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물의 입장에서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인디토크 기록
일시 2024년 3월 2일 (토) 오후 7시 상영 후
참석 김다민 감독
진행 이동진 평론가
*관객기자단 [인디즈] 박이빈 님의 기록입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의 꼬리들을 이따금씩 끊어 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서 동춘 앞에 나타난 존재는 엄마도, 학원 선생님도 아닌 막걸리. 입시제도와 커리큘럼은 매년 바뀌고, 학습해야 하는 것들은 그 종류와 양을 따지지 않고 늘어난다. 동춘에게 처한 상황이 ‘말도 안 된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때쯤 막걸리는 톡 쏘는 끝맛으로 말이 되는 세계를 알려 주기 시작한다. ‘미생물의 입장’을 고려했던 김다민 감독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의 기록.
이동진 평론가(이하 이동진): 안녕하세요. 오늘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진행하게 된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라고 합니다.
김다민 감독(이하 김다민): 안녕하세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연출한 김다민입니다.
이동진: 네, 저도 한 1~20분 전에 감독님을 만나 뵙고 이런저런 이야기 간단히 나누었는데요, 저도 여쭤보고 싶은 게 너무 많고, 여러분들도 아마 그러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독님은 질의도 여러 차례 하셨겠습니다만 또 이렇게 인디스페이스에서 개봉 중에 가장 중요한 토요일 날 저녁에 행사를 하시게 됐습니다. 먼저 간단히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김다민: 인디스페이스에는 관객으로만 왔다가 오늘 여기 앞에 있으니까 너무 이상하고요, 그런데 또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동진: 이 영화에 관해서 많은 것들을 여러분들이 여쭤보고 싶으실 텐데요. 일단 막걸리부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영화 전반을 재미있게 보기도 했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뭉클하면서 마음이 쿵 내려앉는 느낌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맨 마지막에 이제 크레딧을 유심히 봤습니다. 보니까 도와주신 분들이 이렇게 쭉 올라오시는데, 우리술 이사님도 계시고, 한국 가양주협회 연구소 소장님도 계세요. 협찬을 적극적으로 받으신 듯 하고, 영화에도 여럿 나왔어요. 제가 제일 간단하게 궁금한 건 그분들에게 이 영화에 대해 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까? “막걸리가 말하는 영화인데요.” 이렇게 이야기하셨나요?
김다민: 아, 제가 오해를 살까 봐 ppt를 되게 열심히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가 나오기는 하는데, 우리술 같은 경우에는 먹지는 않고, 약간 먹었다가 뱉긴 하는데...”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었고요. (웃음) 이미지 같은 것들을 보여 드리면서 설득을 했던 것 같고, 우리술은 사실 양조장에서 촬영 허락을 원래 잘 안 해 주세요. 위생 시설이기도 하고, 주조를 직접 하고 계시니까요. 그런데 진짜 틈새 시장으로 간곡하게 PD님과 같이 말씀을 드렸었고, 찾아뵙기도 하고 했어요. 그때 우리술 사장님께서 되게 호쾌하게 “우리 술 막걸리는 널리 퍼져야 하고... 내 친구들도 보면 소주 먹는 친구들은 다 죽고 없다. 막걸리 먹던 친구들만 지금 다 살아 있다. 막걸리는 좋은 술이니까.” 이런 식으로 말씀해 주셨어요.
이동진: 아까 사석에서 제가 오기 직전에 이 얘기를 들었어요. 듣고 너무 웃겨서 이렇게 꼭 들려 드리고 싶었습니다. 여기까지만 저희가 미리 짜 둔 부분이고요. (웃음) 영화 속에서 보면 막걸리를 먹는 장면도 있죠? 그건 뭐였나요? 실제 막걸리인가요?
김다민: 아뇨, 막걸리는 아닙니다. 아침햇살을 조금 넣은 그런 물이에요.
이동진: 〈막걸리가 알려줄거야〉의 영제가 〈FAQ〉예요.
김다민: 네, ‘자주 묻는 질문’으로 간략하게 영어 제목을 지어 봤어요. 〈미나리〉 같은 작품처럼 하기에는 막걸리의 발음 자체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네, 그렇군요. 이제 본격적으로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연 배우 자체가 굉장히 어린 배우이고, 촬영 자체는 재작년에 했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배우 오디션을 보셨을 때 여러 후보로 둔 배우분들이 있었을 텐데, 그중에서 박나은 배우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지점은 어느 부분이었나요?
