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한줄 관람평
김은혜 |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그리고 돌아오지 못할 그분들의 고통
박정하 |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채소라 | 역사적 사건으로만 이해하기엔 소름 끼치도록 개인적인 아픔인 것을
김민형 | 몇 세대를 거쳐서야 집으로 돌아온 소녀가 있다.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도 있다.
위정연 | 생(生)의 한 움큼을 빼앗긴 그들에게 건네는 작은 위로
김수영 | 지옥 속에 있던 소녀들을 위한 소녀의 씻김굿
<귀향> 리뷰
<귀향> :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정하 님의 글입니다.
2015년 12월 28일,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10억엔이라는 돈만 받은 채 협상을 끝내 버렸다. 우리는 일본 정부의 잘못도, 사과도 받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철거하기로 약속했다. 이 악물고 견뎌왔던 지금까지의 시간이, 지금까지의 노력이 파도에 속수무책이 되어버린 모래성마냥 전부 무너져버렸다. 이로부터 약 2달이 지난 2016년 2월 24일, 정부대신 75,279명의 시민들의 응원과 위로로 만들어진 영화 <귀향>이 높은 사전 예매율을 기록하며 개봉했다.
1943년, 정민(강하나 분)과 영희(서미지 분)를 비롯한 조선의 소녀들은 무자비로 끌려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일을 겪게 되고,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 자체이자 삶의 이유가 되어 죽지 못해 살아간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시작으로, 이 끔찍한 사건이 세상에 공개되었다. TV로 그 인터뷰를 지켜보던 영옥(손숙 분)은 위안부 피해 자진신고를 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 동사무소에 가지만 상처만 받게 된다. 은경(최리 분)은 성폭력을 당한 이후로 정신을 놓게 되고, 영옥의 가까운 지인인 무속인 송희(황화순 분)와 함께 지내며 기이한 현상을 겪게 된다. 영화는 과거 일제시대의 이야기와 현대로 대변되는 90년대의 이야기가 번갈아 흘러간다. 교차점 없이 각자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 보이는 두 시대의 이야기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바늘과 실로 두 쪽의 천이 점점 이어지듯 영화 후반부에 이르러 꼭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여기서의 바늘과 실의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굿이다. <귀향>에서 굿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굿을 통해 암흑의 시기를 같이 보냈던 망자와 산 자가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되며 이미 떠나가신 분들의 넋과 겨우 살아가고 계신 분들의 마음이 달래진다.
10년이 넘는 제작기간과 스태프들의 재능기부, 배우 손숙의 노 개런티 출연, 김구 선생님의 외종손 임성철씨의 투자 및 병마를 견뎌낸 출연, 7만 5천여명의 시민들의 기부 등, 요새 SNS에서는 ‘영화 <귀향>의 숨겨진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제작과정에 속속들이 숨어있는 미담들이 활발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제작과정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영화와 위로가 되어버렸다. <귀향>을 ‘위안부’ 문제를 지운 채 영화 그 자체로 본다면 아쉬운 점은 분명 있다. 하지만 이를 굳이 꼬집어 말하고 싶지 않고 그럴 이유도 없다 느낀다. “영화를 통해서라도 소녀들의 영혼을 고향으로 데려오고 싶었다”는 조정래 감독의 말처럼 이 영화가 오롯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고, 그 분들께서 이 영화를 보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안을 얻으셨다면 그것으로 이미 좋은 영화일 테니 말이다.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제시대에 일본군에 의해 우리나라 소녀들이 겪었던 피해라 생각할 테지만,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곤 했던 중국 소녀를 떠올려본다면 비단 우리만의 피해라 볼 순 없다. 또한 우리나라군인들도 베트남전쟁 때 베트남 여성들에게 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우리가 잊지 말고 분노해야 할 것은 일본군에게 입은 우리의 피해뿐만 아니라, 전쟁과 그로 인한 모든 여성들의 성적피해일지도 모른다. 극중 다른 무녀들이 아닌 은경이 씻김굿을 하게 되고, 그런 은경이 성폭력 피해자라는 설정에는 이와 관련된 모종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44분만이 살아 계신다. 이제 막 피어난 작은 꽃봉오리와 같았던 소녀들이 지옥으로 끌려간 이후로 73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들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되려 더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견디고 살아오신, 살고 계신 당신들의 용기와 의지가 눈부시게 아름답노라 감히 말씀 드리고 싶다. 비록 만개하진 못했을지라도 꽃은 여전히 꽃이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우리의 꽃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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