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산다 SIDOF 발견과 주목 <사람이 산다>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7월 19일(화) 오후 8시 상영 후
참석: 송윤혁 감독
진행: 이도훈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쪽방에서의 삶을 다룬 영화 <사람이 산다>를 봤다. 지난 인디다큐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받은 작품인 만큼 영화에서 무게 있는 주제와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영이 끝난 뒤에는 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의 이도훈 씨의 진행으로 송윤혁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도훈(이하 이): 장편으로는 첫 작품인데, 이러한 소재와 주제를 어떻게 다루게 됐는지, 어떤 계기와 동기가 있었는지 듣고 싶다.
송윤혁 감독(이하 송): 학교 다닐 때 ‘도시빈민선교회’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거기서 처음 홈리스 분을 만났다. 흔히 봉사활동을 할 때 그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따뜻한 분을 많이 만나 오히려 도움과 위로를 받았다. 그런 분들을 만나다 보니 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하게 될지는 몰랐다. 나중에야 홈리스 야학을 통해 ‘다큐인’에서 활동하는 박종필 감독을 만나 영화를 배우게 되었다.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거리에 계신 분들이 마냥 거리에 계신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계속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쪽방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더라. 거리와 쪽방을 번갈아 전전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속에서 빈민이 제도와 구조에 의해 억압받는지를 보게 됐다. 쪽방을 주제로 다룬 영화를 언젠가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기회를 보다가 다큐인에서 영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 어떻게 이러한 촬영방식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말하자면 인류학에서 쓰는 현장조사방법론이다. 현장에 직접 침투해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찍는 방식을 택했다. 실제 얼마나 쪽방에서 지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하다.
송: 정확하게 딱 1년 정도 살았다. 원래 조금 더 살면서 촬영할 계획이었는데, 중간에 다쳐 병원에 입원한 뒤에 다시 쪽방으로 돌아가려다가 부모님한테 끌려나왔다. 줏대 없이 끌려 나와 1년 정도 살게 된 거다. 그곳에 들어가 살게 된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다. 2003년 가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활동을 했다. 8년 정도 만났다고 하면 길게 만난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돌아가시는 분,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분도 많다. 아주 깊은 관계를 맺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또한 신뢰를 쌓기 어렵다. 가난한 사람, 거리에서 노숙하는 분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동정적이라고 느꼈다. 때론 문제를 그 분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매일 만나서 일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게으른 게 천성이라 매일 그곳을 찾아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차라리 들어가서 찍으면 좋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사실 큰 범위에서 나도 홈리스였다. 서울에 집값이 비싸니까 집을 얻지 못하고 학교에 유령 학회를 만들어 학회실에서 잠시 지냈었다. 여기에 사나 쪽방에서 사나 별 다를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들어가 찍겠다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관계만 놓고 보면 사람 사이에 정이 많아 살만한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쪽방촌이 낯선 분들도 있을 거 같다. 영화의 공간적 배경에 대해 말해주면 좋겠다. 배경 설명 차원에서 어떤 쪽방촌이 있는지, 혹시 촬영한 다른 곳이 있는지 궁금하다.
송: 영화 속에서 공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전하지 못한 것 같다. 서울 전역에 쪽방촌이 있다. 서울역 근방 남대문 경찰서 뒤쪽에 쪽방촌이 크게 형성되어있고, 영등포는 한국에서 제일 크다고 알려진 쪽방촌 밀집 구역이다. 서울에만 5곳 정도의 큰 쪽방촌이 있다. 보통 일정한 공간에 10명 정도 살고 있다면 쪽방촌은 같은 면적에 3~4배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방이 작다보니까 굉장히 밀집해서 살고 있는 거다. 이들을 흔히 ‘주거취약계층’이라고 부른다. 요즘 고시원에는 학생들이 살지 않고 일용직 노동자 분들이 많이 산다. 또 기원도 소파 하나 당 얼마를 받는 식의 아주 열악한 숙소로 변했다. 주거취약계층이 살고 있는 다양한 주거 형태가 다 파악되지 않는다. 또한 워낙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구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기 어렵다. 어림잡아 말하면 이런 계층을 약 4만 명 정도로 추산한다.
이: 제목이 인상 깊다. 에세이 혹은 시의 한 구절 같다. 실제로 저곳에 사람이 산다는 정보 전달 차원이기도 하지만, 메시지와 감정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위급함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이 산다> 제목 뒤에 느낌표를 찍는다면 위급함, 긴급함,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게 아닐까. 실제 어떤 생각으로 제목을 지었는지, 어디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오프닝에는 <사람이 산다>로 제목이 뜨지만, 엔딩에는 여전히 <쪽방>이라는 제목을 고수했는데, 그 차이를 알려주면 좋을 거 같다.
