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합니다. 걱정말아요. <걱정말아요> 인터뷰
- <새끼손가락> 김현 감독, <소월길> 신종훈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다영, 상효정,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퀴어영화를 전문 제작, 수입, 배급하는 ‘레인보우팩토리’의 옴니버스 영화 <걱정말아요>가 개봉했다. <애타는 마음>, <새끼손가락>, <소월길> 세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성소수자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하나의 영화로 묶여있지만, 각자 다른 관점과 색깔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각자의 이야기로 짧지만 인상 깊게 풀어낸 <새끼손가락>의 김현 감독과 <소월길>의 신종훈 감독을 만나보았다.
Q. <걱정말아요>의 3가지 에피소드는 퀴어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는 점에서 하나로 묶이고 있지만 각각이 전하는 메시지는 조금씩 다른 것 같다. 그럼에도 <걱정말아요>라는 하나의 제목으로 개봉하게 되었는데, 어떤 하나의 흐름으로 다가가고 싶으셨는지 궁금하다.
신종훈 감독(이하 신): 제목은 레인보우팩토리에서 정했다. 제목이 주는 느낌은 좋다고 생각했다. 퀴어 영화로의 의미에 한정하기 보다는 제목 자체가 가지고 있는 따뜻한 느낌이 좋다.
김현 감독(이하 김): 퀴어라는 공통점만 있고, 세 이야기 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 안에 여러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세 영화를 묶은 것 같다. <걱정말아요>라는 큰 타이틀 아래에 있지만, 그 영화들이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스며들면 좋을 것 같다.
Q. 각 영화를 찍게 된 계기, 작품 의도가 궁금하다.
신: 복합적인 일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박카스 아줌마’ 이야기에 대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장편으로 쓰기에는 버겁다고 느껴서 묵혀두고 있던 중이었는데, 계속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단편으로라도 만들자고 마음을 먹었다. 당시 이태원 쪽에 살고 있었고 오가면서 트렌스젠더 분들이 소월길에 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카스 아줌마들도 그 일대에서 활동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같이 서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됐고 거기서부터 이야기가 풀리게 된 것 같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고 소수자와 소수자가 만나는 이야기다.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람들은 흔히 배척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런 마음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 원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문화강좌로 휴대전화로 본인의 이야기를 만드는 수업을 들었다. 사실 이 작품은 졸업 작품과 비슷하다. 잘 만들어보고 싶어서 욕심을 냈다. 내 얘기를 해보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두에게 첫사랑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당신들에게도 그런 연인이 있지 않냐는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관객들이 '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질문을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Q. 제목으로 쓰인 '새끼손가락’이 가진 의미가 궁금하다.
김: 첫사랑이 이 영화에서 가장 큰 주제다. 쉽게 꺼낼 수 있는 주제인데, 늘 감춰두는 기억이기도 하다. 어느 날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고. 새끼손가락은 우리 몸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그 쓸모에 대해 깊게 생각하지 않는 부위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치게 되면 신경이 쓰이지 않나. 그렇게 첫사랑과 연결 지어 제목을 지었다.
Q. 감독님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라고 들었다.
김: 완전히 실화는 아니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참 많이 좋아해서 시간이 지나도 잘 안 지워지더라. 오랫동안 누군가를 만날 때 그 사람이 기준이 됐던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려고 터미널에 갔는데, 정말 뒷태가 멋있는 사람이 있었다.(웃음) 그 사람이 돌아봤으면 하는 순간 마침 뒤를 돌았고 얼굴을 보니 그 친구였다. 10년만에 본 거다. 그 친구가 나를 못 알아봤다. 그래서 얼굴만 보고 피했는데, 같은 버스를 타게 됐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휴게소에 들렀을 때 아는 척을 했다. 그 친구가 놀라면서 인사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내려왔는데, 그 친구도 나도 10년 동안 많이 변해있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니 나의 기준이 사라졌다. 옛날 기억의 그 친구를 기억하고 상상해왔는데, 모든 게 해소된 느낌이었다. 이 영화를 기획할 때 한 번쯤 보고 싶은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이 보는 이들에게도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Q. ‘석’과 ‘혁’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그들의 풋풋하고 아련한 감정선을 따라가게 된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어떤 점을 가장 신경 썼는지 궁금하다.
김: 내가 설레는 것이 가장 큰 기준이었다. 신경을 썼던 장면은 엔딩이다.
Q. 혁이 하룻밤을 보낸 남자 ‘민’이 혁에게 확인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김: 영화 속에 많이 드러나지 않길 바랐던 부분이다. 관객들이 추측을 하길 바랐다. 마지막에 해소가 되는 부분이 있다. 준이 혁에게 약을 건네주고 먹는 장면도 있다. 확인해보자고 하는 것은 감염인으로서 네(혁)가 감염인지 아닌지 확인해보자는 것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그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조금 숨겨놓고 싶었다. 마지막에는 일상에서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된 혁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 않은 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Q.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외자이다.
김: 내 이름이 외자다.(웃음) 배우들이 다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이름도 멋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붙인 것 같다.