김다민: 제 머릿속에 먼저 동춘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림으로도 그려 놓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찾기가 되게 어려웠어요. 약간 멍한 표정부터 해서 여러모로 이 분위기를 어떻게 내야 하나 하던 차에 마지막까지 못 찾다가 딱 나은이를 만나게 됐어요. 그때 다들 그림이랑 너무 똑같이 생겼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냐 하면서 저희들끼리도 좀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이동진: 영화에서의 박나은 배우 연기가 뭐라고 할까요? 학원에서 교육받는 스타일의 연기가 아니었고, 그런 면에 있어서 아이 얼굴 자체가 가만히 있을 때에도 굉장히 풍부한 느낌이 들고, 어떻게 생각해 보면 훨씬 더 많이 산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해요. 아이가 너무 귀여운데, 또 어떤 깊은 눈을 가지고 있고, 또 영화에서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를 하는 것 같다고 느꼈던 장면이었어요. 로또 4등 맞는 것을 딱 보았을 때의 연기가 그랬는데요. 현장에서 이 배우는 어떠셨나요?
김다민: 일단 로또 당첨의 표정을 담는 것이 저희 총 촬영을 통틀어서 첫 회차였어요. 가장 표정이 많은 장면을 제일 첫 회차에 했어요. 그런데 보고 있으면 실제 성격도 되게 비슷하거든요. 제가 느끼기에 동춘이와 비슷한 친구예요. 가만히 있을 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좀 궁금해지는 얼굴이어서, 영화에 잘 담아 보도록 노력을 했었던 것 같아요.
이동진: 추가적으로, 그러면 사실 이제 어린 배우한테는 이 스토리가 어려울 것 같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시키셨나요? 시나리오 형태로 던져 주시지는 않으셨을 것 같고, 여러 가지로 잘 설명을 해 주셨을 것 같은데, 어떻게 이야기하셨나요?
김다민: 처음부터 끝까지 대본 리딩이나 이런 걸 할 때 설명을 하긴 했었고, 제가 이걸 간략하게 단편 소설로도 한 번 낸 적이 있어요. 그건 내면 묘사가 좀 더 많이 돼 있다 보니까 그것도 읽어 보라고 주면서 그것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아마 100% 이해는 못 하고 촬영을 했을 것 같아요. 이걸 찍을 때 나이가 4학년이었는데, 나은이가 지금은 6학년이 됐거든요. 고학년이 됐는데 볼 때마다 감상이 조금씩 다르긴 한가 봐요. 예전에는 재미있게만 봤는데, 지금은 슬픈 기분이 느껴진다든지 그런 얘기를 해 주는 걸 보면 아직 우리의 대화가 완성되어 가는 중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해요.
이동진: 나은이의 부모님은 이 영화를 보고 뭐라고 이야기하시던가요?
김다민: 아직 코멘트를 듣지는 못했어요. 재미있게 봤다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진지하게 이야기해 본 적은 없어요. 아역 배우분들은 보통 부모님과 주로 많이 다니시는데, 나은이는 소속사 실장님이랑 다니는 친구였어요. 그래서 서울독립영화제 할 때 뵌 게 처음이었어요.
이동진: 이 영화는 막걸리가 영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테마로 등장하는 세계 최초의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막걸리가 말을 한다든지, 무언가 알려 준다든지 하는 것을 어떻게 기획하실 수 있었을까 싶고, 이걸 상상하는 일도 어려운 것이지만 상상했다 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제목으로 내세우는가 하는 부분에서 굉장한 배짱과 상상력의 신선함에 대해 여쭤보게 되는데요. 막걸리를 어떻게 제일 처음에 떠올리게 되셨는지 먼저 질문 드립니다.
김다민: 제가 평소에 평생학습관이나 주민센터에서 뭔가 배우는 걸 좋아해요. 그런 수업 중에서 15년도 즈음에 전통주 만들기 수업을 한 3개월 정도 배웠었습니다. 막걸리도 만들고, 누룩도 만들고 하면서 동네 주민분들이랑 같이 그 수업을 들었어요. 그럴 때 막 돌아가면서 누구 집에서 숙성하고 이런 식으로 만들었거든요. 그때 보면 방 한켠에 두고 항상 지켜보게 되잖아요. 잘 되고 있는지, 온도도 맞춰 줘야 하고, 또 보고 있으면 이게 소리가 진짜 많이 바뀌어요. 단계에 따라서 소리랑 모양이 바뀌고 하는 게 진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초의 발상이라고 한다면 그곳에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동진: 그 당시에는 이것이 영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어도, 기포가 소리를 내고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신호 같다는 생각을 하신 거죠?
김다민: 네, 내가 밥도 주고 해서 먹은 대로 자라나고 하는 그런 느낌이요. 살아 있구나 하는.