송: <쪽방>은 처음 붙였던 제목이다. 아직도 이 제목에 마음이 간다. 좀 전에 거리에 계신 분을 통해 쪽방에 처음 가봤다고 말씀드렸다. 처음 쪽방에 갔을 때 사람이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언젠가 영화를 만들게 되면 제목을 <쪽방>으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쪽방은 너무 열악한 환경이다. 쪽방 화장실은 물로 분비물을 흘려보낼 수 없고 그냥 쌓여있는 구조다. 세탁할 때 물이 내려오면 그걸 쓸고 지나가게끔 해둔 게 전부다. 겨울 같은 경우는 시멘트 바닥이라 얼음이 얼면 굉장히 미끄럽다. 노역자 분들이나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이 다친다. 거기다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부분을 방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특히 여름에 한 평 정도의 공간에서 밥을 해먹다 보면 그 열기 때문에 밥 생각이 사라진다. 세탁물을 말리는 것 또한 고역이다. 창문은 있지만 햇볕과 바람은 들어오지 않아 빨래에서 항상 쉰내가 났다. 의식주, 기본적인 생활이 쉽지 않은 곳에서의 삶을 보며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전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고 제목을 <쪽방>으로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그 곳에 살면서 공간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겠다 생각했다.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존재하고 그 욕구가 억압되고 좌절되는 공간이라는 것에 주목했다. 편집이 어느 정도 진행된 뒤 다큐인에서 논의를 통해 제목을 바꾸게 되었는데, 그게 <사람이 산다>이었다. 사실 쪽방 공간에 대한 설명이 많이 없어 불친절한 영화로 느껴질 수도 있다. 공간을 많이 보여주지 않는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공간을 극단적으로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간을 통해 영화의 이야기가 시작되거나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면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에 덜 집중하게 될까봐 고민했다. 최대한 공간성을 보여주는 것을 자제하고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집중하고 싶었다. 그 안에서 억압받고 좌절함에도 끝까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시도하는 이야기가 중점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작방향이 바뀌면서 제목도 바뀌고 편집방향도 바뀌게 되었다.
관객: 주인공들이 영화를 봤나? 봤다면 영화에 대해 어떻게 말했을지 궁금하다. 또한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카메라 앞에서 바로 이야기 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다. 주인공을 어떻게 설득했는지 알고 싶다.
송: 일수, 승희 씨에게는 보여줬다. 그들은 자기를 불쌍하게 그리지 않아서 고맙다고 했다. 사실 일수 승희 씨는 방송에 숱하게 출연했었다. 그런데 최근 KBS에서 촬영 제의를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MBN에서 방송 촬영을 하러 온 날이다. 밥을 맛있게 먹으려고 차렸는데, 방송 만드는 사람이 자기에게 라면을 끓여먹으라고 했다는 것이다. 방송이 삶을 다루는 모습을 보면서 혐오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사람이 산다>는 자신을 그렇게 다루지 않아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남선 아저씨에게도 보여줬는데, 당시 술이 꽤 취해있는 상태라서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물어보니까 잘 기억나지 않는 것 같더라. 그리고 창현 아저씨한테는 보여드리지 못했다. 편집이 끝날 즈음에 창현 아저씨가 평소 앓던 정신병이 심해져 병동에 입원하게 되었다. 지금은 나왔는데 사람 만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한다. 영화를 보여드려야지 생각하면서 못 보여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섭외와 설득의 과정에 대해 말하자면 쪽방에는 사실 다른 분들을 찍으려고 들어갔다. 그 안에 ‘사랑방마을공제협동조합’, ‘식도락’을 비롯해서 여러 단체가 있다. 알고 있는 분들이 있었기에 촬영허락을 구하지 않고 일단 들어가서 살 수 있었다. 촬영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소위 반빈곤 운동을 하던 분이었다. 이런 운동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는 빈곤의 상황 자체를 날 것으로 이야기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만난 분이 승희, 일수, 창현, 남선 아저씨였다. 촬영 허락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왔고 섭외를 하는데 굉장히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촬영하겠다는 말을 잘 못 꺼내는 소심한 성격이라 더욱 그랬다. 그런데 남선 아저씨 같은 경우는 “카메라만 들고 다니면서 왜 찍지를 않냐, 함 찍어봐라”고 하셔서 찍을 수 있었다. 일수, 승희 씨는 관계를 맺으면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계속 이야기했다. 이 과정에서 “찍어도 될까요?”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창현 아저씨 같은 경우는 어떻게 섭외했는지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매일 밤 술을 마셨는데, 어느 날 취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카메라를 들게 되었다. 어쨌든 처음 들어가서 6개월 동안은 아무것도 찍지 못했다. 좋게 보면 관계 맺기지만, 사실 눈치 보면서 생활했었다.
관객: 앞으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송: <사람이 산다>를 만들 때 집중했던 것은 제도의 문제이기도 했다. 제도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나 하는 부분이다. 표면적으로는 ‘부양의무제’지만, 청년지원주택을 신청하는데 필요한 가족들의 월수입 조항, 이것도 부양의무제로 봐야 할 정도로 폭넓다. 이미 가족이라는 틀로 더 공고해지면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되었다. 그런 문제에 대해 드러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음 작품을 한다면 이런 제도를 통해서 빈곤의 둘레에 있는 사람의 내면을 보고 싶다. 또한 가난한 사람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파괴되는지 혹은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를 알아가고 싶다. 지금까지 수직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면 이제는 수평의 관계에 주목하려고 한다. 이 관계 안에서 작업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내공이 좀 쌓인 뒤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막연히 바람만 갖고 있다. 나중에는 거리에 계신 홈리스 분 작업을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이토록 진지하게 보여준 영화를 오랜만에 만났다.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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