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으면서도 큰, 현실에 균열을 내는 '부스럭'
인디포럼 월례비행 〈부스럭〉 대담 기록
일시 8월 31일(수) 오후 7시 상영 후
진행 최이다 감독
참석 이태안, 조현철 감독
*관객기자단 [인디즈] 김소정 님의 글입니다.
최이다 감독(이하 최이다): 안녕하세요, 진행을 맡은 최이다입니다. 간략하게 월례비행을 소개하자면 비평과 함께하는 독립영화 정기상영회로, 인디포럼이 인디스페이스와 함께 주관을 하고 있습니다. 중단되었던 월례비행이 2017년에 부활할 때 상영했던 작품이 〈초행〉이라는 조현철 배우님 주연작이었어요. 5년 뒤에 다시 이곳에 연출자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조현철 감독님과 이태안 감독님 큰 박수로 맞이해 주세요. 여러분들께서 질문을 생각하시는 동안 먼저 소개 같은 질문으로 시작을 해볼까 합니다. 두 분께서는 제가 알기로는 학교에서부터 공동연출이나 협업을 자주 하셨던 것 같습니다.
이태안 감독(이하 이태안): 제가 현철이를 처음 만난 게 2006년 2월쯤이었는데 멋있었어요. 배우 박정민이랑 현철이가 같이 돌아다녔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정말 배우구나 싶었어요. 현철이랑은 졸업 이후에도 한 번씩 서로 연락을 주고받고 하는 사이였어요. 제가 어려울 때 도움도 많이 주고 이번에 또 연락이 와서 같이 공동연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현철 감독(이하 조현철): 정민이만 사람들이랑 잘 어울리고 저는 혼자 다녔는데 정민이가 군대를 간 다음에 이제 제가 주름을 잡기 시작했죠.(웃음) 정민이를 먼저 보내버리고 제가 형, 누나들이랑 열심히 작업을 하기 시작하면서 태안이 형이랑도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최이다: 같이 연출을 해보고 싶다 아니면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인상을 받았거나 혹은 확실히 좋았던 순간이 있었을까요? 태안 감독님의 작품을 보시고 이 부분은 나랑 잘 맞을 것 같다든지.
조현철: 제가 〈로보트〉에 처음 나왔나요? 너무 예전이라 잘 기억이 안 나네요.
이태안: 2006년에 〈박스〉라는 작품을 찍으면서 현철이가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 건지 아니면 제가 먼저 제안을 한 건지는 잘 모르겠네요. 저희 둘 다 낯을 많이 가려서 제가 제안을 하기도 어려워하고 현철이가 저한테 말하기도 어려워하는데 어떻게 만났는지는 미스터리예요. 아마 제가 먼저 현철이가 연기를 하는 걸 보고 너무 잘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시나리오를 썼을 때 캐릭터가 현철이와 좀 비슷하다고 느꼈던 면이 있었어요. 또 현철이가 연출하는 것들을 보니까 연출은 더 잘하더라고요.
최이다: 태안 감독님의 〈로보트〉라는 작품이 있고 현철 감독님은 또 〈로보트 리바이벌〉이라는 작품이 있던데 아무래도 직관적으로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진짜 친한 친구와는 처음 만난 순간이 기억이 잘 안나는 것처럼 두 분이 영혼의 듀오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면 이제 관객분들의 질문을 드려볼게요. 질문이 많이 올라와서 어떤 질문을 드릴지 고민이 되는데 먼저 영화의 내용과 관련해서 질문을 해주신 분이 계시네요. 이태안 감독님께서 현철 역이 악역이라고 하셨는데, 마지막에 세영이에게 조언해주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태안: 이야기를 앞에서부터 따라가는 관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악역이라고 설정을 한 거고요. 세영이 바라볼 때 구조상 현철은 악역이죠.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에서 현철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영의 세계가 약간 신처럼 나오잖아요. 그런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이야기적으로는 악역으로 출발하지만 전체 구조에서는 정말 악역인가 싶어요.
최이다: 연기해주신 조현철 배우님은 어떤 입장에서 하셨는지 말씀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조현철: 다 알고 있는 신 같은 존재였어요. 근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다 안다는 게 되게 무섭더라고요. 이걸 다 알고 있는 거죠. 다 지켜보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될지도 알고 있고 우리가 여기에서 만날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 거죠. 그게 저한테는 공포로 다가와서 그렇게 선악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최이다: 그럼 같이 연기하셨던 천우희 배우님과도 이런 의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신 적 있으신가요?
