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시(詩)에 대한 화답. 영화 <목숨> 인디토크
영화: <목숨>_ 이창재 감독
일시: 2015년 1월 2일
참석: 이창재 감독
진행: 영화사 백두대간 최낙용 부대표
관객기자단 [인디즈] 손희문 님이 작성한 글입니다 :D
눈시울 촉촉. 영화 <목숨>은 호스피스 병동 환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죽음이라는 차가운 주제를 온화하고 따뜻하게 풀어낸 이 영화는 ‘나쁜 죽음’이 아닌 ‘좋은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죽음이라는 영구불변의 풀 수 없는 미스테리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이창재 감독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는 삶을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라고 말했다.
차분한 태도로 말을 이어가던 그와의 만남을 옮겨본다. 이날 인디토크에는 영화사 백두대간 최낙용 부대표가 진행을 맡았다.
진행: <목숨> 아시는 대로 출연자분들이 다 고인이십니다. 그래서 주로 제가 사회를 보고 감독님께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시는데요, 먼저 감독님의 말씀 듣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 추운 날씨인데, 추운 영화를 보러 오신게 아닌가 싶네요. 어떻게 보셨을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받은 리뷰들은 생각보다 따뜻한 영화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격려가 많이 되었습니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면서 일반적으로 여쭤보시는 것들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면, 원래 죽음에 대해서 오랫동안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모든 사회적인 것들이 정지되고 오로지 나 스스로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주어지게 된다면 나는 과연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2006년 <사이에서>라는 작품이 막 끝났을 때, 이번에 촬영한 포천 모현 호스피스를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틀정도 자원봉사를 하면서, 생각보다 제가 생각하던 머릿속의 관념적인 죽음과 현실적 죽음의 괴리를 느끼고 잠정적으로 영화를 찍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과 2010년에도 거듭 방문을 했지만 포기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 영화를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을 즈음 저의 가까운 친구와 형수님이 연달아 두 달 사이에 임종을 맞게 되면서 그 때 ‘이것이 내가 피할 수 없는 숙제구나’라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그 경험들이 저에게 영화를 해야겠단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아주 친절하게 ‘무엇을 느껴라’라고 말해주고 끌어주기보다 있는 그대로 다이렉트 시네마에 가깝게끔 표현을 했는데, 관객 분들께서 ‘메시지가 무어냐’라는 질문을 많이들 하셨어요. 메시지를 제 생각으로 좁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미래, 그리고 나의 미래가 있다면 곧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먼저 타임머신을 타고 체험해보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었을까. 그랬을 때 각자 느끼는 주제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돌아와서 현실을 농도 짙게 살아야겠다든지, 또는 내 가까운 사람들과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된다든지 하는 부분들은 제가 말로 가두어 버리기보다 각자의 생각들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이끌어 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합니다.
진행: 저희 영화는 3만 6천명 정도의 관객 분들이 관람하셨습니다. 12월 4일 개봉시기에 약 180개 관을 확보했고, 지금은 10개 관 정도 남아있습니다. 특히 저녁 시간대는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나 가족 분들이 많이들 보러오세요. 지금 이 자리에는 젊은 분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여러분이 생각한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아 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안녕하세요. 저는 평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서 이런 영화들을 많이 찾아보곤 했었는데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죽음보다 제 자신에 대한 죽음이 중심이에요. 영화에 나오신 분들은 죽음을 받아들이셨지만 죽음의 순간에서 자기 자신을 부정하거나 종교인으로서 신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을 때에 내가 추악한 모습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나 인간적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되는데, 그러한 죽음의 모습들을 혹시 실제로 목도 하신 적이 있으신지, 그리고 영화에서는 죽음을 수용하는 모습이 많이 나왔는데, 그런 분들을 위주로 영화를 제작하신 의도가 궁금합니다.
감독: 죽음자체는 엔딩인데,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는 개인의 느낌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제가 힘들게 보았던 죽음이 있다면, 이곳에 와서도 끝까지 기적을 바랐던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깨어있는 모든 시간을 투자하여 기도실에서 구원을 찾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타협의 단계가 굉장히 길었던 것이죠. 그렇게 기도를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할 때까지 행하시다가 결국에는 그 이튿날 뒤에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거든요.
