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와 우리에게 따뜻함을 물들이다
<우리들> 인디토크(GV) 기록
일시: 2016년 6월 25일(토) 오후 1시 상영 후
참석: 윤가은 감독, 곽노현 전 교육감
진행: 김수연 칼럼니스트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수영 님의 글입니다.
개봉 일주일 만에 1만 관객을 돌파해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 상영관은 줄었지만, 영화에 대한 관심과 호평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특별 게스트와 함께 영화의 감독과 곽노현 전 교육감이 인디스페이스를 방문했다. 영화 <우리들>의 인디토크 현장을 지금 만나보자.
김수연 칼럼니스트(이하 김): 오늘 이 자리는 교육 전문가이신 분과 함께해서 더욱 특별한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우선 곽노현 ‘징검다리 교육감’ 님은 영화 <우리들>을 어떻게 보셨는지요?
곽노현 전 교육감(이하 곽): 초등학교 4, 5, 6학년의 눈높이에 맞고, 아이들의 일상이 녹아있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학교폭력 예방 영화가 나왔다고도 생각했어요. 그래서 영화 <우리들>을 전국방방 곳곳의 4, 5, 6학년,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학교폭력 감수성을 기르는 취지하에 틀어줬으면 좋겠어요. 학교가 만 천개쯤 있어요. 한 학교에 한 명씩 이런 고통을 겪고 있으면 만 천명이고요. 한 반에 한 명씩 잠깐이라도 이런 고통을 겪는 아이가 있다면 지금 현재 이 순간 이십삼 만명 정도의 아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아이들끼리의 관계에서요. 아무튼 현실적인 피해자들이 굉장히 많아요. 가해자라는 이름으로 공격성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방관자라는 이름의 아이들도 있어요. 영화를 통해서 가르치지 않는 가운데 저절로 자신의 역할을 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나는 나실 방관자였구나’, ‘나는 사실 가해자였구나’, ‘그런데 피해자들이 저렇게 가슴 저린 경험을 하는구나. 나는 그냥 웃으면서 하는 일이 저 아이들은 저렇게 힘들어 하는구나’와 같은 것들을 저절로 알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아주 강력한 교육적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가르치지 않아도 절로 공감을 일으키고 그럼으로써 절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아주 강력한 교육 자료를 갖게 됐다고 생각해요.
김: 역시 교육전문가가 영화를 바라보는 프레임은 차원이 다르네요.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소녀시절의 감수성 혹은 성장통에 대한 이야기로 이 영화를 받아들였는데, 이렇게 직접 수치화된 숫자들, 사회적 프레임으로 말씀을 해주시니까 영화가 주는 깊이와 무게가 다르게 느껴지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감독님께서 말씀에 대한 화답을 드려야 할 것 같은데요. (웃음)
윤가은 감독(이하 윤): 사실 제가 교육자도 아닐뿐더러 어떤 비전을 가지고 만들진 않았거든요. 정말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영화 제작 과정 중에 곽노현 선생님을 친한 동기분이 소개해주셨어요. 소개를 해준 목적은 저희가 초등학교에서 촬영을 해야 하는데, 초등학교를 섭외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이 있어서예요. 전체 30회차 촬영이었고 학교 씬만 10회를 찍어야 하는데, 어떤 학교에서 그렇게 빌려주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곽 선생님이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도와주실 수도 있을 거라고 말씀을 들어서 ‘선생님을 통해서 로케이션을 어떻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만남을 가졌어요. 선생님께서 당연히 도와주셨고요. 그것 이상으로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도움을 받았어요. 시나리오 단계에서 제가 그리는 학교 안 선생님들의 모습이 조금 전형적이었어요. 제 머리 속에선 선생님이 전형성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쩌면 아이들에게 나쁠 수 있는 선생님을 그렸던 거죠. 그런데 제가 곽 선생님과 곽 선생님을 통해서 만난 교육청 선생님들을 뵙고 ‘내가 어른을 잘 못 그리고 있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은 한 반에 기본적으로 학생이 25명에서 30명 정도가 있고 아이들의 이런 깊은 내면까지 들여다보기가 어렵잖아요. 실제론 선생님들이 굉장히 애쓰고 계세요. 그리고 저희 배우친구들이 영화를 보고 “선생님 정말 애쓰시고 계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애쓰시는 것도 알지만, 선생님이 우리를 100%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알아요”라고 말해줬어요. 제가 원래 그리려고 했던 선생님이 아니라 일선에서 노력하는 선생님의 모습으로 바꿔나가길 잘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여러 가지로 곽 선생님께 도움을 받았죠.
김: 말씀을 들으면서 영화는 사람이 만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두 분의 만남을 통해서 영화의 로케이션이 가능하게 됐고 선생님 캐릭터도 변화가 있을 수 있었죠.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어서 재미있고 뿌듯하네요. 교육감님께서는 영화를 보시면서 궁금했던 점이 혹시 있으신가요?
