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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인디돌잔치' <울보> 인디토크

by indiespace_은 2017. 2. 14.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인디돌잔치 <울보>  인디토크


일시 2017년 1월 31일(화) 오후 7시 30분 상영 후

참석 진우 감독 | 배우 장유상, 하윤경, 이서준

진행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상효정 님의 글입니다.


2017년의 첫 인디돌잔치. 개봉 1주년을 맞이한 영화 <울보>가 다시 한 번 관객들을 찾았다. 그 자리에 <울보>를 연출한 이진우 감독과 영화 속 세 울보를 연기한 장유상, 하윤경, 이서준 배우가 함께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각자의 고민들과 느낀 점들을 도란도란 나누며 아이들에게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따듯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안소현 인디스페이스 프로그래머(이하 진행): 축하의 자리에 관객 분들이 이렇게나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먼저 1년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가볍게 들어보도록 하겠다.


이진우 감독(이하 이진우): 영화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 그동안 다른 영화를 찍기 위한 준비를 하면서 지냈다. 


장유상 배우(이하 장유상): ‘이섭’ 역할을 한 장유상이다. 계속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자리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윤경 배우(이하 하윤경): ‘하윤’ 역할을 맡은 하윤경이라고 한다. 추운데 와주셔서 감사하다. 1년간 소소하게 작업을 하면서 지냈다.


이서준 배우(이하 이서준): ‘길수’ 역을 맡은 이서준이다. 영화 촬영, 그리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지내고 있다. 관객 분들과 극장에서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많이 노력하고 있다. 


진행: <울보>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영화가 연민의 감정보다는 애정은 있되 섣불리 재단하지 않고 현실적인 거리를 두면서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가 출발하게 된 계기를 묻고 싶다. 


이진우: 어느 사회복지사로부터 들은 임대아파트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저소득층의 주택 마련을 위해 만들어진 임대아파트에 맞벌이 부부가 많고, 그래서 아이들이 엇나가게 되어 질이 좋지 않다고 낙인이 찍힌다는 이야기였는데, 좋은 취지와는 다르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되었다. 그 이야기가 머릿속에 계속 남아있었다. 본인이 겪은 청소년기와 섞어서 이야기를 구상하게 되었다. 


진행: ‘가출팸’에 대한 취재를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나리오를 만들 때 어떤 과정들이 있었나?


이진우: 영화를 만들거나 이야기를 구상할 때 누구나 그렇겠지만,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다큐멘터리 및 방송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영화나 소설도 참고한다. 그 다음엔 실질적으로 그런 공간이 있는 곳을 가보았다.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멀리서 보기도 했고 얘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말을 붙여보면서 구상을 했다. 또한 상상한 것과 들은 것들도 담겨있다. 


진행: 배우로 캐릭터를 만든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배우님들은 이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어땠는지 궁금하다. 


장유상: 대학교 연극영화과 다닐 때 복도에 오디션 공고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연락을 해서 우연찮게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들 마음속엔 퍼센트만 다를 뿐 누구나 소심하고 조용한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척’하기보다는 내안의 모습들을 잘 꺼내어 보이자고 생각했다. 


하윤경: 길수 역을 맡은 이서준 배우님이 잘 어울릴 것 같다며 추천을 해주어서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대사보다는 표정이나 안의 갈등을 잘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심리적인 갈등이 많은 친구였기에 이 부분이 어려웠지만 중요했다. 


이서준: 4년 전에 이 대본을 처음 봤을 땐 어른들이 악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악역이 없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길수라는 역을 처음 봤을 때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은 사람이 갖는 양가적인 부분이었던 것 같다. 굉장히 힘이 있고 그 무리 속 리더로 책임감도 있지만, 아직 어리고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 두 가지를 어떻게 한 사람으로 잘 녹여낼 수 있을지를 가장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진행: 길수가 가장 상처받기 쉬운 인물인 것 같다. 인상 깊게 본 부분은 길수가 하윤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 순간 아차하며 망설이는 표정을 보이는 부분이다. 이때 길수 표정의 전환에 의도한 바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진우: ‘아차!’하는 느낌이 나길 원했던 것 같다. 이전 단편들을 찍을 땐 그런 장면을 찍은 적이 없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래서 액션 영화의 합을 맞추듯이 당시 여자친구와 합을 맞춰보며 어떻게 하면 감정이 잘 드러날지 동작의 서사를 만들었다. 콘티를 만들어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조건들을 설명한 다음 그대로 촬영했다. 