조현철: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왜냐하면 세영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거든요.
최이다: 그럼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친척형님 생각에 산 향에 두드러기가 난 일이나 동화 테이프를 받은 일처럼, 우연이라고 믿기 힘든 일이 있으셨다면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최근이 아니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드시면서 있었던 일도 괜찮고, 〈부스럭〉이라는 영화는 상영 이후에도 이어지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상영 중에 발생한 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조현철: 상영 중에 있었던 일은 아직 파악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고, 그런데 제가 어떤 것에 꽂히면 계속 그쪽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거든요. 다 정해져 있나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제가 사실 몇 달 전에 상을 받으면서 할머니가 거기 있다고 말한 것도 이 맥락에서 출발을 해요. 제가 괜히 아무런 이벤트 없이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니거든요. 저희 시골집에 〈부스럭〉을 찍으면서 스태프들이 자주 묵었어요. 그런데 거기서만 자면 사람들 꿈에 어떤 할머니가 나온대요. 실제로 거기가 할머니가 돌아가신 장소이기도 하거든요. 제가 〈부스럭〉 찍고 나서 4월쯤에 할머니가 저희 시골집에서 잔치를 하는 꿈을 꿨어요. 근데 할머니가 입고 있는 저고리 색깔이 너무 예쁜 거예요. 빨간색인데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야 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이제 저희 아버지가 시골집에서 시간을 보내게 됐는데,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날 고모한테 제가 ‘여기 할머니가 있는 것 같다, 꿈에 자꾸 나온다, 사람들 꿈에도 나오고 얼마 전에 나도 꿈을 꿨다’ 말을 했어요. 할머니가 입고 있는 저고리 색깔을 고모한테 잘 설명을 못하고 있었는데, 창 밖으로 마당을 보는데 연산홍이라고 철쭉 중에 색깔이 엄청 고운 애가 있어요. 그걸 보는데 딱 저 색깔이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고모한테 저 색깔이라고 할머니가 입었던 저고리가 저 색깔이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고모가 놀라면서 아빠가 오늘 하루종일 잘 일어나지도 못하는 와중에 일어나서 저 꽃 색깔이 특이하다고 말했다는 거예요. 그런 일들이 있었죠.
최이다: 두 분이 같은 질문을 주셨는데요. 현재 감독님께서 코멘터리 영상에서도 갖고 오신 수첩을 갖고 계셨는데 이 수첩에는 어떤 메모가 있나요? 보통 무엇을 수첩에 쓰시나요?
조현철: 아, 수첩에 뭘 적냐고요? 음… (웃음)
이태안: 현철이가 메모를 자주 하는 습관이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아까 말했던 거랑 이어서 말하자면, 몇 년 전에 우리가 어떻게 우주에서 연결되어 있는지를 도표로 진짜 넓게 표시해서 보여주더라고요. 보니까 진짜 연결돼 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아이디어들이 이 수첩에 다 있는 것 같아요.
최이다: 답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분 첫인상과 지금의 인상이 어떻게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두 분이 ‘연애썰’을 푸는 것 같다는 코멘트가 있었어요. 영화를 찍기 전엔 너무 좋았다, 그런데 〈부스럭〉을 찍고 나니까 좀 달라졌다, 이런 것들이 있을까요?
조현철: 태안이 형은 한결 같아요. 학부 때부터 지금까지 저희 중에 영화를 제일 잘 찍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이태안: 저도 똑같다고 생각하는데 하나 인상이 더해진 건 현철이가 연기나 연출적인 것, 그러니까 창작적인 것은 원래 뛰어났다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같이 작업하면서 대표자, 리더의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제가 잘 모르던 부분들을 이번에 알게 된 것 같아요. 문제가 있을 때 소통도 잘하고.
최이다: 안 그래도 코멘터리 영상에서 팀에 관해서 많이 말씀을 하셨는데 팀을 이끄실 때 ‘나 좀 잘하고 있다’ 이렇게 느끼셨던 부분이 있을까요?
