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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일 리 없는 문제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와 〈4등〉
*관객기자단 [인디즈] 진연우 님의 글입니다.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관람한 당신의 감상이 궁금하다. 영화는 과연 해피 엔딩일까, 배드 엔딩일까? 결말이 다방면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고, “모든 것이 진짜였다.”라는 생각으로 동춘에게만은 확실한 해피 엔딩을 선물해 주었다는 감독의 인터뷰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 지구에서 동춘이 잠시나마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특히 가족-의 웃는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그 끝에 마침내 명쾌한 해답을 찾은 듯 “그래, 초등학생이 이걸 다 배우는 게 이상하잖아. 그렇지?” 하며 주조통 안으로 훌쩍 뛰어드는 동춘의 선택에 입이 떡 벌어지며 단전에서부터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귀엽고 발랄한 영화의 톤에 경계를 풀고 무방비했던 만큼 더욱 타격이 컸던 결말이었다. 답이 없는 지구에서 동춘이 무력하지 않아 좋았다. 그러나 뛰어내린 곳이 다행히도 우주로 가는 통로였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것이 정말 잘된 일일까? 해피 엔딩을 마주하고도 기약 없는 말 흐림과 질문만을 남긴 채 영화가 반복해서 메아리친다.
환영받지 못하는 숫자 4등. 상위권의 범주에 드는 1, 2, 3등의 바로 뒤에 붙어 있으니 결코 낮은 숫자라고 할 수 없지만 유독 미움받는 일이 잦다. 무수한 낙첨 사이 수중에 5만원이라도 쥐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왜 하필 막걸리가 1등이 아니라 4등을 알려 줬을지” 반문당할 정도이니 4등은 당첨의 기쁨보다도 앞서는 애매함의 상징인 듯하다. 그런 영진의 질문에 동춘은 “재료를 준비하기에는 충분한 금액이기에 그렇지 않을까”라며 논리적으로 4등을 긍정한다. 정말 그렇다. 모두가 쉽게 잊는 사실이지만 4등은 사실 그 자체로 충분한 숫자다. 월등하게 앞서지는 않더라도 이미 능란한 상태. 그런데 모두가 1등이 아니면 뒤처졌다고 생각하기에,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동춘의 얼굴에서도, 〈4등〉의 준호의 얼굴에서도 점차 웃음기가 지워져 간다.
〈4등〉의 준호는 수영을 한다. 그러나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준호의 비극은 준호가 수영 대회에서 반복해 4등을 하면서부터 일어난다. 준호에게도 동춘과 마찬가지로 준호의 성공을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바라는 엄마 ‘정애’가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엄마 ‘혜진’과 ‘정애’의 공통점을 짚어 내고 싶다. 가장 먼저 두 엄마가 아이에게 행하는 것들은 명백한 학대다. 〈4등〉의 경우, 영화가 직접적으로 폭력의 테마를 가져가고 있지만, 그보다도 두 엄마가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를 투영해 아이를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두 영화에는 모두 엄마가 아이를 똑바로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모든 것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라며 아이의 성취를 자신의 것으로 등치시키는 모습도 보인다. 자식을 똑바로 바라보며 우는 엄마는 자식의 기억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 자국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이 모든 일들을 야기한 듯 보이는 ‘엄마’들에게 모든 책임을 물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동춘을 가지게 된 이후 대기업 정규직 자리를 포기하고 산후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혜진의 서사는 이미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이면의 모든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혜진은 알츠하이머 환자인 늙은 어머니를 홀로 보필하는데, 어머니와의 면회 장면에서 혜진의 오빠인 영진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대기업에서 일하느라 바쁜 사람 귀찮게 하는 것 아니다.”라며 틈틈이 시간을 내 안위를 살피러 온 혜진 앞에 야속한 말만을 툭 내뱉어 놓는다. 이미 오래전에 속세를 떠난 지 오래인 영진의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모든 것에 너무 지쳐 버린, 일면 경쟁 사회의 피해자로 그려지는 영진도 그간 혜진 홀로 감내해 온 돌봄과 혜진과 함께 자라 오며 그를 조용하게 좌절하게 했을 수많은 순간들에 대한 책임에서만큼은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정애라고 다를까? 정애는 준호가 코치인 광수의 폭력에 못 이겨 수영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순간부터 발전기의 스위치가 내려간 것처럼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버린다. 그리고 다시 움직일 이유를 찾아 준호의 동생인 기호에게로 표적을 옮겨 “너는 엄마의 희망”이라는 말을 되풀이한다. 누가 이 여성들의 희망을 아이에게 죄다 걸게 한 걸까. 작중에서 준호의 안위를 제일로 생각하며 가장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듯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자기 자식이 뭘 잘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싸고돌기만 하면 되는 줄 안다.”라는 광수의 일갈을 다방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영화 곳곳에 산재한 단서들을 읽어 낼 수 있다. ‘바깥일’을 하는 아빠 영훈은 대개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 정애에게서 아이들의 일과를 보고받듯 전해 듣고 그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만이 그의 육아의 전부다. 정애의 애끓는 목소리는 많은 경우 호들갑이나 유난이 된다. 준호의 시합 전날, 기도를 올리러 절에 다녀오며 자신과 준호 형, 아빠의 몫으로 무엇을 빌었는지 꼬치꼬치 캐묻는 기호에게 곧잘 대답해 주던 정애가 엄마 몫의 소원으로는 무엇을 빌었는지 묻자 잠시 뜸을 들이다 “엄마는 없어.” 하던 모습이 마음에 남는다. 혜진과 정애가 너무 오래 그들의 이름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단호하게 학대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경쟁’과 ‘사교육’, 그리고 ‘학대’라는 키워드로 일축하기에는 거미줄처럼 너무 많은 이해관계가 걸쳐져 있다. 하나의 문제를 건드리면 다른 문제가 산더미처럼 딸려 나와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는 이 지구를 떠나 버린 것은 동춘에게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지구에 남아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모두가 동춘처럼 우주로 향하지는 못한다. 이미 굳어 버린 전두엽이 어디선가 전해지고 있을 모스부호를 읽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이 영화의 아이들이 부딪히기 위해 기꺼이 사람들을 역행할 용기가 있음에, 직선의 레일을 이탈해 수영장 전체를 사선으로 가로지를 수 있는 추진력이 있음에 당장 필요한 한 걸음이 무엇인지는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었다. 발 아래 펼쳐진 은하와 산란하던 빛의 감각을 간직하며 동춘과 준호의 자유로운 유영을 온 마음으로 응원해 본다.
*작품 보러 가기: 〈4등〉 정지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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