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통해 본 우리들의 이야기
- <리코더 시험>, <옆 구르기>,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그래도 그때가 좋았지” 어렸을 때부터 주변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당시에 난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른들의 말처럼 이 시절이 좋은 거라면 어른이 된 나는 무척 끔찍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벌써부터 주변에 머리 아픈 일들 투성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른들의 말이 맞을까? 시간은 언제나 공평하게 흐르고 어린 시절은 대부분 미화되기 마련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의 고민은 종종 무시되어왔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아역들은 감초 역할 정도로만 소비된다. 나는 아이들의 진짜 목소리가 듣고 싶었고 마침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이 갈증을 해소해주었다. 영화 속 선이와 지아만 보더라도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걱정과 고민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싸운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일련의 과정을 쭉 지켜보다보면 지금 어른들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표현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관계를 맺고 끊음에 있어서 느끼는 감정과 상처는 다 똑같다. 그래서 더 무시당해서는 안 될 아이들의 소중한 이야기가 담긴 몇 편의 영화를 소개하려 한다. <리코더시험>(2011), <옆 구르기>(2014), <시선사이> 중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2015)를 통해 아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 <리코더 시험> : 사랑받기 위한 마음, 그 원초적인 본능
초등학생 은희(황정원 분)는 곧 리코더 시험을 앞두고 있다. 리코더를 투투- 부는 게 처음엔 어려웠지만, 조금씩 실력이 늘면서 금방 재미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각자의 일에 바쁜 가족들은 아무도 리코더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괜히 집에서 리코더를 삑삑 불어도 돌아오는 건 아버지의 싸늘한 눈빛과 질책뿐이다. 그럼에도 은희는 끝까지 리코더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은희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 리코더시험을 준비했을까. 영화 속 가족은 겉으로는 참 평범한 듯 보인다. 그러나 집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은 마치 외줄타기를 하듯 매순간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순간에 놓여있다. 엄마와 아빠는 어딘가 항상 지쳐있고 피곤해 보인다. 리코더는 은희의 감정을 대신 표출해주는 유일한 출구이자 한번만이라도 자신의 진짜 소리를 제대로 들어주기를 바랐던 소심한 마음이다.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금의 따뜻한 눈빛과 대답만을 바랄 뿐인데도 상대방의 무심한 태도 때문에 매번 관계는 뒤틀리게 된다. 감정을 표현하고 공유한다는 게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워진다는 걸 몸소 겪게 된다. 조금만 잘못 불면 삑- 하고 음정이 나가는 리코더처럼 우리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쉽게 금이 간다.
2. <옆 구르기> :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뭐든 다 잘하고 싶은 그 마음
사춘기 시절, 노래를 잘 못하는 나는 가창시험이 있을 때마다 늘 자진해서 반주를 맡곤 했고, 운동신경도 없어서 체육평가가 있는 날엔 늘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이 일들의 배후에는 전부 내가 좋아했던 같은 반 아이들이 있었다. 지각을 자주 하는 정은(최정은 분)은 벌 받을 때마다 좋아하는 아이를 마주쳐서 창피하다. 그런데 맙소사, 그 아이 앞에서 ‘옆 구르기’를 해야 한다니! 정은은 그 아이 앞에서 옆 구르기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한다. 이런 정은의 모습을 보다 보면 우리의 그 시절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그땐 그랬지’하고 추억에 젖게 된다. 하지만 정은에게 공감하는 우리는 비단 그때의 우리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지금의 우리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 정은도, 그때의 우리도, 지금의 우리도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 사람 앞에선 뭐든 다 잘하고 싶다. 아마 미래의 우리도 역시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잘 보이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들을 하고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 : 당신에겐 ‘그깟’일지 몰라도
청소년기를 떠올려보면 지긋지긋했던 공부와 함께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수많은 간식들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먹었던 그 시절, 우리의 엥겔지수는 어마무시하게 높았을 것이다. 점심 전 매점에서 빵과 우유, 점심 후 아이스크림, 하굣길 떡볶이 그리고 틈틈이 먹는 초콜릿까지. 지수(박지수 분)와 친구들은 그중에서도 떡볶이를 특히 좋아한다. 떡볶이 마니아인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떨어진 교문 폐쇄령은 곧 학교 앞 분식집 금지령과 다름 아니다. 지수는 이에 맞서 어떻게든 떡볶이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한다. 누군가는 ‘그깟 떡볶이가 뭐라고’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뉘앙스의 말, 어쩐지 너무 익숙하지 않은가? 우린 자주 공부나 취업 외의 것은 잠시 미뤄두라고, 효율적이지 않은 것은 하지 말라고 들어왔다. 그게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이어도 말이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하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하다. 마침내 떡볶이를 먹는 데 성공한 지수와 친구들의 모습을 보라. 누군가에겐 영화나 음악이, 누군가에겐 덕질이, 누군가에겐 떡볶이가 진정한 행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에겐 ‘그깟’일지 몰라도 말이다.
세 편의 영화들처럼 아이들은 저마다의 사연과 고민을 갖고 있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복잡했던 어린 시절을 통해 어른이 된 지금의 ‘나’를 되돌아볼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건 ‘균형’이란 중요하다. 이제껏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만이 소비되진 않았는지 우리 주변을 한번 둘러보자. 계속 묻혔던 아이들의 고민들이 더욱더 수면 위로 올라오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힘이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 역시 주목받아야 한다. 그래서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이 세상에 울리기를 바란다. 앞서 언급했듯 세대 별로 갖는 고민들은 다양하고 그것들 사이의 순위는 매길 수가 없다. 아이들의 고민들 역시 현재의 나를 둘러싼 일들과 크게 다를 게 없기에 우리는 더욱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면 이 세상이 조금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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