이동진: 역시 감독님 굉장하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근데 막걸리가 말을 하고, 우주적인 신호를 준다는 것까지는 상상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죠. 저 같은 사람은 그런 것도 상상이 안 되긴 하는데요. 그런데 그때 막걸리가 말하는 것이 모스부호로 연결이 되고, 그게 페르시아어와 관련이 되어서 좌에서 우로 읽는 한글과 다르게 우에서 좌로 읽고 하는 방식으로 연결되는 것이 정말 기상천외한 상상력이라고밖에 얘기할 수 없어요. 이런 연결들은 어떻게 가능하셨는지 얘기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김다민: 막걸리에서 모스부호는 쉽게 생각이 났어요. 기포의 소리가 유사하다고 생각했고, 제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페르시아어도 동네에서 배웠거든요. (웃음) 시민들한테 개방하는 한 달 정도 되는 그런 수업들이 다 있어요. 문자만 조금 읽어 보다가 끝났지만요. 굳이 생각해 보자면, 이 영화를 구상할 때 어쨌건 말이 안 되는 요소들, 어른들이 느끼기에 그러한 부분들을 일부러 느끼게끔 하고 싶었어요. 아이 입장에서는 코딩이든, 국영수든 사실 비슷한 느낌일 수도 있잖아요. 동춘이 입장에서 자신이 배우는 것들은 일상생활에 연관이 없고, 그런데 나중에 어떤 전형이 생긴다고 해서 수업을 듣게 되고 이러잖아요. 그런 과정을 보여 주기에 더 재미있겠다 싶었어요.
이동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수시를 볼 때 학생들이 그것이 오로지 점수 따기 쉽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고는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것이 반영되는 느낌이 들어서 어떻게 생각하면 터무니없게 느껴져서 더 리얼하고, 진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영화에서 감독님이 직접 겪으신 자전적인 부분이라고 할까요? 실제로 어렸을 때 학원을 많이 다녔다든가 하는 부분들이 있을까요?
김다민: 저는 사교육은 거의 받지 않았고, 교과서 중심으로 공부했는데요. (웃음) 어머니가 약간 방임주의셨고, 대학교도 제가 수능을 안 봐도 되는 전형이 잠깐 생겼을 때 마치 로또처럼 들어갔어요. 저는 그때 애니고등학교에서 영화를 찍었었는데, 그래서 사실상 영화로 대학을 갔습니다. 지금은 그 전형이 사라졌는지, 다른 전형으로 바뀌었는지 할 거예요. 그때는 약간 실험적으로 시도했던 전형에서 1기의 행운으로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동진: 네, 그렇군요. 그렇게 해서 이 영화가 처음 상상이 되고, 만들어지게 되었는데요. 사실 이 영화는 굉장히 깊은 문제의식에 토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고 나서 제가 제일 먼저 느낀 건, 어떤 주제라는 것이 있다고 할 때 그 주제의식을 어둡게 만들려면 한없이 어둡게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이 잘 보입니다. 그런데 감독님 같은 경우, 어떻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자 하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밝고 귀여운 것을 만드셨을까 싶었어요. 이런 건 어떻게 보면 연출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꼭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김다민: 일단은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에 깔리기는 하는데, 어른 입장에서는 이걸 충분히 이야기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약간 아이의 입장에서, 당사자의 입장에서 이걸 이해하는 과정들,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납득하는 어떤 과정들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이들도 보면 막 모두가 울상을 짓고 학원에 가지는 않거든요. 이미 일상의 일부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괜찮기는 한데, 이걸 ‘왜’ 하는지가 좀 궁금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동춘에 관해서 중심적인 질문을 드렸지만 사실 외삼촌에 관한 것도 굉장히 궁금하게 느껴집니다. 박나은 양의 최초의 대사 자체가 질문이고, 두 번째 대사도 질문이고, 그 질문의 내용은 내가 이걸 왜 배워야 되느냐 하는 것이에요. 학원에 가서 물어보면 집 가서 물어보라고 하고, 집 가서 물어보면 학원 선생님한테 물어보라고 그러잖아요. 결국은 참다 못해서 답답해진 막걸리가 말해 주는 이야기인데, 그렇게 본다면 사실 영화 속에서 나머지 두 인물. 어머니나 외삼촌을 보게 될 때, 어떻게 보면 막걸리를 만나서 얘기를 전달받지 못하고 나이가 든 동춘이 같아요. 엄마는 자기 본인의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있잖아요. 외삼촌 영진은 아마 기러기 아빠인 것 같고요. 그런 설정들과 두 어른들의 상황에 대해서 한 번 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김다민: 동춘이를 봤을 때 지금은 아이인 상태로 자라고 있지만 결국에는 엄마가 될 수도 있고, 외삼촌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딱 보기에 동춘의 성격이나 하는 행동, 말투 같은 건 엄마나 아빠를 닮은 게 아니라 외삼촌이랑 닮았거든요.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어떤 맥락에서의 딜레마에 빠져 있고, 삼촌은 반대로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가 자유에서도 방황하는 상황이 됐지만 이마저도 사실은 반쪽짜리 자유인 거잖아요. 여러 가지로 매달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어요. 가족, 돈에 매달려 있게 되고요. 이런 것들이 놓여 있을 때, 동춘이 입장에서 어떤 선택지도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좀 옆에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혜진만 놓고 보기에는 세계관이 좁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완전히 다른 극단의 사람을 가지고 왔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동춘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지금 막 태어난 21세기의 아이 이름 같지는 않잖아요. 저는 사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좀 죄송하지만 저희 연령대에서는 서커스 이름이거든요. 이름은 어떻게 짓게 되신 건가요?
