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전 [인디's Face - 독립영화의 얼굴들]
미숙한 그들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혜화,동>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6월 6일(토) 오후 5시
참석: 민용근 감독
진행: 이난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전지애 님의 글입니다.
서울극장으로 이전하며 재개관을 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에서 기획전 [인디‘s Face – 독립영화의 얼굴들]으로 <혜화,동>을 상영하였다. <혜화,동>은 세상에 버림받은 모든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 상영 후 진행된 인디토크를 통해 <혜화, 동>을 만든 민용근 감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가졌다.
이난 감독(이하 이):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혜화,동>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요, 감독님은 영화 어떻게 보셨나요?
민용근 감독(이하 민): 사실 영화에 몰입했다기보다는 저 때 저렇게 시나리오를 썼구나, 그리고 촬영할 때 상황들 같은 게 떠올랐어요. 마지막에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여러 인연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영화 외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이: 저는 네 번 봤어요. 영화를 보면서 ‘한국에 참 영화를 잘 만드는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영화를 보면서 '이 시나리오는 어떻게 시작했을까?'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혜화,동>에 대한 첫 구상은 어떻게 하신 건가요?
민: 예전에 유기견을 구조하는 여자 분을 찍은 방송 다큐멘터리가 있었어요. 한겨울이었고 탈장된 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구조를 하러 갔죠. 구조를 하려고 몇 날 며칠 있었는데 잡지를 못했어요. 마지막 날에 구조할 뻔한 순간이 있었죠. 근데 놓쳤어요. 놓치고 나서 그 여자 분이 차 안에서 펑펑 우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여자 분이 우시는 이유가 꼭 개를 놓쳐서 그런 것만이 아니라 자기 안에 상처가 있는데 탈장된 개로 인해서 건드려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당시의 이미지들이 강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고 그 이미지를 통해 모티프를 얻었죠.
관객: 영화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 제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중에서 부성애에 관해 비관적인 경우가 있더라고요.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 같다고 얘기하거나 아빠는 아이를 키우면서 부성애를 갖는 것 같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데 극 중에서 ‘한수’는 굉장한 부성애를 갖고 있어요.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요.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민: 물론 한수의 입장에선 부성일 수도 있고 혜화의 입장에서는 모성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두 사람은 모두 미숙한 사람들이고 실제 아이를 키워본 것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부성애나 모성애가 부각되기 보다는 한수 입장에선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자기가 저지른 일로 인해 생긴 상처들을 치유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치유의 방법이 아이를 통해서 나타났던 것 같고요. 혜화와 같은 경우도 모성애보다는 낮은 자존감이나 그 동안 벌어진 일들로 인해 발생한 상처들을 어떻게든 복구하거나 치유하고 싶어 하는 마음들을 아이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한 것 같아요.
관객: 차기작을 언제쯤 만나볼 수 있는지, 어떠한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민: <혜화,동> 만든 다음에 <어떤 시선>이라는 국가인권에 관련된 영화를 만들었고 작년에 <자전거 도둑>이라는 단편이랑 <고양이의 춤>이라는 단편 역시 만들었습니다. 그 사이에 장편 시나리오를 썼었는데 아직도 쓰고 있습니다. 장르는 미스터리에요.
이: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시나 봐요? <혜화,동>같은 경우도 보면서 무서운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이를 찾는 과정에서 새롭게 야기되는 사실들, 새롭게 찾게 되는 한수와 혜화의 관계. 영화 자체가 무언가를 찾아가는 느낌이 강하잖아요.
민: 미스터리 장르를 물론 좋아합니다. 하지만 꼭 장르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 사람을 처음부터 전부 알지는 못하잖아요. 미스터리가 생기고 궁금증이 생기죠. 그것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결국 그 사람을 아는 것이 되잖아요. 그런 맥락의 미스터리는 즐겨 사용하는 편이죠.
이: 영화의 첫 시작을 보면 뒷모습이 나오고 앞으로 향하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선 뒤를 보면서 차가 후진을 하더라고요. 이런 장면은 의도적인 건가요?
민: 정확히 기억을 안 나는데요, 앞과 뒤가 대구를 이루도록 따로 설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결말 부분에 있어서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초고 같은 경우에는 혜화가 한수를 버리고 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혜화라면 한수를 용서해주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수를 버려두고 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영화를 통해 보셨겠지만 한수가 굉장히 민폐 캐릭터잖아요. 그래서 극장에 오신 분들 중에 혜화가 후진을 해서 한수를 차로 친 것이 아니냐, 라는 이야기도 나왔었어요. (웃음)
이: 저는 손톱이 항상 궁금하더라고요. 영화계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그 손톱들이 감독님 본인의 것이라는 얘기가...
