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의 고단한 하루가 건네는 위로 <최악의 하루>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9월 10일(토) 오후 2시 상영 후
참석: 김종관 감독
진행: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세리 님의 글입니다. (사진 제공: 김은혜 님)
어느 가을 문턱, 서촌과 남산. 하루에 세 남자를 만난 한 여자의 이야기. 그녀의 하루를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하여. 김종관 감독,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와 함께 했다.
김현민 영화저널리스트(이하 진행): 안녕하세요, 감독님. 영화 개봉 후 어떻게 지내시고 계신가요?
김종관 감독(이하 김): 개봉 2주차까지는 GV, 그리고 주말마다 무대 인사를 했어요. 그런 것들이 정리 되어가고 있고, 다음 영화 찍은 거 후반 작업하고 있습니다.
진행: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실 것 같은데, 차기작이 ‘지나가는 마음들: 더 테이블’이라는 옴니버스 영화죠?
김: 네, 옴니버스 구성인데, 제목은 <더 테이블>로 확정하고 ‘지나가는 마음들’은 떼버렸어요. <최악의 하루>가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담았듯 그 작품도 마찬가지로 한정된 공간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대한 것입니다. 카페의 한 테이블에서 벌어지는 하루 동안의 이야기에요.
진행: 감독님은 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두세요?
김: 한정적인 공간에 시간을 쓰는 장르를 좋아해요. 뿐만 아니라 두 작품 다 저예산, 작은 사이즈의 영화인데, 촬영 시 용이한 점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저의 취향인 것 같아요.
진행: 영화를 처음 관람한 분도 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본 분도 이 자리에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최악의 하루>를 극장에서 두 번 봤는데, 이희준 배우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거의 자지러지더라고요. 예상하신 반응인가요?
김: 네, 저는 운철 역이 처음부터 재미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캐스팅이 잘 안 되더라고요. 이희준 배우와는 원래 인연이 없었고 한예리 배우를 통해서 캐스팅하게 되었어요. 겨우 캐스팅했는데, 캐릭터의 재미를 잘 알더라고요. 매우 즐겁게 작업했죠.
진행: 이희준 배우와 한예리 배우는 <환상속의 그대>(2013)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보여준 적이 있지요. 그 잔상이 남아서 그런지 둘의 회상신이 되게 애틋하더라고요.
김: 아주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때문에 캐스팅에서 오는 재미가 많아요. 이와세 료 배우도 시나리오를 써놓고 영화를 진행하는 중에 캐스팅했어요. <한여름의 판타지아>(2015)에서의 느낌이 좋았어요. 그 영화에서는 고조 시에 머무는 한 남자였잖아요. 우연히 <한여름의 판타지아>와 어떤 연계가 생기죠. 이희준 배우와 한예리 배우는 둘이 세 편째 함께 작업을 했어요. 단편까지 하면 더 많을 텐데, <환상속의 그대>, <해무>(2014) 등의 영화를 했기 때문에 팀워크가 맞아요. 서로 관계가 다져진 사람들끼리의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진행: 두 배우가 함께한 장면은 밀도 있고 팽팽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카페신에서 희대의 명대사들이 터져 나왔잖아요. “저 행복해지지 않으려고요”, “진실이 어떻게 진심을 이겨요?” 등의.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 시퀀스 구성이 재미있었던 게, 사운드가 좋았어요. 잔잔한 노래가 분위기와 잘 맞았고. 진심을 보이기 전 운철이 구구절절 이야기 할 때는 카메라가 앞에서 모습을 비추는데, 은희를 보여줄 때는 오버 숄더로 보여주더라고요. 운철이 진심을 얘기해야 할 때 앵글은 은희 어깨를 걸고 앞모습을 비추거든요. 무섭기도 했어요. 정면을 보는 순간이잖아요. 저 사람의 진심을 만나야 하는 순간인가 싶어 그 앵글이 좋더라고요.
김: 적은 회차로 영화를 찍었어요. 16회 차로 장편을 찍었으니, 16일 동안 찍었다는 거예요. 보통 상업 영화는 4-50회 하죠. 이희준 배우는 특별출연이에요. 특별출연 의향도 원래 있었지만, 3일 찍었으니 특별 출연이 맞지 않냐고 말씀하셔서 그렇게 하게 됐죠. 그럼에도 출연 분량이 굉장히 많아요. 어쨌든 그 카페 장면도 하루 동안 찍었어요. 빨리 찍으면서 작전을 잘 짜야 했어요. 대화신이 길기 때문에 앵글의 방향을 감정에 맞추어 배우마다 포인트를 줬어요. 편집할 때도 집중했고요.
진행: 미묘하게 회상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 회상신은 여름이고, 현재는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톤이 다른데, 그 톤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김: 하루 동안의 일을 그리지만, 그 장면만 유일하게 플래시백이죠. 그 플래시백 삽입이 운철과 은희 사이의 통속적, 비극적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며 관계에서 종종 느껴요, 욕하지 않고도 자기를 포장하는 비겁함 같은 것. 그런 것에 대한 쓸쓸함이 있는데, 정작 좋았던 모습을 보여주면 비극이 재미있게 잘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 장면을 통해 세 남자에 따라 바뀌는 은희의 성격이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겠다 생각했고요. 남산의 어떤 숲길을 걸어가며 좋았던 일을 회상하기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진행: 굉장히 섹슈얼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덩치 차이가 큰 데서 오는 긴장감도 있고. 다들 감상이 다를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이 영화가 편안하게 따라가는 영화인가 싶다가 무서워졌어요. 인터뷰 장면에서 현경(기자)은 료헤이에게 왜 주인공들을 괴롭히느냐 물어보죠. 그러나 료헤이가 각성 된 듯 정신을 차려보니 자리에 현경이 없고요. 그리고 료헤이는 어딘가로 향하는데, 그것이 은희가 있는 남산이에요.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한 눈빛으로 은희를 마주치죠. 저는 이것이 작가가 자신의 등장인물을 만나러 가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곤경에 처한 주인공을 만나 그를 위로하려고 하는 작가의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이 하루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어주고 은희는 결국 이름을 이야기하고 춤까지 보여줘요. 그 장면들이 인상 깊었어요. 이 영화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구나 생각했어요.