김다민: 지금 시대에 동춘이라는 이름을 잘 안 짓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저한테는 되게 익숙한 이름이거든요. 평생학습관이 동춘동에 있고, 제가 살았던 곳이어서 영화적 허용이라고 생각하고 지었어요. 저한테는 되게 정겹고 좋아서요. ‘춘’이라는 돌림자가 있었다는 설정을 지금 막.
이동진: 아, 그 설정을 지금 막 생각하신 건가요?
김다민: 네, 지금 막. (웃음)
이동진: 네, 지금부터 그런 것으로 하겠습니다. (웃음) 이제 영진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진은 외삼촌이고 영화 속에서 사실은 두 사람이 만나서 엄마와는 할 수 없는 그런 일종의 작은 모험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어요. 근데 영화에서 외삼촌은 그걸 모르지 않습니까? 외삼촌과 조카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없도록 설정하신 이유는 어떤 건가요?
김다민: 저는 이 설정 자체를 지켜보는 분들만 알았으면 했어요. 제가 이걸 가족 드라마로 풀어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서는 동춘이가 그러한 연관성 안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이 관계가 어떻게 진전될지를 궁금해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이 다 만나서 서로 애환을 풀고 그러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각자의 갈 길을 어떻게 갈까 생각했어요.
이동진: 감독님은 이 영화를 가족 드라마로 보시진 않는 건가요?
김다민: 요소들은 가족 드라마들이 있지만 모두가 서로와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가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네, 사실은 어린 아이들일수록 특히 허구의 어떤 존재들에 대한 상상을 굉장히 많이 하잖아요. 이 영화를 굉장히 귀엽고 독특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이 털복, 숭이들이에요. 이 두 친구가 너무 귀여운데, 아이가 특히 당황하거나 할 말이 없어지는 그런 결정적인 상황에 이 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순간에는 안 나타나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털복이와 숭이를 배치하신 것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 여쭙고 싶습니다.
김다민: 어린 동춘 다음으로 조금 큰 동춘이가 나오는 시점은 어느 정도 자기만의 타협을 한 상태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말수가 많이 없거든요. 예전에는 질문을 했는데 질문을 하면 자꾸 학원이 늘어나니까 질문을 하지 않는 상태로 뭔가를 시작해요. 그럴 때 이걸 집행할 수 있는 어떤 내면의 세계가 있는 거죠. 내면의 세계에서는 털복이와 숭이에게 질문을 많이 하거든요. 한편으로는 동춘이가 공부를 한다든지 할 때 그런 것들을 지탱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그런 친구들인 거예요. 동춘이 멍하니 있다고 하더라도 옆에 나와서 도와준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말하기 대회 때 생긴 트라우마로 나온 친구들이지만 어쨌든 이 전문적인 환경에 동춘이가 계속 있을 수 있도록 하려고 존재했던 친구들인데,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서 동춘이가 ‘성공’이라 할 만한 것을 하잖아요. 사회적으로 봤을 때 되게 잘한 어떤 행동들을 그들 도움 없이, 동춘이 본인만의 과몰입으로 해냈기 떄문에 동춘 입장에서는 빠른 이별이겠지만 이들은 ‘할 일을 다 했다’ 하고 사라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동진: 페르시아어 대회는 학부모 입장에서는 되게 조마조마하면서 보게 되는데, 그 장면을 영화에서 굉장히 독특하고, 코믹하고, 또 놀랍게 해내잖아요. 실제 촬영했을 때에는 어떤 방식이었을까요?
김다민: 이 장면이 시나리오 때부터 계속 있었던 신인데요, ‘모스 부호처럼 말을 하는데 약간 기괴하다‘는 식으로 써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실 연출 팀에서도 이거 정말 할 거냐고 물어보곤 했었는데, 제가 래퍼런스 영상을 찾아보니까 누군가 모스 부호처럼 고양이가 말하는 그런 영상을 편집해 놓은 게 하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동춘이랑 연출 팀이랑 해서 다 앉아서 래퍼런스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촬영장에서 입을 뻐끔뻐끔 움직이는 연습도 하고, 촬영해서 최종적으로는 CG로 속도 같은 것들을 맞췄습니다.
이동진: 모스부호를 입으로 연기하는 배우는 정말 세계 최초가 아닐까 싶은데요. 더군다나 저 어린 나이에요.
김다민: 네, 동춘이가 촬영할 때 웃음 참는 게 너무 어려웠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이동진: 동춘이는 원래 질문으로 시작하고, 질문이 굉장히 많은 아이예요. 실제로 사람들도 어렸을 때는 그렇게 호기심 많고, 질문이 많다가도 점점 세상에 대한 질문이 없어지고, 그것이 이제 학원에 다니는 것이든 무엇이든 어떤 과정에서 점점 아이가 권태로운 상황 속에 들어가게 되는 거잖아요. 영화 속에서 이 아이가 중간에 선생님한테 딱 하나 질문을 하는데, 그게 과학 선생님한테 미생물은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 거예요. 영화적으로 본다면 이 아이가 비밀을 찾아낸 것이 아니고, 비밀이 아이에게 온 거예요. 소화전에서 말도 안 되게 막걸리가 나온단 말이에요. 간단하게 질문 드리자면 누가 소화전에 막걸리를 넣은 거예요?