민: 소문이라기보다는 다 아시는 사실 아닌가요? (웃음) 실제 제 손톱이에요. 스무 살 때부터 모은 거에요. 시간이 막 흘러가잖아요. 그런데 흘러가는 시간을 잡아둘 수도 없죠. 그래서 시간적인 개념에서 손톱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시나리오를 쓰다가 혜화에서 있어서 5년이라는 시간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혜화는 남들이 모르는, 자신만 아는 방식으로 본인의 상처나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기억해 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손톱을 모으는 습관을 시나리오에 넣었죠. 손톱은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시간이 물질화 된 것이잖아요. 그래서 나중에 한수가 혜화의 손톱을 발견했을 때, 혜화가 혼자서 감내했던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된 거죠. 촬영할 때도 미술팀에서 손톱에 대해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촬영 스태프들의 손톱을 다 모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고 하고요. 그래서 제가 필름 통에 모은 거를 가져다 줬죠. 십여 년간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었던 손톱들이 영화에서 보신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왔던 거예요. 유연석 배우가 촬영하실 때 제 손톱을 가장 가까이서 보신 거죠. (웃음)
관객: 저는 엔딩곡으로 쓰인 브로콜리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와 영화의 엔딩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궁금해요. 앞부분에 보면 동물병원원장이랑 첫사랑이 다시 이뤄지잖아요. 혜화랑 한수도 이어진다, 라고 생각할 수 있고요. 그런데 곡 자체가 앵콜요청금지잖아요. 그렇다면 앵콜이 안 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국 한수와 혜화의 관계 역시 되돌릴 수 없다는 결말이 나오고요. 혜화와 한수가 후에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민: 영화를 보면 과거의 일들이 다시 현재에 발생했을 때 어떻게 되는지가 나와요. 앵콜요청금지 같은 경우는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곡들 중 하나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보컬의 목소리와 영화의 분위기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표면적으로 보면 말 그대로 앵콜이 금지인거죠. 그런데 세부적으로 노래를 들어보면 ‘제발 내가 그 과거로 돌아가게 하지 말아주세요’ 이런 느낌이에요. 저는 이런 정서가 혜화의 마음이랑 잘 통한다고 생각했죠. 겉으로는 다시 아이를 마주하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다시 아이를 돌아보게 되는 혜화의 상황들이 노래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객: 감독님께서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가장 전달하고 싶으셨던 것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민: 영화의 주제가 한 가지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의 상황이나 느낌들을 종합적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어떤 영화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저는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과거로 인해 만들어진 상처를 현재 어떻게 들여다 볼 것인가, 그리고 그 과거의 상처가 다시 지금의 나에게 살아났을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 혜화와 한수를 통해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살다 보면 어떤 선택의 순간이나 고민의 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 순간에 무섭더라도 용기 있는 선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측면에서 영화를 만들었어요.
관객: 영화를 진지하게 보다가 “I can't do it” 부분에서 완전 빵 터졌어요. 혹시 이 부분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신 것이 있는지 아니면 혹시 감독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 제가 알기로는 민용근 감독님은 영어를 잘하시는데요. (웃음)
민: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기보다는 설정 자체에 유치함을 넣고 싶었어요. 물론 ‘나연’이 혜화의 친딸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그 사이에 이질감이 있을 테고 그러한 이질감을 표현하고 싶어서 그런 장면을 넣었어요. 혜화는 영어 실력이 변변치 않은 반면에 나연이는 영어를 유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사용할 줄 아는 상황인 거죠. 저는 그런 차이가 서로에게 되게 낯설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했거든요. 이 둘이 되게 다른 삶을 살아왔구나, 라는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덧붙여서 말하자면 ‘I can't do it’ 과 같은 장면은 진지한 부분에서 실소가 나오는 상황들이고, 실제 삶에서 벌어지잖아요.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취향이어서 영화에 넣게 된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자전거 도둑>도 봤는데요, 영화를 보니 모두 젊은 여자가 주인공이더라고요. 왜 이십 대 초반의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민: <혜화,동>이랑 <자전거 도둑>만 젊은 여성분들이 주인공으로 나올 거예요. 다른 영화들은 모두 남자가 주인공이고요. (웃음) 다양하게 인물을 설정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남녀를 떠나서 어린 친구, 이십 대 초반의 이야기들을 많이 다뤘던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어떻게 보면 가장 감수성이 예민한 순간이고 자기의 삶에 대해 정립되지 않은 시기잖아요. 그래서 내면적인 흔들림도 많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직면하려고 노력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 나이 또래의 청년이 자기 삶을 보다 잘 인지하려는 태도가 보이고 그런 부분에 제가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이: 시간이 다 되어서 마지막으로 감독님 인사말 듣고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민: 오랜만에 저도 영화를 보러 왔어요. 물론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인디스페이스가 서울극장에서 재개관을 했기에 더욱 영화를 보고 싶었어요. 이 공간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영화를 봐서 더욱 좋았던 것 같고요. 또 제가 나름대로 인디스페이스에 애정을 갖고 있어요. 인디스페이스가 처음 생길 때 좌석을 후원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혜화,동> 제작진들이 돈을 모아서 후원을 했죠. 그래서 속으로 정이 더 가는 극장이에요. 시설도 역대 급으로 좋은 것 같아서 앞으로 더욱 잘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인디토크에 참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혜화,동> 인디토크를 통해 영화를 촬영하면서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과 영화가 담고 있는 깊은 주제들에 대해 활발히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혜화,동>은 미숙한 존재들에게 따뜻한 위로의 시선을 담은, 상처를 가진 모든 이들이 상처와 다시 대면할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희망을 주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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