 이혁상 감독 영상을 너무 좋아하는 팬이었어요. 사실 출연이라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랐어요. 처음엔 상영을 목적으로 하는 다큐멘터리가 아니어서 쉽게 동의했어요. 물론 개봉을 준비하며 같이 이야기 나눴고요. 어디까지가 커밍아웃이고 어디까지가 커밍아웃이 아닐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크게 염려하지 않으며 살면서도 낯선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디까지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까 계산은 계속했거든요. 영화에 출연하고 노출되는 활동을 했지만요. 당시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고 상영까지의 과정 속 토론이 충분했어요. 예상치 못한 위험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는데, 문제가 생겼을 때 개인이 아닌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자는 말이 굉장히 힘이 됐어요.
소: 어릴 적에 감독님을 좋아했다가 차여서,(웃음) 그래서 안 보던 사이였는데, 친구사이에서 커밍아웃 다큐멘터리를 기획 중이라며 제안이 왔어요. 당시 친구사이 홈페이지 내에서 릴레이 커밍아웃을 하고 있었거든요. 친구사이에서는 감독님 이름을 절대 얘기하지 않았어요. 저희의 관계를 알기 때문에 안 할까봐 철저히 비밀로 하다가 마지막에 감독님 이름을 얘기하더라고요.(웃음) 근데 감독님 때문에 해야겠다, 안 해야겠다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이런 시도와 기획이 한국에서 없었고 굉장히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감독님과 응어리를 풀어야 했던 상황들이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관계 청산을 어떻게 해야 할까.(웃음) 근데 오랜만에 봤는데도 감독님이 친구처럼 대해줘서 이 다큐멘터리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님이 달콤한 제안도 많이 했거든요. 소개팅을 시켜준다고 했어요. 제 콘셉트는 사랑에 빠진 게이여서 진짜 소개팅도 했어요. 감독님은 찍고 저는 소개팅을 하고.(웃음) 저도 욜 님과 똑같이 감독님에 대한 신뢰가 당연히 있었고, 찍는 과정에서 이 작품이 사람들에게 큰 위안과 희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트러블 없이 잘 진행됐어요.
이: 이런 얘기 안 했던 것 같은데, 15년 전에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웃음) 다신 그 얘기는 하지 말아 줘.(웃음)
장: 친구사이와 연분홍치마에 대한 믿음이 있었어요. 저보다는 제가 몸담고 있는 단체들의 활동이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동기였어요. 동성애자 커뮤니티가 어떻게 서로를 잘 다독이면서 살아가는지, 성소수자 청소년들, HIV 감염인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사회적 제약들이 잘 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 스파게티나(최영수)의 죽음을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마음속에서 부침이 굉장히 많았던 과정이었어요. 저도 이 영화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커밍아웃해야 했는데, 촬영하고 편집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이 믿음직스럽게 버텨주어 두려움은 있었지만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관객: 다큐멘터리는 기록의 장르인데, 추가하고 싶은 장면이나 빼고 싶은 장면이 있나요?
이: 여러분들이 본 버전이 제 나름의 최종 편집본이에요. 덧붙이기보다는 지금의 버전으로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정: 사실 영화가 잘 기억이 안 나요.(웃음) 일단 통편집을...(웃음)
이: 왜냐하면 헤어져서...
정: 영원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영화 찍으면서 제일 걱정이었어요. 첫 기획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왜 계획대로 하지 않았는지 그 당시에도 몇 차례 감독님께 얘기했어요. 너무 오글거리고 만나는 친구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웃음) 사람의 삶은 모르는 거죠. 남겨진 기록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일단 중요한 건 <종로의 기적> 안에서 HIV 이슈를 다뤘다는 점이에요. 너무 낯설고,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도 터부시하고, 어렵기도 하고, 입 밖으로 꺼내기 두려운 것이었는데, 영화가 굉장히 중요한 매개가 되었어요. 지금도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질병을 친근하게 다루는 활동들을 계속하고 있거든요. 그 시작을 영화가 잘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이 영화가 7,000명 관객으로 하여금 한 번쯤 생각해볼 기회를 준 것이니까요. 마지막 에피소드여서 더 큰 메시지로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해요.
