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5년 동안의 자가당착적 현실을 보여주다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인디토크(GV)
일시: 2015년 3월 7일(토) 오후 3시
참석: 김선 감독
진행: 최진성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이도경 님의 글입니다.
5년 전에 제작되었지만 아직도 등급 문제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와 싸우고 있는 화제의 영화 <자가당착 : 시대정신과 현실참여>(이하 <자가당착>)의 인디토크(GV)가 지난 7일에 있었다. 화제의 내막, 그리고 영화에 대해 <자가당착>을 연출한 김선 감독과 진행을 맡은 최진성 감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진성 감독(이하 최): 영화 먼저 소개 간단히 해주세요.
김선 감독(이하 김): 공식적으로 이 영화를 상영하게 되어 감개무량합니다. 이 영화를 제작한지 한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2011년에 제한상영가를 받았어요. 어제 처음으로 공식 상영을 하고 오늘 GV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를 2번이나 받고 마지막에는 영진위까지 가세해서 이 영화를 상영 금지시킬 줄은요. 보신 여러분도 영문을 모르시겠죠? 일부러 조악하고 못 만든 티를 냈는데. 어떤 분은 영화계의 허니버터칩이다, 소문만 무성하고 맛본 사람이 없다더라, 그런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최: 저는 이번에 두 번째 본 건데, 처음엔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봤어요. 포르노 장면 빼고는 카페에서도 볼 만한 영화였습니다. (웃음) 이게 왜 제한상영가인지 의문이었어요. 김선 감독과 제가 영화를 한지 14-5년 정도 되었고, 이런 식의 비슷한 비주얼을 많이 보았고, 이것이 왜 난데없이 이슈와 문제가 되는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김: 처음에 제한상영가를 받았을 때, 사유서가 날아오는데 가관이에요. 처음과 두 번째의 사유서의 이유가 다른데, 처음의 이유가 좀 더 영등위의 솔직한 심경이 담겨있는 것 같아요. 원수를 살인하려고 하는 의도를 갖고 있는 살인 무기 같은 영화, 특정 계층을 비하하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면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김: 재미있는 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시기가 이명박 정부 때 표현의 자유를 억압받는 것에 충격 받아서 이명박을 비난하기 위해서- 비판이란 말을 쓰기 싫습니다. 비판은 논리 정연하게 하는 게 비판이고, 저는 논리가 없습니다. 이 영화는 논리가 없습니다. 비난하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정작 영등위가 걸고 넘어진 것은 이명박 장면보다는 박근혜 장면이라는 것이 놀랍고 당황스러웠고, 국가 원수를 살인하려는 살인 무기 같은 영화라고 사유서에 쓰여 있는데, 그 때는 사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거든요. 국가 원수를 박근혜를 말하는 건지, 만약에 이명박을 말한다면 이명박을 살해한 장면은 없죠, 사실. 그렇다면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국가 원수라고 생각하는 걸 거고, 정권이 바뀔 것을 다 예측해서 미리 손을 써 몸을 사리는 양상이 되는 건데, 그런 면에서 영등위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이죠. 그래서 열 받아서 소송 걸고 했던 거에요.
관객: 제한상영가 이유에 대해서 들었을 때 정말 어처구니없었거든요. 사실 이 자리에서도 영진위나 영등위의 분들이 함께 보면서 새롭게 느끼는 게 있었으면 합니다. 질문 드리고 싶은 부분은, 시내에서 쥐 탈을 쓰고 돌아다닐 때의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김: 시나리오에서 미리 계획된 장면이었어요. 마지막 장면은 다큐멘터리처럼 찍자.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인형극처럼 되어있지만 막판에는 이 영화가 단순한 인형극이 아닌 실제의 현상들을 재현하고 혹은 비난하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 다큐멘터리로 찍었어요, 우스꽝스러운 풍자형식으로 찍자고 계획했고, 원래는 청와대를 가는 것으로 되어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이명박이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전달하기 위한 홍삼박스를 들고 가다가 전경들에게 막히고 경찰들에게 얻어맞는 장면이 시나리오에 쓰여 있었죠. 그 때 이명박이 독도 발언을 했어요. 독도 문제는 다음에 이야기하자는 식으로. 그 때 대학생들이 독도 발언 철회하라면서 청와대 앞에서 플래카드 펼치는 영상이 있었는데, 그 때 전경들이 출동해서 테러리스트 진압하듯이 특공무술로 진압하는 장면을 보여주더라고요. 진짜 가서 찍으면 영화가 완성이 안 될 것 같아서 ‘4대강’으로 바꿨습니다. 강도는 약하지만, 또 다른 아버지의 집, 이명박의 또 다른 마음의 고향 같은 4대강으로 바꿔서 지금 제 배우자가 되어있는 분이 쥐 가면을 쓰고 끌려나오는 퍼포먼스를 했죠.