김다민: 궁금하게 만들고 싶은 부분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미생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을 때, 이 아이들을 특정해서 미생물이 다가가려면 어떤 상황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수위 아저씨라든지 하는 가능성도 저는 생각해 봤습니다.
이동진: 소화전에서 불이 빛나고 있는데 무슨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막걸리가 결국은 말을 하게 되고, 처음에는 막걸리가 말을 들을 줄은 모르고 할 줄만 알아요. 그래서 그것을 해독하다가 알아내는 방식으로 전개가 되는데, 곧 실제로 막걸리가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본격적인 대화를 하는 방식으로 이어지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는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지구를 지켜라〉가 생각났어요. 〈지구를 지켜라〉에서도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불행과 고통이 일어나는지를 평생에 걸쳐 알 수 없었던 사람이 나중에 우주적인 해답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게 농담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실제로 묘사가 되기도 하다가 끝나는 부분에서는 굉장히 진한 감동, 감정 같은 게 생겨요. 그래서 감독님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이 영화의 엔딩을 해피엔딩으로 만드신 건가요?
김다민: 이 영화의 끝부분에 대해서 말을 해 본다면, 영화 자체는 동춘이가 인생 동안에 갖고 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끝내 ‘왜’ 그렇게 되는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듣게 되고, 선택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생각했어요.
이동진: 그것이야말로 감독님께서 영화에 그림자 하나 없는 것처럼 묘사할 수 있었던 어떤 중요한 생각이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습니까?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비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중반부 장면이 무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마지막 순간, 그 계단을 올라가서 양조장 속 우주를 향해 뛰어내리기 직전에 보면 아이들이 쫙 서 있고, 모두 막걸리를 들고 있어요. 그 장면을 보는데, 저는 알란 파커의 〈핑크 플로이드의 벽〉이라는 영화가 생각이 났거든요. 그 줄을 서 있던 아이들도 이제 곧 우주로 차례로 뛰어내릴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영화 속에서는 굉장히 아름답고 귀여운 해피엔딩으로 포장이 되어 있고, 영화적으로 아이들은 해답을 얻었죠. 그런데 정말로 아이들이 그렇게 수많은 학원을 다녀야 했던 이유가 우주에서 나를, 즉 우주적으로 내가 선택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닐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저처럼 ‘막걸리가 말해 준다는 얘기는 곧 아무도 말해 주지 못한다’는 얘기처럼 듣기도 할 거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께서는 이런 생각들을 배제하시나요? 한국의 사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향한 근심이 깔려 있지 않습니까. 그러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감독님의 온도라고 할까요?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김다민: 마지막에 쿠키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리투아니아의 장면이 나와요. 사실 이 영화는 ‘끝까지 뻔뻔할 거야’ 하는 생각으로 마지막에 넣었어요. 이 세계관은 무조건 이거예요. 사실은 막걸리만 알고 있고, 아무도 몰라요. 우리가 이제 모르니까 영화 끝나고 이야기를 하면 되잖아요. 정답을 모른다는 가정을 했을 때요. 그런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동춘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게 궁금했고, 알아가고 싶은 상태라면 혜진이나 외삼촌은 방황은 하고 있지만 어느 정도 내가 선택한 것이 정답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교육 같은 것들을 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저도 결국 ‘사실은 우리가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동진: 네, 그러니까 관객들은 누구나 감독님의 이런 훌륭한 영화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감독이 인생 모든 것을 걸고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관객도 살아온 모든 것들을 다 동원해서 영화를 보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 측면에서 제가 떠올린 것은 유신독재 시절에 저항의 의미를 갖고 있는 대중가요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김민기 가수의 ‘친구’라는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가사를 보면 검푸른 바닷가가 나오고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하는 부분이 나와요. 그러다가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맨마지막에 이러거든요. 저한테는 그때 달리는 기차 바퀴가 막걸리하고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가사가 가지고 있는 함의는 아무도 말 못 해준다는 얘기고, 그랬을 때 어떤 시대의 참혹한 억압에 대한 우울이라고 할까요? 그런 게 담겨져 있어서 그 노래가 많이 불린 건데요. 당연히 똑같이 놓고 이야기할 순 없겠죠. 그런데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아이가 무슨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너무 많이 배우잖아요? 그러다가 딱 깨달음을 깨우쳤다는 듯, 환한 얼굴로 ‘바로 이거’ 라고 말을 하고, 그동안 봐왔던 얼굴들이 굉장히 밝게 웃는 얼굴로 몽타주 되어서 나와요. 감독님께 제가 놀란 건, 감독님의 표현을 빌려 ‘너무 뻔뻔하다’는 것인데요. 그런데 보통 감독들이라면 어떤 그늘 같은 그런 여지를 줄 것 같아요. 감독님은 그것을 배제하고 보여 주셨단 말이에요. 저는 그런 선택이 너무 놀랍더라고요.
