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착역〉 리뷰 : 어린 시절 어느 여름날의 기억
*관객기자단 [인디즈] 유소은 님의 글입니다.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남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모두 크기와 모양이 다른 각각의 세계 안에서 살아간다. 그것의 끝은 막다른 곳일 수도 있고, 예상하지 못한 다른 형상일 수도 있다.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지는 ‘세상의 끝’을 사진으로 찍어오라는 과제를 받은 14살 아이들은 종착역으로 향한다.
영화 〈종착역〉은 네 명의 여성 청소년이 여름방학 숙제를 위해 함께 여정을 떠나는 로드 무비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방학, 시연(설시연), 연우(배연우), 소정(박소정), 송희(한송희)는 사진 동아리 ‘빛나리’ 담당 선생님에게 방학 숙제를 부여받는다. 바로 세상의 끝을 필름 카메라로 찍어오라는 것. 쉽게 감을 잡기 힘든 난제에 아이들은 고민에 빠진다. 세상의 끝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어떤 걸 찍어야 할지부터 방학 숙제는 점수에 들어가지 않으니 하지 말자는 얘기, 벽을 찍으려고 생각했는데 너무 성의 없는 것처럼 보일 것 같다는 걱정 등 평가를 의식하는 현실적 말이 오간다. 고심 끝에 그들은 시연의 제안대로 1호선의 끝인 신창역을 찍기로 한다.
언뜻 다큐멘터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이 영화는 극과 현실을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특정한 대사를 주지 않고 상황만을 설정해 그 안에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촬영해 〈종착역〉의 언어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부분 롱 테이크로 이어지는 장면은 현실감을 높이면서 인물의 말을 경청하게 하고, 카메라의 시선도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고 있는 듯하다.
네 명의 여성 청소년이 함께하는 소소하고 풋풋한 일상은 유년 시절의 추억을 건드린다. 친구가 전부이고 작은 것에도 예민하던 시기, 홀수보다 짝수인 무리에 안정감을 느끼고 집에 가는 방향이 달라 혼자 가야 하는 하굣길에 소외감이 드리우며 학급이 다른 것에서 묘한 거리감을 체감한다. 〈우리들〉의 선(최수인)과 지아(설혜인)가 그랬던 것처럼 우정의 징표로 팔찌를 나눠 가지면서 무리 안에 있다는 소속감이 일기도 한다. 얇은 실로 엮인 팔찌가 친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묶어주는 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어른들은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절에는 커다랗고 중요하게 느껴지던 고민도 만날 수 있다. 더는 초등학생이 아니라 중학생이라는 교사의 말은 아직 미숙한 아이들에게 의젓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안겨준다. 교과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동급생들과 비교하고, 중학생이 되면서 다 비슷해지는 친구들의 모습을 이상하게 느끼면서 성적과 자아에 대해 고민한다. 어린 시절에 겪었을 만한, 시간이 지나 잊고 있던 기억이다.
신창역에 도착해 사진만 찍으면 끝나는 여행일 줄 알았지만, 아이들은 끝없는 위기 상황을 맞닥뜨린다. 지하철을 잘못 타서 다른 경로로 가기도 하고, 겨우 찾아간 종착역은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철로가 끊겨 있는 모습이 아니다.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친구가 사라지기도, 소나기와 어둠을 피해 하룻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시점에 끝을 만나러 가는 영화는 여러 변수를 헤쳐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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