진행: 은근히 액션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이진우: 싸우는 장면에선 무술 감독님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조금 더 리얼한 ‘개싸움’을 만들 걸 그랬다.(웃음) 



진행: 이 세 배우님들과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 


이진우: 유상 배우는 오디션을 보러 오라는 통보 전화를 걸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너무 좋아하는 것이 느껴졌다.(웃음) 순수하다는 첫 인상을 받았는데, 만났을 때도 이섭 역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어 캐스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일 고민된 점 중 하나가 길수라는 아이는 앞에서 폭력적이지만, 뒤에서는 울어야 하는데, 이런 아이가 관객들을 잘 설득할 수 있을까 였다. 서준 배우가 오디션 당시 보내줬던 프로필 사진과는 다르게 굉장히 예의 바른 문자를 보내주어 상반되게 느껴졌다. 그리고 오디션에서 서준 배우의 우는 표정을 보니 <울보>의 마지막 장면을 대입시켰을 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하윤 역은 오디션을 봐도 마음에 드는 배우가 별로 없었는데, 윤경 배우를 추천받아 만나게 되었다. 하윤은 상황에 대한 반응을 표정으로 표현해야 하는데, 윤경 배우가 표정이 많은 배우라 캐스팅하게 되었다. 


진행: 촬영 중 어려웠던 지점들은 무엇이었는지 네 분에게 질문하고 싶다. 


이진우: 이 영화는 아이들의 정서를 담은 영화인데, 이미 이 시기를 지나온 지 굉장히 오래됐기 때문에 어떻게 묘사해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다. 팔짱 끼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가르치는 듯한 시선은 아닐지 혹은 너무 깊게 들어가 마치 내가 이 아이들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지 그 사이에서 계속 걱정이 됐다.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것이 가장 주된 포인트이자 어려웠던 부분이었다. 


장유상: 나의 학창시절과 다른 모습이라 어떻게 표현할지를 가장 염두에 두었다. 내 안의 이섭다운 모습을 최대한 표현하려 했다. 프리 기간이 짧았고 감독님의 디렉팅이 크게 없어서 재미있고 신선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하윤경: 노안이라는 말을 많이 듣던 배우라서 고등학생 역할 오디션은 여러 번 떨어졌다. 그래서 하윤 역을 맡게 된 것이 단비 같았다. 감독님께 감사드린다.(웃음) 그런데 갑자기 여고생 역할을 하려니 그들의 언어와 톤을 모르겠더라. 그래서 그냥 나대로 하자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감독님이 디테일하게 디렉팅하기 보다는 오케이, 오케이해주는 스타일이라서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결과적으로 재밌고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이서준: 장우상 배우와 동갑이다. 안 믿기겠지만.(웃음) 오히려 고등학생처럼 연기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고등학생이 주로 쓰는 언어, 대사에 대한 부분은 고민을 많이 했다. 학생보다는 사람으로서 많이 생각하려고 했다. 


이진우: 디렉팅을 많이 하지 않는 것이 내 스타일은 아니다. 촬영을 할 때마다 나름대로 방식에 변화를 주는 실험을 한다. 


진행: 장유상 배우님을 처음 봤을 때 어린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다들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 위압적인 표정을 더하면 재미있는 캐릭터가 될 것 같고, 악한 역할을 하면 효과를 배로 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역할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혹은 앞으로 계획이 있는지 궁금하다. 


