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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by indiespace_은 2016. 6. 27.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 미로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김민형 님의 글입니다.



작년 11월 30일 씨네코드 선재가 <마스터> 상영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약 3달 후,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또한 휴관 소식을 알렸고, 그로부터 약 한 달 반 뒤에는 미로스페이스가, 또 한 번의 한 달 뒤에는 스폰지하우스가 폐/휴관 소식을 알렸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 약 7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들의 안녕에 처음에는 안타까움이 몰려왔지만, 그 안녕이 두 번째, 세 번째가 되자 점점 미안함이 몰려왔다. 강릉 신영은 지역을 핑계로 한 번도 찾지 못했으며, 그 외의 극장들을 찾은 횟수도 한 손에 꼽는다. 그간 입으로만 독립예술영화와 독립예술영화전용관을 사랑한다고, 지지한다고 말해온 것만 같아 창피했다. 그리고 그 힘든 시간 동안 꿋꿋이 다양한 영화를 상영해주었던 그들이 새삼 고마웠다. 인디스페이스 관객기자단 ‘인디즈’는 이 기사를 통해 그간 좋은 영화를 상영했던 극장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한다. 






1.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2012년 5월 18일 개관 후 2016년 2월 29일까지, 1383일 동안 강릉씨네마떼끄에 의해 운영되어온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은 강원도 내 유일한 예술영화관이자 최초의 비영리극장이었다. 정부 기관과 기업의 도움 없이 민간의 힘으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인디스페이스의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 서울에 피카디리와 단성사가 있었다면, 강릉에는 신영극장이 있었다. 50년대부터 자리를 지켜온 이곳은 강릉시민들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소중한 공간이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선 후에는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란 간판을 달고 독립예술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개관과 휴관이 있던 2012년, 2016년을 제외하고, 매년 약 100편 이상에 달하는 영화를 상영했다는 사실을 통해 강릉시민들에게 영화적 다양성을 제공하기 위해 그들이 했던 노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신영극장에서 휴관 소식을 알리자 많은 사람이 앞으로의 다양성 영화 관람을 걱정하기도 했다. SNS에선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외조부모님까지도 신영극장을 이용했다는, 이곳의 긴 역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글도 있었고, 화면비가 좁은 영화에는 그에 맞게 스크린 옆 천막 커튼을 조정해주곤 했다는, 영화를 향한 신영극장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글도 있었다. 그 어떤 극장들보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힘주어 말했던 만큼, 약속했던 대로 올해 안에는 신영극장의 재개관 소식을 꼭 들을 수 있길 바란다.






2. 스폰지하우스


스폰지하우스는 2006년 4월 <카모메 식당>을 첫 상영으로, 압구정에 문을 열었다. 이후 종로(시네코아)와 명동(중앙시네마)까지 그 세력을 넓혔고, 2007년 12월 1일에는 광화문에도 둥지를 틀었다. 광화문 스폰지하우스는 다른 극장들과 달리 갤러리와 작은 키친이 함께 있는, 국내 최초의 복합 극장 공간이었다. 이 명성에 걸맞게 <해피 해피 와이너리> 개봉 시 이벤트로 상영 시작 전 관객들에게 와인을 한 잔씩 나눠줬는데, 와인 때문에 상영 중 조는 관객들이 많았다는 웃지 못할 후일담도 있다. ‘좋은 영화는 관객들이 먼저 알아본다’라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다양한 영화를 소개해주었던 이곳은 일본 인디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특히 더 소중하고 애틋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SNS 상에는 특히 스폰지하우스에서 일본영화를 보았던 추억과 그 영화들을 이곳에서 볼 때의 그 감칠맛을 곱씹으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안녕이 독립영화예술관이 수입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연히 일어날 일이었는지 모르지만, 유명한 일본영화 제목과 같이 진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 스폰지하우스가 재개관하고, 재개관한 스폰지하우스에서 일본영화를 볼 수 있는 기적이.