Q. 배경이 된 소월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월길을 배경으로 하게 된 이유와 그 장소가 갖는 의미가 궁금하다.
신: 우연히 밤에 택시를 타고 소월길을 지나간 적이 있다.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느낌이 생경했다. 밤에 봐도 굉장히 예쁜 길인데, 여러 명의 사람들이 쓸쓸하게 서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와서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 이후로 그 공간이 계속 머릿속에 박혀있었고 영화적인 공간이라고 생각되었기에 그곳에서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소월길이라는 이름도 서정적이고.(웃음)
Q. 무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갈등의 떨림을 표현한 ‘점순’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특별히 디렉팅한 바가 있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지?
신: 사실은 10여년 만에 찍는 단편 작품이라 처음엔 촬영 현장이 익숙하지 않아 어려웠다. 박명신 배우님에게는 단순하게 얘기했다. 아들과 있을 때는 밝고 편안했으면 좋겠고 일할 때는 생존과 관련된 것이기에 어느 정도 기계적인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나머지는 명신 배우님이 원래 하시는 대로.(웃음) 실제로 무표정이어도 관객 분들은 많은 것들을 느끼실 것 같다고 생각되었다.
Q. 점순과 아들이 메모를 통해 나누는 대화가 숨바꼭질하는 것처럼 애틋하고 귀엽게 그려졌다.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가져왔는지?
신: 시나리오를 다 쓰고 난 다음, 콘티를 그리는 회의를 할 때 나왔던 아이디어다. 소개로 알게 된 작가 친구가 실제로 자신의 오빠와 그런 식으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재미있는 요소라 생각되어 차용하게 되었다. 점순과 아들은 단 둘이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만, 서로 겹치는 시간이 얼마 없으니 보물찾기 하듯 시간차를 두고 마음이 전달되는 느낌을 그리고 싶었다.
Q. 어떻게 보면 '은지'와 점순 모두 아들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들이 그들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되면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신: 지인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줬을 때 아들이 너무 착한 것 같다는 평이 나왔는데, 나는 착한 사람 성애자다.(웃음) 은지와의 사랑이 계속 이어질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였으면 좋겠다. 물론 무지에서 오는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엄마의 비밀로 인해 힘들고 괴로울 것이다. 그럼에도 이해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담겨있다.
Q. 점순이 일하는 곳에서 그녀를 좋아하는 주방장이 등장한다. 주된 사건과 동떨어진 인물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도로 이 인물을 그렸는지 궁금하다.
신: 인물을 계획해서 쓴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점순의 삶에서 밤에 일하는 것만이 다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낮에는 식당에서 일한다는 설정을 넣게 되었다. 그런 그녀에게 호감이 있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이것도 나의 바람이 들어갔는데, 점순이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모습을 넣고 싶었다.
Q. 해피엔딩인 듯하다. 앞으로 점순은 은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될까?
신: 뒷이야기를 더 생각해 본다면, 점순과 주방장, 은지와 아들까지 이 네 명이 다같이 식사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된다. 주방장과의 '썰’이 더 있을 수 있고.(웃음) 그리고 점순은 공감과 연민을 가진 캐릭터이기 때문에 아들과 은지가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면, 절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진 않을 것 같다.
Q. 특별히 기억에 남는 촬영 에피소드나 들려주고 싶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신: 인서트 컷을 찍으려고 소월길에 다시 갔던 적이 있다. 그때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촬영협조를 많이 해줬다. 영업방해가 되지 않을지 혹은 드러나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을지 조심스러웠는데, 흔쾌히 허락해주어 찍게 됐다. 초반에 빠르게 지나가는 컷이라서 놓치기 쉽다. 거기 나온 분들은 실제로 그곳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많이 남는다.
김: 재미있는 상황들이 많이 있었다.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준비 차 촬영 전에 리딩을 많이 했다. 리딩을 하면서 배우들에게 ‘너는 왜 이 친구를 좋아해?’라고 많이 물어봤다. 서로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도 했고. 물론 처음에는 그 답이 나오지 않았다. ‘뭐래? 나는 연기하라는 대로 하고 있는데’의 반응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답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내가 카메라 세팅하는 사이 배우들끼리 리딩을 하는데, 서로 ‘좋아해’, ‘나도’ 이러고 있더라.(웃음) 그리고 영화 뒷부분에 혁은 자취방에서 청소하고 석은 방에 못 들어가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그 두 사람이 나눈 대사는 시나리오 상에 없었다. 감정을 이어나가기 위해 컷을 하지 않고 기다리던 상황에서 ‘왜 그랬어?’, ‘가’라는 대사들이 나왔고 시나리오보다 훨씬 좋은 장면이 나오게 되었다. 배우들이 이해를 많이 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웠다. 다 떠나서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시나리오에 없던 키스신도 배우들이 알아서 한 거다.(웃음)
Q. 마지막으로 앞으로 만날 관객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린다.
신: 선입견들이 없어지면 좋겠다.
김: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으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인간이라면 모두 한번쯤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아닐까. 때론 유쾌하고 솔직하게, 또 설렘 가득하고 아련하게, 가끔은 더없이 무겁고 어렵게만 다가오는 이 사랑이라는 감정은 성소수자들에게는 그 상황과 사회의 시선들 때문에 배로 기쁠 때도 있고 또 배로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걱정말아요>를 보고 감독님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연대하는 이들의 모습에 그런 걱정들은 어느새 녹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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