김다민: 네, 저는 이 세계관 안에서도 우리는 나아갈 방법을 생각해야만 한다고 여겼습니다.
이동진: 마지막 순간에 아이는 우주로 가게 되었어요. 영화가 끝난 뒤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 엄마는 모를 거 아니에요, 아이의 행방을. 이야기에서 배제가 되어 있지 않습니까?
김다민: 네, 하지만 제가 짧게 나레이션을 넣은 부분은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라는 것이었어요.
이동진: 아, 막걸리가 말해줘서요? (웃음)
김다민: 네, 맞습니다. 사실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아이는 실종인 것이고, 너무나 가슴 아픈 이야기인데요. 그렇다고 해도 저는 이 이야기 안에서 부모님이 마음을 고쳐먹고, 사회 맥락적인 부분들을 극복해서 학원을 다 끊고, 갑자기 새로운 삶을 살 거라고 다짐하는 그런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이동진: 만약 그랬다면 오늘처럼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비범함 같은 건 없었겠죠? 이 영화를 찍으면서 기술적으로 가장 힘들게 느껴졌던 장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김다민: 가장 공들인 것은 막걸리인 것 같아요. 기포의 정도라고 할까요? 저희가 아주 미세한 호스들을 바닥에 많이 뚫어서 열심히 호스를 불어 가면서 기포를 만들었거든요. 누군가 저쪽 기포가 비었다고 하면 몇 번 호스인지 찾고 하면서 열심히 충원해서 불고, 나중에는 CG로 수정을 보기도 하는 그런 작업들을 했습니다. 또 재미있었던 일화 중에 하나가 혜진이 막걸리를 부엌에 얹어 놓고, 생수통을 본 동춘이가 딱 얼어붙는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그때 ‘여기서는 어느정도 감정으로 방울 점도를 유지를 할까요...?’ 하고 물어보셔서 ‘여기는 감정신이고, 막걸리도 약간 눈치가 있으니까 여기는 안 하는 걸로 합시다.’ 이런 식으로 이런저런 토론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동진: 막걸리한테까지 연기를 시키셨군요. 한편, 한정된 역할들 속에서 이런 기상천외한 영화를 만들고 나면 스스로 마음에 밟히는 그런 부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여건이 충분히 되었더라면 좀 다르게 만들고 싶었던 그런 부분이 있었을까요?
김다민: 이게 다 지나서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긴 한데요. 이런저런 아쉬운 것들이 많았어요. 찍고 싶었던 곳이 있었는데, 한정적인 환경에서 촬영을 해야 하니 시나리오를 고치거나 하는 그런 부분들에 있어서도요. 그런데 결국에 지금 봤을 때는 이 선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충분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제약들 때문에 바꿨어야 했지만 아주 가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좋은 장면이 나온 부분들이 있고요. 아쉬운 것들을 말하자면 좀 많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열심히 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이동진: 한국 독립 영화들 중에서 사실적인 것을 굉장히 진한 감정으로 묘사를 잘하는 영화가 저는 꽤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는 상상력을 구현해서 심지어는 막걸리의 기분까지 연기하게 만드는 이런 개성을 가진 영화는 정말 놀랍다는 생각을 했고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기발한 상상력이 있을 때, 이것으로 사람들을 매혹시키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본인은 기발하다고 생각했는데, 보는 우리들이 시시하게 느끼거나 어떤 힘을 느끼지 못하면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관객들을 설득시키는 감독님이 굉장히 놀라운 건데요. 계속 이야기해 주신 것과 같이 아이디어가 생기실 때, 창작자로서 그것에 대해 메모 같은 걸 하시나요? 메모를 해서 나중에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폴더를 열어 연결시키거나 하시나요?
김다민: 제가 메모 앱은 여러 종류를 쓰는데, 정작 메모는 잘 안 하는 타입이에요. (웃음) 막걸리 만드는 수업을 2015년에 듣고, 또 몇 년 뒤에 페르시아어 수업을 듣고 하는 식으로 산발적으로 하다가 2019년에 경기 시나리오 공모전 공고를 딱 보고 한 번 내 볼까 하는 생각으로 다 합쳐진 거거든요. 마감이 딱 생기는 순간에요.
이동진: 그럼 그 상황이 되면 열어 보셔서 인위적으로 합치시는 건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연결이 되시는 건가요?