3. 씨네코드 선재


씨네코드 선재를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았다. 고즈넉한 한옥 골목을 빠져 나와 한 건물로 향했다. 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몇 층인지 확인하며 헤매다 지하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계단을 내려가 오래된 매표소를 마주했다. 북촌 특유의 색에 잘 어울린다고 잠깐 생각했다. 로비 안, 긴 복도에는 감각적인 포스터가 걸려있었다. 생소한 영화와 포스터도 더러 있었다. 멍하니 포스터를 바라보다 보니 영화 상영 시간이 다가왔다. 표를 확인하고 극장에 들어섰다. 소극장을 개조한 듯한 극장 내부에 놀라며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극장일까? 씨네코드 선재는 2008년 9월 19일 첫 영화를 선보인 뒤 8년간 한 자리를 지켜오다 작년 11월 30일 마지막 상영으로 막을 내렸다. 영화사 ‘진진’이 극장을 운영했다. 처음엔 대학로 극장 ‘하이퍼텍 나다’와 같이 운영하다, 대학로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씨네코드 선재의 운영에 집중하게 됐다. 여러 좋은 기획전이 많았다. 특히 ‘북촌 영화 산책’은 지역과 함께 하는 훌륭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간 쌓여온 만만찮은 적자와 건물주의 리모델링 요구로 결국 문을 닫아야 했다. SNS를 통해 씨네코드 선재를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곳에서 좋은 영화를 많이 봤다는 이도, 예쁜 영화엽서와 팸플릿이 많았다는 이도, 속상함과 미안한 기분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씨네코드 선재라는 공간은 사라지지만, 극장을 드나들었던 관객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4. 미로스페이스


광화문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엔 가지각색의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여러 색의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도 꽤 있었다. 2006년 처음 문을 연 미로스페이스도 그중 하나였다. 단순히 영화를 파는 극장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과 더불어 숨 쉬고 즐기고 싶은 열망으로 미로스페이스는 생겨났다. 문화 예술적인 시간과 공간의 문지기가 되고 싶다는 의지도 비쳤다. 미로스페이스는 극장 임대를 적지 않게 했다. 특히 2012년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는 이곳에서 관객을 만나며 좋은 추억을 쌓았다. 이런 점에서 미로스페이스는 독립영화계의 숨통을 틔워줬다고 볼 수 있다. 2015년 6월 인디스페이스가 서울극장으로 옮기면서 미로스페이스는 사운드 특화관이라는 특색을 가지고 재개관했다. 그러나 재개관한 지 8개월 만에 다시 휴관하게 됐다. 처음에는 영사기 문제로 상영을 취소하더니 얼마 가지 않아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했다. 극장 관계자는 ‘잠깐의 휴식’이라고 했지만, 사실상 기약 없는 이별이라고 보는 게 맞다. “나만 알고 싶은 영화관, 그러나 나만 알면 안 되는 영화관 : 세상은 넓고 영화는 많다”는 미로스페이스의 문구와 달리 다양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또 하나 사라졌다. 이런 사실을 접한 뒤 많은 이들이 SNS로 아쉬움을 표했다. 그곳은 좌석과 사운드 시설이 좋았다고 하는 이도, 꼭 돌아오기를 바라는 이도, 안타까움과 서운함을 털어놓으며 정부의 문화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미로스페이스가 그간 쌓아온 뜻 깊은 궤적을 찬찬히 돌아본다.





사회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할 때 건강해진다. 자유 사회의 기본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한 삶을 획일화하지 않는 것에 있다. 현재, 극장을 지키기 위해 이와 비슷한 목소리를 외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관이 차례차례 무너지고 있고, 인디스페이스와 광주극장도 비슷한 위험에 처해있다. 문화의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고 획일화된 상품만 만들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만큼 건강한 영화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산업적 논리에 따라 ‘작은(혹은 어설픈)’ 영화는 상영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누군가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는 산업의 영역에만 있지 않다. 영화는 문화이며 예술이고 복지의 영역에 위치한다. 올해 영화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됐다. 그동안 영화 산업에 집중됐던 정부의 재정적 지원을 지역 영상문화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개정 이유에서 밝히고 있다. 정리하면, 그동안 ‘영상산업’에만 법의 목적을 국한했다면 이제 ‘영상문화’ 전반으로 확대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진흥위원회의 정책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그간 해온 독립예술영화관 지원정책을 뒤집어버렸다. 어설픈 꼼수로 독립영화계를 압박하며 다양성을 말살하고 있다. 서두에서 밝힌 고마움, 미안함, 부끄러움은 글쓴이의 사적인 고백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왜 미안하고 고맙고 부끄러운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거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눌 건지, 건강한 사회와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같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어렵다. ‘독립영화와 표현의 자유, 당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디스페이스의 손을 잡아야 한다. 후원 캠페인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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