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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기획] 짧음의 미학: 단편영화 본연의 호흡과 색깔

by indiespace_은 2016. 3. 14.

 짧음의 미학: 단편영화 본연의 호흡과 색깔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민형, 위정연 님의 글입니다.


흔히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의 짧은 버전이라고 생각한다. 장편영화를 준비하는 과정으로 단편영화를 만든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엄연히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 다른 호흡과 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장편영화는 소설, 단편영화는 시에 빗대어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명확한 서사가 있는 소설(장편영화)과 달리, 시(단편영화)는 인생의 한 단면을 강렬하고 함축적인 언어로 풀어낸 거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단편영화는 시의 표현과 닮았다. 짧은 시간 동안 인생의 한 단면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 바로 단편영화다.

지금껏 살아온 삶 전체를 보면 장편영화겠지만, 우리는 매 순간 단편적인 부분만 경험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단편영화를 만들며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기획기사에선 인생의 한 단면을 담은 ‘단편영화만의 호흡과 색’을 다루고자 한다.



1. 찰나의 순간을 담은 단편 - 우리 삶을 닮은 찰나의 순간을 담은 단편


1) 사랑 <폴라로이드 작동법 How to Operate a Polaroid Camera>(2004) 감독: 김종관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누구에게나 있었던 짝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햇살이 가득한 공간에서 대화를 나누는 남녀. 그녀는 그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리려 하고, 그는 그녀에게 폴라로이드 작동법을 알려준다. 그런데 그녀는 좀처럼 그를 쳐다보지 못한다. 필름이 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그의 말이 들리는지 마는지, 그녀는 그로부터 카메라를 받아든다. 어색하게 카메라를 조작하다 카메라 뚜껑이 왈칵 열려버리고, 그녀는 꼭 빛에 드러난 필름처럼 깜짝 놀라 고개를 푹 숙인다. 짧은 순간을 아름답고 섬세하게 담아낸 소품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으로도 잘 알려졌다.



2) 욕망 <해운대 소녀 The Girl Lives In Haeundae>(2012) 감독: 이정홍



부모가 아이를 다그친다. 그런데 어쩐지 아이의 표정이 묘하다. 아빠는 “틀리면 누가 뭐라고 해?”라고 말하며, 도통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아이에게 강요하고 있다. 바다로 놀러 온 거 같은데 왜들 저렇게 서 있는 걸까. 감독은 다음 장면을 통해 영화를 이끌어 간다. 아이는 비슷한 또래의 외국인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주뼛주뼛 다가간다. 그리고 어렵게 영어로 말을 건넨다. 먼발치에서 부모는 아이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영화에서 부모의 모습은 일상적이고 딱히 별날 것 없는 일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짐짓 밝은 체하며 웃는 아이의 얼굴에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짧은 러닝타임 속 영화는 소소하지만, 그 단면은 어쩐지 서늘한 구석이 있다.



3) 승부 <격정 소나타 Passionate Sonata>(2006) 감독: 최고은 



피아노 연주 소리가 들리는 대기실,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줄지어 앉아있다. 긴장감이 맴도는 대기실에서 유독 덤덤한 그녀의 얼굴. 이런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어딘가 싸하다. 차례가 다가오자, 그녀는 불안해하며 화장실로 달려가 성인용 기저귀를 꺼낸다. 그때 자기에 대해 험담하는 여학생 무리를 목격한다. 이에 그녀는 꺼냈던 기저귀를 도로 집어넣는다. 영화의 마지막, 건반을 짚어 내려가는 그녀의 표정 위로 밝고 환한 빛이 아름답게 드리운다. 우리는 살면서 매번 여러 가지 힘든 문제에 봉착하면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계속해서 고민해나간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곤란한 상황에 때때로 당당히 맞설 필요도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격정 소나타>는 2011년 세상을 떠난 故 최고은 감독의 연출작이다.




2.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아이디어 - 톡톡 튀는 개성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단편


1) <호산나 HOSANNA>(2014) 감독: 나영길 



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에 진출하여 금곰상을 받은 화제의 작품이다. 한 소년에게는 죽은 자를 되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스산한 풍경의 마을 사람들은 죽더라도 모두 소년의 도움을 받아 다시금 깨어난다. 그러나 아무도 이 소년에게 고마움을 표하지는 않는다. 마을 사람들에게 ‘소생’이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죽었다 깨어나길 반복하는 그들의 삶은 오히려 더욱 처절하게 망가져간다. 나영길 감독은 ‘구원의 윤리와 가치’를 되짚어보고자 만들었다고 한다. 여러 장의 챕터로 뚝뚝 끊어지는 <호산나>는 보기에 매끄럽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지난한 삶을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전한다. 인상 깊은 데뷔작을 남긴 나영길 감독의 후속작들이 기대된다.



2) <완벽한 도미요리 The Perfect Fishplate>(2005) 감독: 나홍진



요리사는 한 손님에게 ‘완벽한 도미요리’라는 주문을 받는다. 그는 요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집착의 끝을 드러낸다.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 끔찍한 자학행위조차 서슴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는 단 한 마디의 대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사의 빈틈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디테일한 미장센과 파격적인 내용이 거침없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다. 오로지 ‘결과’만을 좇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 사회의 불편한 단면을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개성과 도전적인 실험방식으로 나홍진 감독을 관객들에게 처음 알린 작품이다.

 


3) <호로자식을 위하여 Familyship>(2009) 감독: 윤혜렴



서울국제초단편영상제 사전제작지원작으로 만들어진 짧고 강렬한 4분 단편영화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엄마와 딸 그리고 아들은 각자의 이유를 빌미로 서로에게 총구를 겨냥한다. ‘소통의 부재’라는 다소 식상할 수 있는 소재를 신선한 아이디어로 색다르게 표현해냈다. 하나의 방에서 벌어지는 제한된 공간과 설정 속에서도 감독의 기발한 발상을 엿볼 수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단편영화가 가진 매력을 최대한으로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몇 마디의 대사와 몇 가지의 장면만으로 관객에게 큰 임팩트를 주는 점이 그렇다. 미장센 단편영화제, 쇼트쇼츠국제단편영화제 등 많은 영화제에서 ‘단편으로서의 장점을 모두 갖춘 영화’라는 호평을 들었다.




3. 단편영화, 어디서 볼까요? - 온라인으로 쉽고 간편하게 단편영화를 만날 수 있는 곳!


>> 미니시네마 http://tvcast.naver.com/minicinema

- 다양한 최신작의 단편영화 사이트.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 씨네허브 http://tvcast.naver.com/shortfilm 

- 국내 및 해외 우수단편영화 사이트.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 유에포 http://www.youefo.com/

- 기존의 유명한 단편영화 사이트.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 (자율 요금제)


>> 인디플러그 http://www.indieplug.net/

- 국내 및 해외 장·단편영화 사이트. 유료 다운로드 서비스.



때로는 짧아서 더 진한 여운이 남는다. 단편영화는 그렇게 더 도전적이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번 기획을 통해 살펴본 영화들만 해도 수많은 시도와 장르가 있다. 거기에서 우리는 기성의 장편영화가 아닌, ‘단편’일 때 비로소 빛나는 순간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단편영화는 장편으로 가는 ‘등용문’의 의미를 넘어서, 그 고유의 ‘성격’을 주목받아 마땅하다. 단편만이 내뿜는 특유의 즐거움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크고 작은 단편영화제와 온라인 상영관에도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확인해보자. 여러분이 예상치 못하는 신나는 일들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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