곽: 아마 제가 하고 싶은 질문은 관객 여러분이 하고 싶은 질문과 같을 거라 생각해요. 여러분은 어떤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셨나요?
관객: 영화 속 주인공들이 어린아이들이었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은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 아이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그러면서 크는 거지”라고 하는데 사실 아이들은 그 와중에 엄청난 심경 변화를 겪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부분을 많이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곽: 2주 전에 영화를 보고 소감을 말씀해달라는 인터뷰에 저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었어요. 그리고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정말 자연스러워서 놀랐어요. 도대체 어떻게 연기지도를 하셨나요?
윤: 일단 저희 배우들은 보조출연과 같은 작은 경험들은 있었지만, 카메라 앞에 처음으로 완전하게 서보는 분들이었고 정말 백지 같은 상태였죠. ‘연기를 처음 하는 친구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은 없었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그 당시 저는 장편영화가 처음이었어요. 돌이켜보면 배우 친구들은 제가 많이 불안했을 거예요. ‘저 초짜 감독이 우리를 뽑아놓고 뭐하려고 그러는 거지?’라는 생각도 했을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모두 처음일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 친해지고 서로 연대하는 상황에서 함께 연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연기를 하지 않았던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오히려 단점보단 장점이 많다고 생각했죠. 배우라는 자의식이 없을 때, 자신이 카메라 앞에 어떤 각도로 서야 예쁠지를 모를 때, 상황 자체에 몰입할 수 있는 힘만 있다면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표정과 감정이 나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역할은 그런 감정을 배우 친구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감정을 자신의 표정과 대사로 표현할 때 편안함을 느끼도록 도와주는 거였어요. 저는 끊임없이 물어봤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이럴 때 감정은 어때?”, “이렇게 하면 편하니?”와 같이요. 배우가 불편해 하는 것을 연기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할 때 자신이 불편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분노나 짜증이라도 본인이 본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그게 배우에게 편한 방식이잖아요. 그래서 그렇게 하게끔 하려고 노력했어요. 때로는 친구 같이요. 사실 저희 배우 분들은 현장에서 저를 ‘쌤’이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지금도 ‘감독님’이라 불러야 할 지 ‘쌤’이라고 불러야 할 지 헷갈려하죠.
김: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비전문배우들이 영화 촬영하면서 배우가 된 케이스의 영화잖아요. ‘쌤’이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정말 ‘쌤’이 맞으신 점이, 영화 촬영자체가 하나의 연기 교육이었던 것 같아요.
곽: 윤 감독님 단편영화도 그렇고 이번에 개봉한 장편영화도 그렇고 모두 아이들의 이야기가 소재인데요. 그래서 아동 시절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거나 아동기를 진하게 보내신 것 같아요. (웃음)
윤: 그 때 폭풍 같은 시절을 보냈던 것 같아요. 물론 현재 영화를 하고 있기에 지금이 훨씬 더 폭풍 같겠죠. (웃음) 어렸을 때는 어떤 경험들이 다 새롭고 처음이잖아요. 새롭고 처음일 때의 충격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있는데, 제가 그런 것들에 대한 기억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어른들은 지나고 나면 그 시절을 다 잊잖아요. 아이들이 단순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의 사정이 있으니까 면밀히 못 들여다보는 부분도 있고요. 저는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어린 제게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와 같은 일종의 억울한 마음이 있었나 봐요. 그런 마음의 내면, 뭔가 말하고 싶고 억울한 마음들이 아직 남아있기에 그것을 자꾸 끄집어내서 영화의 원동력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곽: 영화를 보다 보면 한 장면에서 모든 관객이 일제히 웃는 장면이 있어요. 얼굴에 시퍼렇게 멍이 든 윤이에게 선이가 왜 맞고만 있냐고 묻자, 윤이가 “그럼 언제 놀아?”라고 하는 장면이죠. 이 명대사를 어떻게 시나리오로 쓰셨는지 궁금해요.
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제 머릿속에서 나온 대사는 아니에요. 20대 초반, 입시 지옥을 뚫고 왔지만, 삶은 전쟁 같고 매일매일 사람들에게 상처주고 상처받고 인생이 안 풀리는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시기에 지인 분이 웃긴 이야기가 있다며 그 분의 자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유치원 다니는 아들이 있는데 자신이 맞고 나서 신나게 놀았다는 이야기를 했대요. 그래서 “이 바보 놈아. 맞고만 있으면 어떡해!”라고 했더니 엄마, 아빠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그럼 언제 놀아요?”라고 했대요. 지인 분은 그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셨는데, 저는 한 방 맞은 것 같았어요. ‘나는 계속 인생이랑 사람들이랑 놀지도 않고 싸우기만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때 이후로 ‘놀면서 살아야지’라고 마음에 담아뒀었죠.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선이가 딛고 일어섰으면 좋겠는데,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보내고 난 후의 모습과 더불어 동생이 한 방을 날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대사가 나왔죠. 사실 저희 스텝끼리 내부 시사회를 할 때는 그 장면에서 아무도 웃지 않았어요. 누가 거기서 웃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상영을 한 이후에는 한 동안 웃음의 의미를 알아내느라 시간이 걸렸어요.