김다민: 연쇄적인 방식으로 연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 네, 그렇군요. 사실 창작의 비밀을 좀 알고 싶어서 계속 여쭤봤는데요. (웃음) 절대 안 알려 주시네요. 지금부터는 관객분들의 질문을 추가적으로 받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객: 이동진 평론가님과 질답하실 때 답변을 들으면서 놀랐는데요. 아이들이 마냥 울상으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아니고, 이미 삶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그런 부분에 큰 공감을 했습니다. 아이들은 보면 마냥 부정적이기보다는 혼이 빠져 있는 ‘무’의 상태에 가깝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아이들이 느낄만한 감정을 어떻게 리서치하실 수 있었는지, 관찰 대상이 있으셨는지 하는 게 궁금합니다.
김다민: 제 주변에 조카가 있거나 한 게 아니어서 관찰한 건 아니고요. 저는 어린 시절에 상상을 좀 많이 했고, 저도 동춘이 같은 학생이었어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걸 굉장히 자주 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거든요. 그러다가 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더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이동진: 상상을 통해서 아이의 마음을 상상하신 거네요. 그렇다면 취재를 통해서 아이들을 만나거나 하진 않으신 건가요?
김다민: 네, 아이랑은 이야기를 많이 안 했고, 학부모님들이랑은 이야기를 조금 했어요. 제 주변 분들이나 대치동에 계시는 어머님들이 커리큘럼을 공유하는 사이트 같은 곳들을 리서치를 했고요.
관객: 저는 막 입시 제도에서 빠져나온 새내기인데요, 제가 친구들한테 〈막걸리가 알려줄거야〉를 보러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한테 내용 소개를 간략하게 해 줬어요. ‘어린 아이가 나오는데, 막걸리가 등장해서 페르시아어로 로또 4등을 알려 준다’는 식으로 말했더니 어리둥절해하면서 ‘그게 무슨 소리야?’하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이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친구들에게 영화를 한 줄로 어떻게 소개하실지 궁금합니다.
김다민: 제가 이걸로 한 4년 동안 고통받고 있는데요. 저도 관객분과 거의 똑같이 말한 것 같아요. (웃음) 사실 말로만 전달했을 때는 다들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이셨고, 이미지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되게 많이 했었어요. 시간 순서대로 동춘이가 막걸리를 만났고, 막걸리가 신호를 보냈는데 그것이 모스부호였던 그런 걸 설명했어요. 사실 보통은 서류를 먼저 내는데, 프레젠테이션 피칭을 보시기 전에 서류를 다들 읽어 보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있었어서 좀 다행이지 않았나 싶어요.
이동진: 실은 이런 공모전에서 저도 심사를 해 본 적이 있는데요. 이런 정도의 작품들은 사실은 눈이 밝은 사람이 골라내야 하는 거거든요. 그게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이고, 그런 측면에서 감독님도 굉장히 훌륭한 아이디어를 갖고 계셨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선정하신 측에서도 제 역할을 해내신 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또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관객: 감상평을 좀 먼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를 고민하지 않는 삶은 주체적일 수 없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리고 아이가 하나의 인격체로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고, 결국에는 성취하는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 안에 있던 어린아이가 동춘이로 표현이 돼서 아이지만 굉장히 어른인 것 같기도 하고, 저는 반대로 어른이지만 아이가 된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너무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제가 질문 드리고 싶은 건 두 가지인데요. 외삼촌이 언덕에서 ‘말이 안 되잖아’ 하고 말하면서 내려갔잖아요. 그 장면이 현실적으로 외삼촌의 발목을 잡은 게 맞다고 생각해도 되는지 궁금하고요, 마지막 결론에서는 저는 어느 순간 ‘이건 운명이야!’ 하는 느낌의 메시지를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혹시 운명을 믿으시는지 하는 것이 궁금합니다.
김다민: 외삼촌이 달리는 그날은 사실 굉장히 힘든 날이잖아요. 여러 가지 감정 속에서 병실에 누워 있는 엄마를 만났고, 돈은 없고, 술은 많이 취했어요. 감정들을 갈무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춘이를 만났는데, 둘이 함께 있던 직전 장면가지만 해도 어떻게 보면 영진도 동춘 같은 아이었고, 영진도 양조장에 갈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는 끝내 갈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게, 돈과 가족이 발목을 잡는 것이라고 봤어요. 내가 부양하지 못하는 상황, 엄마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들 같은 것들이 말이 안 되는데 사실 막걸리도 말이 안 되는 것이죠. 이 많은 것들 사이에서 술김으로 그렇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전에 하는 대사들이 횡설수설하기도 하고요. 영진은 믿을 수도 있었던 사람이긴 한데, 그 당시에는 자괴감에 시달려서 다시 내려간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에게 주어진 것은 반쪽짜리 자유고, 이건 절대 채울 수가 없는 것이라고 여겨서 끝내 떠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저희 엄마가 사주, 명리 같은 것을 좋아하시기는 하는데, 사실 저는 운명은 잘 모르겠습니다. (웃음)
관객: 동춘이 머리 위로 김이 올라오는 그런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 동춘이가 화났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위치를 정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또 실제 밥을 해서 그렇게 효과를 내신 건지, CG 처리를 하신 건지 궁금하고요. 하나는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노래 작사를 직접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가사에 맞는 곡을 의뢰하신 건지 혹은 곡에 맞춰 가사를 쓰신 건지 궁금합니다.
