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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unity/관객기자단 [인디즈]

[인디즈] 필름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필름시대사랑> 인디토크(GV) 기록

by indiespace_은 2015. 10. 27.

필름이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필름시대사랑> 인디토크(GV) 기


일시: 2015년 10월 22일(목) 오후 6시 20분

참석: 장률 감독

진행: 모은영 한국영상자료원 프로그래머






*관객기자단 [인디즈] 추병진 님의 글입니다.


<필름시대사랑>은 장률 감독의 9번째 장편영화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고 꾸준히 비평가들의 관심을 받아온 그의 작품들은 이전 작품 <경주>(2014)를 기점으로 대중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경주>에 이어 이번 작품에도 함께 참여한 배우 박해일은 물론이고 안성기, 문소리, 한예리 등 주요 배우들의 출연은 그의 영화를 한층 더 궁금하게 만든다. 이번 인디토크에서는 시네아스트 장률 감독이 말하는 영화, 필름, 공간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모은영 프로그래머(이하 모): 이 작품은 원래 서울노인영화제에서 단편으로 기획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의뢰받았을 때, 감독님께서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굳이 이 이야기를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 단편으로 기획된 작품을 장편으로 확장하기까지의 과정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장률 감독(이하 장): 단편을 장편으로 만드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풍경>(2013)도 단편으로 제안을 받고 장편으로 확장한 영화인데, 꽤 고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렇게 만드는 경우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현장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화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아, 현장은 저럴 수 있다.’ 라고 생각할 겁니다. 저는 한국에 와서 이제 3년 반 정도 살고 있는데, 거의 매일같이 영화인들을 만나고 영화 일을 하다 보니 다른 이야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가끔 영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배우 박해일은 어떤가요?”, “배우 누구는 어떤가요?” 이런 질문을 항상 듣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여기 살면서 내가 병에 걸린 건 아닐까, 병원에 온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를 만들다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있지만, 매일 그것만하면 공포감도 생깁니다. 그동안 영화의 현장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들을 생각해봤습니다. 이제 필름이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는 현상도 못합니다. 저는 필름으로 시작해서 <두만강>(2009)까지는 필름으로 찍었고, 그 이후로는 디지털로 찍고 있는데, 그렇게 변한 지가 몇 년 되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필름이 다 없어졌지요. 그런데 ‘과연 필름이 다 없어진 것이 맞는가? 혹시 우리의 정서에 필름의 질감이 아직 남아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찍었습니다. 단편 부분은 3일 만에 끝났지만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태프 몇 명을 찾아가서 이틀만 더 도와달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빈 공간을 찍어보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해서 스태프들과 이틀 동안 빈 공간을 찍은 겁니다. 


모: 2장부터는 텅 빈 공간들이 등장하고, 정신병원 곳곳의 풍경들이 나타납니다. 제게는 ‘누군가 여기에 잠깐 머물렀는데, 카메라가 그 흔적의 뒤를 따라간다.’ 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공간들을 찍으면서 2부는 ‘해체’의 과정이고, 3·4부로 가면서도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해체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방식으로 영화를 배치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장: 저는 해체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웃음) 먼저 1장 촬영이 끝났습니다. 촬영이 끝났는데도 그 공간이 다시 생각났습니다. 저는 영화를 10년 정도 찍어왔는데, 우리는 영화 현장이라는 공간에서 며칠이면 며칠이고, 한 달이면 한 달이고 그 공간에 감정을 쏟아야 하지 않습니까? 영화 현장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현장의 공간은 엉망진창입니다. 거기에서 촬영이 다 끝나면 모두 그 공간을 떠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떠난 후의 공간에는 무엇이 남아있을까? 아직 어떤 흔적들이 남아있는가?’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영화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에 대해서 착취할 것은 다 하고, 정 없이 떠나버리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공간이란 무엇인가?’ 그러다보니 문득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이 강남 서울의료원인데, 곧 철거될 곳이라고 했습니다. 환자도 두 명 밖에 남질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만 떠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도 다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저를 다시 돌아가게 만든 것 같습니다.


