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노동의 초상 - 청춘들이 노동에 대처하는 자세
- <10분>, <코알라>, <청춘유예>, <홀리워킹데이>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은혜,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많은 20대 청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회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아르바이트나 취업 등으로 노동을 실제적으로 접한다. 영화에서는 청춘들의 생계를 간접적으로 표현했지만, 그 시대의 초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기도 한다. 그동안 청춘들이 즐기거나 방황했던 영화들이 줄지어 나왔다면 지금 소개할 영화는 청춘들이 어떻게 생계를 꾸려나가면서 미래를 향해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청춘들이 어떻게 땀 흘리며 일하는지 관찰하고자 한다.
1. 이용승 감독의 <10분>(2013) :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고 싶어요
아마 20대 청춘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인 취업. ‘정직원으로 출근’하기 위해 대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약 4년간 정말 미칠 듯이 학원을 다니고 이력서를 수십 곳에 넣기도 하고 경력을 쌓기 위해 인턴도 지원하지 않던가. 드라마로 나온 ‘미생’과 비슷하게 계약직의 서러움을 표현한 <10분>은 드라마보다 더욱 회사의 현실을 망원경으로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다. 방송사 PD시험을 준비하는 호찬(백종환 분)은 시험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공공기관 한국콘텐츠센터에서 인턴으로 잠시 일을 하게 된다. 정직원 만큼 일도 성실하게 하여 다른 직원들에게 인정받는다. 어느 날, 정직원 채용공고가 나자 직원들의 부추김으로 호찬도 안정된 직장을 갖는다는 부푼 꿈을 안고 입사 지원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낙하산으로 들어온 여직원이 정직원이 되고 호찬은 다시 인턴의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직원들은 호찬을 도와주겠다고 말은 하나 이는 정작 남의 일. 새로 온 신입에게 관심이 쏠리고 호찬은 점차 다른 직원들과 갈등을 겪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에서 신입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쳐놓고 이를 호찬이 잘못했다고 탓하며 사무실은 완전 뒤집어진다. 신입은 그 일로 바로 퇴사해버리고 부장은 호찬에게 정규직 자리를 제안한다. 영화의 제목인 ‘10분’은 호찬이 결정할 시간을 의미한다. 회사는 모든 직원들이 함께 해나가는 곳이 절대 아닌, 각자 할 일만 잘하면 그만인 곳이라는 걸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슬프게도 남의 얘기라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년 후 혹은 당장 눈앞에 보인 현실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호찬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 김주환 감독의 <코알라>(2013) : 창업의 웃픈 현실
어떤 직장을 다니든 그 마지막 종착역은 치킨가게 창업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한다. 나만의 가게를 꾸려나가고 싶은 로망이 있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가게 창업이라는 그 과정을 이 영화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연기학원에서 만난 동빈(박영서 분)과 종익(송유하 분)은 내 집 마련의 꿈을 갖는다. 동빈은 연기를 포기하고 일반 회사에 들어갔으나 그곳에서도 실력 부족으로 허우적대고, 종익은 오디션만 주구장창 보러 다니지만 매번 떨어진다. 그렇게 둘은 합심하여 수제버거 창업을 도모하기로 결정하고 알바생 우리(박진주 분)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수제버거 가게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대박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손님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높은 재료비와 임대료를 갚는 것만도 버겁고 신메뉴를 계속해서 개발해 나가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제목 ‘코알라’는 ‘꽐라’를 빗대어 술에 알딸딸하게 취한 이 청춘들을 일컫고 있다. 밤마다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걱정 다 날려버리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지금의 청춘들이 꽐라가 되어 쓰디쓴 현실에서 벗어나 잠깐이나마 단 꿈을 꾸고자 하는 작은 바람이 엿보였다. 영화는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이면에 있는 창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 이들과 함께 우리들 역시 술로 ‘웃픈’ 나날을 보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아직 젊으니까 희망찬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으로 이 영화는 서로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응원해주고 있다. 그러니 우리도 힘내서 살아보자.