근데 제가 오히려 나쁜 죽음보다 좋은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는 나쁜 죽음이 더 많았기 때문이에요. 제 친구처럼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날까지 살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때문에 정말 실험실의 동물처럼 끔찍한 죽음을 맞은 경우도 있는 반면에 호스피스에서는 가능하면 정신을 맑게 하고 고통을 줄여주면서 유하게 죽음을 받아들이고 수용을 하게끔 해요. 그런 부분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진행: 이번에는 제가 관객 분들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영화 <목숨>을 보러 오실 때 이유가 있으셔서 오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오셨는지 말씀해주실 분 있으신가요?
관객: 안녕하세요. 영화 잘 봤습니다. 사실 제가 부산에서 친구와 함께 올라왔는데, 얼마 전에 어머니께서 영화를 많이 보고 싶어 하셔서, 먼저 영화를 접하고 말씀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사실 죽음에 대해서 딱히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영화를 보면서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되고 병에 걸리고 죽음을 대하게 되는 것들이 저와 주변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숙연하게 봤습니다.
진행: 부산도 <목숨> 상영관이 있으니, 저희가 어머니와 함께 관람하실 수 있도록 초대를 하겠습니다. 끝나고 연락처라도 가르쳐 주십시오.(웃음)
관객: 제가 사실 이 친구보고 같이 오자고한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사실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그래서 제자의 마음으로 질문을 하고 싶은데, 왜 영화에서 카타르시스를 최소화시키고 드라마틱한 연출을 축소하신 방식을 선택하셨는지 궁금하고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신 경위가 궁금합니다.
감독: 그 부분들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결정된 부분들이 없잖아 있는 것 같고, 다시 원론적으로 돌아가서 이 분들이 가장 힘든 순간들을 할애하여 저희에게 준 것인데 ‘자칫하면 그 시간들을 소모시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이 감각적으로 소비되거나 ‘잘 짜여진 드라마를 봤다.’라는 생각을 들게 하기 보다는 진정성 있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저에게 편한 부분은 나중에 제가 카메라로 담았던 그 분들과 다시 만날텐데 ‘그때 덜 미안하고 부끄럽겠다, 조금은 고마워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객: 아까 스테파노라는 분이 여행을 떠나고, 지금은 사회로 복귀하신 것 같은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저도 한번쯤 그런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궁금합니다.
감독: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와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여 밝힌 이야기를 후일담으로 말씀드리자면 여행은 제가 밀어서 가게 했는데, 그 때 “2주 이상 조용히 꼭 여행을 갔다 왔으면 좋겠다”라고 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그 친구가 묵언으로 여행을 했거든요. 2주 동안의 여행을 하고 돌아와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 2008년에 혼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 저도 좀 심각했습니다. 정확하게 8일정도 지나니 저를 짓눌러왔던 삶의 질문들에 대해 답까지는 아니지만 '아주 하찮다'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걷다보니 질문이 다 빠져버리고, 색도 바래버리고 그래도 남는 것이 별로 없더란 것이죠. ‘생각보다 걸으면서 자기치유가 참 크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그때 또 결정적으로 영화를 해야겠단 생각을 했던 것은 여행을 갑작스레 계획하게 되면서 짐을 28kg가 되도록 챙겼는데 막상 산티아고에 도착하니 필요 없는 짐들이 굉장히 많이 있더라고요. ‘내가 만약 삶의 끝에서도 엉뚱한 짐이 아니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들을 지금 안다면. 스펙이나 갖춰야하는 짐들을 조금 덜어내고 중요한 것을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 제가 그때 받은 선물이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진행: 저희 영화 <목숨>은 12월 4일날 개봉하여 여전히 극장에서 상영 중입니다. 인디스페이스, 인디플러스, 아트하우스모모 등 지속적 상영이 될 예정이고요. 오늘 이 자리에서 영화를 보신 분들 또 한번 좋은 주변 분들께 권해주시고, 같이 보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굉장히 추운 날 영화 봐 주시고, 이야기와 격려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한 시간동안 누군가는 질문을 던졌고, 누군가는 고민을 품었다. 어떤 이는 아팠지만, 또 어떤 이는 그를 통해 치유를 받았다.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질문을 이어가던 또 다른 한 사람은 깊숙이 감춰오던 눈물을 보이고는 이내 훔쳤다. 마치 스크린 속의 그들처럼 당신들의 영혼과 접하기라도 한 듯이. 그 시간은 비로소 그들이 투명성 있게 삶을 대하게되는 순결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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