관객: 어떻게 이렇게 지구력을 갖고 끌고 오셨는지, 어떻게 생존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일방적으로 당하는 상황이었어요. 영등위와 영진위의 자세한 내막은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 말씀 드리면, 일단 제한상영가를 연속해서 2번 받았고, 사유들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아까 제가 언급했던 것처럼 정치적인 살인이다, 국가원수를 살해하려는 무기 같은 영화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유들이 있었고, 심지어 두 번째 제한상영가에서는 말을 좀 바꿔요. 폭력성이 너무 과하다, 피가 너무 많이 나온다, 너무 잔인하다고 말을 바꾸는데, 이 두 번째 제한상영가 사유 때문에 영진위가 패소하게 돼요. 재판장에서 틀어보면 전혀 폭력적이지 않거든요. 누가 봐도 마네킹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짜 피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투박합니다. 일부러 못 만들려고 한 영화인데, 폭력적인 사유로 제한상영가를 내렸기 때문에 영등위는 패소하게 되죠. 자기 꾀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게 된 거에요. 두 번이나 제한상영가를 내리면서 1심에서 저희가 이겼는데 항소하고 상고까지 하면서 대법원까지 가게 된 거에요. 누가 봐도 뻔 한 이런 상황을 상고까지 하게 된 영등위의 행태를 보니까 어떻게든 이 영화를 상영 금지하려는 의지로만 보이더라고요. 영등위가 제 의지를 만들어 줬던 것 같아요. 계속 옆에서 추동을 하더라고요. 지친다, 나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상고, 항소하고, 제가 씨네21에 글 쓰면 반박 글을 보내오는데 너무 허접해요. 그걸 보면 짜증이 나더라고요. 영등위가 저의 짜증을 만들어서 제 지구력을 키워줬던 것 같아요.
최: 영등위와의 법정 싸움에서 대법원까지 가서 김선 감독님이 승소를 한 상황인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다 해결된 건가요? 뭐가 문제인가요?
김: 개봉을 하려면 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영화는 등급을 받아야 개봉할 수 있어요.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영등위는 재량권을 남용했고, 불법 남용 일탈 행위이다, 그러므로 제한상영가를 취소하라.’ 이렇게 되어있거든요. 영등위가 대법원의 판결을 따른다면, 일탈, 불법 행위를 인정한다면, 등급을 다시 자기들이 알아서 재조정해야 하는데 다시 심의를 받으라는 거예요.
최: 심의 신청을 한 상태인건가요?
김: 아니요, 사과를 하면 재심의 등록을 하겠다고 했죠. 그쪽에서는 사과문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최: 감독님이 원하는 것은 영등위의 공식적인 사과이군요. 그러면 재심의 신청을 할 것이고 불가피하게 청소년 관람불가 정도는 나오겠군요. 또 제한상영가를 내릴 순 없는 거잖아요.
김: 내릴 수도 있죠. 대법원 판결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진 않겠지만, 그런다고 해도 그 사람들에게 법적 제재는 없죠.
관객: 이 영화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기 위해 만든 영화라고 했는데, 현재 4-5년이 지났잖아요. 지금도 그의 말이나 자서전을 보면 이때를 반성하는 모습이나 태도가 안보이죠. 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더불어 영등위에서 <자가당착>이 국가 원수를 살해한다고 했는데 그게 허경영은 아니었을지.