관객: 지인과 이야기하다가 발견한 건데 영화 속에서는 선이가 지아를 위해서 봉선화를 빻는데 포스터에는 지아가 봉선화를 빻고 있어요. 혹시 의도하신 부분이 있으신 건가요?
윤: 저희 포스터는 ‘빛나는’의 박시영 실장님이 제작해주셨어요. 사실은 이 부분에 대해서 저도 이번 주에 들었어요. 영화 속에서는 선이가 지아에게 봉선화 물을 들여 주고 영화가 끝나갈 무렵에 선이가 지아에게 다가가죠. 실장님께서 후에 ‘과연 지아는 선이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토대로 영화의 뒷이야기까지 확장을 해서 포스터에 담으셨다고 해요.
관객: 영화 정말 잘 봤어요. 영화를 정말 보고 싶었어요. 서울에 상영관이 열 개 정도 있는데, 매일 한 회 정도만 상영을 하더라고요. 입소문 타서 상영관이 많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이 캐릭터는 정말 최고 같아요. 어떻게 저렇게 멘탈이 강할 수 있는지. 선이가 따돌림을 당하는데도 늘 다가가는데 어떻게 그 캐릭터를 그리셨는지 궁금해요.
윤: 일단 정말 감사합니다. 퐁당퐁당 상영이라 하는데 저희는 진짜 ‘퐁’ 상영에 가까워요. ‘당’도 없고요. 저도 제 영화를 보기 힘든 상황인데, 이런 자리에 와주신 관객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우리들>의 이야기가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라서 제가 선이라고 생각하면서 선이를 그린 것도 있죠. 그런데 그 당시의 저를 생각해 봤을 때 선이가 착해서 선이가 아니에요. 어쩌면 되게 소심하기도 하고 겁도 많고 친구 사귀는 기술이 서툰 친구들이 있잖아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런 면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서는 내가 익숙하고 친하게 나설 수 있지만, 새로운 집단에서는 적응하기가 힘든 경우가 있잖아요. 모두가 선이처럼 친구 사귀기가 어렵고 힘들고 두려운 입장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랬을 때의 마음들을 그리고 싶었던 생각이 있었고 특히 선이는 집안의 맏이잖아요. 부모님이 이 아이를 나름의 사랑으로 돌보긴 하지만, 집안의 각자의 어려운 사정들이 있고 맏이는 그걸 특히 내면적으로 많이 받아들여서 그게 멘탈을 강하게 하는 것도 있다고 봐요. 사실 아이들도 이야기 하지 않을 뿐이지 집안의 문제를 눈치 보며 저절로 알게 돼요. 우리도 그렇게 컸고요. 모든 아이들이 집안에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멘탈이 강하다고 느끼셨다면 우리 아이들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고 아마 그렇게 사셨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시는 거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스스로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고 많은 것들을 맞닥뜨리면서 이것을 소화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우리 모두 같잖아요. 근데 저는 한편으론 어른이 되면서 그걸 포기한 것 같아요. 싸우고 부딪히면서도 어릴 때는 그 관계를 회복하고자 많이 노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마음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아이들에게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느꼈고 그래서 아마 선이라는 캐릭터가 태어난 것 같습니다.
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디토크는 여기서 마무리 지을게요. 여러분들을 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영화의 빛나는 주인공들이죠. 최수인, 설혜인, 강민준 배우가 여러분들 만나러 무대인사 왔습니다. 큰 박수로 맞아주세요.
최수인: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들>에서 선 역할을 맡은 최수인입니다. 더운 여름에 영화 보러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강민준: 안녕하세요. 저는 윤이 역할을 맡은 강민준입니다. <우리들> 영화 많이 소문내주시고요. <우리들> 파이팅!
설혜인: 안녕하세요. 저는 지아 역할을 맡은 설혜인입니다. 저희 영화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저희 영화 많이 칭찬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흔히들 나이가 들면 감성보다 이성의 힘에 지배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때론 어른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으로 감성보다 이성을 추켜세우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는 과거의 감정은 묻고 차가운 이성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는 어른이 됐다. 그런 우리에게 영화 <우리들>은 잊힌 어린 시절의 감정을 되새김질 해준다. 더불어 너와 내가 봉선화물로 물들여져 우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딱딱했던 마음에 붉은색 감정을 지펴줬다. 우리의 마음에 덧입힌 <우리들>의 따뜻함이 첫 눈이 내리는 날까지 지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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