3. 안창규 감독의 <청춘유예>(2012) : 청년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상품이 아니다
“정의란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는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여기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란, 무엇보다 ‘경제적 안전’, ‘사회적 안전’, ‘신체적 안전’의 보장이다. 존엄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꾸려나가려면 세 가지 안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안창규 감독의 <청춘유예>는 ‘청년 유니온’의 활동을 담으며 이 시대의 정의를 묻고 답한다. 2010년에 청년을 대변하는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 유니온이 생겼다. 일반적인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하는 청년 노동자(아르바이트, 단기 계약직 등)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새로운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의 초반부, 청년들은 여러 노동을 전전하며 겪었던 잔혹한 현실을 털어놓는다. 그런데 영화는 이들의 모습을 한탄, 슬픔, 무기력으로만 흘러가게 두지 않는다. 오히려 청년 유니온 깃발 아래에 모여든 이들은 작지만 큰 움직임을 시작한다. 그 움직임들 중에서 영화는 ‘주휴수당’과 ‘피자배달 30분제 폐지’에 주목한다. 노동자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청년들은 함께 목소리를 냈으며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다. 그렇게 <청춘유예>는 청춘의 얼굴을 담으며 정의를 묻고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쟁취하기 위한 청춘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영화의 오프닝, 컨베이어 벨트에서 인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애니메이션으로 등장한다. 초,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 컨베이어 벨트에 놓인 인형은 상자에 잘 포장된 뒤 매장 진열장에 놓인다. 선택된 상품은 팔리고 그렇지 못한 상품은 계속 남는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 공연에서 그간의 활동을 녹여낸 자작곡을 부르는 청년 유니온 조합원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노래는 ‘청춘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선언처럼 들린다. 2012년 영화 제작 당시에만 해도 청년 세대의 문제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보는 시선이 드물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문장이 함축하듯 청춘은 원래 그런 존재이기에 개인이 노력하면 된다며 일축했고 청춘도 이에 열광했다. 그로부터 몇 년 사이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청춘유예>는 당시 ‘아프니까 청춘이다’ 현상에 저항하며 등장한 영화였다. 영화는 정의가 실종된 시대에 정의를 외친다.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기 위해, 사회를 더 좋게 변화하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영화는 말한다. 지금 이 시기에 주목해야 할 영화다.
4. 이희원 감독의 <홀리워킹데이> : 호주에서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다
‘워킹홀리데이’라고 하면 ‘럭셔리’한 장면이 떠오른다. 잘 사는 외국에서 돈을 벌면서 휴식도 즐기고 외국어까지 배우는 낭만적인 생활을 상상하기 마련이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청년들이 워킹홀리데이를 택한다. 많은 것을 바라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희원 감독의 <홀리워킹데이>은 워킹홀리데이의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을 워킹홀리데이의 문제와 그 안에서 겪는 어려움을 낱낱이 털어놓는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어 타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청춘을 기록한다. 영화 중반부에 감독을 포함한 주인공들(희원, 주현, 종현, 종대)은 양파 농장에서 온갖 고생을 한다. 땡볕에 양파를 캐내고 손질하는 작업은 힘들고 위험해 보인다. 손에 물집이 잡히는 것은 기본이요, 온갖 생채기가 잔뜩 생기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들은 왜 저기서 그 고생을 할까? 워킹홀리데이 비자 연장을 위한 ‘세컨비자’ 때문이라고 하지만, 저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비자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등장인물 각자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법한 질문이다. 동시에 이 물음은 관객을 어떤 생각에 잠기게 한다. <홀리워킹데이>는 타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만 같다. 관객은 자본주의 체제에서 일어나는 노동력 착취와 계급의 문제를 이들의 노동에서 발견한다. 호주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알게 모르게 차별받는 주인공들의 모습 역시 한국으로 옮겨온다 해도 낯설지 않다. 한국 사회의 본질적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이들은 어디서나 자기만의 방식으로 청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홀리워킹데이>는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를 해쳐나가는 게 좋은지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쉽사리 답을 제시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영화는 이 치열한 시기를 철저하게 기록한 뒤 관객에게 던져놓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의 목소리를 들어 보라고 말이다. 누구도 함부로 희망을 말할 수 없기에 이 시기를 어떻게 해쳐나갈 것인지는 영화관을 나서는 관객 스스로의 판단에 맡긴다.
이 시대의 청춘은 힘든 아르바이트나 여러 인턴 자리를 전전한다. 사회의 공기를 민감하게 포착하는 영화는 이런 청춘의 삶을 담아낸다. 몇몇 영화에선 아프고 힘든 청춘을 그리며 관객에게 냉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로써 이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각기 달라 보인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청춘은 아파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늙어도 아픈데, 청춘만 아플 필요는 없지 않은가. 기사에 소개된 영화에 주목해보자. 그러고서 각자의 방식으로 청춘의 목소리를 내보는 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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