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가 알려줄거야〉리뷰: 막걸리는 동춘에게 알려주었다
*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윤정 님의 글입니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가능성과 연결되어 때때로 큰 무기가 된다. 돌아간 과거에서 차마 해석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미래에서 온 답지를 펼쳐 두고 정답들만 쏙쏙 동그라미 칠 수 있다면. 바로 잡은 과거들이 차마 구하지 못했던 과거와 현재를 더 좋은 미래로 인도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알지 못함과 과거의 어린 날들은 쉽게 교정의 대상이 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말랑말랑한 동춘(박나은 역)의 열한 살 인생도 수정을 반복하며 어느새 빈틈없는 시간표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동춘은 학교 끝나고 학원에도 가야하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충분히 알지 못한다.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답을 동춘의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의 입장에서 말해보자면 동춘은 어린이이고, 무지한 동시에 무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춘은 정작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를 그렇게 반기지 않는다. 새나라의 자라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중 한 명으로서 동춘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양질의 지식을 습득해야 하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성장판이 닫히기 전 이른 잠자리에 들어 몸을 키워야 한다. 엄마 혜진(박효주 역)은 하나 뿐인 딸의 미래를 완벽하게 설계하느라 매일이 바쁘다. 앞으로 펼쳐질 동춘과의 완벽한 이인삼각 끝에 다가올 미래를 상상 할 때 혜진이 보여주는 벅찬 얼굴과 반짝이는 눈동자와 달리 동춘의 표정은 어딘가 미묘하다. 마치 깊은 심연에 잠겨 있는 듯하고 또 가끔 모든 풍파를 이미 한 번 겪은 것처럼 초연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인생을 교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듯 결핍이 투영된 교육 시스템은 동춘을 차에 태워 늦은 밤 네온사인 간판이 반짝이는 도시를 가로지른다. 낮에 열지 않는 가게들이 문을 여는 시간, 집에 가지 않는 어른들과 지쳐 뛰지 않는 발걸음들. 어린이들의 낮이 지나면 어른들의 밤이 온다. 밤의 도시는 낮의 도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장소는 같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단지 시간 뿐이다.
왜 인지 묻지만 그 누구도 정확히 말해주는 사람 없고, 알아야 할 것만 짐처럼 늘어나는 세상에서 모든 질문들에 답할 수 없음을 깨닫는 동춘은 작은 한 숨을 한 번 쉬고 나선 질문을 줄이고 정답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항상 미로 속 막힌 벽을 마주하고 늘 빈손으로 돌아나오던 동춘에게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주지 못했던 답에 대해 막걸리는 로또 당첨번호로 유일하면서도 다소 황당하게 답한다.
4등 당첨번호를 알려준 이유, 큰 통과 누룩, 익힌 쌀을 준비 시킨 이유, 자신을 이동시킨 이유에 대해 동춘은 스스로의 힘으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고 머릿속에 울리는 막걸리의 목소리에서 답을 얻는다. 머리 위로 떠오른 수많은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끝에 도착한 막걸리 공장에서 동춘이 마주친 건 다른 세계로 통하는 어두컴컴한 웜홀이다. 언제나처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다 동춘은 결심을 했다는 듯 망설이는 기색 없이 훅 뛰어든다.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다.
막걸리가 알려준 또 다른 가능성이 결과적으로 정답인지 오답인지, 좋은 선택인지 아닌지에 대해선 묻지 않기로 하자. 원래 물음표의 끝에는 모든 것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허무맹랑한 말이라고 하더라도 질문에 대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답을 내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가능성에 무언가를 기대하지 말고 더 나은 삶과 성공 혹은 정답에 대해 묻지 않아도 각자의 삶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상상력에, 그리고 가능성에 기대할 수 있는 건 단지 하나 뿐이다. 이전과 또 다른 미래로 우리를 이끌고 앞으로의 세계를 영원히 그리고 무한하게 보존해 준다는 것.
과거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혹은 로또 당첨 번호나 투자 기회를 미리 알아내 막대한 부를 쌓는 능력 같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과거로 향한 초능력을 만드는 것이 상상력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 것이다. SF영화에서 이미 수없이 재현되었던 것 같은 진부한 초능력보다 오히려 실패로 좌절한 과거의 무지했던 날들에 대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얻는 일이라면 더 좋겠다. 무지로 얼룩진 어린 날들을 용서하고 또 용서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확실에 불안해하던 지난 낮과 밤들을 돌아보자.
벼랑 앞에 서있는 사람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거나 그대로 발을 내딛어 낙하하는 일. 낙하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비극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영화는 말한다. 그러니 관습과 법칙에서 벗어나는 상상력은 너무나도 귀하다. 새로운 세계에서 동춘은 기대의 영역을 벗어나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이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단평] 〈막걸리가 알려줄거야〉: 하나일 리 없는 문제 (0) | 2024.03.13 |
---|---|
[인디즈 소소대담] 2024. 2 멈춘 자리에도 영화를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은 (0) | 2024.03.12 |
[무명의 비평가들] 섹션 4. 한국여성영화감독의 계보학 - 인디토크 기록: 흩어진 질문들을 한데 모아 (1) | 2024.03.11 |
[무명의 비평가들] 섹션 3. 저기의 공동체와 여기의 커뮤니티 - 인디토크 기록: 사이에 교집합 (0) | 2024.03.11 |
[무명의 비평가들] 섹션 2. 어른이라 모르지만 모를 수만은 없다면 - 인디토크 기록: 비로소 딛게 되는 동력 (0) | 2024.03.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