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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_Choice]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망각의 순간 시작되는 재발견

by indiespace_은 2015. 10. 16.





[인디즈_Choice]에서는 이미 종영하거나 극장에서 만나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이 코너에서 소개되는 작품들은 독립영화 전문 다운로드 사이트 '인디플러그'(www.indieplug.net)에서 

다운로드 및 관람이 가능합니다.


인디플러그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다운로드 바로가기 >> http://bit.ly/1LwIYSK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 망각의 순간 시작되는 재발견



*관객기자단 [인디즈] 심지원 님의 글입니다.


2차 창작은 더 이상 드문 경우의 수를 담지하는 창작 활동이 아니다. 상당수 흥행 영화들이 1차 원작을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며, 이 때 원작은 시대 변화 추이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로 존재한다. 그 중에서도 소설은 오랜 기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해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좀 더 새로운 이야기, 신선한 발상을 좇는다. 그리고 제작자들은 기존의 이야기 가운데 재편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의 2차 창작에 매진하는 것이 현시대의 추세다.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 역시 2차 창작을 거쳐 탄생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타 2차 창작물들과는 다소 다른 부분에 여럿 방점을 찍고 있다. 특히 마냥 신선하다고만 할 수 없을 우리나라 근현대 문학 작품이 원작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는 곧 영화의 목적이 ‘참신함을 통한 흥행’이 아닌, ‘한국 문학의 재발견’이리라는 추측으로 이어진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으나, ‘재발견’이라는 단어만으로도 가슴 뛰는 한국 현대 명작 세 편이 지난 해 스크린에 옮겨졌다.



<메밀꽃 필 무렵>은 특히나 시청각적 요소에 주력했음을 시사하는 장면들이 여럿 눈에 띤다. 그 중에서도 새하얗게 흐드러진 메밀꽃밭과 그 곁을 자분자분 걸어가는 인물들을 잡은 롱숏은 이 영화 최대의 묘미다. 단어 하나, 문장 한 구만으로도 주인공 생원의 감정을 충분히 담아낸 소설 속 ‘암시’가 영화에서 온전히 재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영화로서 <메밀꽃 필 무렵>이 갖는 서정성은 상당하다. 성서방네 처녀와의 만남부터 이별까지, 그 짧은 순간에도 치밀하게 생원에 따라 붙으며 긴장감을 조성하는 OST는 작품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창조적 은유로 대변되는 작가 이효석의 감각이 담긴 소설 속 문장들을 고스란히 영화의 대사로 재현한 점 역시 그러하다. 거꾸러질 때까지 메밀꽃 밭길을 걸으며 달을 보겠다던 생원은 성서방네 처녀와 재회했을까. 그 뒷이야기는 생원이 눈에 담은 달만이 알 일이다. 



<봄·봄>은 제목만큼이나 화사한 색감과 더불어, 바보스럽지만 순수한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매번 장인에게 당하면서도, 결국엔 다시 소처럼 우직하게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나’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벌이는 소소한 해프닝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절로 웃음 짓게 한다. 그 내용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기에, 다소 진부할 것이라는 예측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봄·봄>을 포함하여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을 구성하는 모든 작품들이 가진 약점이다. 그러나 소설에는 ‘나’라는 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제시되는 내레이션이 영화에서는 친근한 박자와 선율이 가미된 판소리의 형태로 재현되면서 그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러닝 타임 내내 물씬 느껴지는 우리나라 고유의 토속적 흥취,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된 유쾌하고 흐뭇한 감정이 영화 <봄·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쉴 새 없이 손님을 맞이하고, 그 어느 때보다 벌이가 쏠쏠한 하루다. 더할 나위 없이 ‘운수가 좋은 날’을 보내고 있는 김 첨지의 하루가 실은 이토록 고됐는지, 그리고 그 뒷모습이 그토록 애처로웠는지. 이전에는 미처 지각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영화 <운수 좋은 날>은 좋은 재발견의 기회가 될 것이다. 앞서 위치한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것과 더불어, 상세한 거리 풍경 묘사가 눈에 띠는 <운수 좋은 날>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단어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처연(凄然)’이다. 마음이 조급해질수록 애써 이를 부정하고, 한시라도 더 바삐 움직이려는 김 첨지의 처연함은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 ‘운수 좋은 날’은 우리의 학창 시절 ‘역설법’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였다. 문학 작품을 통해 절감할 수 있는 역설의 쓰디쓴 감각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교과서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한국 문학 속 역설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흔치 않은 기회다. 


한국 문학의 적극적 애니메이션화의 불씨를 당긴 이 작품이 여러 방면에서 모든 관람층을 만족시킨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하면 어른들로 하여금 추억에 잠기게 하는 동시에 자라나는 어린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지가 앞으로 한국 근현대 문학 작품의 2차 창작을 이어 갈 이들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메밀꽃, 운수 좋은 날, 그리고 봄봄>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노선에서 유의미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쫙 그은 밑줄 아래, 깨알 같은 글씨로 선생님의 말씀을 받아 적어가며 작품을 정독했던 학창 시절은 추억으로 남겨두자. 교과서라는 강력한 스포일러는 이제 그만 뒤로 하고,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감상을 시작해도 좋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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