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세상의 종말이 올까 인디돌잔치 <그들이 죽었다> 인디토크 기록
일시: 2016년 12월 27일(화)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백재호 감독, 김상석 배우
진행: 정지혜 씨네21 기자
*관객기자단 [인디즈] 홍수지 님의 글입니다.
이번 인디돌잔치에서는 백재호 감독의 <그들이 죽었다> 상영과 인디토크가 있었다. 영화는 대학로의 무명배우들이 주축이 되며 지구 종말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야기이다. 이날 인디토크에는 정지혜 씨네21 기자, 백재호 감독, 김상석 배우가 참여하였다.
정지혜 씨네21 기자(이하 정): 영화가 2015년에 개봉했고 1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만나는 자리다. 영화를 만든 계기를 생각해보려면 2012년 대선이 있던 때로 거슬러가야 할 것 같다.
백재호 감독(이하 백): 배우로 활동하다가 김상석 배우와 <별일아니다>(2013)로 처음 영화를 직접 찍어봤다. 김상석 배우가 연출한 영화를 찍고 나서 내 영화를 찍기 시작했는데, 그게 2012년 가을이었다. 찍는 중에 대선 결과가 나왔고 그걸 보고 그만뒀다. 영화를 찍느라 사회를 외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들을 담아서 새롭게 시나리오를 쓴 것이 <그들이 죽었다>이다.
정: 영화를 찍고 있던 상태에서 그걸 그만두고 새롭게 찍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굉장히 큰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만큼 감독님에게 괴로운 일이었을 것 같다.
백: 김상석 배우와 둘이서 술집에서 개표방송을 봤다.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결과가 나와서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 펑펑 울었다.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자신에 대한 화도 많이 났다.
정: 김상석 배우님은 이런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봤다. 같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김상석 배우(이하 김): 신세 한탄은 <별일아니다>에서 한 번 해봤다. 이런 이야기를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겠냐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사회적으로 여러 일들이 생기게 되어서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 사이의 공백은 친구였기 때문에 기다려줄 수 있었던 것 같다. 백재호 감독이 부산에 틀어박혀서 시나리오를 고쳐왔다. 고친 시나리오가 훨씬 좋다고 생각했고 다시 추진력을 얻어서 찍게 됐다.
정: 2012년 12월 21일에 과연 세상의 종말이 올까, 하는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되는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이 감독님에게 어렸을 때부터 화두였다고 들었다. 영화가 현실적 고민과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 같다.
백: 나도 그렇고 영화 속 ‘상석’이라는 캐릭터도 우유부단하기 때문에 죽음이라는 큰일이 눈앞에 있지 않으면 쉽게 움직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영화 속 일들이 다 겪어본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경험한 일이 하나 있다.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붙잡더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왜 그렇게 여유롭게 사냐”고 물었던 일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남은 시간이 별로 없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걸 자주 잊고 해야 할 일들을 미룬다. 그런 것들을 상기시키고 싶어서 영화 속에서 계속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정: 실명으로 극 중 인물들을 소화했다. 어떤 부분에서는 부담되는 점이 있었을 것 같다.
김: 처음 감독이 “너희 이름 아무도 모르니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라도 이름을 각인하게 하자”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별생각 없었는데, 김태희 배우가 본인의 이름에 자부심이 있다.(웃음) 김태희 배우가 강력하게 찬성을 했다. 불편한 점은 딱히 없었다. 영화가 규모가 작다. 평소처럼 대화하다가 영화를 찍게 되는 상황에서도 헷갈리지는 않았다.
정: 영화를 다시 보니 사운드가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스 소리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인물들은 그것과 무관한 이야기를 한다. 어떤 의도로 그런 소리들을 넣게 되었는지?
백: 2012년의 정치, 사회에 대한 뉴스들이다. 편집을 할 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그때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이 지금의 이런 상황을 발생시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런 소리들을 넣게 되었다.
관객: 감독님과 배우님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들어간 것 같다. 영화가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런데 결말은 종말론이라는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간다. 마지막의 ‘컷’이라는 용어 자체도 영화용어다. 영화적으로 결말을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백: <그들이 죽었다>를 만들 때 이 세상이 멸망하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서 결말이 그렇게 맺어진 것 같다. 앞의 이야기들도 페이크 다큐멘터리 같은 부분들이 있지만, 어쨌건 영화 속 이야기다. 앞의 이야기나 뒤의 이야기나 어느 것이 더 판타지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
관객: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다 쓰고 촬영에 들어갔는지, 영화를 찍으면서 계속 바꿨는지 궁금하다.