김: 허경영이 나올 때 빵빵 터졌어야 했는데. (웃음) 저는 이명박 자서전이나 그런 것들을 볼 때 안심을 합니다. 그 시절이 지나간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때는 정말 전쟁 같았어요. 가장 전투적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기였는데 그 때만큼 영화인들에게 암울한 시기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명박의 발언은 놀랍지 않습니다. 그분은 정치보다는 장사를 하려고 대통령이 된 분이기 때문에 장사꾼이 하는 말이라 그렇게 놀랍지 않습니다. 하나하나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장사를 잘 하기 위해서, 돈을 잘 벌기 위해서. 사실은 우리는 국가 원수를 뽑은 게 아니라 사장님을 뽑은 거에요. 우리는 이명박의 사원,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의 사원이었죠. 그런데 이명박이 잠깐 깜빡 한 것은 촛불집회에서 보듯이 우리는 해고가 안 된다는 것. “너 쇠고기 먹어. 안 먹어? 그럼 해고시켜버려.”라고 하면 되는데 국민은 해고가 안 된다는 게 장사꾼 이명박이 판단하지 못했던 허점인 것 같아요.
관객: 희망사항인데요, 이명박 정권 5년 동안의 암울했던 시기를 코믹하게 회상하는 것을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스트레스 해소를 하도록 하면 어떨까 합니다.
김: 모든 영화 제작자들이 저를 보면서 “정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정치 코미디를 해라.”라고 하시는데 정작 써서 가면 “이걸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겠니?” 이런 식이에요. 영화 제작사들도 딜레마입니다. 하고 싶은 것과 관객들이 원하는 것이 충돌하기 때문에. 영화판도 힘들죠, 사실은.
최: 이 영화에 굉장히 많은 레퍼런스들이 있어요. 신문 쪼가리 같은 것들. 김선 감독의 예전 작품에도 있었지만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촬영을 꼼꼼하게 했잖아요. 깜짝 놀랐거든요. 엄청난 시간과 공이 들어가는 작업인데.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제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좋아합니다. 아날로그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도 좋아해요. <토이 스토리> 같은 3D 애니메이션보다는 셀 애니메이션 혹은 스톱 모션, 페인팅으로 된 아방가르드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레퍼런스는 ‘얀 슈반크마이어’라는 체코 애니메이션 감독이 있어요. 그의 작품 중에-그 분도 정치 이야기를 많이 안 하시는 분인데-스탈린을 비난하는 애니메이션이 하나 있어요. 너무 재미있어요. 그 영화를 보고 이 영화를 떠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영향을 많이 받았죠. 이 영화의 제작비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돈이 많이 들었어요.
최: 얼마였나요?
김: 한 300만원? 특수 모형을 만드시는 분들에게 제작을 의뢰했었는데 돈을 많이 받으시더라고요. 부서진 포돌이는 제 집에 있습니다. 포돌이에게 감정이입이 돼서 포돌이가 춤을 출 때는 같이 추고, 울 때는 같이 울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었어요.
최: 김선 감독이 여기저기 유쾌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게 분명한데, 정치적 문제로 번져서 5년을 끌고 있다는 게 흥미롭고 이상한 상황인 것 같네요.
김: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 때문에 겁이 나요. 사람들이 보면 “뭐야 이게!” 이럴까봐 걱정되는 것도 있습니다.
최: 실은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을 것도 같네요. (웃음) 영등위에서 안 그랬으면 4년 전에 영화제 좀 돌고 관객들이 적당히 보고 그랬을 텐데. 빨리 잘 정리되길 바랍니다.
김: 이 영화 만들고 나서 사건이 터지다 보니까 괴전화들을 몇 개 받았어요, 무슨 기자라면서 전화를 했는데 나중에 어디 기자냐고 물어보니까 이름도 대충 말하고 끊어요. 정말 수상해요.
최: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시죠.
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즐길만한 영화는 아니거든요. <자가당착>의 의미를 살려주시기 위해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이 영화가 어떻게 될지. 사실은 등급을 아예 안 받았고 영등위, 영진위까지 가세한 상태에서 이런 검열의 트로이카가 완성되려면 국정원이 나서야 할 때이기도 하거든요. 분위기를 보아하니 박근혜를 비방하는 전단지를 뿌려도 명예훼손죄로 잡아가는 양상이다 보니까 저에게도 이 영화로 경찰, 국정원 등의 국가기관에서 어떤 조치를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5년 간 영화의 개봉이 미루어진 내막부터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기 위한 영화들을 만드는 힘든 과정까지 들을 수 있었다. 다양한 목소리를 억지로 막으려 하는 영진위, 영등위의 행보가 영화의 내용처럼 진정 ‘자가당착’적인 것이 아닌지, 제작 후 5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까지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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