조현철: 저희 상황이 되게 급박했고 카메라맨 등장하는 것도 현장에서 결정된 사안이었어요. 그 카메라맨의 성별에 대한 논의를 이다 씨가 처음 제기를 해줬죠. 남성으로 성별 고정이 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소통하는 과정이 재밌었던 것 같아요. 되게 급박하고 쫄렸지만.(웃음)
최이다: 지금 좀 혼란스러운 분이 계실 것 같은데 제가 이 자리에 인디포럼 상임작가로서 모더레이터를 하기 위해 나왔지만 이중첩자예요.(웃음) 저는 카메라맨으로 등장했던 연출부로, 조현철 감독님의 〈너와 나〉에서도 스태프로 같이 함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좀 곁들여서 코멘터리를 하자면 그때 1회차 촬영이었던 걸로 기억을 하는데요. 카메라맨이라는 요소가 긴급하게 투입이 되었고, 정확하게 말하면 카메라퍼슨(camera person)이 더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한데, 처음에는 카메라맨을 맡아주실 분이 남성 감독님 한 분이셨어요. 근데 제가 그걸 보고 나서 세영이 성별이 여성이기도 하고 여러 이슈들이 떠오르면서 남성이 카메라를 밑에서 찍고 있는 것 혹은 은밀한 장소에 찍고 있는 것이 〈부스럭〉이라는 영화를 한정된 해석의 틀로 보게 할까 봐 조금 우려스러운 거예요. 세영의 편집증이라든지 아니면 ‘불법촬영’ 이슈로만 읽힐 가능성이 있어서. 물론 이렇게 해석될 수도 있지만 이런 방식으로만 해석되는 건 〈부스럭〉이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영역을 좀 줄인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아침에 촬영 준비를 하면서 급하게 이런 고민이 있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두 분 다 경청을 해주셨어요. 저는 좀 운이 많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이런 현장이 흔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말하고자 했던 건 두 분이 잘 들어주셨다는 것이고 현장에 대해서는 제가 좀 이따가 첨언을 하겠습니다.
관객 분들의 질문을 다시 이어서 해볼게요. 이 모든 게 허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종종 삶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감독님께서는 그런 순간이 없으셨는지 혹은 삶의 의미를 두지 않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삶의 의미보다는 사랑이라는 연료로 삶을 작동해 나가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한번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까요? 조금 어려우시면 비슷한 질문이 있어요. 사랑마저도 무의미하게 느껴질 땐 어떻게 하시나요?
조현철: 저는 사실 되게 무서웠던 적이 있어요. 영화 속 세영이처럼 무서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다 못 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는데, 좀 자세히 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자세히 보면 너무 복잡하거든요. 세상이 이렇게까지 복잡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복잡해요. 그러니까 눈앞에 보이는 것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라는 게, 인간의 마음이라는 게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걸 다 허상이다, 내 뇌 속의 망상이다, 라는 생각으로부터 좀 안도감을 얻는 것 같아요. 뭔가를 보는 행위, 관찰하는 행위가 저한테는 지금으로서는 사랑이 필요한 행위인 거죠.
최이다: 이태안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태안: 사랑마저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하거든요. 학교 다닐 때의 시간과 지금이 또 다른 것 같아요. 아무것도 안 하고 이 우주에서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 이런 게 가끔 있죠. 그런 것들이 〈부스럭〉에도 조금 묻어 있지 않을까.
최이다: 제가 예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는데, 사막에 모래 하나를 옮겼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걸 수도 있잖아요. 근데 번복해서 생각해 보면 내가 없었으면 이 모래알은 움직일 수 없었다는 얘기를 어딘가에서 읽은 적이 있어요. 소설이었던 것 같아요. 마찬가지로 저는 두 분이 지금 허무함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지만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예민하고 깊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거든요. 현장에서도 느꼈어요. 현장 얘기를 좀 이어서 하자면 제가 스태프로서 카메라맨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한다는 건 사실 많은 현장에서 이루어질 수가 없는 일이에요. 특히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거나 논란이 될 수 있다, 아니면 뭔가 이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거는 완성되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서 월권을 취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거든요. 일단 제가 그런 고민을 했다는 것 자체는 〈부스럭〉에 굉장히 애정을 갖고 참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큰 이유는 제가 말씀을 드렸을 때 이 두 감독님이 경청을 해 주실 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긴급한 상황이었지만 유동적으로 뭔가 바꿀 수 있었다는 건 달리 말하면 두 감독님이 경청을 해주신다는 뜻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애초에 제가 말씀을 드린 거였어요.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러면 다른 질문으로 넘어갈게요. 정상성에 대해 의심하는 순간들이 주로 어떤 때인지 궁금합니다.
