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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날들> 리뷰: 사람도 사회도 더 이상 병들지 않길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미선 님의 글입니다.
하루 동안 우리를 스치는 수많은 얼굴들은 신기하리만큼 서로 다른 표정을 가졌다. 겉으로 드러나는 표정 뒤에 제각각 어떤 사연들이 감춰져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평범해 보이는 누군가의 얼굴 뒤에는 그가 가진 것의 모든 숨결을 빼앗아버릴 만큼 아픈 것이 숨겨져 있기도 하다. <평범한 날들>은 그런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상처를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 기억하지 않으려는 사람, 그리고 아픔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등장한다. 이 세 사람이 상처를 대하는 태도는 제각각이지만, 그 상처의 근원은 모두 ‘죽음’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병들고 마침내 상처를 대면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Between> 평범한 직장인 ‘한철’(송새벽 분)은 매일 밤 불면증에 시달린다. 일도 잘 안 풀리고 매번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마저도 실패의 연속이다. 그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의 흔적을 더듬는다. 어느 날 아침, 그의 핸드폰엔 그 날이라는 알림이 뜬다. 그가 도착한 곳은 어느 한적한 강가에 있는 무덤이다. 비로소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내가 널 안아도 되겠니”
<Among> ‘효리’(한예리 분)는 자주 가던 카페의 문 앞에 붙은 ‘근조(謹弔)’라는 메모를 보고 발길을 돌린다. 단어의 뜻을 찾아보다 문득 기억 너머의 어떤 사건을 흐릿하게 떠올린다. 어느 날, 5년 동안 만난 남자친구에게 갑작스러운 이별을 통보 받은 효리는 설상가상 교통 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를 다친다. 상처가 다 나았을 무렵 잠에서 깬 효리는 어딘가로 뛰어가다 자신을 아프게 하는 것이 이별이나 교통사고가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녀가 만든 손수건에는 ‘상처를 기억하세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Distance> ‘수혁’(이주승 분)은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고아가 되었다. 숨을 거둔 할아버지 옆에 앉아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담배 한대를 태워 입에 물려드린다. 담담하게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수혁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를 보고 화가 난 채로 그의 뒤를 쫓는다. 그는 할아버지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세 인물은 모두 상처가 있다.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한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모습은 이상하리만치 평범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어딘가 이상하다. 감당할 수 없는 크기의 상처를 한 순간 외면해 버린 후 그것은 고질적인 병이 되어 돌아왔다. 그렇게 인식하지 못한 채 병들어가는 영화 속 세 인물은 서로 다른 이야기 속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ET가 그려진 시계나 근조가 적힌 메모, 그리고 계속해서 등장하는 나뭇잎으로 표현되는 그들의 연결고리는 공통적으로 상실의 고통을 말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지만 상처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어떤 것으로 연결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의 것이든 타인의 것이든 상처를 망각하면 결코 치유되지 못한다. 잔인하리만큼 아픈 대면의 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이나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어야 하는 순간이다. 아픔을 기억하고 곱씹고 극복할 시간을 가지는 것은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몫이니 빨리 잊으라고 말하지 않아야 한다. 개개인의 상처와 상흔이 무시되는 순간 사람도 사회도 병들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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