모: 여러 공간들 중에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장: 영화 현장과 정신병원은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정신병원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는 사람을 밀폐시켜 놓고, 단절시키고 못나가게 하지 않습니까? 영화를 찍는 사람들도 특정 시기, 특정 공간에 자기만의 시·공간을 만들어서 자신을 초월을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겹치는 부분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생활 속의 이 부분, 저 부분 겹치는 것들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관객: 1장을 찍고 나서 이것을 장편으로 만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나머지 2, 3, 4장을 머릿속에 그렸는지, 만약 그러했다면 나름의 원칙이나 흐름을 잡고 그렸는지 궁금합니다.  


장: 2, 4장은 이틀 동안 찍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4장의 구조는 빈 공간을 찍다보니 나왔습니다. 빈 공간을 찍는 과정에서 앞의 배우들의 연기가 생각나는 겁니다. 계획된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이 필름 시대에서 건너온 배우들이지 않습니까? 영화에 담겨있는 그들의 모습, 연기 등을 다시 생각하다보니 궁금해졌습니다. 이들의 초기작을 보면 영화는 하나하나 다른데, 어떻게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영화를 찍는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그들의 좋은 연기들을 이 영화에 넣으면 ‘그 공간과 어떤 작용을 할까’ 라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결국 2장과 4장은 단순한 생각으로 그곳에 찾아갔다가 구조가 나온 것이고, 3장은 편집을 하다가 나온 것입니다.


관객: 빈 공간을 찍는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2장의 초반의 컷들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연출된 장면들이지 않습니까? 이렇게 장치를 만드는 것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어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연출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장: 큰 원칙은 없었습니다. 2장은 ‘1장의 공간 1, 2 ,3층은 사람들이 떠난 후에 어떠한가?’ 라는 질문에, ‘지하엔 무엇이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더한 것입니다. 실제로 지상의 생활은 지하의 것들로부터 많이 공급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공간의 지하는 무엇인가. 그래서 3, 2, 1층, 지하 순서대로 찍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하는 실제 그 건물의 지하가 아닙니다. 그 공간을 찍으려고 하니 병원에서 동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병원 지하에는 병균이 많아 건강에 해롭다고 해서 찍을 수 없었고, 대신 바로 옆의 운동장 지하실에서 다 찍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소리가 나겠는가, 그런 것들은 즉흥적으로 했습니다. 예를 들어, 병이 빙그르르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병원에서는 조용히 하는 것이 원칙이지 않습니까? 그 조용한 공간에서 갑자기 실수를 하게 되면 당연히 소리가 들립니다. 그 소리는 보통 공간에서 나는 것보다 더 인상적으로 들립니다. 영화를 찍는다고 하면 이런 동작들을 모두 설명해야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어, 저 병이 돌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대부분은 그 행위를 한 사람을 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병이 도는 순간만을 발견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저는 떠나간 사람의 시선이 아직 남아서 그 병이 아직 돌고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이 2장의 장면처럼, 사람은 없지만 병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그런 장면을 만든 계기인 것 같습니다. 


관객: 저는 이 영화에서 사운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3장을 보면, 배우들이 출연했던 영화들이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이미지와 자막이 등장합니다. 또 박해일과 안성기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음악을 연주하고, 4장에서는 실제로 음악이 삽입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화 속의 음악이나 사운드는 감독님께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장: 실제로 영화에서는 사운드뿐만 아니라 촬영이나 다른 부분들도 모두 중요합니다. 다른 부분들은 시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소리는 듣고 느낌을 가지는 것이지만, 영화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시각적인 요소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촬영팀이 가장 힘이 셉니다. 지금 해가 지니까 빨리 찍자고 하면, 녹음팀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도 그렇게 따라갑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시각보다 소리가 우리의 감정에 깊이 들어갑니다. 우리의 감정을 더 건드리는 것은 소리인데, 영화 시스템에서는 소리가 시각적 요소보다 소외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감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그 장면과 씬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률 감독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의 대답을 직접 들어보아야 한다. 설명을 들어보면, 놀랍게도 모든 장면과 씬에는 각자의 이유와 의도가 들어있다. 물론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낯선 화법으로 말을 건네는 장률 감독의 영화는 우리에게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필름시대사랑>과 함께 그의 이전 작품들을 찾아본다면, 영화의 새로운 화법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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