장유상: 물론 다양한 역할에 대한 욕심은 있다. 본인의 이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반대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사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영화가 있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 것 같다. <세트 플레이>라는 영화이고 이섭과는 확실히 다르다. 아직 촬영도 안 했다.(웃음). 잘해보겠다. 



진행: 배우 자신이 인물을 바라봤을 때, 어떤 것을 중점적으로 가져가려고 했는지 궁금하다. 


하윤경: 하윤이라는 인물은 소통이 서툰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섭과 친해졌을 때도 ‘밀당’을 한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 마음을 열 듯 말 듯 하다가 열지 않는, 하윤의 가장 큰 정서다. 가정에서 비롯된 상처가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길수 패거리 안에 속해있었지만, 거기서도 약간 빠져나와있는 듯 한 모습을 보인다.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마음을 둘 데도 없는, 깊은 곳에 외로움이 있는 친구라고 생각했다. 


진행: 영화의 처음과 끝을 마무리하는 것이 하윤이다. 하윤이 길을 떠나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난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진우: 영화제에서 상영할 땐 하윤이 마지막에 떠나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개봉할 때 다시 넣게 된 이유는 하윤이 가장 주체적인 결정을 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섭도 약간의 변화가 있는데, 아버지에 대한 변화가 그것이다. 길수는 이전에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면서 살게 된다. 세 캐릭터 모두 소외시키지 않으려 했고 아이들에 대한 다양한 면을 생각해볼 수 있게끔 했다. 


관객: 초보 아빠이다.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어 이 영화를 택해서 보게 되었는데, 보는 내내 어둡고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상황 속에 있는 아이들이 밝게 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진우: 정책이 문제면 정책을 바꾸고 사회구조가 문제면 사회구조를 바꾸면 되는데, 사회인식이 바뀌어야 사회구조가 바뀌기도 한다. 무엇이 먼저 바뀌든 어떤 것이라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니까 아이들을 다룬 영화를 만들어서 관객들에게 보여주면 관객들이 아이들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하게 되고 대화를 나누게 되고 그렇게 인식이 바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유상: 뻔한 얘기일 수도 있는데,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충분히 행복하게 잘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윤경: 예전에 비슷한 질문을 받았던 적이 있다. 지금 또 드는 생각이 있는데, 이렇게 고민하고 질문을 하는 게 핵심인 것 같다. 관심을 갖고 봐주고 들어줘야 해결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서준: 편견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개인이 할 수 있는 행동이지 않을까. 유독 청소년에게만 비행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비행 청소년’이라고 부른다. 제도권 안에서 벗어난 것으로 분리시키면서 시선이 부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어른들이 편견 없이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 한다. 더 큰 의미의 사회현상에 있어서도 의견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분리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이고 행동이지 않을까 한다. 


진행: 마지막으로 각자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이진우: 빠른 시일 안에 다음 영화로 찾아오겠다. 


장유상: 다음 작품 준비를 하고 있다. 제목은 <세트 플레이>.(웃음) 이렇게 의미 있는 자리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하윤경: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하다.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5월에는 국립극단에서 공연을 한다. 


이서준: 5월, 7월에 개봉하는 영화로 찾아뵐 수 있을 것 같다. 배우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열심히 하겠다. 이렇게 다시 극장에서 뵐 수 있어서 영광이고 감사하다. 



시간이 지나면 당시엔 미처 몰랐었던 것들이 점차 보이게 되면서 어른이 된다고들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게 된다고. 하지만 이와 동시에 사라지게 되는 것들도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이미 자신은 10대 시절에서 너무 멀어진 것 같아 혹시 가르치듯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혹은 마치 다 이해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는 감독의 말이 맴돈다. 자신의 선택을 스스로 하기도 힘들었던 아이들.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를 고민해보고 질문을 던지고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시작되는 가능성인 것일지도 모른다. 견디기 힘들어 벅찬 울음을 터뜨려야만 했던 이 셋은 이제 어디로 갈까. 그들이 흘렸던 눈물의 짙은 무게가 이제는 행복한 반짝임으로 빛날 수 있기를 빈다.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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