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리뷰 : 타임머신을 타고 온 영상 편지 =^..^=
*관객기자단 [인디즈] 은다강 님의 글입니다.
IMF와 2002년 월드컵 사이, 어떤 이에게는 노스탤지어가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말로만 들었던 과거의 시간. 그 시간에 적힌 이 이야기가 낯설든 눈물겹게 익숙하든 이것 하나는 확신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태희(배두나), 혜주(이요원), 지영(옥지영), 그리고 쌍둥이 자매 비류(이은주), 온조(이은실)의 스무 살을 마주하는 일은 오래전 묻어둔 타임캡슐을 열어보는 것 같은 두근거림을 선사하리란 걸.
인천에 사는 다섯 명의 고교생활은 이들이 쓰는 플립폰의 16화음 벨소리처럼 단조롭고 비슷했다. 하지만 졸업 후, 언제나 함께이리란 믿음은 현실에 치여 자꾸 흔들린다. 서울로 취업해 1인 가구의 가장이 된 혜주의 삶과 조부모와 함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집에 사는 지영의 삶은 교집합의 면적이 가장 빠르게 줄어들었다. 혜주에게 중요한 건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다. “예전에 친한 사이였다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니? 현재가 중요하지.” 그래서 직장에서 유니폼을 입는 혜주에게 중요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옷’이다.
비류와 온조는 엄마가 보낸 커다란 택배를 들고 할아버지 댁에 찾아가지만, 인터폰으로 자신은 딸이 없다는 냉정한 말만 돌아온다. 자매는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엄마가 할아버지 딸이 아니면 어디서 났겠냐는 유쾌한 말과 함께 문 앞에 택배를 두고 떠난다. 그리고 방금 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좌판을 펴고 직접 만든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고양이를 부탁해〉의 장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인물들이 자신의 처지를 동정하며 연민하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일단 뚜벅뚜벅 걷는다는 점.
[잘 지내니? =^..^=]
함께 하지 못할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희의 문자와 전화에 어떻게든 다섯은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그러나 부두에서 높은 데시벨로 함께 깔깔 웃던 그들의 모습은 더 이상 없다. 태희는 어렵게 모인 자리에서 금세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친구들이 속상할 뿐이다.
태희의 삶은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일견 평탄해 보인다. 부모님과 함께 살며 아빠의 일을 돕고, 정기적으로 뇌성마비 시인의 시를 타자기로 치는 봉사활동도 한다. 그러나 친구들 사이에 생기는 균열을 막을 방도는 모르겠고, 공부하느라 오빠는 할 수 없는 잔심부름을 자신은 어김없이 해야 하고, 시인이 화가 난 이유도 알 수 없는데 생각할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태희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 시인에게 메모를 남긴다. ‘누군가가 널 떠난다고 해서, 널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건 태희가 오래 고민해서 찾아낸, 달라지는 친구들 사이를 이해하려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섯 사람이 성인이 되어 생긴 공통점은 티티라는 고양이의 집사였다는 사실이다. 티티는 지영이 길에서 발견해 혜주의 생일 선물로 데려왔다가 다시 지영의 집으로 돌아오고, 지영의 손에서 태희의 손으로 건네졌다가 태희가 집을 나오며 비류와 온조의 집으로 옮겨지며 다섯 명의 집사를 거느리게 됐다. 멀어졌다고 해도 선뜻 고양이를 부탁하고 맡아주는 사이. 이들의 우정이 그렇게 쉽게 흩어질 리 없다.
스무 해가 지나 불쑥 다시 찾아온 이 영화처럼, 뿔뿔이 흩어진 채 이십 년을 보낸 이들도 지금 인천 어느 골목에서 왁자지껄 술판을 벌이거나 혹은 동대문 근처의 호텔에서 모여 호캉스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능하면 누군가의 집에서 이젠 20살 장수묘가 됐을 티티도 함께 모이는 장면을 상상하고 싶다. ‘지금에서야 말하는 거지만, 너 그때 얼마나 재수 없었는지 알아?’하는 앞담화를 하면서. 말하지 못하고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편하게 쏟아내기를. 언니들아, 잘 지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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