김: 두 가지 관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라 의도는 했죠. 은희의 관점에서 흘러가는 것과 료헤이 자체의 이야기. 연기를 하는 배우와, 창작을 하는 작가라는 ‘허구’라는 테마. 은희가 거짓말을 하지만, 보편적인 어떤 성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관계에 따라 성격을 바꾸는 부분이 저에게도 있고. 사람들마다 관계에 처한 위치가 다르죠. 그리고 한예리 배우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어요. “은희는 만나는 사람마다 원하는 역할을 연기해주는 것 같다. 자기가 없는 사람 같다.”라고. 저는 그게 일면 맞다 생각해요. 나 또한 관계에 솔직한 사람일까 생각했어요. 제가 사람 관계에는 미숙해도 작업을 통해서는 솔직하고자 노력했어요. 경험을 투영하는 솔직함이 아니라 창작 작업 안에는 저보다 더 솔직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죠. 그것까지 범주를 확장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은희 이야기로 읽힐 수 있고, 또는 료헤이의 자전일 수 있고. 확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의도하려 했죠.
진행: 초고를 2014년 겨울에 4일 만에 쓰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상태가 궁금해요.
김: 주인공 가운데 누구와 가깝냐 물어보면 은희라고 해요. 사람들은 관계마다 성격을 바꾸고 끝없는 방황을 하며 살잖아요. 이것을 쓸 때는 은희처럼 살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 모티프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일상의 패턴들을 가지고 그 안에 등장인물을 넣고 이야기하다 보니 금방 써졌죠.
진행: 감독님은 단순한 일을 간단하게 쓰고 싶다 하셨는데, 결과적으로 복잡한 층위를 가진 영화가 된 것 같아요. 그런 작품들은 오히려 쓸 때는 빨리 써진다고 생각해요. 힘을 빼고 쓰면 심오한 층위들이 쌓이는 것 같고요. 은희가 모습을 바꾸고 거짓말까지 하는 건 사랑 받기 위함인 것 같아요. 은희가 남자친구 만나러 갈 때는 머리를 풀고 운철 앞에서는 묶고 있는데, 그것에도 의도가 있나요?
김: 은희의 심리를 따라가는 거에요. 은희가 미묘한 톤으로 성격을 바꾸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강조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진행: 이야기는 크게 료헤이와 은희를 따라가요. 기본적으로 가지고 가는 정서가 연민 같아요. 그 연민은 둘 다 온종일 밥을 먹지 않는데서 나오는 것 같고요. 그들이 차만 마시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정보 때문에 더욱 고단하다 생각돼요.
관객: <조금만 더 가까이>(2010)의 주연도 운철과 은희로 이름이 같아 흥미롭습니다. 그에 대한 의도가 있나요?
김: 제가 이름 짓는 것을 싫어해요. 근데 은희라는 이름에는 무언가 있는 것 같아요. 정유미 배우가 맡은 은희와 지금의 은희는 달라졌는데, 비슷한 점은 있어요. <더 테이블>에서 한예리 배우가 은희로 나오고 거기서는 그냥 거짓이 아니라 전문적인 사기를 쳐요. 개봉은 내년 봄일 것 같아요.
관객: 영화 카피는 ‘폭발직전의 여름로맨스’인데, 해피엔딩을 겨울로 설정하신 이유가 뭔가요? 은희는 여름을 싫어한다고도 했는데.
김: 폭발직전의 여름로맨스라고는 하지만, 작년 오늘이 크랭크인 날이었어요. 9월 말까지 찍었고 초가을 배경이었죠. 배우들도 후드티를 입고 있잖아요. 개봉 시점이 여름이어서 여름이라고 한 거죠. 바람도 좋고 햇빛도 좋은 가을의 느낌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은희는 다양한 감정으로 걸어요. 눈 내리는 길을 걷는, 끝도 없이 가는, 방황하는 한 여자. 어딘가 외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해피엔딩을 바라는 긍정이 있되, 그 속에는 쓸쓸한 한 인간으로서의 심리가 있어요. 그것이 겨울의 느낌과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진행: 시나리오 외에 다른 글도 쓰시잖아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깊은 애정이 있으신 것 같아요. 행복과 슬픔, 밝음과 어둠이 함께 가는 일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더욱 작가에 대한 영화 같아요. 마지막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김: 많은 사람들이 보게끔 하고 싶었어요. 오신 분들이 전파자가 되기를 바라며 많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이고, 영화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와 친구가 되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관계의 복잡다단한 층위부터 창작자의 태도까지. 그 고민의 시간을 오롯이 아우르고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관객은 은희가 맺은 관계에 어떤 서늘함을 느끼게 되지만, 이 담백한 초연함이 때로는 나를 더욱 편하게 만들기도 한다. 관객은 온종일 은희의 긴장을 따라가지만, 그 하루의 끝에는 이완 되는 감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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