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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Review] <방 안의 코끼리> : 웃겨도 씁쓸하고, 에로틱해도 외롭고, 기발하면서도 절망스러운 것들에 관하여

by indiespace_은 2016. 3. 10.




 <방 안의 코끼리줄 관람평

김은혜 | 보아뱀 안의 코끼리처럼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쳐내다

박정하 | '3D영화=SF영화'라는 공식을 시원하게 깨버리다

채소라 | 웃겨도 씁쓸하고, 에로틱해도 외롭고, 기발하면서도 절망스러운 것들에 관하여

김민형 | 마치 코끼리가 좁은 방에 갇힌 것처럼, 잘 맞지 않은 틀에 갇혀 있는 영화들

위정연 | 다양한 맛이 한데 어우러진 앙상블

김수영 | '정체성'에 관한 3D영화, 정체성이 부족한 3D 영화




 <방 안의 코끼리리뷰

<방 안의 코끼리> : 웃겨도 씁쓸하고, 에로틱해도 외롭고, 기발하면서도 절망스러운 것들에 관하여



*관객기자단 [인디즈] 채소라 님의 글입니다.


<방 안의 코끼리>는 세 가지 장르의 단편영화를 묶은 옴니버스 영화다. 특히 3D로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제목이 독특하다. '방 안의 코끼리'는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말하지 않는 사건이나 상황을 뜻한다. 세 편의 영화도 이미 스스로 깨닫고 있지만 외면하게 되는 것들을 하나씩 담고 있다.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들은 각각 웃겨도 씁쓸하고, 에로틱해도 외롭고, 기발하면서도 절망스럽다. 세 편의 단편은 각각의 색깔을 뿜어내면서 외면하고 싶은 어두운 감정을 담았다는 공통점으로 조화를 이룬다.



첫 번째 작품 : <치킨게임>

블랙 코미디 장르인 이 작품은 세 명의 인물들이 생존하기 위해 아웅다웅하는 모습을 그린다. 아찔한 해안 절벽에 간신히 뻗은 메마른 나무, 그 위에 걸린 빨간 오픈카에 여배우, 수입차 딜러, 그리고 태권도복을 입은 정체불명의 남자가 모여 있다. 자칫하면 망망대해로 떨어져 죽을 위기 속에서 이 세 사람은 살기 위해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영화는 세 인물의 대화로 꽉 찬 영화다.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모두 돈을 좇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외제차 딜러가 사실은 재벌 2세라고 밝히거나 그 말에 여배우가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딜러에게 추파를 보내는 것, 태권도복을 입은 남자는 사실 떼인 돈을 받아주는 청부업자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런 공통점은 상황과 맞지 않아 보인다. 이들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으면서도 연대해서 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언행을 하기 때문이다. 누가 보아도 살든 죽든 운명을 함께 할 것 같은데 주인공들은 그 운명을 깨닫지 못하고 개인 플레이를 하는 모습이 어리석기 짝이 없다. 어쩌면 이 인물들은 이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단편영화의 특성을 잘 살린 영화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한정된 공간과 상황이 잘 설정되었다. 한편 영상적인 매력이 뚜렷했다. 자동차 한 대와 대조를 이루는 밑도 끝도 보이지 않는 드넓은 바다가 인상적이다. 바다와 하늘의 색깔은 채도가 높아서 굉장히 컬러풀했다. 현실적이기보다는 몽환적인 느낌이 강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블랙 코미디 장르와 만나서 영화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두 번째 작품 : <세컨 어카운트>

이 영화는 에로틱 멜로라는 장르를 표방한다. 조금 더 포괄적으로 보자면 드라마 장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경은 SNS에서 원나잇 상대를 찾으며 살아가는 책 공장 직원이다. 직장에서 함께 밥을 먹는 동료도 없고 항상 혼자 다니지만 SNS상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익명의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한다. 그런 인경은 SNS에서 유난히 다정한 남자와 관계를 갖게 된다. 인경은 삼겹살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그 남자에게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나 세컨 어카운트는 익명성을 철저히 보장받고 싶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계정인만큼 남자는 인경에게 더 이상 가깝게 다가갈 마음이 전혀 없다.

현실에서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았던 인경은 이름도 모르는 남자에게 마음의 문을 연다. 인경이 외롭고 나약한 인물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인경이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SNS를 하기 위한 스마트폰이고 다른 하나는 빨간색 텀블러다. 정확히 말하면 빨간색 스테인리스 텀블러. 표면은 차갑지만 그것과 다르게 보온성이 뛰어나다. 인경은 외로울수록 자신의 생활에서 더 움츠러들고 혼자가 된다. 동시에 익명의 공간에서는 빨간색이 갖는 섹시하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발산한다. 인경은 그런 식으로 자신의 차가운 현실과 외로움을 외면할 수 있었다.

텀블러로 대변되는 인경의 마음은 사실 텀블러 이외에는 확실히 확인할 길이 없다. 원나잇을 즐기는 모습과 동료들과 어울리지 않는 모습은 보여지지만 그런 현실 속에서 인경의 외로운 모습은 잘 비춰지지 않는다. 인경이 애써 외면하려는 외로움을 관객들이 조금 더 절실히 느꼈다면 이 영화의 결말 장면이 조금 더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 것 같다. 베드신 만큼 외로움을 진하게 표현하는 데에 신경을 썼다면 날리는 휴지 조각 뒤에 선 인경의 모습이 조금 더 처참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세 번째 작품 : <자각몽>

단편영화에서는 보기 드문 판타지 액션 장르라서 더 눈길을 끌었다. 세 편 중 3D효과를 톡톡히 활용한 영화였다. 의료 과학이 발달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의사들과 전투 비밀요원이 의뢰인의 꿈 속에서 치료를 하는 공간이 배경이다. 비밀요원 지섭은 의뢰인의 꿈 속에 접속해 의식을 잃은 장 회장을 찾아내야 의식을 되찾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꿈 속에서 지섭의 임무를 방해하는 누군가가 등장한다. 지섭의 임무를 방해하는 것은 지섭의 자아와 지난 사고에서 잃은 후배의 환영이다. 사건을 맡은 대장이기에 의연하게 임무를 완수하려 하지만 지섭에게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둔 채 외면한 아픈 기억이 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배우 권율에 의한, 권율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연기한 지섭이란 인물이 홀로 극을 이끄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배우의 열연이 돋보일 수 있었던 영화였고 그 속에서 배우 권율 또한 안정적으로 지섭을 소화해냈다. 1인 2역 중 이 배우가 전작에서 보여준 적 없는 악한 역할을 연기할 때의 눈빛이 인상적이다.

임무 수행을 한다는 이야기는 큰 반전 없이 흘러가지만 이야기를 담은 영상은 3D로 관람하기에 흥미롭다. 꿈 속을 표현한 몽환적인 공간과 그 속에서 또 다른 자아와 싸우는 장면에서 특히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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