조현철: 이 이야기를 하면 연애 프로그램 광인 것 같은데,(웃음) 그런 걸 보고 있으면 이상해요.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는 걸 보여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다들 어디서 봤던 걸 학습하고 충실하게 역할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특히나 요새는 자극이 더 심해졌는지 더 미친 듯이 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연애를 포함해서 결혼까지. 이걸 굳이 스케일을 달리 해서 보자면 모든 걸 다 의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역시나 너무나 회의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이태안: 저는 평상시에 그럴 때 느껴요. 현철이의 손을 보면, 두 번째 손가락이 어느 정도 길이라는 걸 제가 예상하면서 만나잖아요. 근데 어느 날 보는데 이 손가락이 내가 알던 현철이 손가락보다 긴 거예요. 그러면 현철이라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인식과 다른 어떤 한 요소 때문에 현철이 전체가 좀 입체적으로 보이고. 그러니까 뒤집어서 보게 되는 거죠. 내가 알고 있던 사람과 달리 보이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 중에 하나만 부적절하면 돼요. 그게 약간 〈부스럭〉 연출할 때 연출 원칙이기도 했어요.
최이다: 혹시 연출 원칙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조현철: 관객한테 너무 선택지를 많이 주지 말자, 한 번에 두세 가지만 헷갈리게 하자. 그런 게 있었고. 논리를 너무 벗어나지는 않게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일상성 안에 뭔가 계속 뒤틀린 것이 사실 저한테는 가장 공포스러운 지점이니까요.
이태안: 비정상만 가득한 것보다는 다 정상인데 한 요소가 다른 거죠. 예를 들면, 영화를 보는 스크린이 있지만 그 뒤에 스크린이 하나 더 열리는 것 같은 상상을 하게 되는 거죠.
최이다: 네, 그래서 오늘 여러분이 보신 버전은 티빙에서 보신 메이킹 버전과 또 다르다는 걸 아실 것 같은데요. 제가 인상깊게 봤던 부분은 메이킹 영상을 티빙에서 볼 때는 메이킹 영상으로 따로 편집된 영상을 직접 보여줬다면 오늘 상영한 확장판에서는 메이킹 영상을 보는 패널들이 함께 나오더라고요. 그러니까 메이킹 영상이 스크린에 틀어져 있고 화면 하단에 프로그램 패널들이 앉은 뒷모습이 보이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메이킹 영상에 관한 메이킹 영상이 되었는데, 이런 확장판을 만드는 데 있어서 편집 방향이라든지 이런 게 궁금했습니다. 자막도 없고요. 어떻게 보면 티빙에 공개되지 않은 대화를 거의 풀버전으로 들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인디포럼 상영본을 만드실 때 티빙과는 다른 어떤 방향성을 취하셨는지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조현철: 티빙에 공개가 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것 같아서 제가 방송국에서 편집본을 받았어요. 각 카메라 번호를 누르면 패널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 화면이 송출되어서 실시간으로 편집을 할 수 있는 게 있어요. 그걸 아빠한테 드린 다음에 아빠가 보고 싶은 화면을 번호를 눌러서 보시게 했죠. 그런 라이브한 느낌을 가지고 오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사실 저희가 리얼리티 쇼를 볼 때 있는 그대로 다 보는 경우는 없잖아요. 다 제작진의 의도에 맞춰서 어떤 발언들이 삭제가 되고 편집되고 그러니까요. 거기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저희 아버지가 본 버전 그대로 하면 아버지는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웃음) 태안이 형이 다시 편집을 했죠.
이태안: 아버지가 하신 것을 볼 때 느낀 게 있었어요. 현철 아버님이 뭘 보고 싶어 하시는가, 이것도 관객으로서 또 시선의 선택이잖아요. 그걸 볼 때 생각이 확장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최이다: 두 분은 자기 작품에 대해서 코멘트를 하신 거고 티빙에서 편집을 해주신 거잖아요. 그 편집본을 보셨을 때 예능에 출연하는 자신, 예능에 출연해서 내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는 자신을 보았을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좀 궁금해요.
조현철: 사실 제 모습이 화면에 나오면 제일 신경 쓰이는 건 외적인 모습이에요.(웃음) 제가 머리를 아마 잘못 만진 것 같아요. 메이크업이라도 하고 갈 걸. 그래서 태안이 형한테 부탁했죠. 색보정을 좀 해달라고. 여기 태안이 형 의도가 정확히 들어가 있는데 보시면 태안이 형 얼굴만 예쁘게 나오게 편집했죠.