김: 세부적인 장면들을 완벽하게 쓰고 들어간 것은 아니다. 리허설을 하면서 수정된 장면도 대단히 많다. 독립영화치고는 럭셔리하게 찍었다.(웃음) 50회차 정도로 찍었다. 시간이 되면 모여서 하루에 한 씬 찍고 끝내고, 이런 식이었다. 다시는 이런 방식으로 못 찍을 것 같긴 하다. 그런 방식으로 찍게 되면서 생각들이 덧붙여져 영화가 완성됐다.
백: 기획을 할 때부터 계속 같이 찍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생각했다. 연출을 많이 해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을 시도했다. 공부도 많이 하고 실험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관객: 혜화동에 5년 넘게 살고 있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배경들이 눈에 익었다. 그 공간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백: 주인공들이 배우이기 때문에 그 근처에 모여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태희 배우와 김상석 배우도 그곳에 살고 영화 속의 옥탑방은 촬영감독 역으로 출연하는 배우의 집이다. 가장 많이 본, 편한 곳으로 선택했다. ‘주연배우’ 포장마차는 아현동에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관객: 일출 장면을 기대했는데, 해가 이미 떠 있어서 아쉬웠다.
백: 일출의 장면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지 않았고 우리 장비로 멋있게 담기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장면을 굳이 영화에서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관객: 극 중 ‘재호’가 쓴 시나리오 <차마 말하지 못해>의 경우 염두에 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하다. ‘화’가 노래방 도우미로 설정된 이유도 궁금하다.
백: <차마 말하지 못해>는 있었던 시나리오고 원래 찍으려고 했던 영화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로 설정되어있었다. 그런데 찍으려고 하니 스태프들을 데려올 상황이 못 됐다. 나를 찍어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더 가볍고 실험 가능한 시나리오를 쓰려고 마음먹고 <그래도 괜찮아>를 썼다. 그 시나리오에서 화는 대학로의 바에서 일하는, 배우를 꿈꾸는 인물이었다. 영화를 다시 쓰면서 주인공들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상석이라는 캐릭터가 좋게 보이지 않는 행동들을 했으면 싶었다. 그런 부분에서 상석은 다른 사람들에게 못하는 행동을 자기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영화 속 상석이 노래방 도우미인 화를 상상해 낼 거라고 생각했다.
관객: 몇몇 장면에서 앞에 피사체가 걸려 있곤 하다. 의도한 것인지 궁금하다.
백: 특별한 의도는 없었던 것 같다. 평소에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한다. 직감으로 찍는다.
관객: 그들이 죽은 이유가 마치 뉴스 때문인 것처럼 느껴졌다. 감독님이 보여주고 싶은 문제의식이 정치적인 부분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하다.
백: 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이 정치적인 것들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에서 넣은 것도 있고 힌트로 넣기도 했다. 마지막에 상석과 화가 여행을 가서 듣는 뉴스는 내가 녹음한 것이다. 그건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그걸 알아챈 관객은 그 장면이 상석의 영화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며 상석이 바라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관객: 영화 속에서 또 영화를 찍는 구성이다. 현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는 지점이 많다. 아이폰이 4였다가 5였다가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휴대전화를 구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백: 어쨌든 다 허구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영화에 현실은 하나도 없다. 실험적인 것들을 많이 시도해봤다. 휴대전화를 번갈아 사용한 것은 관객들이 이것이 허구인 것을 알아차렸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랬던 것이다.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이 영화가 영화인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일반 관객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런 것을 알아차릴 수 있는지, 나름의 장난을 많이 친 것 같다.
정: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린다.
백: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하다. 하고 싶은 일이지만 못하는 것은 배우뿐 아니라 다른 직업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다들 원하시는 일을 이루셨으면. 응원을 드리고 싶다.
김: 올해는 안 좋은 일들이 많았는데, 내년에는 좋은 일들이 있길 바란다. 영화처럼 우리 인생에도 판타지 같은 순간들이 꼭 올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의 죽음이 아닌 세상의 종말을 상상한다는 것은 죽음이라는 가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종말은 개인의 죽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세상의 구조적인 문제까지도 모두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그들이 죽었다>는 이 세상에 대한 기대보다도 다른 세상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더 그럴듯한, 죽음이 아닌 종말을 바라는 세상에서 만들어진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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