소: 손을 묶어 놓고 찍을걸.(웃음) 제 손이 너무 날아다니더라고요. 그때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손이 너무 현란해요.(웃음) 감독님이 선택한 지점에 대해서는 믿고 가요. 다만 좀 아쉬운 부분이라면, 4명이 함께 모인 장면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어요. 영수 형 에피소드를 볼 때 그런 생각이 나더라고요. 저희는 영화 개봉 이후 자주 만나는데, 빈자리가 있다는 게 가끔 느껴져요.
장: 제 상반신 노출 장면을 뺐으면 좋겠어요. 그런 게 필요하다고 해서 연출했어요. 이용당한 거죠.(웃음)
진: 되게 훈훈하게 시작했는데 이용당했다고 하고.(웃음) 만약 2차 판권을 준비한다면 또 상영회를 통해 네 분이 자리를 마련하면 재밌지 않을까요? <보이후드>(2014) 같이 ‘게이후드’로 20년, 30년 쭉 상영해도 좋을 것 같아요.(웃음) 그때도 이혁상 감독님과 소준문 감독님의 앙금이 남아있다면 더 재미있겠네요.(웃음) 늦게까지 자리 지켜준 관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네 분의 인사 말씀 들으며 자리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성소수자 인권이 나중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후보가 아닌, 좋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나라를 위해 열심히 싸워야겠어요.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정: 지금의 성소수자 인권 토양이 저는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중요한 쟁점이 여전히 이슈가 되고 있고,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위치에 놓여있어요. 또 감시하는 역할도 하고 있잖아요. 2011년에 개봉한 영화지만 2017년에도 의미가 있다는 건, 그 과정 안에 수많은 커밍아웃과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영화 밖에서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습니다.
소: <종로의 기적>이 대통령 선거 날에 상영회를 가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충격의 도가니였어요. 그분이 대통령이 될 줄 모르고 축하의 자리로 흥겹게 상영회 자리를 마련한 건데, 제삿날이 되어버렸죠. 탄핵을 앞두고 또다시 상영되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기도 하고, 이걸 계기로 진짜 탄핵이 돼서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사회가 왔으면 좋겠네요. <종로의 기적>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어요. 이번엔 좀 밝은 쪽으로 인도해 주겠죠.(웃음)
장: 기쁘기도 한데요, 한편으로는 하나도 바뀐 게 없는 이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요. 국가인권기본법으로 필요하다고 노무현 정부 말기 때 차별금지법 제정을 시도했는데, 잘 안 되었어요. 지금 10년째거든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시기상조다, 라는 이야기를 왜 지금까지 듣고 있어야 하나 싶어요.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가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모였는데 계속 찬물을 끼얹고 있어요. 더 맞서 싸워야 해요. 저희는 계속 성소수자의 인권이 목숨과도 같다는 이야기를 해왔어요. 앞으로 더 많이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요. 성소수자들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끈끈한 마음을 갖고 운동을 해야 해요. 시네마달, 인디스페이스를 포함한 독립영화 진영에서 신념을 반영한 굳건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이: <종로의 기적>이 연분홍치마 커밍아웃 다큐멘터리 3부작(<3xFTM>, <레즈비언 정치도전기>, <종로의 기적>) 중 마지막이에요. 보통 삼세판으로 마무리하는데, 4부작으로 하나 더 만들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장병권 주인공이 그 4부 연출을 하게 됐습니다. 네 번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성소수자 부모들이에요. <종로의 기적>보다 더 멋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네 번째 작품으로 이 자리에서 다시 뵈었으면 좋겠습니다.
스토리펀딩 '블랙리스트 배급사 시네마달을 구하라' 후원하기 >>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3011
감독과 주인공들은 <종로의 기적>이 개봉한 지 6, 7년이 되었어도 바뀐 게 하나 없는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며 관객들에게 끝나지 않는 숙제를 던져주었다. 성소수자들의 인권, 차별금지법, 표현의 자유 등은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다. 오는 4월 25일까지 시네마달 스토리 펀딩이 진행된다. <종로의 기적>이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을 불러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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