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 한줄 관람평
송희원 | 일본군 ‘위안부’,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과거와 현재
이현재 | 모두가 알고 있는 고통을 굳이 전시하지 않는다. 필터링의 좋은 예.
박영농 |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소녀상마저 보전할 수 없는 우리
이지윤 | 과거에 맺혀 현재까지 흐르는 눈길, 그리고 죄책감
최지원 |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김은정 | 치유하기 위해 마주해야 할 커다란 아픔
<눈길> 리뷰: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관객기자단 [인디즈] 최지원 님의 글입니다.
소녀들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얼음 위를 걷고 있다. 한 소녀는 죽기 위해, 한 소녀는 그 죽음을 막기 위해. 상처가 가득한 소녀들의 모습과 배경이 되는 설산은 더없이 위태롭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연상케 한다. 아슬아슬 눈길 위를 걷고 있는 이들과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 대한 이야기, 영화 <눈길>이다.
‘위안부’를 소재로 하는 영화는 분명 여타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부담감을 가진다. 지금까지 사회적 이슈로 남아있는 문제인데다 전쟁 성범죄라는 소재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눈길>은 같은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일지라도 <암살>(2015)과는 다른 종류의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눈길>은 <귀향>(2015)과도 다른 길을 택했다. ‘위안부’의 아픈 역사를 자극적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 막연한 분노와 슬픔으로 결론짓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눈에 보이는 영화이다. 이나정 감독은 “끔찍한 폭력의 순간을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지 않으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그 폭력으로 아픔을 겪은 분들이 계시고, 그것이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에서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의 생각은 영화 내에서 섬세한 연출로 구현되었다. 생존자들의 아픔과 고통을 희석시키지 않으면서 수용소에서의 생활적 면모와 그들이 그 시간을 견뎌낼 수 있게 했던 연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눈길>은 노골적인 피해 장면은 축소시킨 반면 수용소에서의 삶, 예를 들면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간식을 나눠먹는 장면들과 같이 구체적인 생활의 현장을 보여준다. 또한 수용소 벽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고 어둠 속 등불에 의지해 같이 책을 읽으며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모습에서 우정과 연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애틋하고 눈물겹지만 과도하게 슬픔을 끌어내지 않는다. 이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평면적으로 소비해왔던 기존의 미디어 방식과는 분명 다르다. 수용소에서도 삶이 있었고 생존자들은 서로 연대를 통해 위로받으며 버텨왔다는 사실을 통해 이전과는 다른 이해의 방식을 권유하는 것이다. 과거 시점과 현재 시점을 교차시켜 보여주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할머니가 된 ‘종분’은 계속해서 ‘영애’의 환영을 보면서도 나름의 생계를 책임지고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를 통해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의 삶 또한 보통의 삶처럼 지속되고 변화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소녀였던 종분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위안부’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분이 영원히 소녀로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사건을 과거의 일로 치부, 생존자들을 어리고 여린 소녀로서 소비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도 엿볼 수 있다.
현재 시점의 종분과 ‘은수’가 보여주는 연대도 주목할 만하다. 종분이 은수를 보호하는 방식은 결코 연민이 아니다. 경찰서에서 종분이 은수를 감싸는 장면에서 두 인물 모두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한 폭력의 피해자라는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종분과 은수의 연대는 영애와 종분의 그것과 연결된다. 수용소에서 서로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이 서로였듯, 노인이 된 종분은 다시 한 소녀를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돕는다. 이들은 고통스럽고 위태로울지라도 연약하지 않다. 연대로 서로를 치유한다. 서로를 구원하는 연대를 이룬 이들을 우리는 연민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는가. 이들이 걸어야 했던 ‘눈길’과 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에 대해서 재고할 수 있는 영화, <눈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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