김다민: 밥통은 김이 올라오는 그것으로 한 번이라도 웃음으로 넘어가고 싶어서 그런 느낌으로 동원을 했던 거예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인위적이게 나온 것 같아서 약간의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노래 같은 경우는 제가 작사를 먼저 해 뒀고, 음악 감독님이 가사를 보고 작곡을 해 주셨어요. 처음에 이 노래를 어떤 목소리로 할까 고민하다가 리드 보컬은 편의점 알바생으로 나오시는 분께서 해 주셨고, 코러스는 저랑 PD님, 대표님 해서 모여서 작업했습니다. (웃음)
이동진: 알바생으로 나오시는 분이라고 한다면 아주 짧게 등장하셨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연기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또 다음 질문 받아 볼까요?
관객: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여러번 보게 되면서는 엄마 캐릭터에 시선이 많이 가더라고요. 엄마는 동춘이를 이러한 교육 현실에 놓이게 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말하는 내용이나 동춘이를 보는 표정을 보면 동춘이를 굉장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인을 제공하고는 있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느김은 들지 않아요. 그래서 엄마인 혜진이라는 인물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됐는데요. 감독님은 이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시는 건지 궁금합니다.
김다민: 이런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기존에는 엄마를 빌런처럼 묘사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 사회적인 맥락을 떼어놓고 볼 수는 없는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 혜진은 저와 가까울 수도 있는 미래거든요. 고학력이고, 열심히 일을 해왔고,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경력 단절이 되죠. 그럴 때 어떤 목표를 찾아야 된다고 하면 이것을 바로 직업으로 치환하기는 어렵겠지만 엄마가 직업적인 의식을 장착하고 프로페셔널하게 아이의 계획을 짜고 하는 방식으로 제 2의 인생을 여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시퀀스에 보면 어른들이 다 웃고 있는데, 욕심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그런 것도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저는 이게 어쨌든 동춘이를 응원하는 마음의 얼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이 모든 것들은 나중에 커서 잘 되라고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지만 방향성에 있어서는 이 방향이 맞는 건지 고민을 해 봐야 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그래서 엄마를 통해 개인의 욕심이라든지 하는 부분들은 조금 벗겨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관객: 저는 캐릭터에 관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요. 캐릭터의 색이 보라색, 노란색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텔레토비와 연관이 있는지도 궁금해요.
김다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들판이나 하는 것에서 연상되는 건 부정할 수가 없어요. 들판에 잘 어울리는 색들을 다 갖다 놓아 봤을 때 저 색들이 나온 것 같아요. 동춘이 입장에서 친근하게 느껴지도록 하기 위해서 캐릭터에 털을 좀 덧붙이고 하는 식으로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보라색이 털복이고, 주황색이 숭이입니다. (웃음)
관객: 네, 영화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는 막걸리는 동춘이에게 자유를 주게 되는 그런 대상으로 생각을 했어요. 중반부에 페르시아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도록 이끌어 준다는 점에서요. 사실 이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으로부터의 탈피’와는 벗어나는 맥락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페르시아어 말하기 대회에서 성공한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가 어떤 건지 묻고 싶었습니다.
김다민: 페르시아어랑 막걸리를 만나기 전에 동춘이는 막 그렇게 특출난 아이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에 과몰입을 하게 되면서 진짜 1등을 해 버리는 과정을 겪게 되죠. 저는 그런 과정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사실 과목만 예를 들어 코딩 대회로 바꾼다고 생각하면, 사실 그것을 두고 우리는 어떤 대단한 성취로 막 느끼곤 하잖아요. 그때 페르시아어와 코딩의 갭을 만들어 보고 싶었고, 당황스러운 지점으로 보여 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어쨌든 이런 과정에서 혜진은 이 방향이 맞는 건지 계속 고민하거든요. 주사를 놔야 되는지, 지금 재워야 되는지 하는 식으로 고민을 하는데, 그렇게 좌절하고 고민하는 순간마다 무언가가 있어요. 예를 들면 천재 발굴단에서 전화가 온다든지 하는 식으로 ‘이 방향이 맞아!’ 하는 느낌으로 사회가 계속 얘기하는 뉘앙스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같이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동진: 질문을 해 주신 관객분들도 상상력이 풍부하신 분들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털복이와 숭이의 색에 대한 질문을 하실 줄은 전혀 몰랐는데요. 오늘 흥미로운 이야기 들려 주셨어요. 어떠셨는지 마지막 인사 말씀 하시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김다민: 시간이 되게 빨리 갔다고 느껴지는 것 같아요. 계속 드리는 말이긴 하지만 이렇게 자리 채워 주시고,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돼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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