이태안: 잘 생각해 보시면 제가 천우희 배우 쪽을 잘 안 봐요. 제 오른쪽 얼굴을 뺐어요. 그런 선택들이 또 하나의 시네마 아닐까.(웃음)
최이다: 네, 그렇다고 하시네요.(웃음) 내용에 관련된 질문이 들어왔는데요. 왜 현철은 마지막에 웃을까요. 현철이 마지막에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조현철: 뭔가 의도를 갖고 한 게 아니라 그냥 그래야 될 것 같아서 했어요. 별 의도가 없어요. 그냥 울어야 될 것 같았어요. 편집을 하면서 의도가 생겼겠죠? 태안이 형의 의도를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태안: 조현철 배우의 팬들도 아마 많으신 것 같은데 지금까지 조현철 배우의 연기를 다 아시잖아요. 그 순간에 배우로서 분석적이기보다 느껴지는 어떤 것을 해야 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선택을 자연스럽게 몸이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우는 거잖아요. 써야죠.(웃음) 중요한 순간이잖아요. 현철이 세영을 힘들게 하는 존재라서 어떻게 보면 악역이기 때문에 이야기적으로 보면 왜 울지 싶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최초에 생각했던 것과 처음 얘기한 기획에 맞는 선택이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은 게, 아까 시간이 아깝다 그랬잖아요. 약간 어렸을 때 장면들이 하나씩 기억날 때 있으시죠. 장면은 기억나는데 그 친구의 이름은 기억 안 나고, 한 장면만 기억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그게 너무 그리운 거예요. 누군지도 모르겠는데. 몇 년 지나서 또 그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친구가 실제로 있었던 앤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제가 어렸을 때 혹시 혼자 상상하다가 만든 장면인가 싶기도 하고. 근데 있든 없든 간에 기억 속에 무언가를 계속 그리워하는 느낌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많이 생기는 것 같고 여기에 눈물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어요.
최이다: 비슷한 질문이라서 묶어서 드리자면 ‘전체 과정을 영화로 만들고 싶은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제작진과 협의가 어떻게 되었는지 얘기를 듣고 싶다.’라는 질문이 들어왔습니다.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현철: 사실은 영화 메이킹, 그러니까 방송국이 촬영한 메이킹 사이에 저희가 대본을 쓴 가짜 메이킹을 하나를 찍을 예정이었는데 이게 니즈가 맞지 않았나 봐요. 촬영 하루 전인가 찍을 수가 없게 되었어요. 망했다 싶어서 머리를 싸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조건에 휘둘리지 않고 저희 나름대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나가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최이다: 다른 질문입니다. 스토리를 생각하실 때 메시지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시나요?
조현철: 저 같은 경우에는 이야기도 아니고 메시지도 아니고 그냥 장면인 것 같아요. 영화의 첫 장면일 수도 있고 마지막 장면일 수도 있고. 주로 첫 장면이랑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 다음에 그 사이를 이어가는 과정을 반복했던 것 같아요.
이태안: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최이다: 그럼 〈부스럭〉의 경우에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혹시 있었을까요?
이태안: 정확하게 어느 장면이 제일 먼저인지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몇 개가 합쳐졌던 것 같아요.
최이다: 그렇군요. 어떤 분께서 ‘지금도 현실인가요?’라고 질문을 주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도 〈부스럭〉의 한 파트인가요?
조현철: 사실 그 생각까지 했었는데 조금 귀찮아가지고.(웃음) 장난을 쳐볼 수는 있는데 요새 기력이 없어서.
이태안: 이렇게 와주셔서 같이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하는 과정 자체가 영화보다 더 소통하는 것 같아요.
최이다: 그러면 이 영화가 이제 세상에 나왔을 때 어떤 반응이 있겠다,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상상했던 것들이 있을까요?
이태안: 저는 찍고 나서 공개하기 전까지 조금 두려웠어요. 저도 완전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부스럭〉의 가장 어려운 점은 그거였어요. 두 가지 방향의 상충하는 목표가 같이 있었거든요. 하나는 관객이 세영 입장에서 체험하듯이 영화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세영 밖에서 바라보는 방식으로 낯설게 한다. 근데 낯설게 하는 것과 세영에게 몰입시키는 것이 연출적으로는 약간 충돌하는 거라서 조절이 너무 복잡하더라고요.
