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인디's Face - 독립영화의 얼굴들]
다시, 또 한 번 다시<종로의 기적>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6월 6일(토) 오후 8시
참석: 이혁상 감독 | 주인공 소준문, 장병권, 정욜
진행: 김동원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양지모 님의 글입니다.
6월 6일 저녁, 서울극장으로 이전한 인디스페이스에서 <종로의 기적> 인디토크가 있었다. 이혁상 감독과 영화의 주인공들이 등장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김동원 감독의 차분하고 깊이 있는 진행 아래 GV가 시작되었다.
김동원 감독(이하 김): <종로의 기적>은 2011년에 개봉할 때 화제작이었다. 그 때 내가 이 영화를 특별히 챙겨보고 약간 악평을 했다. 게이 커뮤니티가 조금 미화된 것 같았다. 오늘 다시 보니까 굉장히 용의주도하게 만든 게 눈에 띄고, 이 작품이 왜 독립영화의 스테디셀러인지 알 수 있었다. 올해 퍼레이드를 허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고, 오랜만이라 특별한 감회가 있을 것 같은데 주인공들의 다시 본 소감을 들어보고 싶다.
소준문(이하 소): 4년 만에 봤는데 ‘아 우리가 저랬구나’ 싶어 낯설기도 하고 ‘지금 잘 하고 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랜만에 보니까 만감이 교차했다.
장병권(이하 장): 시간이 되지 않아서 오늘 다시 보지는 못했다. 관객들이 재미있게 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봤다면 어렸을 적 모습이 그리웠을 것 같다. 만나게 돼서 반갑다.
정욜(이하 정): 영화 속의 전보다 지금이 더 낫다. (웃음) 모습도 다르고 시간도 흘렀는데 변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조금 힘들다. 그 때 성소수자들이 어떤 요구를 하고 이야기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다 나오지는 않지만, 지금도 더 열심히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주인공 영수 씨는 이 자리에 없지만, 젊었을 때의 자기 모습을 보고 흡족해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볼 때마다 ‘저 부분은 고쳐야 될 것 같은데’ 하는 곳이 있는지?
이혁상 감독(이하 이): 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내가 왜 저랬을까 생각도 했다. 사실 오늘 본 버전은 많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전과) 조금 다르다. 5분 정도 정리를 했다. 영어 자막 감수를 다시 보다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이 참에 손대볼까 해서 조금 고쳤다. 미련을 버리고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 정념을 쏟아야 할 것 같다. 오늘 본 관객들은 극장에서 처음으로, 소위 말하는 디렉터스 컷을 본 것이다.
김: 이혁상 감독이 처음에는 자기 어렸을 때 사진을 몇 장 꺼내서 곧 본인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것 같더니 자기 이야기는 쏙 빼고 친구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자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참은 건지 아니면 비겁한 건지 알고 싶다.
이: 굳이 내 이야기보다는 다른 친구들을 통해 내 이야기를 하자,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하자는 생각이 있었다. 사실 나도 그 당시에는 두려움이 많았다. 영화를 보면 초반과 후반에 촬영하는 스타일이 다르다. 주인공과의 상호작용 같은 것들이 초반에는 없었다. 왜냐하면 철저히 카메라 뒤에 숨어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들을 담아보자는 비겁함이 있었다. 물론 그게 작품의 형태적인 전략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내가 커밍아웃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주인공들은 큰 용기를 내서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을 하고 또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전반적으로 톤이 변했다. 나를 그 안에 넣고 싶었지만 분량이 문제였다. 옴니버스가 보통 세 편 정도이지 않은가. 왜 그런지 알겠더라.
김: 카메라 너머로 대화하는 목소리도 들리고 계속 개입하는 게 유지되는 것 같다. 이혁상 감독의 개인적인 스토리보다는 관점이나 관심을 품고 있는 이슈들, 처음에 영화부터 시작해서 인권연대, G보이스, 에이즈 환자까지 포함해서 다양하게 쭉 깔려 있다. 각 이슈들의 중심에 서 있는 등장인물들이 절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 인물을 생각하고 만들다가 이슈로 넘어갔는지, 아니면 이슈들을 쫓다 보니 그런 인물들을 가져오게 됐는지 궁금하다.
이: 시작 초반에는 나름 이 캐릭터들로 컨셉을 잡았다. 사실 그 때 내가 작업하는 스타일은 일단 주인공 팔로우를 하는 식이었다. 지금하고는 조금 다르다. 지금은 구도를 생각하면서 캐릭터를 부여하며 촬영하는데, 그 당시에는 내가 처음 연출을 하는 것이었고 잘 모르기도 해서 일단은 열심히 쫓아다녔고 그러면서 구체화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욜 같은 경우에는 원래 대기업에서 생활하는 것들에 대한 힘든 부분들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는데 내용이 변화됐다. 병권과 준문 같은 경우에도 이야기를 하면서 동성결혼에 대한 내용이 나오게 됐다.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주제나 내용들이 변화하게 된 케이스이다. 그렇기 때문에 약간 변죽만 울리다가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일 내가 좀 더 공부를 많이 하고 준비를 많이 해서 동성결혼, 동성파트너쉽 문제를 먼저 치고 들어갔으면 <종로의 기적>이 김조광수 감독의 <마이 페어 웨딩>에 앞서 그런 이슈를 탁 던지는 선구적인 영화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한다. (웃음)
김: 이혁상 감독은 최초의 게이 영화를 무엇으로 보는가?
이: 최초로 이야기되는 건 <내일로 흐르는 강>(1995)이다. 다큐멘터리 장편으로는 <종로의 기적>이 처음이라고 알고 있다. 물론 그 전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김: 80년대 노동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는 노동자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면 안 됐다. 노동자 안의 갈등은 숨기고 노사 갈등으로 가다 보니 갈등의 폭이 단조로웠다. 그러나 요새 나오는 노동영화들은 굉장히 갈등의 축이 많아지고 좀 더 솔직해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아마 게이 영화들도 앞으로는 본격적인 이야기들이 그려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의 갈등 등 아프고 부끄럽지만 드러내야 하는 문제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이 외면화되어 논쟁이 벌어지면서 좀 더 성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늦게까지 함께 한 관객들에 감사 드리고, 인디스페이스와 게이 영화에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
영화가 개봉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영화를 찍을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현실에 참석자들은 하나 같이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시, 또 한 번 다시 지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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