조현철: 저는 사실 태안이 형 보다는 뒤로 빠져서 보는 입장이었고, 현실이 붕괴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좀 더 과격한 방식을 취해도 된다는 입장이었어요. 논리를 좀 많이 건너뛰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근데 태안이 형은 이걸 되게 촘촘하게 메꾸려고 했죠. 다음 컷으로 넘어갈 때 관객이 뭘 인지하고 어떤 정보를 듣고 그 정보가 어떻게 변하고 하는 것들을 형이 엄청 신경을 썼던 것 같고. 저희가 제일 많이 했던 말이, 이걸 태안이 형의 나이가 많으신 어머니가 보셨을 때 이해를 하실 것인가 였어요. 근데 저는 그냥 이걸 찍는 그 상황 자체를 그냥 재밌게 가지고 놀았던 것 같아요.
최이다: 그러면 혹시 어머니께 보여드리셨나요?
이태안: 생각보다 더 몰입하셔서 보셨고, 어머니가 현철이도 알고 계시니까 그 뒤의 상황도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최이다: 현철 감독님 아버님께서도 메이킹 영상을 멀티캠으로 원하는 화면을 움직이면서 보셨다고 했는데 혹시 아버님께서 하셨던 말씀은 없으셨나요?
조현철: 잠깐 보고 나서 눈을 감고 계셨어요.
최이다: 시간이 많이 없어서 질문 하나만 더 드리려고 합니다. 〈부스럭〉이라는 제목에 대해서, 중요하지만 조금 피해간 질문인 것 같은데요. 제목을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이태안: 아마도 ‘부스럭’이라는 단어의 어감으로 출발했을 거고. 그 다음에 93년쯤에 저희 아버지,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자다가 깨서 들었을 때, 그런 과거에 대한 제 기억들을 연상하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이어졌고요. 그 다음에는 의미가 어떻게 바뀌었죠?
조현철: 글쎄요.(웃음)
최이다: 마무리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에 슬슬 인사를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질문이 많으실 거고 현장에서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은 분들도 계시고 오히려 더 커졌을 관객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영화 만들기에 관한 영화로 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이 현장에 계신 분들이, 말씀드린 것처럼 〈부스럭〉 파트 3, 파트 4에 같이 함께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애초에 영화 생태계 그리고 방송 생태계에서 고민하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영화 만들기에 대한 영화를 탄생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들도 부스럭 소리를 안고 가셨으면 좋겠고,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를 마쳐보겠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너와 나〉라는 작품을 상영을 하게 되었는데, 앞으로 준비 중이신 작품들 소개하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 지어볼까 합니다.
이태안: 제가 〈너와 나〉를 먼저 봤는데 보고 울었어요. 꼭 부산에서 다들 보시면 좋겠고요. 오늘 와주신 여러분들께 소통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조현철: 〈부스럭〉을 하면서 제일 바랐던 건, 영화를 본 뒤에 관객들이 이야기를 하게 되는 그림이었던 것 같아요. 욕을 하든 해석을 내놓든, 저희는 그런 이야기들을 하면서 영화를 찍었으니까 여러분들께도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는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고. 〈너와 나〉도 역시나 그런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많이 기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이다: 월례비행은 매달 마지막 주에 독립영화 상영을 하면서 이렇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 와주셔서 감사하고 인디포럼 홈페이지에 가보시면 박동수 평론가님께서 〈부스럭〉에 관해서 쓰신 글이 있으니까 같이 읽어주시면 더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감사합니다.
'Community > 관객기자단 [인디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디즈 Review] 〈달이 지는 밤〉: 담담하게 마주하는 죽음의 얼굴 (0) | 2022.10.04 |
---|---|
[인디즈 Review] 〈홈리스〉: 양심과 이기심 사이를 줄타기하게 만드는 (0) | 2022.09.27 |
[인디즈 Review] 〈성적표의 김민영〉: 나의 삼각형에게 (1) | 2022.09.20 |
[인디즈] 〈성적표의 김민영〉 인디토크 기록: 친구가 아닌 너를 이해하는 일 (1) | 2022.09.15 |
[인디즈 Review]〈말아〉 리뷰: 저는요. 속 보이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0) | 2022.09.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